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s RAW novel - Chapter 255
제255화
이들이 비료, 정유 공장을 돌아다니며 모은 것은 질산암모늄과 중유였다.
나머지 폭발물 재료는 전상영이 들고 있었고 그는 자기 인생 최고의 축제를 즐거운 마음으로 준비하기 시작했다.
“오클라호마 연방청사 폭탄테러라니. 선배, 언제적 일입니까?”
“후후후 올디스 벗 구디스. 좋아. 옛날 방식.”
오클라호마 청사 테러는 북중국군의 워싱턴 자살 폭탄 테러와 9.11 테러 이전에 미국에서 최악의 사상자를 낸 폭탄 테러였다.
당시 테러범들은 질산암모늄과 중유를 트럭에 가득 싣고 연방청사 옆에 주차하고 기폭하여 수많은 사람을 죽였다.
전상영은 바로 그 테러 사건에 영감을 얻어 소드타워 한쪽을 붕괴시키려 하고 있었다. 이진영과 유인환은 전선을 소드타워 주차장으로 길게 늘어뜨렸다.
어차피 웡꺼 병력의 모든 이목은 항구 저격 사건에 쏠려 있었고, 원래라면 이곳을 왔다 갔다 해야 하는 성가신 정찰트럭도 보이지 않았다.
처음부터 의도한 건 아니지만 어쩌다 보니 태스크포스 13은 화려한 콤비플레이(?)로 항구 쪽으로 시선이 쏠리게 한 뒤 강펀치를 먹이게 되었다.
전상영은 기폭용 전선을 ‘애크미(ACME)’라는 스티커가 붙은 기폭장치에 연결했다.
전상영은 의외로 유머가 터져 넘치는 사람이었다. 그가 가져온 건 로드러너나 톰과 제리 만화에 나오는 바로 그 만화 속의 기폭장치였다.
코요테가 길가에 다이너마이트를 매설하고 로드러너를 잡으려고 할 때 쓰던 바로 그 기폭장치.
상자 위에 막대기가 T자로 연결된 고전적인 격발기를 보고 육군 저격수는 눈살을 찌푸렸다.
이건 거의 골드러시 시대에 다이너마이트를 터뜨릴 때나 쓰던 장비였고 군용 격발기는 따로 있었다.
“당신들 대체 뭐 하는 사람들이에요?”
유인환이 씩 웃으며 대답했다.
“경찰이요.”
“…….”
아무리 봐도 이 미친놈들은 경찰 같지가 않았다.
한층 더 미친 건 폭발력이었다. 폭탄의 위력은 가공할만했다.
콰앙!
트럭이 폭발하며 소드타워 건물 전체로 충격이 퍼져나갔다.
소드타워라는 이름이 붙게 만든 아름다운 전면 유리는 폭심지로부터 물결모양을 그리면서 팡팡팡 깨져나가더니 불꽃놀이를 하는 것처럼 밤하늘에 아름답게 반짝거렸다.
폭발만으로 입구를 지키고 있던 2개 소대의 웡꺼의 병력이 폭발에 휩쓸려 날아갔다.
원래 있었던 보안용 검문검색대는 물론이고 웡꺼 놈들이 설치한 각종 기관포좌나 토치카 따위도 모래집을 발로 밟는 것처럼 무너져 내렸다.
1층 로비의 유리문 전부가 터져나가며 경계근무를 서던 놈들이 폭발압에 인형처럼 날아가거나 고속으로 날아오는 유리 조각에 난도질을 당해 쓰러진다. 안쪽에 있던 웡꺼의 정예부대 웡롱의 피해도 심각했다.
폭발의 위력을 제대로 받은 벽들이 무너져 내리면서 콘크리트 더미나 철골구조 따위의 온갖 잔해들이 쏟아져 내리면서 웡롱의 1개 중대가 그대로 생매장당했다.
피해는 소드타워에 재개장을 하려던 올드차이나가 제일 컸다.
테이블들이 산산이 조각나면서 바깥으로 산탄총처럼 건물 밖으로 튀어 나가고 높이 10미터짜리 초대형 크리스탈 샹들리에도 폭발압에 밑으로 주저앉았다.
중화대루에서 가져온 커다란 관우상의 모가지가 폭발에 날아가 소드타워앞 공원에 나뒹구는 모습은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거기에 붉은 천으로 장식된 벽도, 회전식 테이블도 전부 폭발에 휩쓸려 건물 잔해와 뒤섞여 사방으로 튀었다.
그나마 내진, 방폭설계로 소드타워 전체가 무너져내리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까딱 잘못했으면 길쭉한 막대기 밑을 후려쳤을 때처럼 소드타워가 옆으로 쓰러질 뻔했다.
“선배, 이거 지금 설마 무너지지 않게 내력벽 구조까지 계산한 거요?”
전상영은 빵끗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웃는 모습을 보면 이제 장난삼아 ‘폭탄마’라고 부르는 별명 앞에 수식어가 몇 개 더 붙어야 할 듯 싶었다.
광기의 폭탄마? 뒤틀린 폭탄마? 어떤 별명이든 전상영에게 어울렸다.
폭탄이 격발되고 소드타워 안에 있던 병력들도 큰 피해를 입었다.
웡꺼 놈들은 소드타워를 자신들만의 사교클럽으로 만든 상태였다.
실제로 웡꺼의 유력 보스가 죽고 비상이 걸렸는데 소드타워에 남아있던 놈들은 웡꺼의 협력자들 뿐이었다.
웡꺼 놈들의 방심이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왔다.
만약 이 방법을 러다이트 테러리스트들이 썼다면 인천의 각종 정부청사는 물론이고 중부서도 남아나지 않았을 것이다.
폭심지인 빌딩 옆은 구멍이 크게 뚫려 있었고 이진영은 한숨을 쉬며 중얼거렸다.
“여래신장에 처맞은 것 같군.”
얼핏 보면 10층까지 붕괴한 소드타워의 옆면 모습은 거대한 여래상이 손바닥으로 찍어누른 모습 같았다.
이곳이 아미타여래가 지배하는 곳이라는 걸 생각해보면 한층 더 웃기는 일이었다.
전상영은 재래식 폭탄과 기폭장치만으로 아미타여래와 웡꺼에게 엿을 먹였다.
8층에 있는 웡꺼의 사무실도 큰 피해를 입었고 올드차이나나 놈들의 군사지휘소도 큰 타격을 받았다.
하지만 이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이진영은 노란 완장을 찬 채 총을 쏘면서 고함을 질렀다.
“쎄잉꺼다! 쎄잉꺼가 습격했다아아아!”
왜애애앵-
거대한 폭발에서 웡꺼 놈들이 제정신을 차리고 비상사이렌을 울렸다.
제대로 확인도 안 하고 다른 놈들도 이진영의 말에 부화뇌동했다.
“뭐가 습격했다아아! 쎄잉꺼란다아아!”
광동어로 상황이 전파되면서 점점 ‘사다우카’가 왔다는 둥 이야기가 멋대로 와전되었다.
웡롱이 상황을 정리했다면 몰라도 웡꺼가 이놈 저놈 다 징집한 탓에 이들은 첫 ‘일격’을 당하고 상황이 어찌 된 건지 제대로 파악조차 못 했다.
“자, 우리는 이틈에 도망갑시다.”
특전단 저격수는 아직도 얼빠진 표정으로 세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다.
“당신들 정말 경찰 맞아요?”
당초 특전단도 쐐기 작전을 입안할 때 소드타워와 웡꺼의 암살은 경계가 삼엄할 거라 생각하고 가장 나중으로 목표를 잡았다.
그런데 이 미친 경찰 놈들은 현지에서 재료를 조달해 뚝딱 성공시켰다.
“빨리 갑시다. 이제 항구 쪽으로 갔던 애들이 이쪽으로 다시 벌떼처럼 몰려들 거야.”
본거지가 공격당했으니 가만있을 리 없었다. 사이렌은 인천 전역으로 퍼져나가고 테크니컬 트럭들이 속속 소드타워 앞으로 몰려들고 있었다.
이진영과 공격팀은 광학 위장복을 뒤집어쓰고 어둠 속에 녹아들었다.
소드타워에서는 검은 연기와 불이 치솟아 오르고 있었고 건물의 소방로봇들이 열심히 불을 끄고 있었다.
그 때문인지 소드타워 주변의 어둠은 한층 더 심해진 것처럼 보였다.
이진영과 소드타워 공격조는 2시간 뒤 무사히 은신처로 되돌아왔고 항구 쪽으로 나갔던 저격조도 마침 되돌아왔다.
“소드타워를 박살 내다니. 안 그랬다면 저희가 죽을 뻔했습니다. 정말 소드타워를 이 인원만으로 박살 낸 거예요?”
저격조장은 물을 꿀꺽꿀꺽 마시며 너스레를 떨었다.
이들이 저격한 놈은 웡꺼 조직의 2인자 격인 놈이었고 주변에 있던 웡꺼 병력들이 몰려들면서 급수탑 위에서 오도 가도 못하고 있었다.
그때 마침 소드타워가 박살 나면서 길이 뚫렸고 이들은 간신히 경계가 삼엄해진 구 인천항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고 한다.
출발 전에는 패싸움도 벌어지고 분위기가 좋지 못했지만, 이번 작전을 통해 특전단 사람들은 많이 누그러졌다.
원래 이들은 경찰이나 블랙스와트조차도 초짜라고 생각하고 무시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최우선 공격목표인 소드타워를 박살 낸 건 누가 봐도 대단한 업적이었다.
이진영은 땀으로 절은 광학위장복을 벗어 놓고 감미영에게 다가갔다.
“상황은 어떤가요?”
“영화 상황실 클리셰죠, 뭐.”
“클리셰요?”
“왜 있잖아요? 할리우드 영화에서 우주 비행사가 무사 귀환하거나 작전이 성공하거나 하면 막 서류 집어 던지면서 환호하는 클리셰.”
“아아.”
이진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소드타워의 웡꺼 지휘부가 폭발하는 모습은 부천이나 아산 쪽에서도 관측되었을 테고 청와대나 대책본부 상황실에서 함성 소리가 터져 나왔을 것이다.
3주 만에 처음으로 대한민국은 롱꺼 패거리에게 일격을 먹일 수 있었다.
“그리고오. 상황전파대로라면 쎄잉꺼 놈들도 부산하게 이동하고 있다고 합니다. 제 2정찰조도 확인했고요.”
감미영 팀장은 굉장히 일처리가 깔끔했다.
이진영과 소드타워 공격조를 보낸 것과 동시에 그 결과를 확인하도록 정찰조도 따로 보내둔 것이다.
이 작전은 소드타워를 박살 내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웡꺼와 쎄잉꺼 사이를 이간질해서 그들이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누는 게 최종적인 목표였다.
“사다우카등 쎄잉꺼의 주요 병력들은 관망세인 것 같습니다.”
제 2정찰조 조장이 수첩에 적은 상황을 이진영에게도 브리핑해줬다.
이진영은 잠시 생각하다 말했다.
“아마도 간을 보고 있겠지요. 웡꺼의 자작극일 수도 있으니까.”
김명중도 소드타워를 박살 낸 후 한결 태도가 누그러졌다.
“자작극이라. 쎄잉꺼를 치기 위한 명분 쌓기로군요. 쎄잉꺼도 바짝 긴장하고는 있을 테니까. 어쩌면 우리 생각보다 훨씬 더 빨리 일이 끝날 수도 있겠군요.”
“그렇게 일이 풀리기만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딸들이 기다리고 있어서 말이죠.”
이진영은 커피를 홀짝이면서 씩 미소를 지었다. 이제 작전은 막 시작이었고 과연 소드타워 폭파가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 * *
웡꺼의 새로운 본거지가 박살 났다.
중화대루가 폭파로 무너져 내리는 장면도 꽤 충격적이긴 했다. 하지만 무려 소드타워의 유리창이 불꽃놀이처럼 터져나가는 모습은 더 놀라운 광경이었다.
소드타워는 안 그래도 인천의 랜드마크이기도 해서 모든 언론들은 이 이변에 대해 입을 모아 보도했다.
특히 롱꺼의 상징인 붉은 용이 그려진 걸개 그림이 툭하고 끊어져서 바닥에 스르륵 떨어지는 모습은 여러모로 상징적이었다.
CNN은 ‘붉은 용 떨어지다-Red dragon has fallen.’이라는 헤드라인으로 신나게 이번 소드타워 폭파에 대해 토론했다.
폭파의 배후가 누군지에 대해서는 전문가들도 정확히 짚을 수는 없었지만 여러 가지 시나리오들이 언론의 물망에 올랐다.
그중에서 가장 설득력 있는 시나리오는 두말할 것 없이 쎄잉꺼와 웡꺼의 불화였다.
방송국들은 1차 봉기 후 벌어졌던 조직간의 항쟁을 자료화면으로 사용하며 웡꺼와 쎄잉꺼의 해묵은 감정싸움을 방영했다.
롱꺼가 본격적으로 조직을 ‘통일’하기 전 난민지구는 온갖 조직들이 난립하는 춘추전국시대였다. 그중에서도 1차 봉기의 주축이었던 에잉뙈이와 웡꺼의 패잔병집단은 치열하게 충돌했다.
거리에서 권총을 쏘는 건 예사고 로켓이나 자동소총을 쏘는 일이 빈번했다.
조직 보스들도 그때는 파리목숨이었다. 일본식 라멘을 먹으러 노점에 왔다가 옆에 앉은 11살짜리 킬러에게 총을 맞아 죽지 않나, 고전적인 차량 설치 폭탄테러도 많았다.
뉴스들은 각종 보스들의 암살 장면만 편집한 걸 30분 동안 방영할 수 있을 정도였다.
펑펑펑, 쾅쾅쾅, 탕탕탕.
난민들은 식량분배권이나 각종 밀수사업, 마약사업보호비 따위의 이권을 위해 서슴없이 상대방의 간부들을 죽였다.
그 와중에 난민이나 관광객들을 상대방 조직원으로 오인하여 죽이는 경우도 굉장히 많았다. 항쟁이 벌어질 때는 바다에 시체가 수도 없이 떠밀려 내려왔고 굴다리 바닥에도 피가 안 흐르는 날이 없을 정도였다.
그리고 난민지구에는 그깟 밀수사업이나 각 상가의 보호비 따위는 상대도 안 되는 어마어마한 이권 사업이 실행되기 직전이었다.
전문가들은 전부 웡꺼와 쎄잉꺼가 곧 있으면 충돌할 거라고 단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