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GAME RAW novel - Chapter 176
2014년 2월 24일. 오그던, 유타. 해리슨 불러바드. 웨버 주립 대학교. 디 이벤츠 센터.
코트 전체를 활용하는 드릴을 하던 중, 순서를 기다리기 위해 움직이던 찰나였다. 나는 플로어에 주저앉아 있는 남자를 보았고 무언가 잘못 되었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이내 훈련이 중단되고, 우리는 바닥에 드러누워 눈을 가린 채 고통스러워하는 이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의 앞에서는 호세가 심각한 표정으로 무릎을 만져대고 있었다.
“흐음-”
“심각한 부상인가? ”
스태프를 통해 휠체어를 부탁한 호세가 스탠리의 질문에 고개를 가로젓는다.
“정확한 건 검진을 해봐야겠지만, 일단 ACL은 아닌 것 같아요.”
“그런데?”
“착지과정에서 무릎 인대가 손상되었을 가능성이 높아요. 이런 경우는 최소 한 달가량의 결장이 예상되죠. 복귀까지는 최소 6주가 필요할 겁니다.”
“이런, 세상에.”
날벼락 같은 소식에 제이슨이 그만 탄식을 토해내고야 만다.
그런 그를 잠깐 바라보던 스탠리가 선수들에게 잠깐 한쪽으로 물러서라는 지시를 내렸다. 이윽고 휠체어가 도착한다. 그리고 근처에 있던 제임스와 자말이 쓰러져 있던 블레이클리를 일으켜 세웠다.
고통과 절망이 뒤섞인 복잡한 표정이 되어, 그는 눈물을 흘리는 중이었다. 작년 바이런에 이어, 또 다른 무릎 부상이 우리 WSU를 덮친 것이다.
하지만 이번 블레이클리의 부상은 바이런의 부상과는 차원이 다르다. 팀 내에서 그가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적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저 손가락을 교차해 그의 부상이 심각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후우- 훈련은 여기까지 하도록 하지. 콜린과 제이슨을 따라가도록.”
“…….”
순식간에 무거워진 훈련장 안의 분위기는 한 여름에 두꺼운 솜이불을 덮기라도 한 것처럼 답답하기만 했다. 재빨리 걸음을 옮기는 스탠리는 호세의 뒤를 따라, 함께 병원으로 향하려는 듯 보였다.
콜린과 제이슨이 박수를 치며 분위기를 환기해보지만, 부상에 영향을 받은 몇몇 선수들은 스스로의 관절을 점검하며 자신은 괜찮은지 확인하는 중이었다. 괜히 불안했던 탓이다.
그러던 중, 어디론가 사라졌던 바이런이 나타나 콜린에게 명함을 하나 건넨다.
“스탠리에게 연락해, 이 병원으로 가라고 하세요.”
“……좋아, 그러지.”
바이런은 더 이상 좋은 농구선수가 아니게 되었지만, 은퇴 직전의 그를 다시 코트로 들여보낼 수 있었던 것은 우수한 의료진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두 번의 ACL 중 한 번은 LCL이라 불리는 외측 인대까지 복합적으로 손상되는 매우 커다란 부상이었다. 위치를 막론하고 무릎쪽 인대에 손상이 오게 되면, 운동을 하는 것은커녕 일상생활을 하는 것조차 힘이 든다.
휠체어나 목발에 기대지 않고는 움직일 수 없게 되는데, 무릎을 지탱해주는 인대가 신체의 균형을 잡아주기 때문이다.
즉각적인 수술에 들어가는 이유 또한 이 때문이다.
“휴우우우-”
여기저기에서 들려오는 한 숨 소리만이, 훈련장을 가득 메우고 있다.
++++++++++++
오그던, 유타, 킹스턴 드라이브.
검진 결과 블레이클리의 부상은 호세의 예상대로 내측 인대의 손상이었다. 바이런이 추천한 병원에서는 그가 완치되는 데까지 약 5주 가량의 시간이 소요가 될 것이라 말했다. 사실상 그의 시즌은 오늘로써 끝이 나 버렸다.
오후에 훈련장에서 만난 블레이클리는 한참 울었던 듯, 퉁퉁 부은 벌건 눈으로 우리의 앞에 서서 고개를 숙였다.
그가 잘못한 것은 전혀 없는데도 말이다.
[ “Damn! 그거 알아? 이건 그의 마지막 기회였다고!” ]씻으러 들어간 샤워실에서, 자말이 모두를 향해 큰 목소리로 아쉬움을 토해냈었다.
[ “이건 정말 똥 같은 일이야! 그는 누구보다도 열심히 했어. 오로지 3월에 있을 전국 토너먼트를 위해서 말이야.” ] [ “…….” ]그리고 우리 모두는 이에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블레이클리가 이 전에 뛰었던 털사 골든 허리케인은 미드-메이저 컨퍼런스인 CUSA의 소속으로, 본래는 그리 강한 전력을 과시하는 팀이 아니었다. 지난 3년 내내, 털사는 컨퍼런스 중하위권을 맴돌았다.
대학을 졸업하기 전, 에서 뛰어보고자 하는 의지가 블레이클리의 전학을 결심케 만들었다. 우리 외에도 몇몇 마이너 컨퍼런스의 팀이 그에게 손을 뻗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는 스탠리와 함께 뛰는 것에 큰 매력을 느꼈던 거다.
모두가 빠져나간 샤워실에서, 자말이 내게 다가와 조용히 말을 걸어왔다.
“휴우우-”
가방을 대충 책상 위에 던져두고, 침대에 드러누워 천장을 바라본다. 재비어의 말에 따르면, 블레이클리는 크게 좌절해 있는 상태라고 했다. 식음마저 전폐하고 기숙사의 문을 걸어잠근 채 아무와도 만나지 않는다면서 말이다.
나야 이라는 것을 머리로만 알아왔고, 지금도 이것이 주는 의미가 얼마나 커다란지 대충 짐작으로만 아는 정도이다.
그렇지만, NFL Super Bowl을 제외하면 미국을 가장 떠들썩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대학 농구의 전국 토너먼트였다.
미국에서 농구를 시작한 모든 꼬마아이들은 NBA에서 뛰는 것만큼이나, 에 참여하기를 원한다. 그곳에서 느껴지는 모든 분위기를 두고, 이를 경험해본 모든 이들이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짜릿한 경험이었다 말하고는 했다.
정말 지독하게 운이 없는 남자이다 싶었다. 만약 이번 시즌 그가 털사에 남았더라면, 어쩌면 토너먼트에 참여할 자격을 얻었을 수도 있다.
현재 털사는 CUSA에서 1위를 기록 중이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한편으론 그의 전학을 결정지은 또 다른 요인인 샤퀼 해리슨(Shaquille Harrison)-제임스 우다드(James Woodard)라는 2학년 듀오의 맹활약 덕분이기도 했다.
내년 서던 메소디스트, 템플, 코네티컷, 멤피스 등이 속한 ACC로 합류하게 된 털사는 메이저 컨퍼런스 진출을 맞아 큰 변화를 모색 중이었다.
감독이 아닌 이사회의 주도하에 대규모의 리쿠르팅이 이뤄졌고, 현 감독인 대니 매닝(Danny Manning)도 내년에는 팀을 떠날 예정이었다.
텍사스, 마이애미, 미주리를 이끌며 지도력을 인정받은 프랭크 헤이스(Frank Haith)가 내년부터 털사의 지휘봉을 잡는다.
만약 블레이클리가 팀에 남았더라도, 그는 더 이상 팀의 중심이 아니었을 거다.
지난 날 그가 털사를 위해 헌신해 온 부분을 감안하면, 아마도 이를 버텨내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난 그것이 너무 서글프고, 또 안타까웠다.
‘블레이클리가 없어.’
가장 뛰어난. 그리고 높은 수준에서 오랜 시간동안 경쟁이 가능한 팀 내 유일한 포인트가드가 없이 우리는 남은 시즌을 치러야만 한다.
스탠리를 비롯한 코칭스태프의 머릿속이 가장 복잡할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지금도 학교에 남아 계속 된 회의를 이어가고 있었다.
‘하필이면, 지금.’
MSU와의 경기에서 실마리를 잡기는 했어도, 나의 슬럼프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었다. 물론 농구라는 경기의 특성을 감안하면, 실마리를 잡았다는 것만으로도 야투율은 한두 경기 나아진 모습을 보일 수도 있었다.
그렇지만 내가 지금 바라보고 있는 것은 정규시즌 경기가 아닌 와 나아가서는 나의 첫 전국 토너먼트 경기이다.
아주 약간 나아진 것만으로는 절대로 만족할 수 없는 이유이다.
“휴우우-”
한숨이 늘어가는 지금, 난 보충 수업에 참여하느라 스킬 트레이닝에 참여하지 못한 것이 두고두고 아쉬웠다. 분명 데이브와 그의 스태프라면, 이런 내 슬럼프를 이해하고 여기에서 벗어 날 수 있도록 큰 도움을 주었을 거다.
일단은 이번 주 일요일엔 별다른 스케줄이 없는 것이 만족하기로 했다.
“…….”
몸은 무겁고 피곤했다. 그리고 솔직히 조금 졸리기도 하다.
하지만 이런 와중에도 정신만큼은 매우 날카롭고 또렷하게 살아있었다. 잠이 들기까진 제법 많은 시간이 필요 할 지도 모르겠다.
++++++++++++
2014년 2월 25일. 오그던, 유타. 해리슨 불러바드. 웨버 주립 대학교. 디 이벤츠 센터.
블레이클리의 공백에 대한 스탠리의 대안은 조던이었다.
시즌 전부터 포인트가드 롤을 소화하는 것에 대한 훈련을 쭈욱 진행해 왔었기 때문에, 가장 합리적이고 고개를 끄덕일 만한 선택이었다. 다만, 4년 내내 슈팅 퍼스트의 마인드로 농구를 해 온 그에게 기댈 수 있는 역할이란 분명히 한계가 있었다.
이것은 오늘 내가 유독 많은 지시를 듣고 있는 이유이기도 했다. 하루 종일 내 곁에 팀 브레넌이 달라붙어 있는 것 또한 마찬가지다.
코칭스태프의 머리에서 나온 팀의 전략 전술을 조립하고 세련되게 다듬는 것이 그의 역할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팀은 보통, 가드들에게 달라붙어 있는 시간이 많았다.
“이해했어?”
“네, 대충은요.”
“대충은 안 돼. 완벽하게 이해해야 한다고.”
“…… 그래요. 다시 한 번 해보죠.”
평소에는 팀이 이런 남자라고 생각해 본적이 없었는데. 그는 매우 꼼꼼하고 또 짜증이 날 정도로 같은 질문을 반복하는 중이었다.
어째서 작년 스콧이나 올 해 블레이클리가 팀이라면 진절머리를 냈는지 알 것도 같다.
“일단 기본적인 전략은?”
“박스 오펜스죠.”
“좋아. 그럼, 다음은?”
“잭 밀스가 있는 곳을 중심으로 볼을 움직여야죠. 리온의 포스트업을 이용하면, 틀림없이 더블팀이 붙을 테니까요. 그럼 전 윙에서 코너로 이동해 SSU의 수비를 조금 더 안쪽으로 끌어 올 필요가 있어요. 그러는 사이에, 제레미나 조엘에게 기회가 날 수 있죠.”
“절대 잊어버리지 마. 안 그럼 매우 화를 낼 거니까.”
“…….”
워낙에 진지하고 근엄한 표정인지라, 농담을 하지도 못할 것 같았다.
몸을 부르르 떨며 진절머리를 치는 내게 다가온 조던이 낄낄거리며 엉덩이를 툭 두드리곤 사라진다. 생각해보니, 그도 포인트가드 롤을 소화하기 위해 팀과 계속 함께 해왔던 것 같다. 그 때 놀리는 게 아니었는데.
‘세상 참 공평하네.’
뭐가 되었든, 뿌린 대로 거두는 법이다.
“흐음-”
드릴이 한창 진행되고 있는 와중이지만, 난 선수들과 조금 동떨어진 곳에서 비어있는 코트를 바라보고 있었다. 머릿속으로 내일 있을 경기 전략을 미리 조립하고 또 가상으로 실행해 보기 위함이다.
오늘 난, 지난날에 내가 리딩을 해왔다고 믿었던 것이 단순한 내 착각이었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내가 엘보우나 혹은 탑에서 볼을 쥐고 있을 때에도, 정작 팀을 지휘했던 것은 스콧이나 블레이클리였다.
난 그냥 어시스트 개수만 추가하는 정도에 불과했던 거다.
‘저기에 리온을 세워두고.’
매우 솔직한 이름이다.
페인트 존 주위에 동료들을 박스 대형으로 만들어두는 것에서 시작하는 공격 패턴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 사각형의 형태는 꼭 정사각형일 필요는 없다. 직사각형이 되거나, 마름모가 되거나. 대부분은 사다리꼴의 형태를 띤다.
대형을 선 선수들 모두 상하좌우로 움직임이 용이하고, 스크리너가 되는 선수들 또한 방향성을 쉽게 정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보통은 가드들이 스크린을 받아 하이로 빅맨은 로로 이동하지만, 리온과 내가 있기 때문에 우리는 빅맨을 하이로 보내는 변칙적인 전략을 활용 할 수도 있었다.
업스크린을 통해 엘보우로 이동하고, 리온과 내가 게임을 재조립한다면 박스 오펜스는 한 단계 더 높은 수준으로 발전하게 된다.
이 말은 즉, SSU가 수비하기 대단히 어려워진다는 뜻이었다.
“에이, 팀!!!”
“?”
“한 번 이야기를 들어 볼래요?”
또 한 번, 그에게 검사를 맞을 시간이었다.
부디 무사히 통과 할 수 있기만을 바랄 뿐이다.
++++++++++++
“응? 뭐야? 있었던 거냐?”
“하하. 미안해요, 너무 조용했나요?”
“이런! 아무도 없는 줄 알았지 뭐야?! 누군지 모르지만 불을 켜두고 그냥 간 거라면, 당장에 혼쭐을 내주려고 했지.”
수업과 훈련이 모두 끝난 뒤에도, 나는 코트에 계속해서 남아 있었다. 여기까지는 평소와 전혀 다를 것이 없었지만, 농구공을 전혀 만지고 있지 않다는 점이 얼에게는 조금 이상하게 보였던 것 같다.
그는 복잡하게 놓여있는 각종 도구들을 바라보며, 약간은 흥미가 생긴 듯 보였다. 근처에 놓인 간이 의자를 가져와 코트의 가장자리에 앉아버린다.
“순찰은 안 돌아도 돼요?”
“응? 오늘은 괜찮아. 신입이 왔거든.”
“오-! 그래요?”
“그래. 제법 똘똘한 녀석이라서, 믿고 내버려 두더라도 될 것 같아서. 그리고 영리한 녀석일수록 혼자서 크도록 내버려 둬야 해. 마치 너처럼.”
“하하하! 글쎄요, 제가 영리한 지는 잘 모르겠네요. 최소한 오늘은 그래요.”
겨우 하루일뿐이지만, 팀은 내게 농구를 바라보는 완전히 색다른 시야를 안겨다 주고 떠나버렸다. 그는 늦게까지 곁에 남기를 바랐지만, 임신한 부인이 입덧으로 고생을 하는지라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잘은 모르지만, 스테이시는 입덧이라는 것이 정말 힘들고 짜증나는 일이라고 알려주었다. 그녀의 친구인 가브리엘라의 입덧을 곁에서 지킨 것이 스테이시다.
당시 베리는 이탈리아 리그에서 뛰며, 분유와 기저귀 값을 벌고 있었다.
그는 내년, KBL에 도전장을 내밀 예정이다.
끼이이익-
“응? 오-! 다 돌았나?”
“네. 여긴 괜찮은 거예요?”
“물론! 너도 이리로 와 앉아. 아주 재미있는 구경거리가 있으니까.”
할 수만 있다면 맥주를 마시고 싶다던 얼은 순식간에 나를 광대로 만들어 버렸다. 종이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코트를 이리저리 움직이는 것이 재미있었나 보다.
허탈한 얼굴로 얼을 돌아보니, 그의 곁에 앉는 내 나이 또래의 남자가 보였다.
“헤이.”
“헤이.”
간단하게 인사를 나누고는 다시 종이를 쳐다본다.
는 공격을 위한 준비과정일 뿐, 구체적인 전술과는 거리가 멀다. 처럼 어떠한 식으로 전형을 구축하느냐에 목적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반드시 이 뒤에는 구체적인 전술을 필요로 한다.
스탠리의 기본적인 철학은 이고, 이는 많은 움직임과 많은 스크린을 기본으로 삼는다. 조던과 내가 서로의 리딩을 보조하겠지만, 어쨌든 난 이 전보다는 훨씬 더 많은 지식을 머릿속에 넣어 둘 필요가 있다.
내가 밤늦게까지 이 고생을 하는 이유란 거다.
“헤이, 미안한데.”
“응?”
“콘의 위치가 좀 잘못 된 거 아니에요?”
“뭐라고요?”
“보아하니까 2 다운인 것 같은데. 그렇죠?”
“…….”
도노번이라는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나 성큼성큼 내가 있는 방향으로 걸어온다. 그리고는 멋대로 종이를 빼앗아 들며, 내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박스 2는 반드시 크로스가 뒤따라야만 해요. 그러려면 여기에 있는 콘이 조금 더 로우로 움직여 있어야만 하죠. 만약 더블팀이 온다면, 외곽으로 빠진 3번에게 기회가 날 거예요. 만약 그게 아니라면 5번 공격수가 포스트업을 하겠죠.”
“당신 누구예요?”
“응? 오-! 반가워요. 도노번 콜린스에요.”
내가 물었던 것은 그의 이름이 아닌데 말이다.
아무튼 자신을 도노번 콜린스(Donovan Collins)라 밝힌 남자는 환한 미소와 함께 내게 손을 내밀어 왔다.
“고등학교 때 까지 론-픽에서 농구를 했죠.”
“론-픽? 하이랜드에?”
“YES!! 맞아요! 당신도 아는 군요!”
“그야 당연하죠.”
유타 하이랜드(Highland)에 있는 론-픽 고등학교(Lone-Peak Hs.)는 최근 10년 동안 줄곧 유타 주(州) 고등학교 랭킹에서 상위권에 자리하고 있었다.
도너번은 자신이 그곳에서 농구를 해왔다고 말하고 있던 것이다.
“하하. 그것도 재작년까지였지만 말이에요.”
“왜죠? 부상인가요?”
“아니요. 엄마가 범인이 쏜 총에 맞아 돌아가셨어요. 경찰관이셨거든요. 제겐 동생이 있고, 그녀를 대학에 보낼 학비가 필요했어요.”
“유감이에요. 그런 이야기를 들으려고 한 건 아닌데.”
“괜찮아요. 그럼?”
“물론이죠.”
묘한 상황 때문에, 나는 별 수 없이 주도권을 도노번에게 넘겨주어야만 했다. 그는 능숙하게 콘을 움직여 정확한 포지션을 잡아주었고, 펜마저 가져간 뒤 종이에 몇 가지 그림과 글들을 슥슥 하고 그려 넣었다.
그러자, 암호와도 같았던 팀의 전술표가 답지로 바뀌기라도 한 것처럼 알아보기 쉬워졌다. 정말 놀라운 일이다.
“그런데, 당신이 왜 이걸 보고 있는 거예요?”
“네?”
“당신은 슈팅을 던져야 하는 것 아니에요? 팀에는 블레이클리가 있잖아요.”
“오-! 우리 팀에 대해서 잘 아는가 봐요?”
“하하. 물론이죠. 유타에 있는 팀의 농구는 전부 챙겨보고 있으니까요.”
난 도노번에게 블레이클리의 부상 소식을 알려 주었다. 어차피 내일 오전이면, 팀 홈페이지를 통한 공식적인 발표가 있을 예정이다.
그보다 몇 시간 앞서 도노번이 안다고 해서, 큰 문제가 될 것은 없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 나는 이 백인 남자가 마음에 들었다. 고작 몇 마디를 섞어보았을 뿐이지만, 그는 스콧이나 블레이클리와 비슷한 느낌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도노번이 고등학교 때 맡은 포지션이 무언지 쉽게 유추가 가능했다. 뭐, 지금까지 내게 알려준 것만 보더라도 간단한 일이었지만 말이다.
“오-! 그거 정말 안 됐네요. 블레이클리는 충분히 토너먼트에 뛸 자격이 있는 남자였는데 말이에요.”
“예압- 그러게요.”
“하지만, 그거 알아요? 우린 토너먼트에서 뛰려면 실력 이상으로 축복을 받아야만 한다고 말해요. 왜 그렇잖아요? 64개의 팀 중 절반은 고작 한 경기를 위해 긴 시즌을 보내는 셈이 되니까요.”
“하하하. 그거 조금 알겠네요.”
64강, 32강.
을 즐기는 데 충분한 이것도 결국에는 16강인 Sweet 16부터가 본격적인 시작이 된다. 모든 전국의 신문과 인터넷 매체가 대학 농구에 관한 기사들로 도배가 되는 게 이 무렵부터이니까 말이다.
특히나 Sweet 16에 포함이 된 대학들은 탈락하기 직전까지 내내 커다란 축제 분위기에 휩싸인다. 거리는 온통 유니폼을 입은 사람들로 붐벼나고, 주법이 엄격한 유타마저도, 주지사의 권한으로 많은 예외가 허용된다.
2002 월드컵이 벌어졌을 때의 한국을 떠올리면 쉽게 이해가 가능할 것이다.
나도 뭐 동영상으로 본 정도에 불과했지만, 기대되는 건 사실이었다.
“이봐, 도니!”
“네!!”
“이제 그만 돌아가자고! 켄트 녀석이 무전을 보내왔어. 빌어먹을 녀석 같으니! 자기는 30분 넘게 농땡이를 치면서, 우리에겐 5분도 허락하지 않는군.”
“지금 가요! 그럼.”
모자를 뒤집어 쓴 도노번이 의자를 챙겨 재빨리 얼의 뒤를 따른다. 그리고 먼저 도노번을 내보낸 얼은 내게 불을 끄고 가라는 한 마디를 잊지 않았다.
쿵-
다시 철문이 닫히고, 조용한 코트 위에 남아 난 다시 팀의 전술표를 바라봤다.
“휴우- 좋아. 그럼 어디 한 번?”
오늘은 평소보다 좀 더 늦게까지, 코트에 남아있을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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