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fficer is too good at sailing RAW novel - Chapter 235
234화 제국의 보물 (1)
“하여간 쓸데없는 거로 싸우고 말이야.”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로마의 후예는 조선인데 말이야.”
“네?”
“네?”
“농담이다.”
옛날 밈이 떠올라서 헛소리한 것뿐이다.
다들 농담으로 한 말이겠지만, 조선과 로마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하지만.
고려 시대 송나라와 요나라가 서로 ‘제발 조공을 바쳐주세요.’라고 애걸했던 점.
마찬가지로 명청 교체기에 서로 조공을 받으려고 애썼던 점.
이는 고려나 조선의 조공을 받아야 진정한 천자국이 될 수 있다는 통념이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조선은 로마가 아니라 교황청과 같은 위치다.
환생하고 나서 고려사를 하다가 알게 된 사실인데, 실제로 고려왕은 11대 문종부터 23대 고종 때까지 스스로를 성황(聖皇)이라 불렀다.
가끔 중국에서 심하게 뭐라고 하면 신성제왕(神聖帝王)이라고 바꿔 불렀다.
조선도 봐봐.
늘 종묘와 사직을 생각하잖아.
종묘란 왕가, 사직은 곡식의 신.
즉,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왕이라는 뜻이다.
이것이야말로 조선이 동북아의 교황청이라는 확실한 증거다.
“근데 잼민아.”
“네! 선장님!”
“솔직히 비잔틴 제국은 얼마 못 버틸 것 같은데. 그렇다고 서유럽에서 도와줄 것도 아니잖아.”
프랑스와 영국은 백년전쟁 중이고.
이베리아반도는 아직 이슬람을 못 몰아냈고, 몰아냈다고 하더라도 북아프리카와 싸워야 하고.
신성 로마 제국은 서방교회 분열과 곳곳에서 일어나는 반란을 막는 것만으로도 정신없다.
“하하하! 서유럽은 도와주고 싶어도 못 옵니다. 14년 전 니코폴리스에서 영혼까지 털렸거든요. 우리 오스만의 엄청난 대승이었죠.”
“우리 오스만이 아니라 니네 오스만이겠지. 그리고 오스만도 이제 막 내전이 끝났잖아.”
“금방 회복됩니다.”
“그사이 서유럽도 회복하겠지.”
물론 그렇다고 십자군을 보내진 않는다.
원 역사에서는 콘스탄티노플이 결사 항전하면서 끝까지 버텼는데도, 함락되기 전까지 안 왔으니까.
“선장님이 도와주시면 안 돼요?”
“내가 왜?”
“그게…….”
“그리고 비잔틴 제국에는 비밀 무기가 있다고 하지 않았냐? 그건 어떻게 됐어?”
현대에는 로스트 테크놀로지인 고대의 네이팜탄, ‘그리스의 불’보다 더 강력한 게 있나?
“……망했어요.”
“응?”
“비잔틴 제국은 천년…… 아니, 로마 시대까지 합치면 2천 년 동안 쌓아온 외교술과 정치술이 있어요.”
“그런데?”
“그걸 이용해 계속해서 오스만에 내전을 일으켜서 시간을 끌 수 있다고 들었거든요.”
엔히크 왕자는 무함마드를 노려보더니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상한 녀석이 선장님의 힘을 이용하지만 않았더라면 말이죠.”
“형제 살해의 관습을 이용하려고 했나 보네.”
정주민은 보통 장자 상속이다.
그래야 가문의 힘이 줄어들지 않고 이어지기 때문이다.
가문의 크기가 커질수록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다는 이점도 있고.
반면 유목민은 덩치가 커지면 몸이 굼떠진다.
그래서 아들이 크는 대로 일정 가축을 넘겨줘서 분가시킨다.
결국, 마지막 아들이 남아있는 재산을 모두 가져가는데, 이게 말자 상속이다.
이게 일반 백성이면 상관이 없는데, 나라가 되면 문제가 커진다.
백성들이 하는 대로 해버리면 기껏 일궈놓은 나라가 갈가리 찢기지 않는가.
그래서 선택한 방식이 ‘가장 뛰어난 자’가 독식하는 것.
형제들은 각자의 세력을 이끌고 전쟁터에서 현피를 뜬다.
그리고 마지막에 승리한 사람이 모든 걸 갖는다.
비잔틴 제국은 이러한 유목민 관습을 파악하고, 불리한 쪽에 지원을 해주는 방식으로 최대한 힘을 빼놓으려고 했겠지.
영국이 잘하는 그 방식이다.
이러한 관습이 없애고, 중앙 집권을 확립하는 건 메흐메트 2세라고 알고 있다.
콘스탄티노플을 함락시키고 스스로 로마의 황제라 칭한 정복자.
그때부터 오스만 술탄국은 오스만 제국으로 불리게 된다.
참고로 이러한 관습은 몽골에도 있었다.
이걸 깬 사람이 원 세조 쿠빌라이 칸이고.
“무함마드.”
“네.”
“혹시 오스만 술탄국의 역사는 공부했어.”
“당연히 알지요.”
“메흐메트라는 이름의 술탄은 이번이 처음이지?”
“물론입니다.”
지금이 1410년.
메흐메트 2세가 콘스탄티노플을 함락하는 건 1453년.
“혹시 메흐메트 술탄의 자식도 알아?”
“왜요? 결혼하시게요?”
“내가 결혼을 또 왜 하냐? 아들 있냐고.”
“아들 많아요. 장남은 무라트라고 합니다. 아마 뒤를 이어 술탄이 되면 무라트 2세가 되겠네요.”
만약 무라트가 술탄이 되고, 그 아들이 메흐메트 2세가 된다면 얼추 맞아 떨어진다.
그렇다면 역시 정배는 오스만이라는 게 되는데…….
“비잔틴 제국에도 황녀가 있어요! 보랏빛 태생! 고귀함 그 자체!”
“어쩌라고.”
“보랏빛 태생과 결혼하면 만에 하나 비잔틴 제국이 멸망했을 때, 프레스터 조선 왕국이 제3의 로마가 될 수 있어요!”
“넌 신성 로마 제국이 적통이라며. 그럼 제2의 로마는 신성 로마 제국이고, 제3의 로마는 동로마 아니냐?”
“쌍둥이라고 하죠. 물론 형은 신성 로마 제국으로.”
미처 몰랐네.
잼민이가 독일 빠돌이였는 줄은.
“하하하! 그 오만한 놈들이 보랏빛 혈통을 잘도 내어주겠네요. 만약 그런다고 하면, 비잔틴과 손잡는 것도 인정합니다.”
“뭔데 무함마드 네가 인정하고 말고 하냐?”
“친 오스만파 대표입니다.”
“아, 그러면 인정이지.”
우리 원정대와 상단을 통틀어서 친 오스만파는 무함마드밖에 없으니까.
문제는 그 한 명이 상단 최고위 간부에 다이너마이트 제조 기술을 가진 단둘뿐인 기술자라는 것.
참고로 나머지 한 명은 나다.
“보랏빛 혈통은 외국에 절대 내어주면 안 된다는 비잔틴 제국의 3대 보물 중 하나. 외국인인 우리 선장님께 내어줄 리가 없죠.”
보라색은 비잔틴 제국을 상징하는 색이다.
명나라가 황금색에 집착하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라고 할까.
그래서 황후 전용 산실도 보라색인데, 이를 ‘포르피라’라고 부른다.
이 방에서 황제와 황후 사이에 태어난 아이(게니투스)를 ‘포르피로게니투스’라고 한다.
어찌나 집착이 심한지, 황제와 황후 사이에서 태어났다고 해도 보랏빛 방 안에서 태어나지 않으면 보랏빛 혈통이 아니다.
그래도 천 년 동안 꾸준히 해온 덕인지, 보랏빛 혈통은 정통성이 어마어마한지라 비잔틴 제국 주변 국가들은 이를 집요하게 노린다.
보랏빛 태생 공주와 결혼하게 해주면 무제한 지원을 해줄 수 있다고 한다든가.
마지막 보랏빛 혈통 공주와 결혼한 사람은 모스크바 대공국의 대공, 이반 3세.
그래서 역사 덕후 중에서는 러시아 제국을 제3의 로마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
“내어준다고 해도 내가 결혼할 생각이 없다니까. 근데 나머지 보물 두 개는 뭐냐.”
“황제의 왕관인 자줏빛 제관과 그리스의 불이요.”
자줏빛 제관은 안다.
콘스탄티노플을 함락하면 나오는 유니크 아이템이지.
위상과 명성이 어마어마하게 올라간다.
삼국지 게임의 옥새 급이라고 할까.
“그리스의 불은 만들 수 있을 것 같은데.”
“에? 똑같이요?”
“똑같이는 어렵고. 더 강력하게는 만들 수 있을걸?”
석유를 정제한 거랑 고무, 송진 등을 섞으면 될 것 같은데.
석유는 명나라에서 구할 수 있다.
신기하게도 명나라는 지금 이 시대에도 200m 가까이 땅을 파서 석유를 뽑아낸다.
그렇게 뽑아낸 석유와 가스로…… 땔감 대신 써서 소금을 만든다.
뭐랄까.
동양 기술의 안타까운 면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대목이다.
하드웨어는 미쳤다 싶을 정도로 좋은데, 소프트웨어가 쓰레기인 그런 느낌.
명나라에서 구하기 어려우면 페르시아만에 있는 노천 유정을 사용해도 되고.
“정리하자면 결국 비잔틴 제국에는 내가 원하는 게 없네.”
그래도 정확한 제조법은 궁금하긴 하다.
더 나은 걸 만들 수는 있겠지만 양산품에 불과하니까.
하지만 그리스의 불은 그 자체로 이름값이 있다.
한국식으로 비유하자면 ‘천년 전통, 원조 맛집.’ 같은 느낌.
“무함마드.”
“네. 전하.”
“메흐메트 술탄을 만나고 싶다. 어떻게 하면 되냐.”
“술탄이라면 이즈미르 항구로 간다고 하셨어요.”
귀찮게 또 보스포루스 해협을 통과해야 하네.
“가보자.”
다행히 항구에 정박한 건 아니라서 다시 쉽게 떠날 수 있다.
***
아무리 생각해도 무함마드는 마가 낀 게 분명하다.
어떻게 이 녀석이 합류하자마자 사건이 터지냐.
“저거 오스만 군대 맞지?”
“맞는 것…… 같네요.”
보스포루스 해협을 통과하고, 매우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기에 서쪽으로 가보았다.
그랬더니 오스만 군대가 테오도시우스의 성벽을 공격하고 있는 게 아닌가.
“근데 술탄의 깃발이 아니네요. 무사의 깃발이에요.”
“무사?”
“아. 동방의 무사를 말하는 건 아니고요. 술탄의 동생 중에 무사라고 있어요. 엄청 용맹한 왕자죠.”
“나도 알아. 근데 메흐메트 술탄과 같은 편 아니었어?”
“그게…… 그렇게 좋은 상황은 아니에요.”
“왜?”
무함마드는 엔히크 왕자를 힐끔 보더니, 명나라 말로 바꿔서 말했다.
“쉴레이만을 끝장내고 나서, 무사가 이런 제안을 했어요. 술탄은 아나톨리아 반도를, 자신은 루멜리아를 각각 다스리자고.”
“루멜리아?”
“‘로마인의 땅’이라는 뜻의 튀르크어입니다. 한마디로 서쪽 반도를 말하는 거죠.”
발칸 반도를 말하는 듯하다.
그러니까 나라를 반띵해서 동등한 위치가 되자고 한 거네.
“나라는 나눌 수 있는 게 아니지.”
“네. 술탄께서는 꽤 당황하셨어요. 신하라고 생각했지, 동등하다고 생각한 적은 없거든요.”
“그렇다 치고. 무사는 왜 메흐메트가 아니라 콘스탄티노플을 공격하고 있는 거냐?”
“무사는 평소에도 비잔틴 제국을 엄청나게 싫어했어요. 쉴레이만 왕자와 동맹을 맺고 계속 그쪽을 지원했거든요.”
왕이 되려는 자가 기분만으로 그랬을 것 같지는 않고.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하는 업적을 세워서, 형보다 더 우위에 서고 싶은 게 아닐까 싶다.
“선장님…….”
잼민이가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뭔지 잘 모르겠지만 비잔틴 제국을 구해주세요.”
“잼민아. 너도 왕자라면 감정으로 움직이지 마라. 실리와 명분을 따져야지.”
엔히크는 역사로 보던 것과 여러모로 다르네.
원 역사와 성장 과정이 달라져서 그런 건가.
아니면 역사가가 정직하지 못해서 미화시켜 기록해둔 건가.
“음…… 그냥 구해줘도 괜찮을 것 같은데요.”
“넌 또 왜?”
“생각해보세요. 무사는 비잔틴 제국의 적이고, 동시에 메흐메트 술탄의 눈엣가시기도 해요.”
“무사를 때리면 양쪽에 빚을 지울 수 있게 된다?”
“바로 그거죠!”
괜찮네.
게다가 서방교회에도 할 말이 생긴다.
그들은 비잔틴 제국을 직접 도와줄 생각은 없지만, 무사하기를 바라고는 있으니까.
잘만하면 제국의 보물인 그리스의 불 제조법도 거래해주지 않을까?
보물이라고 해도 어차피 다 망해가는 나라니까 염가에 팔아줄 것 같기도 한데.
“해보자.”
나도 순정이 있다.
로마라는 이름은 역사를 잘 모르는 나에게도 낭만을 불러일으키는 마력이 있으니까.
하지만 구해줬는데도 비잔틴 제국이 내 순정을 짓밟으면은, 마 그때는 4차 십자군 되는 거야.
“근데 적이 꽤 먼데요. 우리 대포로도 턱도 없는 거리에요.”
“테오도시우스의 성벽은 무너졌냐? 이 새끼야? 북쪽 항구로 가.”
“네!”
평지에서 싸우라고 하면 절대 안 싸우겠지만, 난공불락의 성인 테오도시우스의 성벽에서 일방적으로 쏘는 거라면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언덕 탱크가 왜 사기인지 확실히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