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95
94화. 입학식“천검이 직접 모시러 온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방을 정리하고 있던 공손수는 그 말에 놀라서 뒤를 돌아봤다. 흑영이 그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있었다.
“천검이 온다니? 폐하의 호위는 어쩌고?”
천검(天劍)은 금의위 최고수이자, 천하에서 가장 강한 열 명의 무인으로 손꼽히는 십걸의 일인이었다.
하지만 그는 황제의 곁을 항시 지키는 그림자이기도 했다.
“황제 폐하께서 직접 천검을 보내셨다고 합니다.”
“허허. 이 늙은이가 뭐라고…….”
황제의 애틋한 마음에 공손수는 잠시 눈을 감았다.
살수들의 공격이 있고 며칠이 지났다.
전 승상이었던 공손수가 습격당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마자 황궁은 뒤집혔다.
듣기로는 황제가 대노하여 흉수를 찾으라고 명령했고, 벌써 관련자 몇 명이 잡혀 들어갔다고 들었다.
또한 수많은 관료들이 과거 철혈의 재상이라 불렸던 공손수의 귀환을 두려워하고 있다고 하였다.
“……많은 관료들로부터 접촉이 있었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모두에게 똑같이 전하거라. 죄를 지은 자는 죗값을 치를 것이요, 피를 흘리게 한 자는 핏값을 치르게 될 것이라고.”
“예.”
잠시 서늘한 표정을 지었던 공손수가 몸을 돌려 다시 방 안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몇 안 되는 짐이라, 정리하는 데 시간은 얼마 걸리지 않았다.
물건이라고는 갈아입을 무복 몇 벌, 즐겨 읽는 서책 몇 권, 그리고 방 안에서 휘두르던 목검 하나가 전부였다.
공손수는 손때가 묻은 목검을 어루만지며 웃었다.
“허허. 때가 많이도 탔구나.”
“……주무실 때도 잘 놓지 않으셨으니까요.”
흑영은 공손수가 얼마나 노력했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남들보다 굼뜨고 허약한 몸으로 강해지려면 남들보다 몇 배 이상 노력하는 수밖에 없었다.
공손수는 종일 검을 쥐고, 검을 휘두르고, 검을 생각했다.
궁금한 것은 아무리 작고 사소한 것이라도 스승을 찾아가 묻길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청룡학관 애들이 어르신의 반만 노력했으면 천무제 우승을 밥 먹듯이 했을 텐데…….
백수룡이 혀를 내두르며 그렇게 말할 정도였다.
그렇게 한 달이 넘는 시간을 이곳에서 무공을 수련했다.
지난 시간을 되새기는 공손수의 눈빛이 아련했다.
“마치 꿈을 꾼 것만 같구나.”
“……꿈을 이룬 시간이었다고 생각해요.”
“허허. 말재주가 제법 늘었구나.”
“어르신과 백 선생 사이에 있으니 안 늘 수가 있어야죠.”
“요 녀석 봐라? 나중에는 나랑 대작도 하자고 하겠는걸.”
“지금도 못 할 건 없죠.”
“무어라? 푸하하하!”
공손수가 껄껄 웃자 흑영도 따라서 빙긋 웃었다.
그녀도 변했다.
입가에 자연스러운 미소를 짓는 날이 많아졌다.
전부 백룡장에 온 이후로 생긴 변화였다.
그녀는 백수룡에게 따로 무공을 배우지는 않았지만, 그 외에 많은 것을 보고 배웠다.
“우리 둘 다 이곳에서 참 많이 배웠구나.”
“……예. 그리울 것 같습니다.”
공손수는 손을 뻗어 탁자 위, 이 방 안에 있는 유일한 새것을 손에 쥐었다.
그것은 청룡이 똬리를 튼 모양의 손바닥만 한 옥패였다.
청룡패(靑龍牌).
청룡학관에 입학한 학생들에게만 주어지는 학생증.
어제 오후, 청룡학관 신입생 입관 시험 최종 결과가 발표되었다.
“다시 한번 합격을 축하드립니다.”
“아슬아슬했지. 맨 아래에 이름이 적혀 있는 줄 알았다면 밑에서부터 찾아볼 것을.”
“사실 위에서부터 찾으실 때 조금 황당하긴 했어요.”
“요 녀석이…….”
공손수가 눈을 샐쭉하게 뜨고 째려보자, 흑영이 시선을 슬그머니 피했다.
“어쨌든 합격은 합격이죠.”
비록 말석이었지만, 공손수는 청룡학관 입관 시험에 당당히 합격했다.
“허허. 그래. 수석이든 말석이든 합격은 합격이지.”
청룡패를 품 안에 넣는 것으로 짐 정리를 끝낸 공손수와 흑영은 방을 나섰다.
“떠나기 전에 백 선생을 만나서 한 번 더 인사를 해야겠구나. 이게 다 최고의 스승을 만난 덕분이니.”
“……백 선생이 최고의 스승이라면, 어르신은 최고의 학생이었어요.”
“할 거면 하나만 해라. 금칠했다가 놀렸다가……. 이랬다저랬다 하면 엉덩이에 뿔 난다는 말도 못 들어 봤느냐?”
“저도 마지막 날이니까 이 정도 투정은 좀 받아 주세요.”
“쯧쯧. 이런 망아지를 누구한테 시집을 보낼꼬…….”
두 사람은 시시콜콜한 대화를 나누며 방을 나섰다.
“할아버지!”
“할아범. 왜 이렇게 늦어.”
정자에 앉아 기다리던 위지천이 손을 흔들었고, 안색이 창백한 헌원강이 툴툴거렸다.
‘허허. 저 녀석은 인간이 맞나 싶군.’
큰 상처를 입었던 헌원강은, 놀랍게도 며칠 만에 스스로 걸어 다닐 만큼 회복이 되었다.
공손수가 아끼지 않고 먹인 영약과 백수룡이 가르친 녹림십팔식이 자가 회복력을 끌어올린 덕분이었지만, 그걸 모르는 두 사람의 눈에는 괴물처럼 보일 뿐이었다.
‘하여튼 떠나기 전에 괜찮아진 모습을 보게 돼서 다행이야.’
한 달 동안 정든 백룡장을 한번 빙 둘러본 공손수가 모두에게 말했다.
“입학식에 늦기 전에 가자꾸나.”
오늘은 청룡학관 신입생 입학식이 있는 날이었다.
그리고 오늘, 공손수는 황궁으로 돌아간다.
* * *
입학식 행사는 성대하게 차려졌다.
대연무장 한가운데 총 일백의 신입생 합격자들이 도열했다.
그 주변으로 신입생들의 부모와 지인들이 감격 어린 표정으로 그들을 지켜보는 중이었다.
“얼마 전, 우리는 간악한 살수들의 도전에 직면했습니다. 여러분은 대련시험장에서 있었던 일을 기억할 것입니다.”
청룡학관주 노군상에 말에 신입생들이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대련시험장에서 있었던 살수들의 암살 시도는 ‘청룡학관 입관 시험을 방해하기 위한 음모’로 바뀌어 공표되었다.
결과적으로 그것은 올해 신입생들 간의 유대감을 형성했다.
“역사 속에서 사파의 도전이 계속 있어 왔지만, 항상 그래왔듯 우리는 또 이겨낼 것입니다. 청룡학관이 멸마척사의 선두에서 설 것입니다!”
노군상의 연설이 끝나자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져 나왔다.
노군상이 단상에서 물러나고, 입학식 행사의 사회를 맡은 매극렴이 말했다.
“이어서 신입생 대표의 연설이 있겠습니다. 수석 입학생은 올라오시오.”
잠시 후, 단상 위로 한 소년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남들보다 작은 체구에 가녀린 몸.
검을 휘두르기보다는 검에 휘둘리게 생긴 모습이었지만, 그곳의 누구도 그 소년을 무시하지 못했다.
‘저 녀석이 위지천…….’
‘독고준 선배와 호각으로 겨룬 천재.’
‘저런 괴물이 나랑 동갑이라니…….’
청룡학관 강사 전원 만장일치.
압도적인 성적의 수석.
신입생 동기들은 부러움과 동경과 질시의 시선으로 위지천을 바라봤다.
“그래. 지금을 실컷 즐겨라. 졸업식 연설은 반드시 내가…….”
역시 만장일치로 차석을 차지한 남궁석이 경쟁심을 활활 불태우며 이를 갈았다.
하지만 위지천은 남궁석에겐 관심조차 없었다.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의 시선에 눈앞이 새하얘질 지경이었다.
“아, 안녕하세요. 위지천입니다.”
어깨를 움츠리는 수줍은 소년의 인사에 누군가는 웃음을, 누군가를 못마땅한 시선을 보냈다.
매극렴이 위지천을 안심시키며 말했다.
“편하게 하고 싶은 말을 하면 된다.”
신입생 연설.
졸업생 대표 연설과 함께, 청룡학관 재학 중에 누릴 수 있는 가장 영광된 순간 중 하나였다.
“저는…… 수석이 되어서 이 자리에 서고 싶었습니다.”
모두가 자신을 바라보는 그곳에서, 위지천이 부끄러움에 빨개진 얼굴로 말을 이어 나갔다.
“왜냐하면 다른 분께 신입생 연설을 양보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뭐?”
“무슨 소리야?”
그 말에 모두가 놀랐지만, 가장 놀란 사람은 공손수였다.
위지천의 시선이 아까부터 자신을 향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천아. 너 설마…….”
“공손수 동기님. 올라와 주세요.”
위지천의 지목에 공손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것은 잘못된 것이다.
위지천이 노력해서 얻은 보상을, 단지 친하다는 이유만으로도 대신 받을 수는 없었다.
그때였다.
“어르신.”
어느새 다가왔는지, 백수룡이 공손수의 등을 부드럽게 밀었다.
“어서 올라가세요. 저러다가 천이 얼굴 빨개지다 못해 터지겠네.”
“……자넨 알고 있었나?”
백수룡이 한숨을 내쉬더니 어깨를 으쓱였다.
“제가 애들 마음까지 어떻게 압니까. 몰래 준비한 모양입니다. 아무튼 올라가세요. 행사 길어지면 제 퇴근도 늦는다고요.”
그렇게 등을 떠밀려, 공손수는 어느새 단상 위에 올라왔다. 위지천은 그에게 힘내라고 말하고는 빠르게 아래로 내려갔다.
“허허……. 이래도 되는지 모르겠군. 학관주님. 제가 정말 이걸 대신해도 되는 겝니까?”
공손수가 노군상은 돌아보며 묻자, 노군상도 처음엔 당황한 표정이더니 이내 웃으며 말했다.
“위지천 학생에게 돌아간 보상이니, 그걸 어떻게 사용하는지도 학생 마음이겠지요.”
결국 공손수에게 신입생 대표 연설을 하라는 소리였다.
“허허…….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당황했던 것도 잠시.
황제 폐하와 수많은 대신들 앞에서도 당당했던 공손수였다. 고작 수백 명 앞에서 긴장할 리가 없었다.
잠시 생각을 정리한 그가 차분한 시선으로 단상 아래의 학생들을 바라보았다.
“공손수라 합니다. 올해 예순다섯입니다. 혹 나보다 나이가 많은 신입생이 있으면 이리 올라오십시오. 요즘은 얼굴만 보고는 나이를 가늠하기가 어려워서 원.”
공손수의 농담에 좌중에 웃음이 터졌다. 그가 마지막에 귀빈석에 있는 남궁제학을 힐끔 바라봤던 것이다.
순식간에 이목을 집중시킨 공손수가 말을 이었다.
“저는 수석이 아니라서 대단한 포부 같은 것은 없습니다. 다만 여러분에게 몇 가지 당부의 말을 전할까 합니다. 늙은이가 노파심에서 하는 말이니, 한 귀로 듣고 흘려도 상관없습니다.”
어느새 모두가 공손수의 목소리에 집중하고 있었다.
올해 신입생 중 어쩌면 무공은 가장 약할지도 모르지만, 그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자연스러운 기세가 좌중을 압도했다.
“첫째, 스스로가 다른 이보다 못하다고 해서 좌절하지 마십시오. 그럴 땐 나를 떠올리십시오. 나는 예순다섯이 되어서야 여러분과 같은 자리에 섰습니다.”
공손수는 자기 자리로 돌아간 위지천을 바라봤다.
모두가 부러워할 만한 재능을 가진 소년.
“……세상은 불공평한 곳입니다. 부모가 누구냐에 따라서, 재능의 크기에 따라서, 가진 것에 따라서 인생은 거의 결정됩니다. 그걸 바꾸는 것은 정말 쉽지 않지요.”
하지만.
공손수에겐 위지천 뒤에서 입술을 짓씹는 남궁석도, 그 뒤의 아이도, 또 그 뒤의 아이들도 모두 부러운 재능이었다.
청룡학관에 입학한 아이들 모두, 무림에서 손에 꼽히는 재능들이 아니겠는가.
“열심히 하지 말라는 말이 아닙니다.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십시오. 오늘은 다시 오지 않는다는 것을 명심하십시오.”
공손수는 고개를 돌려 헌원강을 바라봤다.
거친 외모와 달리 정이 많은 녀석.
여전히 위지천에게 매일 대련에서 지면서도, 언젠가는 이길 거라며 아득바득 노력하는 모습은 대견하기 그지없었다.
“여러분이 최선을 다하고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잘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헌원강은 입술을 삐죽 내밀며 투덜거렸다. 아마도 “망할 할아범”이라고 중얼거렸을 것이다.
피식 웃은 공손수는 고개를 돌려 흑영을 바라봤다.
“둘째, 좋은 친구를 만나십시오. 위만 바라보고 인생을 살다 보면, 주변에 친구는 없고 적만 가득하게 됩니다.”
흑영은…… 울음을 참고 있었다.
호위 대상과 호위 무사로 시작된 관계였지만, 두 사람은 이제 친구를 넘어 가족이었다.
‘이리 좋은 날에 어찌 우느냐.’
흑영에게 웃어준 공손수는 고개를 돌려 백수룡을 바라봤다.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쳤다.
“마지막으로, 좋은 스승을 만나십시오.”
“…….”
공손수가 눈매가 부드럽게 휘자, 백수룡도 기분 좋게 웃어 주었다.
“여러분의 가능성을 믿어 주는 스승을 만난다면, 여러분은 스스로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뛰어난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공손수도 처음에는 스스로 할 수 있을 거라고 믿지 않았다.
독고준의 말대로 가벼운 유희, 장난에 불과했는지도 모른다.
‘자네가 그것을 진지하게 만들었지.’
학생 스스로도 믿지 않았던 가능성을 일깨우고, 할 수 있다고 믿게 만들었다.
그리고 현실로 만들었다.
백수룡이 아닌 어떤 선생이 이런 일을 할 수 있을까.
‘자네는 최고의 스승이었네.’
‘어르신은 최고의 학생이었습니다.’
말을 하거나 전음을 주고받지 않아도, 두 사람은 서로의 눈을 보며 마음을 알 수 있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여기까지입니다. 앞으로 어디에 있더라도, 청룡학관 동기 여러분의 건승과 무운을 빌겠습니다.”
한 걸음 뒤로 물러난 공손수는 포권을 취하며 고개를 살짝 숙였다.
짝, 짝짝.
백수룡이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의례적이거나 형식적인 것이 아닌, 진심이 담긴 박수였다.
그를 따라 흑영도, 헌원강도, 위지천도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몇 사람에게서 시작된 박수는 전염되듯 주변으로 퍼져, 공손수가 단상에서 내려간 이후에도 꽤 오래도록 이어졌다.
그렇게 입학식이 끝난 후, 공손수는 청룡학관에 자퇴서를 제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