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fficer is too good at sailing RAW novel - Chapter 220
219화 성인의 행보 (5)
얀 후스는 프라하 대학의 교수다.
프라하에서 여기까지 오려면 일단 베네치아까지 가서 배를 타고 와야 한다.
대충 육로로 500km.
해로로 3500km.
비유하자면 서울에서 부산까지 갔다가 배를 타고 베트남 호찌민시까지 가는 거리다.
심지어 얀 후스 교수가 온 거리가 더 길다.
더욱이 현재 지중해에는 이슬람 사략 함대가 신명 나게 칼춤 추고 있는 상황.
그 멀고 위험한 거리를 넘어 이 자리에 왔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포르투갈에 너무 오래 머물렀나…….”
반성은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고 생각한다.
동서양을 오고 갈 때마다 수도 없이 마주칠 텐데, 초장에 확실히 기강을 잡아둬야 하니까.
게다가 앞으로 다른 나라와 협상을 할 때, 최소한의 기준선이 있어야 할 게 아닌가.
포르투갈과 이만큼 조약을 맺었으니, 이제 다른 나라와 협상을 할 때도 이 이상으로 받아낼 수 있을 것이다.
“오셨습니까. 에밀리오 추기경. 그리고 옆에 있는 분은…….”
“안녕하십니까 성인이시여. 이분은 성인의 예언이 가리키는 사람이라 추정되는 자, 얀 후스라고 합니다.”
“얀 후스라고 합니다. 얼마 전까지는 프라하 카렐 대학의 신학 교수였습니다.”
얀 후스는 비쩍 마른 몸에, 고생을 많이 했는지 주름살도 자글자글 있었으며, 옆머리와 수염에 벌써 흰색이 보이는 상태였다.
모자를 써서 확인할 수는 없지만, 아마 원형 탈모가 있지 않을까 추측한다.
하지만 초라한 외모와는 달리 몸에서 풍겨 나오는 기세는 남달랐다.
폭풍 전야를 연상케 하는 고요하면서도 위험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고 할까.
‘이 세상은 썩었어! 뒤집어엎어야 해!’라고 외치는 열혈 신도일 것이라는 선입견과는 큰 차이가 있었다.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그의 곁에는 순풍이란 불지 않을 것 같다는 점은 동일하지만.
“얼마 전까지요?”
“얼마 전 프라하 추기경으로부터 파문당했습니다.”
중세의 파문은 휴먼임을 파문하는 것과 같다고 들었는데.
이왕 배린 몸 칭호를 얻었네.
조심해야겠다.
다행히 4차 십자군과는 달리 칼은 차지 않았고 군대도 없다.
“갈 곳 없던 차에 성인의 소문을 듣고 이곳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때로는 소문의 속도가 빛의 속도보다 빠르다더니.
그 소문을 듣고 여기까지 왔다니.
내가 포르투갈에 3월쯤 도착해서 지금이 5월이니까.
가능하기야 하겠지만…….
말 그대로 가능하다는 이야기지, 현실적으로는 상당히 무리가 있다.
“그런데 성인이요?”
“예. 성인의 예언대로 피사의 교황이 선종하였으며, 성 요아힘 계곡에서 은광이 발견되었습니다. 광산 전문가의 말에 의하면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양으로 추정된다고 하더군요.”
“……벌써 발견했다고요?”
광산 탐사가 그렇게 쉬운 게 아닐 텐데.
“광산 전문가가 탐색하기 전, 목욕을 깨끗이 하고 기도를 올린 후 푹 잤다고 합니다. 그날 밤 꿈에서 천사가 내려와 은의 축복이 내려진 곳을 정확히 알려주셨다고 하지요.”
“…….”
에이. 구라겠지.
분명 그 광산 전문가가 자기도 천사 코인을 타려고 꾸며낸 이야기일 것이다.
……꿈에서 산신령이 산삼을 점지해주거나, 조상님이 로또 번호를 알려주는 썰도 있으니 의외로 사실일지도 모르겠네.
“그리하여 로마 공의회에는 성인을 성인으로 추대하는 논의가 진행 중입니다. 아마 매우 높은 확률로 그리되겠지요.”
“아직 결정되지 않았는데 그렇게 부르셔도 되는 겁니까?”
“공의회의 결정이 어떻건, 저는 이미 기적을 보았으니 제 마음속에서는 성인과 다름없습니다.”
“아…… 네…….”
“그래서 공의회에 간청하여 제가 이쪽으로 부임해왔습니다.”
“네?”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곳에 있는 작은 성당에 부임하려는 것이니까요. 성인의 통치에 관여할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통치에 관여할 생각이 없다고는 하지만, 저번에 마상창시합 때 교리를 설파하는 것으로 보아 가만히 있지는 않을 것 같은데.
“그리고 얀 후스 교수께서는…….”
“성인께 질문하고 싶습니다. 정말 천사께서 계시를 내려주셨습니까?”
그는 따뜻한 시선으로 나를 샅샅이 훑었다.
“그것이 중요합니까?”
“예?”
“내가 천사를 보았든 아니든 증명할 방법은 없습니다. 다른 사람은 믿거나, 부정하는 수밖에 없지요. 따라서 제 말은 그리 중요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럼 무엇이 중요합니까?”
“제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느냐가 중요하지요.”
나는 성경책을 꺼내 보였다.
이슬람 상인에게 구입하여 수천, 수만 번 읽어 너덜너덜해진 성경을.
사실 처음 성경 가격을 들었을 때 진짜 억 소리가 나왔다.
큰 장원 하나는 너끈히 살 수 있는 가격이었으니까.
아직 구텐베르크가 인쇄술을 발명하기 전이라서 그런가 보다.
……구텐베르크가 언제 태어나고, 언제 인쇄기를 발명하지?
기억 안 나지만, 상관없다.
내가 만들면 되니까.
“성경을 보았습니다. 좋은 말씀이 있었지요. 하지만 그 말씀을 해석하는 존재는 신도, 구세주도, 예언자도, 선지자도 아닌 ‘신학을 공부한 사람’일 뿐이죠.”
“성인께서는 성경을 어찌 해석하셨습니까.”
“내가 올바르게 해석했다고 확신하는 내용은 딱 하나입니다. ‘서로 사랑하라.’ 말 그대로 모두를 사랑하라는 뜻으로 해석했습니다.”
“그 밖에는 없었습니까?”
“깨달음은 얻었습니다.”
“무엇을 깨달으셨습니까?”
“인간은 너무나도 작은 존재이기에 신의 뜻을 해석하긴 어렵다. 따라서 우리는 신의 뜻을 해석할 것이 아니라, 신이 만들어낸 이 세상이 어떠한 원리로 이루어지는지 밝혀내는 데 더 노력해야 한다.”
신학으로 과학을 외치다.
이는 밑밥을 깔기 위함이다.
곧 르네상스 시대가 시작될 텐데, 그 전에 지동설을 주장했다고 신성모독이니 뭐니 하면서 태클 걸리지 않기 위해서.
“내게는 그것이 진리입니다. 답을 정해놓고 우리의 삶을 끼워 맞추는 것이 아닌, 우리의 삶에 맞게 세상의 이치를 적용하는 것이지요.”
“예를 들어주시겠습니까?”
“예를 들면 바로 이 이베리아반도에서 일어난 800년간의 전쟁이 있겠군요. 당시 기독교인들은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기 위해 때로는 무슬림과 협력하기도 했습니다. 반대도 마찬가지고요. 그것이 진리가 아니겠습니까.”
신앙보다 사람이 중요하다.
세속주의를 말하는 것이다.
독실한 신도가 들었으면 성경의 모서리로 내 뚝배기를 깨버렸을 법한 이야기다.
“나에겐 종교의 계율을 철저히 지키는 것보다 모두가 화합하며 행복하게 지내는 게 더 중요합니다. 영혼은 신에게 종속되어 있을지라도, 육신은 본능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니까요.”
“저와는 생각이 다르시군요. 저는 성경의 절대적인 권위를 주장하며, 신의 말씀에 따라 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럴 수도 있죠.”
“예?”
“나는 온 세상을 돌아다니며 정말 다양한 사람을 만나보았습니다. 그때 느꼈지요. 내가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정확히 말하면 다른 사람을 이해한다고 말하는 건 대단한 오만이라고 생각한다.
같은 언어, 같은 문화를 공유하는 사람끼리도 서로를 이해 못 하는데, 타인을 이해한다고 자신하는 건 얼마나 오만한 사람이어야 가능할까.
“그저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독실한 기독교인도, 교수님처럼 새로운 주장을 하는 이도, 심지어 여러분들이 적대시하는 무슬림도 딱히 거부하지 않습니다.”
“성인께서는 거부하시는 사람이 없습니까?”
“왜 없겠습니까? 타인의 권리, 자유, 재산을 침해하는 사람은 저 역시도 거부합니다.”
“그렇군요.”
얀 후스는 별 반박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제가 이곳에서 강론하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솔직히 달갑지는 않습니다. 당신의 존재는 이 땅에 파란을 불러일으킬 테니까요.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긍정합니다. 당신의 강의를 듣고 싶을 정도로요.”
“성인의 생각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해도요?”
“이렇게 말씀드리겠습니다. 당신의 말에 동의하지는 않지만, 당신의 말할 권리는 존중한다.”
원래는 ‘당신의 말할 권리를 위해 죽을 때까지 싸우겠다.’이지만, 그렇게까지 해줄 생각은 없다.
나도 먹고살아야지.
얀 후스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무언가를 중얼거렸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성경에 나오는 어떤 구절이겠지.
다시 눈을 떴을 때, 그의 눈에는 강력한 의지가 깃들어 있었다.
“성인께 부탁이 있습니다. 대가로 드릴 것은 없습니다만…….”
“일단 말씀해 보시지요.”
“성인의 배에 탈 수 없겠습니까?”
“네?”
“성인의 배를 타고 더 넓은 세상을 보고 싶습니다.”
“거부하면 어떻게 됩니까?”
“고향으로 돌아가 다시금 강론을 시작하겠지요.”
얀 후스의 강론은 파문됨으로써 금지되었다.
그런데도 강의를 계속한다는 건 교회와 정면에서 맞서겠다는 뜻.
원 역사대로 화형당할 것이고, 그의 가르침은 100여 년 뒤 마르틴 루터에 의해 꽃피우겠지.
“좋습니다.”
“예?”
“이왕이면 당신의 강론을 내 선원들에게 해줘도 좋을 것 같군요. 우리는 선단은 신앙의 자유를 인정하니까요.”
연민으로 결정한 것이 아니다.
분열되었다고는 해도 중세 유럽에서 교회의 영향력은 절대적이고, 현 신성 로마 제국 황제 지기스문트에 의해 통합하려고 갖은 노력을 하고 있다.
만약 지기스문트나 교황이 나를 적대시할 때를 대비해 치명적인 독검 하나쯤은 보유하고 있어도 나쁜 거래는 아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예?”
“제 선단의 다음 목적지는…….”
방긋 웃었다.
“오스만 술탄국입니다.”
내 항해로 오스만과 비잔틴 제국의 운명이 바뀔 터.
내가 이 판의 킹 메이커다.
***
1410년 6월.
나는 로마 공의회의 공식 허가를 받아 성인의 반열에 올랐다.
아직 정식 개종을 하지 않았기에 여러 말이 많았지만, 로마의 추기경 에밀리오가 강력하게 주장했다고 한다.
1. 해인 강은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진심으로 존중하고 따르고 있기에 교황청의 세례를 받았는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2. 그는 신비의 동방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바다의 왕이고,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유럽과 동방을 오갈 수 있는 뛰어난 항해사이다. 이 정도 위업을 신의 축복 없이 이룩할 수 있을 리 없다.
3. 만약 신의 가르침을 저 멀리 동쪽에도 전도하고 싶다면 그의 능력과 권위, 기적을 인정해야 한다.
로마 공의회에서는 1번 항목이 중요하다고 판단되어 인정했다고 공언했다.
성경을 따른다면 그 역시 기독교인이라는 논리이며, 외국인에게 우리의 형식을 강요할 수 없다는 근거를 대었다.
실상은 2번 때문이다.
각국의 왕과 귀족, 상인들은 어떻게든 향신료와 뛰어난 교역품을 얻을 수 있는 나와의 거래를 원하니까.
미리 나한테 호의적으로 대해서 그 노하우를 훔치고 싶다는 꿍꿍이도 있겠지.
3번 역시도 많은 호응을 받았는데, 내가 은근슬쩍 ‘동방에는 이슬람 세력이 점점 커져 가고 있습니다.’라는 말을 흘렸기 때문이다.
이대로 가다간 유럽을 제외한 전 세계가 이슬람 세력이 될 수 있다는 위기감을 느낀 성직자들은 나를 발판으로 동방에 기독교를 전도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나는 성인이 되었다.
다만 마지막 자존심인지 성인이 임명되는 예식인 시성식은 대부분 바티칸의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열리는데, 나는 그냥 내 영지에서 처리하기로 했다.
오스만 술탄국으로의 출발을 2주일 앞두고.
나는 하모니아에 모인 귀족과 성직자, 그리고 거상들을 모아 시성식을 빙자한 연회를 열었다.
“예하. 성인이 되셨으니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로마 공의회의 추기경이자, 하모니아 교구의 주교인 에밀리오가 성인이 되는 의식을 치른 후 슬쩍 한마디 했다.
도와주는 건 고맙지만 날이 갈수록 눈빛이 끈적해지는 게 참 부담스럽단 말이야.
“흠흠. 연설에는 그리 재능이 없지만, 그래도 신께 신실하게 한 말씀 올리겠습니다.”
신께 말한다고 하지만, 다 들으라고 하는 말이다.
“나는 성경의 가르침을 존중합니다. 서로 사랑하라. 감정이나 이해관계에 따라서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는 건 당연한 일. 하지만 나는 이를 벗어나 예수 그리스도처럼 모두를 사랑하고 싶습니다.”
이 안에는 내가 무슬림이나 힌두교도와 친하게 지내더라도 지랄하지 말라는 뜻이 담겨있다.
“그리고.”
이제부터 본론이다.
갈라치기를 했으면 끝을 봐야지.
어설프게 마무리하면 믈라카 꼴 난다.
“세상은 시대에 따라 변할 것입니다. 변하는 시대에는 그에 맞는 사상과 체제가 필요할 것입니다. 그리고 동방과 서방이 만난 새로운 시대에 필요한 사상은 다름 아닌 평등입니다.”
의외로 별 반응 없었다.
그들은 귀족과 농노의 평등이 아니라, 동방 귀족과 서방 귀족이 평등하다 정도로 받아들인 듯했다.
“나는 하느님께 받은 신성한 인권을 중시할 것이며, 이는 내 이웃은 누구든 선한 사마리아인이 될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기독교든, 이교도든 나에게 호의를 베푸는 자가 내 이웃이라는 뜻.
그리고 그들을 위할 것이라는 뜻.
사실상 신앙의 자유 선언이다.
물론 루카 복음서의 구절을 빌렸기에 딴지를 걸지는 못할 것이다.
“이 넓은 세상에서, 모두가 다툼 없이 조화롭게 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것이 성인이 되면서 신께 바치는 나의 맹세입니다.”
짝짝짝!
내 말의 정확한 뜻을 이해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연회에 모인 이들은 모두 박수를 쳤다.
원 역사를 아는 나는 확실하게 단언한다.
내 선언과 내 정책은 향후 유럽에 신앙의 자유와 민주주의 혁명에 막대한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그렇기에 나는 감히 단언하겠다.
비잔틴 제국이 멸망하고, 교회의 대분열이 수습되고, 백년 전쟁이 끝나는 1453년이 아니다.
바로 지금이.
새로운 시대.
근세의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