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fficer is too good at sailing RAW novel - Chapter 40
039화 나비 효과 (2)
참파 혹은 점성국이라 불리는 이 나라는 이소군과도 연관이 있다.
이소군의 고조부, 이선장이 몰락하게 된 계기인 호유용의 옥.
그 시발점이 참파에서부터 시작되었으니까.
요약하자면 참파에서 홍무제에게 사신을 보냈다.
근데 호유용이 제 선에서 처리하고 외교를 담당하는 예부에 보고하지 않았다.
개빡친 예부에서 난리를 치는 건 당연지사.
여기에 홍무제가 호유용에 대한 총애를 거두고 혹독하게 추궁하면서 몰락의 신호탄이 쏘아졌다.
참파로서는 정말 의도치 않게 이소군 가문의 멸문에 일조한 셈이었다.
근본적인 원인은 홍무제의 의심병과 호유용의 오만이겠지만 말이다.
“어서 오게. 이런. 왕실에서 가마를 보내주지 않았나?”
정화는 참파 왕궁에서 나를 보며 반갑게 맞아주었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습니다.”
“쯧. 나라를 구한 영웅을 이렇게 대접해서야 쓰나.”
“천자의 위엄과 원정대의 위용을 보고 항복한 것이지, 어찌 제가 구했다 하겠습니까.”
“전쟁의 꽃은 선봉이라고 하지. 그렇게 치장해주는 이유는 그만큼 위험하고 죽기 쉽기 때문이야. 그만큼 공도 높이 평가해야지. 안 그러면 누가 선봉을 맡으려 하겠나.”
“제독께서 인정해주시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대신 선원들에게 포상만 충분히 부탁드립니다.”
“하하하. 걱정하지 말게. 대월군이 타고 온 전함과 그들이 가졌던 무기, 갑옷 등을 참파에 넘기는 대신 상당한 대가를 받기로 했어. 그중 상당수를 자네의 선원들에게 포상하겠네.”
“전함을 넘겼단 말씀입니까?”
“원정대와 함께하기엔 속도가 나오지 않아. 괜히 발목만 잡을 걸세.”
아니지.
따로 무역을 돌려서 돈 벌어야지.
“너무 아까워하지 말게나. 참파에 빚을 지워두면 새로운 기회가 생길 터이니. 게다가 원정대의 배포를 보여줘야 다른 나라도 마음의 문을 열 것이 아닌가.”
“역시 제독의 혜안은 다섯 수 앞을 보시는군요. 대단하십니다.”
하긴. 그래.
어차피 내 돈도 아닌데.
지금은 돈보다 인맥을 쌓는데 주력할 시기다.
그래야 나중에 내 사업이 원활하게 될 테니까.
“참파의 왕은 인드라 바르만 6세라고 하네. 5년 전에 즉위했지.”
우리 킬방원 전하랑 같은 해에 즉위했네.
위에 대월의 호꾸이리 왕도 5년 전에 즉위했다고 들었는데.
참 신기하다.
조선이 바뀌는 사이, 세계도 바뀌고 있었구나.
“그런데 인드라입니까? 천축국의 영향을 받았나 보군요.”
“그런 듯해. 다만 포 비나수오르 왕이 무슬림으로 개종하면서 지금은 회회도의 영향이 점점 더 강해지고 있다고 하네. 그리고 공식문서에는 적뢰(的賴)라는 이름을 쓰더군.”
참파 왕국 자체가 힌두교, 불교, 이슬람교에 중국 문화까지 섞이면서 복잡한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인 듯했다.
“주의할 점은 자네는 조선의 신하이기도 하지만 대명 황실의 신하이기도 한다는 것이네. 허리를 숙이는 건 되지만 무릎은 꿇지 말게.”
“명심하겠습니다.”
“관복이 참 잘 어울리는구먼.”
디자인은 솔직히 거의 똑같다.
애초에 조선의 관복이 명나라 관복을 따라서 만든 거니까.
“다만······ 가슴이 너무 허전해. 그 점이 아쉬워.”
이래 봬도 홈 트레이닝을 열심히 해서 B컵 정도는 됩니다만.
고기만 많이 먹을 수 있었어도 꽉 찬 B컵이나 C컵까지도 될 수 있었을 텐데.
“혹시 조선은 관복에 흉배를 넣을 생각이 없다든가?”
“아······ 네. 특별히 논의된 적은 없습니다.”
흉배는 관복의 가슴에 동물의 자수를 넣은 걸 말한다.
문관의 운학(雲鶴)이나, 무관의 호표(虎豹)처럼.
나도 환생하고 나서 처음 알았는데, 지금 시대 조선 관복에는 흉배가 없다.
언제 도입되는지는 모르겠다.
곤룡포에는 용 자수를 넣긴 하는데, 이는 흉배가 아니라 용보라고 한다.
“대명이나 조선에서는 모르겠으나, 국외로 갔을 땐 화려해 보이는 게 좋지. 그래야 존귀한 사람이라는 걸 보여줄 수 있지 않은가.”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나를 위하는 게, 조선을 위하는 일이고.
나를 위하는 게, 곧 세계를 위하는 일이니까.
“안 그래도 보급을 위해 황제 폐하께 사람을 보낼 생각이었네. 그때 자네의 관복도 하사해달라고 주청을 드리지. 정5품 내각군보이니 단학(單鶴)이 옳겠구먼.”
“그······.”
평소에는 문제가 안 된다.
조선에서는 조선 관복을, 명나라에서는 명나라 관복을 입으면 되니까.
문제는 다른 나라에선 뭘 입어야 하냐는 것.
충성심 테스트인가.
“너무 부담 갖지 말게. 어차피 대명이나 조선의 관복은 생김새가 거의 비슷하지 않은가. 다만 좀 화려하게 입으라는 뜻이지. 그러고 나서 조선의 신하라고 소개하면 되지 않은가 말이야.”
“그렇긴 합니다만······.”
가스라이팅의 냄새가 느껴져서.
하나하나 넘어가다가 어느 순간,
‘어? 너 명나라 신하 아니었어? 그냥 해. 조선의 신하가 곧 명나라 신하지. 양쪽 관직 다 있잖아.’
이렇게 되다가,
‘자네 같은 인재를 조선이라는 그릇이 담을 수 있을까? 큰 사람이 되려면 큰물에서 놀아야지.’
와 같은 소리로 점점 끌고 올 것 같은 느낌이 드니까.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은······.
“심사숙고하겠습니다. 그보다 보급을 명나라에서 받아와야 합니까?”
“은자를 넉넉하게 챙겨왔으니 대부분은 문제가 없네. 다만 화포에 쓸 화약은 보급이 어려워.”
“참파에는 화약이 없습니까?”
“있지. 하지만 터무니없이 비싸. 질도 그리 좋지 않은 것 같은데 말이야. 만약을 대비해 최소한으로 보급은 하되 대명에서 직접 넉넉하게 가져올 생각이네.”
“남경에서 가져오려면 좀 멀지 않을까요?”
“걱정하지 말게나. 광주에서 전초기지 역할을 해주기로 했으니.”
살짝 긴장되었다.
굳이 화약을 보급하려는 이유.
단순히 만약을 대비하기 위함만은 아닐 것이다.
“사실 참파의 왕도 해적 때문에 근심이 많더군. 심지어 저 동쪽에 있는 마닐라와 그 연맹의 근해에서도 왜구와 해적이 들끓는다고 하니.”
왜구가 필리핀까지.
조선이 바다를 걸어 잠그고 조용히 있을 때, 세계는 이미 격동하고 있었구나.
“우리에게 당면한 적은 역시 진조의겠지. 정면에서 붙으면 당연히 이기겠지만, 교활한 녀석이라 그렇게 하지는 않을 것 같으이.”
“해적이라고 해도 결국은 사람. 거점으로 삼을 육지가 필요합니다. 그 부분을 공략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2~3년 뒤에 내 무역 사업을 시작하려면, 큰 해적들은 지금 싹 지워버려야 한다.
내가 없애려면 너무 힘들잖아.
“나도 그리 생각하네. 다만 자네의 눈부신 전공에 자극을 받은 무관들이 많아서 말이야. 섣불리 움직이지는 않을지 걱정일세.”
정화는 그 부분을 진심으로 우려하는 듯했다.
그렇다고 계속 억누르기만 하면 왜 공을 세울 기회를 안 주냐고 불만이 쌓일 수 있으니.
“이런. 말이 길어졌군. 어서 가지. 역관이 통역해줄 터이니 참파어를 모른다고 걱정하지는 말게나.”
“예. 제독.”
***
인드라 바르만 6세는 일국의 왕이라고 하기엔 풍모가 그리 좋지 않았다.
단순히 키나 어깨너비를 말하는 게 아니다.
왕에게 느껴지는 카리스마가 없다.
차라리 전에 만났던 레 리 공자가 더 위엄있겠다 싶을 정도로.
적당히 예법을 갖추자 그는 곧 입을 열었다.
“까미 멩갈루 아루깐 떼따무 베르아가 다리 자으 다리 조선.”
그래도 목소리는 묵직한 중저음으로 꽤 위엄이 느껴졌다.
“멀리 조선에서 온 귀한 손님을 환영한다고 하오.”
곧바로 역관이 통역했다.
나는 정식으로 조선을 대표하는 사신으로 온 게 아니다.
그렇다고 깍두기 취급하기엔 정식 관직이 있고, 위기에 빠진 비자야를 구하는 공을 세웠다.
그래서 ‘귀한’ 손님으로 타협한 듯했다.
“참파의 환대에 무척 감사드립니다. 머무는 동안 손님으로서 예를 갖추겠습니다.”
“그대가 머무는 동안 최대한 편의를 봐줄 것인즉. 필요한 게 있으면 사양 말고 말하라 하오.”
“풍경이 아름답고, 물산이 풍부하여 가만히 있어도 즐거울 듯합니다. 시장도 둘러보고 싶은데 괜찮을지 여쭙고 싶습니다.”
무역해도 되겠냐는 뜻이다.
“왕실 어용 상인을 소개해 주겠다고 하오. 그들은 대국어를 할 줄 아니 불편함도 없을 것이라 하오.”
“전하의 넓은 마음에 어찌 감사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참파에도 이익이 될 수 있도록 각별히 신경 쓰겠습니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게 상생이다.
한탕으로 끝내는 게 아니라, 이익이 크지 않더라도 꾸준히 수익을 내는 것.
그리하여 스스로 거래를 원하게끔 유도하는 것.
넘치는 곳에서.
부족한 곳으로.
“무척 젊어 보이는데 혹시 혼례는 올렸는지 묻소이다.”
“혼례는 올리지 않았으나, 장래를 약조한 상대가 있습니다.”
“영웅에게 호색은 흠이 되지 않으니, 비자야에 머물 때마다 내조해줄 현명한 미녀를 곁에 두는 게 어떠냐고 묻소.”
“전하께서 영웅이라 칭해주시니 감사하여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하오나 소인은 아직 경험 부족한 청년에 불과합니다.”
“그대의 의견을 존중한다. 생각이 바뀌면 언제든 말하라. 라고 하오.”
“예. 전하.”
어디서 날로 먹으려고!
인드라 바르만 6세의 말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이거다.
‘미녀 한 명 줄 테니까, 목숨을 걸고 참파를 위해 싸워라.’
참파는 포 비나수오르 왕이 전사한 이래 지도력을 잃어버렸다.
도시국가들은 군대 소집에 응하지 않는 예도 있고, 응한다고 해도 자신의 피해를 줄이려고 일부러 시간을 끄는 경우도 많다 들었다.
그런 상황에서 대월과 해적에 의해 명운을 위협받고 있으니, 강력한 우군을 바라는 건 당연지사.
그나마 대월은 명나라가 정벌 준비를 하고 있으니 괜찮다.
하지만 무역으로 먹고사는 비자야에게 해적왕은 그야말로 목 끝까지 다가온 칼날.
어떻게든 치우고 싶은 것이다.
만약 내가 인드라 바르만 6세의 부탁으로 해적왕을 토벌하게 되면, 참파는 물론이거니와 동남아 일대에서 발언권이 수직 상승할 테니까.
꼭 토벌하지 않더라도 내가 가족을 비자야에 두면 신경을 안 쓸 수 없게 되는 만큼, 거의 공짜로 안보 위협을 덜어내는 셈이다.
“그와 별개로 시간의 여유가 있다면 비자야의 해군을 훈련해줄 수 있냐고 묻소.”
“······.”
군대를 맡긴다는 뜻은 아니다.
조선 말기, 최초의 신식 군대였던 별기군의 훈련을 일본 장교에게 맡긴 것처럼 훈련만 대신시켜줄 수 없냐는 것.
“소인은 무관이 아니라 문관입니다.”
“문관이기에 새로운 관점을 적용할 수 있지 않겠냐고 하오.”
참파 왕의 얼굴을 보았다.
정작 그런 말을 한 본인이 ‘이게 맞나?’라는 의문을 띄우고 있었다.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 걸 보면 영웅이 될 사람은 아닌가 보다.
······가 아니라, 정작 본인도 이해 안 되는 걸 부탁한다고?
“이번에 대월의 전함 수백 척과 무기를 얻었으니, 새로이 해군을 창설할 생각이라 하오. 둔전병처럼 평소엔 무역하되, 동시에 바다의 치안을 지키는 부대라 하오.”
둔전병보다는 성전 기사단 같은 느낌이긴 한데.
슬쩍 정화의 눈치를 봤다.
명나라 정치판에서 수십 년 구른 사람인 만큼 표정이 드러나진 않았으나, 나와 눈이 마주치자 입가가 호선을 그리는 걸 보면 그가 사주한 듯싶었다.
······왜?
‘우리에게 당면한 적은 역시 진조의겠지. 정면에서 붙으면 당연히 이기겠지만, 교활한 녀석이라 그렇게 하지는 않을 것 같으이.’
‘나도 그리 생각하네. 다만 자네의 눈부신 전공에 자극을 받은 무관들이 많아서 말이야. 섣불리 움직이지는 않을지 걱정일세.’
아······.
정화는 보험을 들고 싶은 것이다.
어지간해선 원정대가 해적왕에게 질 일은 없겠지만, ‘만에 하나’라는 게 있으니까.
절대 실패해서는 안 되는 원정인 만큼, 후일을 대비하고 싶겠지.
하지만 참파가 힘을 키우는 것도 바라지 않는다.
어떤 식으로든 영향력을 확보하고 싶은 것이고, 그 방법으로 나를 선택한 것이다.
내가 실패하더라도 원정대의 손해는 없으니까.
실은 조공 무역도 그러한 성질을 띠고 있다.
예를 들어 조선에는 후하게 대접해주지만, 대신 ‘군마’를 끊임없이 요구한다.
이는 명나라에 말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조선에서 기병을 대량으로 양성하지 못하도록 견제하는 의미가 담겨있다.
아까 명나라 관복 등을 언급한 것도 아마 이것 때문일 것이다.
조선 사람에게 계속 권한을 넘겨주는 것도 마음에 걸리니, 포섭도 본격적으로 진행하고 싶은 것일 터.
“단 한 척의 배로 적 전함 다섯 척을 침몰시키고, 위기에 빠진 비자야를 구한 영웅. 그대가 지휘한다면 참파의 백성들도 용기백배하여 나설 것이다······ 라고 하오.”
인드라 바르만 6세는 내 전공만 듣고 동의한 듯했다.
해전을 아는 사람이라면 충각전이나 선상 백병전이 아닌, 함포전만으로 이긴 걸 더 높게 평가했을 텐데 말이다.
역시 명군의 상은 아니다.
“전하의 뜻이 그러하시다면 성심을 다해보겠습니다.”
그런 만큼 내 영향력을 확보하기도 쉽겠지.
해보자고.
아시아판 성전 기사단.
명나라가 놀라고, 해적이 경악하고, 왜구가 무릎 꿇는 불패의 함대를 만들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