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fficer is too good at sailing RAW novel - Chapter 180
179화 역사의 기로 (5)
메르카토르 도법의 영향으로 저위도 국가의 면적은 매우 저평가되어있다.
최대 피해자라면 인도와 아프리카.
특히 인도는 메르카토르 도법으로 보면 프랑스와 독일을 합친 정도로만 보이는 만큼 생각보다 크지 않다고 오해를 받는다.
하지만 실제 인도의 면적은 유럽 대륙의 1/3을 넘는 크기.
이런 거대한 땅의 주인이 시름시름 앓고 있다.
곳곳에서는 반란과 독립이 일어나고 있고, 티무르 제국 출신의 칸들은 호시탐탐 인도를 노리고 있다.
쉽게 말해 지금 인도는 델리 술탄국이라는 한나라가 무너지고, 군웅할거가 시작되는 타이밍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와중에 벵골 술탄국은 일찍이 독립에 성공한 뒤 평화를 이어가고 있다.
더욱이 벵골은 현재 인도 동북부의 패자이며, 인도 아대륙에서 가장 부유한 지역.
패권을 노려봐도 이상하지 않다.
하지만 정작 왕에게 그럴 의지가 없어 보인다.
확신이 없다고 해야 하나?
“혼인 제안은 의미가 없습니다. 이건 생각의 차이입니다. 저는 혼례를 올렸다고 해서 특별히 더 믿는다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반대로 생각한다.
딸을 아무렇지도 않게 희생시킬 수 있다면, 사위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해서.
“그렇다면 자네의 제안도 의미가 없지. 내가 그만한 각오도 없는 자의 사탕발림을 듣고, 백성을 전쟁의 구렁텅이에 던져넣을 것 같은가?”
“저 역시도 전쟁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어쩔 수 없는 경우에만 나서지요. 하지만 지금이 바로 그 어쩔 수 없는 때입니다.”
“무엇이 어쩔 수 없다는 건가?”
“역사에서는 흐름이 존재합니다. 그 흐름에 올라타지 못하면 백성들은 전쟁보다 더한 고통에 시름겨워하게 되지요.”
벵골 술탄국의 상세한 역사는 모른다.
대외적으로는 평화가 유지되지만, 궁정 암투로 왕이 연달아 죽고, 왕조가 수없이 바뀌는 혼란을 겪는다.
그렇게 기회를 놓친 벵골 술탄국은, 동쪽에서 그들이 도와 독립시켰던 아라칸 왕국에게 경제의 핵심인 치타공을 빼앗긴다.
이어 내부 분열로 무너진 티무르 제국의 잔당이 인도로 침입.
무굴 제국을 세우고 벵골 술탄국을 완전히 멸망시킨다.
정확히 언제 일어나는지는 모르겠지만 100년 이내에 일어날 일이라는 건 확실하다.
그리고 그 과정은 절대 평화롭지 않을 것이며, 수없이 많은 백성들이 죽어 나가겠지.
“저는 유학을 배운 선비로서, 위민 사상의 중요성을 분명히 인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건 선택이 아닙니다. 생존입니다.”
“처음 와본 이곳에서 무엇을 보았는지 모르겠지만, 너무 앞서 나가는 것이 아닌가?”
여기까지…… 인가.
그는 성군이라 불리지만 평범한 사람에 불과했다.
나처럼 말이다.
나와 그의 차이가 있다면 난 미래를 보고 왔다는 것이겠지.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고, 각양각색의 군주들을 만나보았지만, 확실히 빼어난 사람은 두 명이네.
킬방원과 영락제.
국뽕이 아니라 사실이 그렇다.
“기본적으로 투자란 투자비용 회수를 전제로 합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캘커타에 큰돈을 투자한다고 해도, 자본을 회수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진 않는군요.”
잘해놓으면 뭐 하겠는가.
무굴 제국의 기병이 휩쓸고 지나갈 텐데.
역사로 보면 100년 뒤의 일일지라도, 뒤틀린 역사에서는 어떻게 될지 모른다.
더욱이 아사신…….
음?
그러고 보니 무함마드가 그런 말을 했지.
아사신 교단은 몽골에 의해 멸망했고, 그 잔당은 일칸국에 스며들어 재상까지 하는 등 다시 부흥했다.
그러다 지부 중 하나는 맘루크 술탄국에 전향하여, 술탄의 독검이 되었고.
일칸국의 후신이 바로 티무르 제국이다.
정식 계승국은 아니고, 일칸국의 후임 왕조를 죄다 멸망시키고 흡수했다.
그렇다면 일칸국에서 부흥하던 아사신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벵골 술탄국에 보이는 아사신들.
이어지는 왕의 암살과 인도 곳곳의 혼란.
혼란이 끝난 뒤에 찾아오는 티무르 제국의 잔당.
속수무책으로 쓰러지는 인도의 왕국들.
그리고 무굴 제국이라는 강력하고 거대한 통일 왕조의 성립.
이게 하나의 흐름처럼 보이는 건 내 착각인가?
“지도자는 항상 미래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합니다. 다른 이들은 아무 생각 없이 일상을 보낸다고 해도, 군주만큼은 그래서는 안 되지요.”
본인의 재임기에 무탈하게 넘어간다고 해도, 그 나라는 분명 어떤 식으로든 대가를 치르게 될 테니까.
“안타깝지만 샤께서 보여준 미래는 제가 보고 싶은 미래와 부합하지 않습니다. 단순한 거래라면 모를까, 깊은 거래를 하기엔 부적합합니다.’
“아니지.”
“예?”
“그대는 그대의 정의를 지키기 위해 거절할 만한 이유를 찾은 걸세.”
기야스웃딘은 약간은 서늘해진 눈빛으로 나를 보았다.
“그대의 사신인 무함마드가 나를 찾아왔을 때, 그의 그림자에서 자네의 모습을 상상했네. 항거할 수 없는 위협에 무척이나 다급해진 모습이었지.”
“…….”
“동시에 벵골 술탄국의 시조라 할 수 있는 일야스 술탄의 모습이 떠올랐어. 그분은 강대한 투글루크 왕조를 상대로 함께 걷는 건 무리이며, 독자적인 길을 걷기로 하셨거든.”
“왜 그렇습니까?”
“문화가 너무 다르니까. 그런데도 투글루크 왕조는 자신들의 문화를 강요했어.”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인도 서부와 동부는 기후가 아예 다르다.
인도 서부는 건조하고, 동부는 습윤하니까.
따라서 문화 역시도 완전히 다를 수밖에 없다.
“몇 차례 전쟁 끝에 독립에 성공했네. 그 과정에서 난공불락이라 불리던 판두아가 함락되는 등 큰 피해를 보았지.”
“그럼 지금의 판두아는 새로 건설한 것입니까?”
“반은 맞고 반은 틀리네.”
“네?”
“판두아는 본래 북쪽에 있었어. 하지만 내가 하렘을 짓기 불편하다는 명분으로 캘커타 서쪽으로 옮겼지. 불과 2년 전 일일세.”
그랬나?
이게 원래 역사인지, 뒤틀린 역사인지 모르겠다.
나는 벵골 술탄국의 수도가 판두아인지도 모르고 있었으니까.
다만 2년 전에 옮겼다는 이야기를 듣자니, 역사의 뒤틀림이 느껴졌다.
“천도는 쉬운 일이 아닐 텐데 큰 결정을 하셨군요.”
그 막 나가는 영락제도 북경으로 천도하기 위해 수십 년을 준비할 정도인데.
“새로운 제도가 필요했거든. 예를 들면 사법부를 독립시킨다든가.”
믈라카에서 듣기론 기야스웃딘이 정의로운 군주라 불리게 된 계기라고 한다.
기야스웃딘은 사법부가 왕이나 영주의 영향력에 벗어나야 정의가 세워질 것이라 믿었고, 이를 실천했다.
실제로 기야스웃딘이 법정에 선 적도 있다.
그는 사냥을 나갔다가 가난한 미망인의 아들을 사냥감으로 착각하여 죽였다.
미망인은 곧바로 법원에 고소했고.
기야스웃딘은 평범한 피고인으로 법정 위에 섰고, 수많은 이들이 그 재판을 보기 위해 몰려들었다.
재판장인 꽈지는 법에 따라 가난한 과부에게 막대한 배상금을 주라고 판결했고, 기야스웃딘은 판결에 수긍하며 가난한 과부에게 진심으로 사죄하며 막대한 배상금을 주었다.
그리고 재판이 끝났을 때, 기야스웃딘은 재판장인 꽈지를 향해 이렇게 말했다고 했다.
‘만약 내가 샤라는 이유로 봐줬다면, 나는 그대를 참수했을 것이다.’
라고.
꽈지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샤께서 법을 따르지 않았다면, 채찍으로 폐하의 등을 찢어버렸을 것입니다.’
라고.
그리고 둘은 서로를 인정하며 포옹했고, 군중들은 그들의 위업을 기르기 위해 함성을 질렀다고 한다.
이 일화가 한 편의 연극인지는 모르겠다.
매우 높은 확률로 그렇겠지.
킬방원도 비슷한 쇼를 많이 한다.
메뚜기 떼가 농작물을 갉아먹자,
‘네 놈이 내 백성의 양식을 훔쳐먹는 도적이냐? 어디 내 배도 갉아 먹어 보아라!’
라고 소리치면서 메뚜기를 삼키기도 했으니까.
이 일화를 들은 백성들은 성군이라며 감격했고, 나는 ‘훌륭한 단백질원을 드셨군요.’라고 생각했다.
“앞으로는 바다가 중요해진다는 확신이 들기도 했고. 그래서 항구 가까이에 있는 땅을 새로운 수도로 선정했지.”
“북부 군벌의 힘을 약화하기 위함이기도 합니까?”
기야스웃딘은 살짝 웃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보게. 나는 내 아버지를 전쟁으로 쓰러뜨리고 샤가 되었네. 17년 전 일이지. 그 뒤 곧바로 군대를 보내 아삼 지방을 정복했어.”
요즘은 선왕을 전쟁으로 몰아내고 왕위에 오르는 게 트렌드인가 보네.
“계속되는 승전으로 자신만만해 있을 때 내 눈에 들어온 게 무엇인지 아는가?”
“남편이나 아들, 오빠, 남동생을 잃어버리고, 전쟁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가혹한 세금을 내느라 도탄에 빠져버린 백성의 삶이겠지요.”
“……잘 아는군.”
명나라에서 실시간으로 보고 있으니까.
“실로 심각했네. 내 아버지는 강력한 정복 군주였으니까. 그때 깨달았어. 전쟁이란 똥이라고.”
아버지 정책과 반대로 가는 것도 트렌드인가 보네.
“그때부터 나를 향해 소리치는 찬사가 가족을 잃어버린 절규처럼 들리기 시작했네.”
“감수성이 풍부하시네요. 혹시 문화 쪽에도 조예가 있으십니까?”
“비꼬는 건가?”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 저는 무분별한 전쟁을 매우 싫어하지만, 꼭 필요한 싸움을 피하는 지도자도 좋아하진 않습니다.”
문명의 모든 것은 안보 위에 세워진다.
그런데 평화가 길어지면 항상 너무나도 당연한 이 진리를 잊어버리더라고.
“제가 샤께 미래를 물은 까닭은 이러한 이유입니다. 제가 보기엔 이 땅은 100년 이내에 초토화될 것 같거든요. 물론 저도, 샤도 죽은 이후일 테니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되겠습니다만…….”
“누가 감히 이 땅을 침범한단 말인가.”
“침략하는 상대가 누구냐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하다.
그에 맞춰 대비하면 효율적으로 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티무르 제국이 이제 곧 분열되고, 그 잔당 일파가 델리 술탄국을 점령한 후에 벵골 술탄국도 먹어버립니다.’라고 할 수는 없잖아.
“중요한 것은 이 땅이 침략의 대상이 아니라, 교역의 대상이 되도록 국력을 키워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 자존심 세고 분노조절 잘 안 되는 영락제도, 만약 현대 미국이 바로 옆에 있었다면 아주 분노조절 잘했을 것이다.
세상에 평화로운 나라는 없다지만, 침략당하는 게 자랑은 아니다.
침략은 엄두도 못 낼 만큼 계속해서 국력을 키워야 하지.
그걸 못 하면 부끄러워해야 하고.
“결과적으로 무엇이 백성을 위하는 일이 될지. 잘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좋네.”
“예?”
“하지만 전쟁이 백성들의 고통을 가중한다는 것은 모두가 다 아는 사실. 따라서 용왕에게 다른 제안을 하겠네.”
“말씀하시지요.”
기야스웃딘은 잠시 말을 멈췄다.
그리고.
아주 무겁게 입을 열었다.
“무기 제조법을 알려주게.”
“화약 제조법이라면 공유하기로 했습니다만.”
초석 공급을 대가로.
“아니. 패권을 잡으려면 화약으론 안 되지. 그거야 힘 좀 쓰는 나라는 다 쓰는 게 아닌가.”
“그러면요?”
“용왕의 분노와 수석총 제조법을 원하네. 비가 자주 오는 동쪽에서는 써먹기 어렵겠지만, 건조한 서쪽이라면 충분히 패권을 노려볼 만하지 않은가.”
본래라면 가차 없이 거절했을 내용이다.
넘겨주기엔 파급력이 너무 큰 기술이니까.
하지만 이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기로 했다.
역사가 어떻게 꼬여가든 내 알 바 아니다.
그 흐름, 해류만 파악한다면 내 지식이 빛바래는 일도 없을 테니까.
“저는 왕이긴 하지만, 동시에 선비이고 상인이기도 하지요.”
“유난히도 상인이라는 단어에 힘을 주는군.”
“상인을 상대로는 거래를 하셔야지요. 어디 묻겠습니다. 용왕의 분노…… 와 수석총 제조법에 얼마의 값을 매기시겠습니까?”
궁금하다.
과연 그가 생각하는 적정 가치는 얼마일까?
“전부.”
“네?”
“벵골 술탄국은 물론, 내가 점령한 땅의 모든 교역권을 그대에게 맡기지.”
그렇게 말하며 그는 씨익 웃었다.
“또한, 자네가 내 사위가 된다면, 다음 대 샤로 그대를 지명하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