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fficer is too good at sailing RAW novel - Chapter 170
169화 여인 천하 (2)
‘공주를 대만으로 보내겠다.’
이 말을 풀이하면 다음과 같다.
‘이 새끼 조선에서 한 건 했네?’
‘내가 특별히 처벌은 안 한다.’
‘근데 너 요즘 행보가 수상해. 감시 붙일게. 아주 강하게.’
앞으로 내 항해는 원정대와 함께할 테고, 원정대는 내가 하는 모든 일을 황녀에게 낱낱이 보고할 테니까.
당연히 황녀는 영락제에게 사소한 것까지 다 보고할 것이다.
게다가 대만은 자치권을 인정받고 있지만, 명나라의 번국이기도 하다.
명나라 황궁 몇 곳을 제외하면 황녀가 가지 못할 곳은 없다.
번국인 대만 정도야 어디를 들쑤시고 다녀도 입도 뻥긋 못 한다.
게다가 황녀의 시중을 들어야 한다는 명분으로 대만 왕궁에 자기 시녀들을 쫙 깔아버리겠지.
이런 의미도 있다.
‘그리고 주주총회에서 보니까 민심 잘 쌓아놨더라?’
‘다시는 그런 깜찍한 짓 못 하게 네 장난감은 압수다.’
이게 아니라면, 장인과 농부를 왕창 보낼 이유가 없다.
이들을 통해 대만 경제를 완전히 장악하고, 나아가 창해 주식 상단을 내부에서부터 확실하게 접수하겠다는 뜻이리라.
여기까지 노렸는지는 모르겠지만, 6.25 전쟁 후 일본 같은 생각도 하는 것 같다.
한국에 ‘독립축하금’을 주되, 그 돈으로 일본 기계를 사들이게 함으로써 돈도 회수하고 한국을 일본의 하청 기업으로 만드는 계획.
이 계획은 한국의 경제 발전 필요성과 맞물리며 철저하게 맞아떨어지게 되고, 덕분에 한국은 일본의 공작기계가 없으면 제조업이 붕괴할 수도 있다는 약점이 잡혀버렸다.
명나라도 마찬가지다.
대만이 나름대로 자원이 풍부하다지만, 명나라에 비할 바는 아니다.
기술력 쪽은 비교 자체가 무안해질 수준이고.
명나라 장인은 압도적인 기술력으로 대만 경제를 장악해 나갈 것이며, 분명 명나라의 원자재를 가져와 달라고 부탁하겠지.
대만이 계속 이런 식으로 발전하다 보면, 어느 순간 명나라는 자원 수출을 이용해 대만의 명줄을 확실하게 쥘 수 있다.
문제는 거부할 명분이 없다는 것.
조선에서 보내오는 장인을 받아들이기로 했는데, 명나라 장인을 안 받는 건 싸우자는 거잖아.
수가 너무 많다고 말해봐야 씨알도 안 먹힐 거다.
‘이것이 대국의 품격이다.’
‘번왕을 총애하여 특별히 아량을 베푸는 것이다.’
이런 헛소리나 돌아오겠지.
그런 이유로 나는 창해 주식 상단의 간부와 대만의 모든 부족장을 소집했다.
“그런 거니까 다들 준비해. 미리 말하지만 이건 거부할 수 있는 건이 아니다.”
“그러다가 나라를 통째로 뺏기는 거 아닙니까?”
마이상 가오궈이가 우려를 담아 말했다.
“좋게 생각하자고.”
“어떻게 좋게 생각합니까?”
“대만국은 땅이 넓은데 사람은 없으니까 발전의 계기로 삼지.”
실제로 대만의 인구는 무척 적다.
호구 조사를 할 기관이 없어서 못 해봤지만, 아마도 2만 명 정도.
아무리 많아도 5만 명을 넘지 않을 것이다.
“음…….”
평소에는 늘 조용하던 척찬궁이 앓는 소리를 냈다.
“왜?”
“매우 위험하다고 봅니다.”
“뭐가?”
“현재 대만에는 제가 지휘하는 명군 5천이 들어와 있습니다. 이들에게 제일 부족한 게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부족한 게 있었어? 말을 하지. 뭐가 필요해?”
“여자가 필요합니다.”
“…….”
“이 땅에 5천의 혈기 왕성한 남자가 풀렸는데, 1만이 추가로 풀리는 것입니다. 자칫 여자를 두고 싸움이 나지 않을지 걱정입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명나라 본토에는 여자가 많다.
오랜 전쟁과 내란으로 성비는 박살 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니까.
“소문은 들었겠지만, 황제 폐하께서 북벌을 준비하고 계신다.”
원래라면 국가 기밀이겠지만, 규모가 규모다.
숨기려야 숨길 수가 없다.
“50만 대군이 만리장성을 넘어 북쪽으로 향할 테니, 본토에는 결혼 못 한 여자가 수도 없이 많을 터. 미혼 여성을 데려오도록 주선해 보자.”
억지로 데려오는 건 아니고.
각종 혜택을 보장해줘서 자발적으로 오게끔 유도할 생각이다.
“본토의 여자들이 이런 궁벽한…… 죄송합니다. 이런 외지로 오려 하겠습니까?”
“궁벽한 거 맞지 뭐.”
수도인 타이중이야 그래도 발전하고 있는 모습이라도 보이지만, 다른 곳은 명나라의 시골 수준이다.
오히려 시골보다 발전도가 낮다.
원주민들이 이미 자리를 잡은 만큼, 치안과 텃세에 대한 불안감도 클 테고.
솔직히 남자인 내가 봐도 사모아인 전사를 보면 무섭다는 생각이 든다.
여자는 더하겠지.
“그 건은 내가 황실에 건의할게.”
여기는 여자가 너무 부족하니, 장인이나 농부를 보내실 때 배필도 함께 보내 달라고.
시대를 고려하고, 장인이라는 명칭이 붙을 정도면 상당수는 이미 결혼했을 것 같긴 한데.
그래도 이런 일은 확실하게 하는 게 좋다.
“그렇다면 문제는 원점으로 돌아가는군요.”
원주민 족장들이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몰려드는 명나라인들에게 조상 대대로 살아오던 삶의 터전을 다 빼앗길까 봐 걱정인 모양이다.
원 역사를 생각하면 충분히 할 만한 걱정이다.
당해본 입장에서 중국의 인해전술은 정말 치를 떨게 할 정도니까.
“그래서 부족장들에게 협조를 구하고 싶다.”
“어떤 걸 원하십니까?”
“주요 마을, 사냥터, 그리고 금지 같은 곳을 제외하고 비어있는 지역을 넘겨받고 싶다.”
그렇게 말하고는 항구에 적합한 입지를 지닌 땅.
북쪽의 타이베이와 남쪽의 가오슝의 지역을 차지하고 있는 부족장들을 바라보았다.
“물론 공짜로 달라는 건 아니야. 값은 충분히 치르지.”
충분한 값을 치른다고 했어도, 해당 부족장들의 표정은 굉장히 떨떠름했다.
자기 땅을 내어주는 것도 엿 같겠지만, 평화로운 현 상황에서 이물질이 끼기를 바라지는 않을 테니까.
“그 정도면 타이중 만으로도 충분히 수용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마이상 가오궈이가 족장으로 있는 부족은 상당히 강하면서도 큰 부족이다.
그만큼 넓은 영토를 지녔다.
“아니, 타이중만으로는 힘들어.”
“장인과 농부, 그리고 그들의 배필까지 전부 포함한다고 해도 2만 명 정도가 아닙니까? 충분하리라고 봅니다만…….”
“5만.”
“예?”
“최대 5만이 들어올 거야.”
“네? 5만이요?”
“명나라인 2만 명만 들어오면 균형이 너무 깨지잖아.”
이걸로 끝이 아닐 거다.
지금도 대만 맞은편에 있는 복건성에서 꽤 자주 대만으로 넘어오곤 한다.
기름진 땅을 가질 수 있다느니.
바다로 나가 한몫 단단히 당길 수 있다느니.
아메리칸 드림에 가까울 정도의 소문이 퍼져나가고 있기 때문이었다.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닌데, 그렇다고 정답은 아니건만.
농사짓기 어려운 복건성은 워낙 살기가 퍽퍽한지라 그런 꿈을 강하게 믿는 것 같았다.
“이왕 이렇게 된 거, 크게 놀아봐야지.”
나와 관계를 맺은 모든 국가에 다 부탁을 해볼 생각이다.
장인들을 보내줄 수 없느냐고.
지원도 해주고, 세금도 깎아주고, 무역 혜택도 주고, 다양한 장인이 모이므로 기술 교류도 잘 될 테고.
그렇게 해서 얻은 기술은 본국으로 가져가도 된다는 조건도 붙인다면 조선 급은 아니어도 어느 정도는 보내지 않을까?
“하지만 이 일은 결국 그대들의 이해가 필요하다. 대만은 누가 뭐래도 그대의 선조들이 피로써 지켜낸 땅이니까.”
“거부권은 있습니까?”
한 명이 삐딱하게 물었다.
한때 전투까지 벌였던 부족, 마카타오족의 새로운 부족장이다.
“명나라인이 오는 건 막을 수 없다. 그건 내 역량 밖이야. 하지만 다른 쪽은 막을 수 있지.”
“……전하의 뜻에 따르겠소.”
“표결로 결정하지. 찬반은 여기 모인 사람 전원 1표. 나는 투표하지 않겠지만, 동점이 나왔을 경우 내가 그중에서 하나를 선택하겠다.”
내 생각만큼 쉬운 일은 아니겠지.
쉬웠다면 세계 최강 미국이 왜 아직도 인종 갈등 문제로 골머리를 썩이겠어.
만약 잘못된다면 피해받는 건 이들이다.
그래서 법안 발의가 아닌데도 표결로 결정하기로 했다.
“아, 한 가지를 말하지 않았군. 대만국은 기본적으로 대명률을 따르지만, 자치권이 보장된 만큼 독자적인 법률 제정이 가능하다.”
그래서 부족장들을 모아 의회도 만들 수 있던 것이고.
“그들이 오기 전, 그대들의 부족들을 위한 법을 ‘미리’ 만들어도 된다는 뜻이다.”
너무 심한 특혜면 내가 조율하겠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특혜는 필요하다.
그래야 넓은 마음으로 이민자를 받아들일 수 있을 테니까.
미래에 살아보니 너무 평등하기만 하면, 오히려 더 불협화음이 나더라.
나중에는 평등으로 가더라도, 당장은 이해 관계를 조정하는 게 더 급선무다.
“지금 만들어야 합니까? 나중에 문제가 생기면 그때 만들면 되지 않습니까?”
“의회는 백성을 대표하는 기관이다. 명나라인이 들어온다면 명나라인을, 조선인이 들어온다면 조선인을 대표할 의원도 필요하다.”
물론, 외국인에게 참정권을 주려는 건 아니다.
그들이 대만으로 귀화한다는 전제 조건이 있을 때의 이야기다.
“그러다 명나라인의 숫자가 너무 많아져서, 오히려 우리들을 억압할 법률이 만들어지는 거 아닙니까?”
“그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의회를 상원과 하원으로 나누지.”
다른 나라는 모르겠고, 미국의 상·하원 제도를 말하는 것이다.
미국이 의회를 만들 때, 여러 가지 난관에 부딪혔다.
인구수대로 의원을 뽑으면 인구수가 적은 주에게 불리하다.
반대로 주별로 공평하게 뽑으면 인구수가 많은 주에게 불리하다.
그래서 주별로 공평하게 2명씩 뽑는 게 상원.
인구수에 비례해서 의원을 뽑는 게 하원이다.
한국으로 비유하자면 하원은 대한민국 국회 같은 곳.
상원은 경기도,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 강원도에서 각각 2명씩 뽑아, 하원(국회)을 견제하고 각 지방의 이익을 위하도록 만든 기관이다.
완벽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양쪽의 입장을 반영한 그나마 합리적인 방식이라 생각한다.
상원은 주로 지역의 유지가 뽑힌다고 들었지만, 확실하지는 않다.
부족장들에게 상원과 하원의 역할과 의미를 최대한 간략하게 설명했다.
“굳이 복잡하게 할 것 없이 한곳에 몰아넣으면 되는 거 아닙니까?”
우람한 체격의 부족장이 인상을 찌푸렸다.
전사의 가치를 최고로 여기는 그에게 있어, 정치의 복잡하고 허례허식 같은 모습은 영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다.
“정치는 합리적인 것이 제일 중요하다. 모두가 만족하는 방법이란 없기에, 대다수가 그나마 받아들일 수 있는 방식을 모색해야만 하지.”
“잘 모르겠수. 하지만…….”
우람한 체격의 부족장은 한숨을 푹 쉬었다.
“나는 왕을 믿소. 왕이 그렇다고 하니 일단은 믿고 따르겠소.”
‘일단은’이라는 말은 수틀리면 언제든 들고일어날 수 있다는 걸 의미한다.
그 경우 모두가 파국으로 향하는 길이 되겠지만…….
“나를 믿어주어 고맙다. 믿음에 보답하지. 그럼 표결에 부치겠다.”
‘명나라인을 받아들이는 안건’은 우리 힘으로 어쩔 수 없다.
대신 ‘타국의 이민자를 받아들이는 안건’은 만장일치로 통과되었다.
하지만.
부족장들의 표정은 대부분 못마땅했으며 우려 반, 걱정 반이었다.
***
시간이 흘러 약속한 날짜가 되었다.
원정대에서 보낸 선발대가 타이중 인근 항구에 도착.
선발대는 곧바로 말을 타고 왕궁으로 사람을 보내어 황녀가 곧 도착하리라는 소식을 전했다.
왕국의 주요 관리는 물론, 내 아내인 허신애와 이소군까지도 모두 항구까지 가서 기다렸다.
“처음부터 무리해서 꽤 크게 만들었다고 생각했는데…….”
심지어 계속 증설하고 있다.
그런데도 원정대 본대가 단체로 다가오니, 항구는 꽉 차고도 넘쳐 해안이 새까맣다.
새삼 인해전술을 상대하는 조상님들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느낀다.
“항구를 확장하는 데도 한계가 있습니다.”
허신애가 말했다.
“항구를 늘려야겠지.”
다행히 항구로 쓸만한 곳에 두 곳 더 있다.
북쪽의 타이베이 인근과 남쪽의 가오슝 인근.
타이베이는 조선과 일본, 류큐와 교역하는 항구로.
가오슝은 동남아 무역을 관장하는 항구로 개발해야겠다.
타이중 인근은 명나라를 전담하고.
그러려면 남북을 잇는 도로도 중요하다.
증기기관도 나온 마당에 철도가 있으면 더 좋겠지만…….
강철 생산량이 따라갈 리 없으니 나중으로 미뤄야겠지.
“저 배에 공주마마께서 탑승하신 듯합니다.”
“나도 봤어.”
정화가 탔던 대보선.
거기에 용 장식과 황금 장식까지 해서 굉장히 화려한 배가 들어오고 있으니까.
진짜 돈이 썩어 넘치네.
지방 백성들은 극심한 빈곤에 시달리고 있던데.
잠시 후.
예상대로 대보선에서 화려하기 이를 데 없는 옷을 입은 한 여인이 내렸다.
영락제의 5녀 상녕공주(常寧公主) 주화영.
영락제가 무서워서 대놓고 말은 못 하지만, 여러 구설수가 많은 여자다.
하나. 생모가 누군지 모른다.
하지만 황후가 직접 입양하여 옹주가 아닌 공주가 되었다.
영락제가 연왕 시절 원나라의 공주를 겁탈해서 만든 자식이라는 이야기도 있을 정도다.
둘. 나보다 한 살 연하다.
보통 열세 살에서 열다섯 사이에 혼처가 정해지는 다른 공주와는 다르게, 스무 살이 되도록 혼처가 정해지지 않았다.
셋. 그녀의 얼굴을 본 이가 거의 없다.
황궁에 있다 보면 찬양 일색이긴 해도, 다른 공주에 대한 소문이 조금씩 흘러나오기 마련인데 그녀에 관한 소문은 신기할 정도로 없다.
그리고.
이제야 진실의 일부를 엿보았다.
“공주마마를 뵙습니다.”
“…….”
그녀는 창백한 얼굴을 한 채 나를 보더니.
“공주마마!”
그대로 쓰러졌다.
“…….”
속으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영락제의 5녀 상녕공주(常寧公主) 주화영.
그녀는 심각한 환자였다.
곧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