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fficer is too good at sailing RAW novel - Chapter 41
040화 나비 효과 (3)
“역관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참파의 왕은 자네를 사위로 맞이하고 싶은 모양이더군.”
알현을 마치고 나오는 길.
정화는 지나가듯이 가볍게 말했다.
“혼약을 깰 생각이 없을뿐더러 부마는 부담스럽습니다.”
“왜 그런가?”
“서로 불편하기 때문입니다. 군주는 외척이 날뛸까 심려스럽고, 신하들은 외척을 대하기 까다로우며, 외척은 행동거지를 두 배 조심해도 네 배로 위험합니다.”
“자네의 말대로 일세. 역사적으로 외척은 언제나 왕조의 위기를 불러왔으니.”
사실 우리 킬방원 전하도 외척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전하의 처인 원경왕후는 그야말로 여장부라고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는 인물.
게다가 그 미모와 지혜는 조선이 건국되기 전부터 유명할 정도였다.
목숨을 걸고 킬방원 전하를 보위에 올렸으며, 그 와중에도 가문을 현명하게 이끌어 역사에 길이 남을 세종대왕을 길러내셨을 정도니까.
사서에 기록된 것보다 훨씬 더 대단한 분이다.
개인적으로는 5만 원 권의 신사임당보다 몇 수는 높게 쳐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원경왕후의 동생들.
장남인 민무구는 내가 제일 싫어하는 인물이다.
내가 애정하는 킹갓세종대왕 그 자체인 충녕대군을 죽여야 한다고 계속 상소를 올려대고 있으니까.
정확히는 양녕대군 외 모든 왕자를 다 죽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차남인 민무질은 작년에 영락제의 생일 때 사신으로 갔던 인물.
나도 이때 같이 갔다.
능력은 있으나 야심이 크고, 권력을 마구 휘두르며, 싸가지가 진짜 너무 없다.
게다가 똑똑해서 국법을 어기지 않는 선에서 교묘하게 괴롭힌다.
3남인 민무휼과 4남인 민무회는 무난한 능력에 무난한 성품이지만······ 눈치가 없다.
아마 킬방원 성격상 조만간 다 골로 가지 않을까 싶다.
“외척은 때론 왕실의 든든한 아군이지만, 악영향도 많으니 그야말로 계륵과 같습니다.”
“혹시 대월의 역사를 아나? 현 상왕인 호꾸이리는 쩐 왕조의 외척일세. 그가 쩐 왕조를 몰아냈지.”
“예. 들었습니다. 정작 쩐 왕조도 이전 왕조인 리 왕조의 외척이었다고 들었습니다.”
“그걸 바로 옆에서 보고도 강력한 외척을 들이려고 하다니. 이해가 되지 않는군.”
이 말 하려고 빙빙 돌렸구나.
괜히 넘어가지 말라고.
내가 뭐 포켓몬이냐.
넌 내 꺼야 이러게?
“대명의 법도에는 이런 게 있네. 공주의 배우자는 잘생기고 선량한 남자 중에서 고르라. 단, 문무 대신의 자제는 부마로 맞이하지 마라.”
일단 나는 탈락이군.
잘 생겨야 한다는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니까.
“친왕의 금지옥엽인 군주와 현주 마마도 그러하다고 들었지요.”
복잡할 수도 있는데 황제의 고모를 대장공주(大長公主).
황제의 자매를 장공주(長公主).
황제의 딸은 공주(公主).
황가 친왕의 딸은 군주(郡主).
친왕의 외손녀는 현주(縣主)라 부른다.
“따라서 대명은 외척의 득세 따윈 있을 수가 없네.”
대신 환관의 횡포로 망하겠지만.
“훌륭한 제도라 생각됩니다.”
“하하하. 자네는 행실이 바르고, 능력이 있으며, 용모도 괜찮고, 성정도 온화하니 사윗감으로 딱 맞지. 문무 대신의 자제도 아니고. 어떤가. 내가 폐하께 주청 드려볼까?”
“예?”
“수많은 민간 남자 중에서 누구를 부마로 하겠는가. 폐하께서는 바쁘시니 그 많은 이들 중 선택하기 힘들지. 따라서 공주님의 중매는 보통 나 같은 환관이 선다네.”
정화는 환관 중에서도 독보적인 입지와 권력을 가진 인물.
그가 권유하면 매우 높은 확률로 명 황실의 부마가 될 수 있겠지.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소인은 이미 혼례를 약조하였사온데, 어찌 다른 마음을 품겠습니까.”
내가 정말 기이하게 여기는 건데.
숙청을 거의 아트의 경지로 끌어올려서, 내가 숙청이고 숙청이 나인 물아일체의 경지에 오른 영락제와 킬방원.
그 둘은 놀랍게도 딸 바보다.
그것도 심각한 딸 바보다.
그나마 킬방원은 아들도 예뻐한다.
자식 바보라는 말이 더 걸맞겠지.
근데 영락제는 아들은 싫어하면서 딸은 너무 좋아한다.
아마 명 황실의 부마가 되면 제 명에 못 죽을 거다.
조선 왕실의 부마가 되어도 마찬가지고.
“자네는 참 한결같구먼. 원정대는 군기를 위해 자제시키고 있는데도 기어이 홍등가로 향하던데, 그런 모습도 일절 없으니 말일세.”
“소인은 심지가 약하여 유혹에 쉽게 넘어갑니다. 그러니 아예 접하지 않는 게 제일 좋습니다.”
“하하하. 정말 심지가 약한 이는 그런 말을 하지 않는다네. 꼭 과신하는 자가 사고를 일으키지.”
모든 걸 떠나서 성병 위험이 있기에 절대 그럴 생각이 없다.
“해군을 모으고 훈련할 때, 참파에 대한 충성심이나 애국심은 배제하게.”
이게 본론이구나.
“참파인들은 대명을 믿지 않아. 게다가 회회교가 퍼지고 있는 만큼 유교도 받아들이기 어렵겠지. 그런 이들이 강력한 세력으로 떠오르면 골치 아픈 일이 생길 걸세.”
참파뿐만 아니라 동남아시아 국가 대부분이 그렇다.
이들은 하나 같이 명나라를 싫어했는데, 다름 아닌 화교 때문이다.
화교는 교육열과 상술, 그리고 쉬지 않고 일하는 근면함으로 동남아 경제를 장악해 나가고 있다.
좋게 포장했지만, 감탄보다는 ‘지독하다.’라는 느낌을 주는 만큼 이미지가 매우 좋지 않다.
그만큼 원주민들의 박탈감은 커지고, 이들을 몰아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아지고 있는 상태.
아직은 구체적으로 큰 목소리를 내고 있지는 않지만, 불만은 계속 쌓이고 있다.
“애국심도, 충성심도 배제한다면 다른 믿음을 주어야 할 겁니다. 사람은 믿고 의지할 만한 것이 필요하니까요.”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나. 무엇을 믿게 해야겠나?”
가장 간단한 것이라면 나를 믿게 하면 된다.
현재까지는 참파를 구원한 영웅이라는 이미지가 있으니까.
하지만 이는 정화가 원하지 않을 것이고, 나 역시 원하지 않는다.
나는 지속 가능한 가치를 원한다.
포 비나수오르 왕의 카리스마처럼 죽으면 사라지는 휘발성 가치는 의미가 없다.
내가 한 번이라도 실수하거나 죽는 순간 거품처럼 사라질 테니.
“······희망입니다.”
“희망?”
“열심히 하면 잘 먹고 잘살 수 있다는 희망을 믿게 하고 싶습니다.”
내 대답에 정화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자네는 기대하지 않았던 부분에서는 기대 이상의 성과를 내고, 기대했던 부분에서는 간신히 합격점을 넘길만한 대답을 내놓는군.”
“송구합니다.”
“일부러 그랬네.”
“예?”
“일부러 대월의 공격을 유도했고, 일부러 광주에서 늦게 출항했으며, 일부러 참파가 습격받게 두었지.”
“······참파를 확실하게 조공·책봉하기 위함입니까? 아니면 대월을 끌어들여 섬멸하기 위함입니까?”
원정대의 목적은 친선이다.
아무튼, 친선이다.
친선을 위한 대함대가 때려 부수고 다니면 친선보다는 침략으로 볼 가능성이 농후해진다.
하지만 침략받는 국가를 구원하면 원정대의 힘을 보여줄 수도 있고, 침략자보다는 정의의 수호자라는 이미지가 강해진다.
앞으로의 친선이 훨씬 탄력을 받게 되는 것.
어쩐지 파군기가 지나치게 빨리 올라갔다고 했다.
이미 다 알고 있었구먼.
“둘 다일세. 그리고 하나 더 있지.”
“그게 무엇입니까?”
“아군 중 유능한 지휘관을 가리기 위함일세.”
“······.”
하지만 대부분은 활약은커녕 전투 준비도 제대로 못 했다.
한계를 여실히 드러낸 것이다.
“자네가 대명인이었다면, 하다못해 폐하께 절대적인 충성심을 보여줬다면 좋았으련만.”
그리고 유일하게 공을 세운 나는 명나라의 영향력에서 반쯤 벗어나 있다.
“부디 자네가 내세우는 가치와 믿음이 대명의 이익과 상충하지 않기를 바라네.”
경고보다는 우려에 가깝다.
그의 말에서 진정으로 날 걱정하는 감정이 느껴졌으니까.
“그럴 일은 만에 하나라도 없을 것입니다.”
적어도 지금은 말이지.
“자네의 곧은 심지와 한결같은 마음을 믿겠네.”
그 뒤 정화는.
그리고 참파의 왕은.
내게 포상과 지원을 명목으로 엄청난 자금을 넘겨주었다.
***
무역 허가도 받았겠다, 나는 석피와 이소군과 함께 비자야의 시장으로 향했다.
현지 상황을 살펴보다가 참파의 왕이 알려준 왕실 어용 상인을 만나볼 생각이다.
그 뒤에 해군을 조직하고.
“드디어 관광도 해보는 건가.”
“관광이 무엇입니까?”
이소군이 물었다.
처음 듣는 단어인 모양이다.
“본래는 지방의 유생이 과거시험을 보러 수도인 한양으로 가는 걸 관광이라고 했어. 빛(光)을 본다(觀). 빛이란 군주를 의미하니까.”
“명나라에서는 절대 그런 말씀 마십시오. 빛 광자를 썼다가 죽은 사람도 있습니다. 하물며 군주를 빛으로 칭했다가는······.”
이건 홍무제 때문이다.
홍무제는 과거 탁발승이었던 적이 있는데, 승려였던 과거를 엄청 부끄러워했다.
빛 광자는 반들반들한 대머리를 연상시키는바.
자신을 모욕했다며 빛 광자를 쓴 이를 숙청해버렸다.
이런 일이 수도 없이 많았는데, 예를 들어 뛰어날 수(殊) 자를 나쁠 알(歹) 자와 붉을 주(朱)로 나눠서 ‘주원장은 나쁘다.’라는 기적의 논리를 창출.
그대로 숙청해버렸다.
덕분에 수(殊) 자는 뛰어나다는 뜻에서 ‘죽이다.’, ‘사형에 처하다.’라는 뜻으로 바뀔 정도였다.
이게 그 유명한 문자의 옥이다.
문자로 트집 잡아 감옥······ 아니, 지옥으로 보내는 숙청 방식.
주원장의 미친 짓 때문에 조선도 난감했는데, 명나라로 외교 문서를 보낼 때마다 홍무제가 난리를 쳤기 때문이었다.
조선은 ‘대체 왜 지랄이야? 트집 잡으려고 일부러 이러는 건가?’라고 생각하고.
홍무제는 ‘몇 번이나 알려줬는데 계속 그러네. 나 모욕하려고 일부러 이러는 건가?’라고 생각하고.
사관으로 일하면서 느꼈던 건데, 진짜 조선의 외교 난이도가 명나라 때문에 헬 오브 지옥이다.
그나마 현재는 킹방원 전하와 영락제가 죽이 잘 맞는 편이라서 양국 외교 관계는 온화한 편이다.
“알았어. 아무튼, 지방에 있다가 수도에 왔으니 볼 게 얼마나 많겠어. 주변을 둘러보고 여행하는 걸 관광이라고 하게 된 거지.”
“예. 함께 빛을 볼 수 있으면 좋겠네요.”
이소군의 손은 많이 호전된 상태다.
손바닥 전체에 물집이 잡히긴 했지만, 색깔도 괜찮았고 발열과 같은 여타 증상도 없었다.
이대로 가면 별 탈 없이 나을 것 같다.
다만······.
손을 다친 이후부터 매우 친근하게 구는 것이 마치 연인을 대하는 모양새다.
“나리.”
“응?”
“조심하십시오. 이쪽을 보고 있는 자가 있습니다.”
“외국인이니까 신기하겠지.”
“호기심이 아니라 유심히 살피는 듯한 눈빛이었습니다. 살기는 느껴지지 않습니다만, 뛰어난 살수라면 살기를 지울 수도 있으니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석피는 오른손을 내리고 움직이지 않은 채 부자연스럽게 걸었다.
마치 스파이가 언제든 권총을 뽑을 준비를 하는 것처럼.
“딱히 참파에서 원한산 적은 없는데.”
“해적왕의 첩자일지도 모릅니다.”
“그럴 수도 있겠네. 와. 저거 뭐냐?”
태연하게 노점상으로 향했다.
석피를 믿으니까.
석피는 육지에서만큼은 신이다.
“메뚜기네?”
“어, 엄청나게 큰 메뚜기군요.”
“그렇지? 조선에서보다 열 배는 큰 것 같아.”
메뚜기 외에도 다양한 곤충 요리가 많았다.
“이건 뭔가요?”
“두옹 유아 암 느억맘.”
노점상이 대답했다.
“느검마? 감히 이분이 누군 줄 알고!”
“석피야. 느억맘은 참파의 액젓을 말한단다.”
“아······ 그렇습니까?”
“생긴 걸 보니까 코코넛 벌레네. 코코넛이라는 열매 속에서 사는 해충이야.”
전생에 먹어봤다.
“먹어볼까?”
“저, 저는 사양하겠습니다.”
이소군을 보았지만, 그녀 역시도 필사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나는 간단하게 주문해서 먹었다.
전생에 먹었을 땐 베트남 고추가 곁들여져서 크림치즈 향의 매콤 번데기탕 느낌이었는데, 지금은 살짝 느끼하네.
“그런 걸 어떻게 드십니까?”
“먹을만해. 넌 어렸을 때 메뚜기 안 먹었냐?”
“예. 쌀은 구하기 어려웠어도 주변에 먹을 건 많았거든요.”
“난 양반이지만 그리 부유하진 않아서, 배고프면 개구리도 잡아먹고 그랬어.”
훌륭한 단백질원이었지.
“저도 개구리는 먹습니다만 이건 좀······ 나리는 회도 안 드시지 않습니까?”
“회를 안 먹는 거지 생선은 먹잖아. 익히면 다 먹어. 박쥐 빼고.”
전생에는 그래도 기생충 대비가 되니까, 회도 먹고 초밥도 먹고 했지.
여기서는 몸조심해야 한다.
게다가 곤충은 선입견만 없애면 매우 훌륭한 단백질원이다.
“대인. 그······ 치아 사이에 벌레 껍질······ 아니, 벌레 주둥이가······.”
이소군은 얼굴을 살짝 찌푸리면서도 손가락을 뻗었다.
그리고 제거해 주었다.
“백 년 치 사랑도 식을만한 모습이네요.”
“상관없잖아.”
어차피 우리는 사랑하는 사이도 아니니까.
“예. 상관없지요. 9900년 어치 사랑이 남았으니까요.”
언제 우리 사이의 장르가 로맨스로 바뀌었지?
서로 필요 때문에 이용하는 관계 아니었나?
“나리. 누가 옵니다.”
석피가 슬쩍 경고하며 전투태세를 갖췄다.
그가 말하는 쪽을 보니 어딘가 어수룩해 보이는, 그러나 입은 옷에서 부티가 나는 남자 하나가 정확히 나를 향해 다가왔다.
“혹시 원정대의 강해인 대인이십니까?”
그리고는 능숙한 명나라말로 물었다.
생김새가 조금 다르다 했더니 화교 상인인 모양이었다.
“그런데요?”
“소인은 저 상점 주인입니다요.”
그가 가리킨 곳은 시장 내에서 꽤 커 보이는 정식 상점.
거기에는 화상(華商)이라 쓰여 있었다.
“괜찮으시다면, 대인께서 가져오신 용왕차를 사고 싶습니다.”
“용정차는 취급하지 않습니다만.”
“용정차가 아니라 용왕차. 용왕님이 마시는 차 말입니다.”
뭔 개소리지?
“돈은 얼마든지 내겠습니다. 꼭 부탁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