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fficer is too good at sailing RAW novel - Chapter 52
051화 외전1 : 최연소 급제자
“이것이 오늘의 상소란 말인가?”
“예. 전하.”
이방원은 한숨이 나오려는 걸 억지로 참았다.
도대체 사대부라는 것들은 왜 그리 불만이 많은 것인지.
매일 끝도 없이 상소문을 보내오니 내가 왕인지, 신하들 수발들어주는 머슴인지 분간이 안 된다.
어쨌거나 상소문은 봐야 한다.
만약 상소문을 읽지 않고 내치기라도 했다간······.
“······.”
구석에서 내 일거수일투족을 전부 감시하고 기록하는 맑은 눈의 광인들이 신나게 붓을 휘놀릴 테니까.
‘대왕께서는 귀찮다며 상소문을 읽지도 않고 내치는 폭군이었다.’
같은 헛소리를 쓸 수도 있다.
사관.
필요성은 느끼지만, 너무 귀찮다.
“보자꾸나.”
– 세자 시절에는 경연도 자주 여시고 학문에도 열성적이셨는데, 왜 요즘은 학문을 멀리하십니까.
– 전하. 불교를 멀리하시옵소서.
– 소신의 건강이 좋지 않아 물러나 쉬고자 하옵니다. 윤허하여 주시옵소서.
이런 건 괜찮다.
진정한 충의가 느껴지니까.
하지만 다른 상소는 달랐다.
– 요즘 천둥과 번개가 내리치고, 평안도에는 여름에도 우박이 내리며, 남쪽에는 태풍의 피해가 심각하니, 이것은 전부 하늘이 경고를 내리고 있기 때문이옵니다.
다 내 탓이라는 뜻이다.
그래. 이것까지도 이해한다.
예로부터 재해는 왕이 부덕하기 때문이라고 했으니.
심지어 일식과 월식 가지고도 하늘이 노했다는 헛소리를 하지 않던가.
하지만 다음 상소를 보자 분노를 금치 못했다.
미려한 문구로 포장되어 있지만, 결론은 이거였다.
– 이 같은 재해는 전하께서 형제를 쳐 죽이고 아비를 무시했기 때문입니다.
미친 건가?
감히 이런 상소를 올린다고?
그렇다고 쳐 죽이자니 민심이 어쩌고저쩌고할 것 같은데.
쓱쓱.
정중하게 예를 갖추긴 했지만, 매의 눈빛으로 용안을 살피는 사관을 보자 분노가 가라앉았다.
세상에 광인은 많은데, 그런 녀석 때문에 내가 폭군이 될 수는 없지.
– 나라에 남자가 없어 결혼 못 한 처녀가 많으니 전하께서 혼례를 주선해 주시옵소서.
– 혼례는 나라의 근본일 진데, 나라의 근본이 흔들려 하늘의 뜻도 민심도 떠나갔습니다.
백성들이 혼례를 올리지 못한 것도 내 잘못이지.
다 내 부덕이다.
– 후궁 좀 그만 들이시옵소서.
– 중전마마께서는 공이 크고 성품이 어지신데 어찌하여 이러십니까.
– 중전마마 학대를 멈춰주시옵소서.
– 상나라의 주왕은 술로써 연못으로 삼고, 고기를 매달아 숲을 만들며, 남녀로 하여금 벗게 하여 서로를 쫓게 했으며······.
한마디로 나보고 주지육림에 미친 폭군이라는 말이다.
말은 똑바로 하자.
내가 언제 주지육림을 했냐.
후궁 몇 명 들였다고 감히 이런 말을?
이건 전부 처남들이 사주한 거다.
간이 배 밖으로 나오지 않고서야 이럴 수가 없다.
공신으로 인정하여 후대해주었더니 감히 왕의 권위에 흠집을 내려 들어?
두고 보자.
바로 처벌하면 사관들이 ‘상소를 받고 분노하여 처남을 죽였다.’라고 기록할 테니, 나중에 건수를 잡아 확실히 족치리라.
부들부들.
“이 나라 조선에는······.”
삶에 미련이 없는 놈들이 참으로 많도다.
이게 다 저 사관 놈들 때문이다.
내가 왕인데.
말도 눈치 보면서 하게 하니까.
그렇다고 다 쳐 죽이자니······.
다시금 사관을 유심히 보았다.
무표정을 가장했지만,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며 흐뭇한 표정을 짓는 것으로 보아 이 개막장 상소를 찬양하려는 게 분명하다.
사관.
필요하다는 건 아는데, 너무 싫다.
“전하. 어찌 상소를 덮으시옵니까. 비답을 써주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비답은 상소문의 뒷면에 왕의 답장을 써주는 걸 말한다.
지금은 너무 분노하여 쓰고 싶지 않다.
글로 쌍욕을 박고 싶으니까.
“급한 일이 있느니라.”
“오늘 예정에는 없사옵니다만. 따로 급한 일이 있사옵니까?”
하여간 지신사는 눈치가 없어.
눈치가 없는 척하는 건가?
“그러하다. 얼마 전 대과를 치르지 않았느냐. 그 결과는 어찌 되었느냐.”
“33명의 합격자는 가려진 듯합니다. 하오나······.”
“하오나?”
“합격자 중 부정행위자가 있는 듯합니다.”
“감히 어떤 놈이 그런 무도한 짓을 했단 말이냐! 그것이 사실이라면 조선의 근간을 흔드는 대역죄이다!”
공정한 과거 시험이야말로 조선의 뿌리일진대 감히 어떤 놈이!
잘 됐다.
명분도 확실하니 이 일에 집중하여 상소문을 넘기자.
제정신으로는 도저히 비답을 못 달아주겠다.
“다만 현장에서 걸린 건 아니옵고, 약관도 안 된 청년이 가장 완벽한 답을 내놓았다고 합니다.”
부정행위로 의심하는 것도 당연했다.
조선의 대과는 고려 때 시험과 비교하면 무척 어려우니까.
그리고 부정행위는 송나라 시대 때부터 다양하고 심오하기로 유명했다.
어지간한 천재가 아니고서야 약관은커녕, 이립(而立 : 30살)에도 합격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약관도 안 된 청년이 완벽에 가까운 답을 내놨다고?
“심증만으로 어린 인재일 수도 있는 청년을 짓밟을 수는 없는 노릇.”
“그러하옵니다.”
대과는 세 단계 과정을 거친다.
먼저 초시.
성균관 유생 50명.
수도인 한양에서 치르는 시험인 한성시의 우수자 40명.
지방에서 치르는 시험인 향시의 우수자 150명.
이렇게 240명을 선발한다.
그리고 이들로 두 번째 시험인 복시를 치른다.
복시에서는 합격자 33명을 가려낸다.
마지막으로 전시.
왕이 합격자들에게 현실이나 시국에 대해 질문하고, 그 대답을 통해 1등부터 33등까지를 정한다.
이때 왕의 질문을 책문이라 한다.
“그러니 이번 책문은 색다르게 하겠다.”
기대해라.
네가 가짜라면 어떤 부정행위를 준비했든 내 책문을 답할 수는 없을 테니까.
***
때가 되자, 대과의 합격자 33명을 모으고 대과의 마지막 시험, 전시를 시작했다.
“이것이 책문이오!”
관리 하나가 크게 외침과 동시에 무관들이 줄을 풀었다.
세 개의 큰 두루마리가 주르륵 내려가며 문제를 공개했다.
책문을 하나만 하라는 법은 없다.
모든 것은 왕의 마음이니까.
덕분에 사심이 많이 들어간 질문을 해도 된다.
이번에도 그러했는데, 일식을 비롯한 천문 현상은 군주에게 매우 중요했기 때문이다.
본래부터 하늘에 이변이 일어나면 임금이 부덕하기 때문이라는 믿음이 널리 퍼져 있었으니까.
따라서 일식 등의 이변이 일어나게 되면 임금은 몸가짐을 바르게 하고 하늘에 제사를 드려 용서를 구했다.
만약 이를 무시했다가는 끝도 없이 말이 나오게 된다.
전염병이 퍼져도, 태풍이나 홍수, 가뭄은 물론, 메뚜기 떼가 와도 ‘왕이 하늘을 무시했기 때문이다.’라는 논리가 펼쳐지니까.
따라서 천문을 관측하는 서운관의 관리는 그야말로 목숨을 걸고 정확하게 예측해야 한다.
만약 틀리기라도 한다면 왕의 정통성이 위협받을 수도 있으니까.
이방원은 더더욱 신경 써야 한다.
왕자의 난으로 왕위를 찬탈했다는 ‘오해’를 받는 상황.
안 그래도 정통성이 약한데, 여기에 하늘이 분노하기라도 하면 권위가 바닥으로 떨어진다.
당연히 겨우 과거에 급제한 선비가 정확한 답을 내놓을 리는 없다.
그저 사심이다.
이렇게라도 답답한 마음을 풀고, 왕이 천문을 신경 쓰고 있다는 걸 드러내기 위한 수단.
더욱이 천문학은 널리 알려지지 않은 만큼, 부정행위자라면 이에 관한 답변을 준비하지 못했을 터.
그야말로 일거양득의 묘수다.
웅성웅성.
예상대로 복시 합격자 33명은 무척 당황한 모습을 보였다.
이런 책문이 나오리라고는 상상도 못 한 듯했다.
“······.”
특히나 요주의 인물, 열여덟의 나이에 합격한 청년은 눈에 띄게 당황한 모습을 보였다.
눈을 크게 뜨고, 조용하면서도 깊은 한숨을 내쉬는 걸 보면 상당히 불안한 듯했다.
그러나.
쓱. 쓱.
무언가 결심했는지 빠르게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 속도가 무척 빨라 마치 천문에 통달한 고인이 아닌가 생각될 정도였다.
다들 끙끙대며 앓고 있을 때.
그는 빽빽하게 쓴 답안을 완성했다.
그 모습은.
시험 관리관은 물론, 이방원에게도 매우 깊은 인상을 남겼다.
***
“대체 이게 말이 되는 소리인가!”
“터무니없는 소리다. 괴력난신을 믿고 있는 게 틀림없어. 이건 필히 벌해야 할 일이다!”
“어린 나이의 선비가 터무니없는 답을 내놓았다고 벌한다면 세상이 비웃을 것이오.”
“선현의 말씀을 부정한 것도 아닌데, 다들 왜 그리 흥분하시는가?”
대신들은 복시 합격자들의 최종 답안을 보며 열띤 토론을 벌였다.
개중 뜨거운 화제는 단연 최연소 급제자, 강해인의 답안이었다.
+++
問 : 어떤 때는 낮이 길고, 어떤 땐 밤이 긴데 왜 그러한가.
答 : 이 땅은 인간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큰 구체의 형태. 이를 지구(地球)라 정의한다.
지구는 스스로 회전한다. 이를 자전(自轉)이라 정의한다.
지구는 태양의 주위를 돈다. 이를 공전(公轉)이라 정의한다.
자전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12시진. 즉, 1일이다.
자전의 중심축은 반듯하지 않고 360분의 23하고도 절반만큼 기울어 있다.
공전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365일하고도 3시진. 즉, 1년이다.
지구는 자전하면서 공전한다.
자전축은 일정하지만, 태양에서 바라보면 지구의 공전에 따라 자전축이 변하는 것처럼 보인다.
자전의 중심축이 태양을 향해 있으면 태양 빛을 받는 시간이 길어진다. 이 시기를 여름이라 하며, 낮이 긴 이유이다.
자전의 중심축이 반대로 향해 있으면 태양 빛을 받는 시간이 짧아진다. 이 시기를 겨울이라 하며, 밤이 긴 이유이다.
問 : 일식과 월식은 왜 생기는가.
答 : 일식은 지구를 공전하는 달이 태양 빛을 가리기 때문이고, 월식은 지구가 달로 향하는 태양 빛을 가리기 때문이다.
問 : 밤하늘 별의 움직임을 상세히 설명할 수 있는가.
答 : 태양이 중심에 있고, 수성, 금성, 지구, 화성, 목성, 토성이 순차대로 태양 주위를 공전하고 있다.
그 속도는 각기 다르며, 지구는 365일 하고도 3시진의 속도로 한 바퀴를 돈다.
별들은 태양 주위로 돌 때 정확한 원이 아닌 타원의 형태로 돌며, 타원의 형태를 계산하자면······ (후략).
+++
“······.”
이방원은 머리가 아팠다.
상식적으로 생각했을 때 말이 되지 않는 이야기다.
하지만 이상할 정도로 이 답안에 끌렸다.
머리는 거부하는데 심장이 원한다고 할까.
“서운관 관리와 회회도(무슬림) 중 천문 역법에 능통한 이를 불러라.”
이방원이 명령을 내리자 서운관 관리는 곧바로 달려왔다.
회회도는 왕궁 안에 없었으므로 조금 시간이 걸릴 터였다.
“부르셨사옵니까. 전하.”
서운관은 풍수지리를 통해 도읍을 선정하거나 종묘 등 중요한 건물을 지을 때 지면의 형세를 살피고, 천문을 관측하는 기관.
서운관에서 천문 직무를 담당하는 관리는 박염이라는 자다.
“그대의 의견을 듣고 싶다. 이 답안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박염은 조심히 답안을 받아들고 꼼꼼하게 살폈다.
그리고 깊이 고개를 숙였다.
“소신이 판단하기에 터무니없는 헛소리라 생각되옵니다.”
“그런가?”
“단적으로 세상은 천원지방,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난데 이 자는 땅이 둥글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한, 태양과 달은 뜨고 지는 것이지, 이 땅이 태양의 주위를 돈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옵니다.”
이게 상식이지.
하지만 미심쩍단 말이야.
서운관에서 제대로 일식이나 월식을 예측한 적이 없으니.
“알았다. 가보거라. 이 일에 대해서는 함구하고.”
“예. 전하.”
내가 하찮은 일에 너무 몰입하고 있는 게 아닌가.
이방원은 스스로 되물었다.
천문이 중요한 건 맞지만, 터무니없는 대답에 일일이 신경 쓸 필요는 없으니까.
하지만.
그런데도.
계속 마음에 걸렸다.
대신들과 주요 업무를 끝날 때쯤, 회회도들이 입궁했다.
“이 답안을 보고 그대들의 의견을 말해보라.”
회회도들은 공손히 받아들고, 자기들끼리 열띤 토론을 벌였다.
개중 가장 나이 지긋한 이가 대표로 입을 열었다.
“우선 이 땅이 둥글다는 건 널리 알려진 이야기입니다.”
“그러한가?”
“조선에서도 뱃사람들에게는 정설처럼 받아들여지고 있지요. 멀리 있는 배를 볼 때, 돛대부터 차례로 떠오르는 듯한 모습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긴 하구나. 만약 평평했다면 배의 모습은 온전하되, 점점 커지는 형태로 보였겠지.”
이방원은 생각했다.
천문에 조예는 없지만 그런 내용의 책을 어디서 본 것 같은······.
“저희는 전하의 뜻에 따라 ‘회회 역법’과 ‘칠정산’을 조선에 맞게끔 교정하고 있사옵니다.”
“과인이 그리하라 명령을 내렸지.”
“만약 이 이론이 옳다면, 나라에 따라 교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야말로 모든 천문 이론을 관통하는 진리가 될 것입니다.”
“진리?”
“그만큼 파천황 같은 이론이라는 뜻이옵니다.”
“그대는 어찌 생각하는가. 이 이론이 옳겠는가?”
“감히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다만 수식이 대단히 정교한지라 마냥 헛소리로 치부할 일은 아닌 듯합니다. 적어도 이 답안을 쓴 자는 저희가 모르는 무언가를 알고 있다는 게 확실합니다.”
모든 이들이 당연하다시피 알고 있는 상식이 틀렸고, 이 답안을 작성한 청년은 천문의 진리를 깨달은 대학자다?
에이. 그럴 리가.
“알겠다. 이 일은 함구하라.”
“예. 전하. 하옵고······.”
“응?”
“만약 이 이론대로 계산한다면, 3년 뒤 태음력 6월에 일식이 있을 것입니다.”
“일식이······ 온다.”
그 말을 듣자 이방원의 얼굴은 심각하게 변했다.
만약 일식을 예측 못 했다간 온갖 구설에 휘말리게 될 터.
만에 하나라도 그럴 가능성이 있다면 무시할 수는 없다.
아니라면 헛소문을 퍼뜨린 죄로 유배 보내면 되니까.
회회 천문학자의 이야기까지 들은 후, 이방원은 결심을 굳혔다.
***
이방원은 조정의 대신들을 불러모아 대과 전시의 결과를 공개했다.
“······그리고 강해인은 병과 1위로 하겠다.”
전시의 1위는 장원.
종6품의 관직을 받는다.
2위는 아원.
정7품의 관직을 받는다.
3위는 탐화랑.
정7품의 관직을 받는다.
4위부터 10위까지를 을과라 하며 정8품의 관직을 받는다.
11위부터 33위까지를 병과라 하며 정9품의 관직을 받는다.
즉, 병과 1위라는 건 전체 11위를 의미한다.
“전하. 그런 허무맹랑한 대답을 한 자를 병과 1위로 하는 것은······.”
“어차피 다들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지 않은가?”
가장 그럴듯한 대답을 쓴 사람이 다름 아닌 강해인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장원을 주고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높은 점수를 줄 수는 없다.
너무 파격적인 이론을 말했으니까.
게다가 강해인의 이론대로 계산해서 일식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청년의 헛소리에 휘둘리는 무능한 군주가 되어버릴 수 있다.
“만약 진실이면 이조(행정부)에서 중히 쓸 것이고, 거짓이라면 예조(외교부)에서 쓸만할 터.”
그런데 강해인의 이론대로라면.
그리고 작년에 만든 혼일강리역대국지도를 떠올리면······.
조선은 너무나도 작은 나라인 게 아닌가.
육지로는 명나라에 막혀 나갈 수 없을 터.
만약 바다로 나간다면 더 넓은 세상을 만날 수도 있다?
그럴 리가.
그럴 리는 없지만, 만에 하나라는 게 있다.
우물 안 개구리는 세상이 얼마나 넓은지 모르는 법이니.
“아무튼, 뭔가 할 놈인 건 분명하다. 더는 말하지 말라. 고작 정9품이지 않은가.”
“예. 전하.”
내 특별히 눈여겨보지.
성정이 나빠 보이지는 않고, 이 답답하고 재미없는 궁궐에 톡톡 튀는 녀석 하나가 있어도 나쁘지 않으니.
그렇게 대과의 결과는 정해졌고 공개되었다.
이방원은 과거 합격자를 일일이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기대하던 그 녀석이 왔다.
“오. 그대가 최연소 급제자인 강해인인가.”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소인은 그저······.”
어쩌고저쩌고.
재미없고 의례적인 미사여구를 늘어놓았다.
내가 기대했던 건 이게 아닌데.
좀 더 재미있게 해봐.
“그대는 관리가 되어 무슨 일을 하고 싶은가?”
“소인은 사관이 되고 싶습니다.”
“사관?”
이방원의 얼굴이 기괴하게 일그러졌다.
하필이면 이 씨부럴 새퀴가.
대체 얼마나 창의적으로 과인을 능멸하려고.
“그, 그대의 노고를 치하하며, 그대의 바람을 최대한 반영하겠노라.”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넌 찍혔다.
두고 보자.
***
이방원은 밤하늘을 보면서 문득 강해인이 떠올렸다.
2년 전, 대과 때 있었던 일까지도.
“녀석. 잘하고 있으려나.”
눈여겨보고 있었는데 빌어먹을 황제가 가로챘다.
예측 불가능한 일을 벌일 때마다 녀석의 반응과 대처를 보는 재미가 참 쏠쏠했었는데.
작년에 사신단에 참석시킨 게 실수였다.
경험 쌓고 더 큰 사람이 되라고 억지로 밀어줬는데, 황제 놈이 고새를 못 참고 알맹이만 쏙 빼가네.
“정말 내년에 일식이 올까?”
만약 일식이 온다면.
녀석은 모든 천문 이론을 관통하는 진리를 약관 이전에 고안했다는 증명이 된다.
······미친놈인데?
“정말 일식이 온다면 공주랑 결혼시켜 부마로 삼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