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GAME RAW novel - Chapter 42
2012년 5월 8일. 오그던, 유타. 해리슨 불러바드. 웨버 주립 대학교. 디 이벤츠 센터.
“어지간히 부지런도 하군, 그래.”
“하하. 좋은 아침이에요.”
근무 교대를 마쳤는지, 사복차림이 된 얼과 복도에서 마주쳤다.
화요일인 오늘은 오후 훈련만 진행이 될 예정이었는데, NCAA Division 1의 훈련 시간은 하루 최대 네 시간, 일주일 합계 20시간을 넘지 못한다. 그래서 스탠리는 스케줄을 조정해, 토요일 훈련을 위한 네 시간을 별도로 만들어야만 했다.
그래서 일주일 중 하루는 오전에, 어떤 하루는 오후에 훈련이 생략된다.
“…….”
새벽 시간에 말끔하게 청소가 된 코트는 반짝반짝 거린다.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잘 모르는 것 중 하나는 깨끗한 코트에 첫 발을 내딛는 기분이 매우 짜릿하다는 것이었다.
가방을 내려놓은 나는 스트레칭에 앞서 농구공을 집어 들었다.
파앙- 파앙- 파앙-
체육관이 텅 비어있는 탓에, 농구공을 두드릴 때마다 메아리 또한 울려 퍼진다. 볼 슬랩스와 업&다운 핑거팁을 먼저 소화하고는 바닥에 드러누워 몸을 푼다.
[“내일 친구를 데려갈 테니, 오전에 꼭 체육관으로 오라고.”]전 날 오후 훈련을 모두 마쳤을 때, 랜스가 내가 다가와 했던 말이다. 어제 그는 친구와 함께 저녁을 먹는다며, 시내로 나섰다.
몸을 모두 풀고, 언제나처럼 농구공이 담긴 카트를 끌고 와 슈팅을 던진다.
철썩-! , 철썩-!
랜스와의 훈련을 통해 생긴 변화 중에 하나라면, 언제나 부족한 것을 먼저 고민하는 버릇을 들이려고 한다는 점이었다. 현재 내가 얼마만큼 발전했는지를 주목하는 대신, 모자란 부분을 계속해서 찾아내려 한다는 것이다.
스스로가 초라해 보이는 순간이 올 때에는 생각을 잠시 내려놓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을 했다. 지금으로써는 휴대폰에 다운받은 게임을 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머리를 비우고, 음식을 조금 먹다보면 기분이 괜찮아졌다.
끼이익-
“헤이! 일찍 왔구나?”
“하하. 좋은 아침이에요!”
확실히 지난 일요일 이 후, 랜스와 나의 사이는 많이 가까워졌다.
걸음을 옮겨 랜스에게 다가가 악수와 포옹을 나누고는 그의 뒤에 서있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나와 거의 비슷한 키에, 단단한 근육질의 체형을 지닌 사람이었다.
“네가 킴이겠구나. 어제 랜스가 얼마나 입 아프게 떠들어대던지. 난 새로운 애인이라도 생긴 줄 알았다니까?”
“하하. 랜스가 저를 좀 좋아하기는 하죠.”
“뭐?!”
어이가 없다는 표정이 된 랜스가 내 어깨를 밀쳐냈다. 과장된 동작으로 넘어지는 척을 하려고 하자, 두 남자가 웃음을 터트린다.
“재미있는 꼬만데? 난 로날드야. 그냥 로니라고 불러줘.”
“로니요?”
“그래. 친한 사람들은 전부 그렇게 불러.”
“…….”
왜 그러냐는 랜스의 질문에,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며 어깨를 으쓱였다.
LA에서 내 시계를 강탈해간 녀석의 이름도 로니였었지. 그냥 문득 그가 떠올랐을 뿐이다. 하필 이름과 애칭이 같을 게 뭐람.
“로니는 나하고 유타에서 뛸 때 만났어.”
“NBA요?”
“아니, NBDL. 유타 플래쉬라는 팀이었지.”
로날드 듀프리(Ronald Dupree)는 메이저 디비전의 명문인 루이지애나 주립대학(Louisiana State of University/이하 LSU) 출신으로, 2003년 NBA Draft에 뛰어들었다고 한다.
“운이 나빴어. 젠장.”
“하하. 아직도 그 이야기야?”
“2003 드래프트는 2000년대 이 후 최고였다고! 다른 때였다면, 지명이 될 수 있었을 거야. 그럼 아마 많은 것이 달라졌겠지.”
말은 아쉬워하는 듯 보여도, 로날드는 현실에 제법 만족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원래 오프 시즌 때 종종 만나서 식사를 하거든. 이렇게 연습을 함께 하는 것은 처음이지만 말이야. 네게 도움이 많이 될 것 같아서 부탁을 했지.”
“나도 뭐, 지금이 아니면 시간이 없으니까 말이야.”
로날드는 이미 아르헨티나 리그의 레가타스 코리엔테스(Regatas Corrientes)라는 팀에서 2개월간을 뛴 상태였다. 그리고 곧 유럽으로 건너가, 이탈리아 리그에서 뛸 예정이라고 한다.
한 시즌에 두 개의 리그를 동시에 뛰는 것은 북미나 유럽의 남자들에겐 매우 흔한 일이란다.
“그럼, 이 꼬맹이 실력을 한 번 볼까?”
“좋아. 이봐, 킴. 너도 지난 번 훈련을 기억하지?”
“물론이죠.”
“이번엔 내가 아니라, 로니가 널 마크할 거야.”
창고로 걸어간 랜스가 이번에도 콘을 꺼내온다.
그것을 코트의 곳곳에 놓아둔 뒤, 농구공이 담긴 카트를 골밑으로 가져가 곁에 섰다. 그리고 나는 첫 번째 지점인 코너 부근에 서서, 랜스의 패스를 기다렸다.
“아차, 내가 깜빡한 사실이 있는데.”
“?”
“로니는 대학교 때부터, 아주 우수한 수비수였어.”
“…….”
새하얀 치아를 드러내며 환하게 웃고 있는 로니를 보니, 오늘도 또 굴욕을 당해야만 할 것 같았다.
이제는 뭐, 새삼스럽지도 않은 일이다.
++++++++++++
오그던, 유타. 해리슨 불러바드. 까페 빌벨라.
오전 내내, 랜스와 로날드는 내게 들러붙어서 많은 시간을 소비했다.
그래서 나는 그 고마움에 보답하고자, 점심을 직접 사겠노라고 제안했다. 어차피 랜스 덕분에 스킬 트레이닝 비용을 2천 달러나 절약할 수 있었기에, 돈은 제법 넉넉했다.
“음-! 이 핫 윙은 완전 죽이는데?”
“하하. 오늘은 뭐든지 드셔도 돼요. 제가 전부 살 거니까요.”
나의 말에 얼굴 가득 미소를 지은 로날드가 주먹을 내밀어 온다.
그는 매우 매력적인 성격을 지닌 남자였는데, 무인도에 홀로 가져다 놔도 거기에 있는 어떠한 생물과도 친구가 될 수 있을 것처럼 느껴진다.
“난 이제 이 꼬마를 사랑할 것 같아. 널 이해할 것 같다고, 랜스.”
“시끄러워. 타미카! 핫 윙 하나랑, 쉐이크를 좀 더 주겠어요?”
“오, 이런. 오늘 밤에는 좀 달려야 할 것 같은데?”
불어날 체중을 걱정하면서도, 로날드는 음식을 마다하지 않았다.
“아무튼, 다시 말을 이어가지. 데미안이 NBA에 진출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메이저 디비전 선수들과의 1 : 1에서 가능성을 보여줬기 때문이야.”
“…….”
“오해하지 마. Pac-12나 SEC와 같은 메이저 컨퍼런스의 선수들과 마이너 디비전의 선수들과의 갭은 상상 이상으로 클 거야.”
이것은 뭐, 이미 귀에 딱지가 않도록 들었던 말이다.
하지만 계속해서 이 같은 점이 강조되는 이유는 디비전간의 갭을 경험 할 기회가 상대적으로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본격적인 시즌이 시작되기 전에 치르는 연습 경기나, NIT와 같은 포스트 시즌 토너먼트에서 대진 운이 좋아야 메이저 디비전을 만날 수 있었다.
그나마도 메이저 디비전에 속한 학교들은 을 제외한 여타 토너먼트의 참여를 꺼리는 편이었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잘해도 본전이었으니, 굳이 참가를 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네가 NBA 스카우트에게 인상을 심어주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유명해 져야해. 그리고 가장 좋은 방법은 몇 없는 메이저 디비전과의 경기에서 실력을 발휘하는 거지. 랜스가 내게 부탁한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야. 넌 높은 수준의 수비에 익숙해 져야 해.”
“…….”
로날드와 함께한 오전 훈련은 매우 잔혹했다.
작년 유타 플래쉬에서 뛰며, NBDL All-Defensive Second Team에 선정된 로날드의 수비는 토나올 만큼 빡빡했다. 그는 교묘한 방법으로 슈팅리듬을 방해했고, 모든 슛을 컨테스트 했다.
그 결과 52개의 슈팅 중, 단 4개만을 림 안으로 통과 시킬 수 있었다.
“그래도 한 가지 긍정적인 점이라면, 로니의 수비가 대학 녀석들 보다는 훨씬 더 뛰어나다는 사실이지.”
“그야 물론이지. 나를 그런 꼬마들하고 비교하려는 거야? 이런!”
랜스는 내게 오늘 오전에 겪었던 모든 것들을 생생히 기억하라고 말했다.
로날드가 보여준 압박의 강도나 수비시 손의 위치, 스텝과 관련 된 모든 것들을 말이다. 친절하게도 그는 나를 위해 훈련 과정을 녹화해 주었고, 이메일을 통해 그것을 내게 보내주겠다고도 덧붙였다.
미국으로 온 뒤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것들을 배우고 있다. 하지만 랜스와 함께한 뒤로, 매 순간이 큰 경험으로 다가오는 중이었다.
나는 더 배우고 싶어졌다.
이들의 모든 가르침을 스펀지처럼 빨아들인 뒤, 더 높은 곳에 있는 누군가에게서 또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고 싶었다.
그리고 이제는 대충은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아무리 WSU에서 좋은 성적을 기록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꼭 NBA 드래프트로 이어지지는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는 태생적인 한계와도 같았다. 로날드의 말처럼, 메이저 디비전 팀들과의 시합에서 나를 증명하는 게 더 중요했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마이너 디비전의 레벨을 먼저 통과해야만 했다. 이곳에서의 농구가 편해져야 만이, 한 단계 더 뛰어오를 수 있을 것이다.
대충은 짐작하고. 또 언젠가는 그렇게 말해왔던 것이었지만, 꾸준히 이를 상기하게 되었다는 사실은 분명히 내겐 도움이 되었다.
이제야 비로소, 아주 약간은 내 위치를 알게 됐으니까.
“그나저나, 내일 연습 시합을 한다고 하지 않았나?”
“아, 네. 서던 유타였을 걸요, 아마?”
“그렇군. 이봐, 로니.”
“응?”
핫 윙의 뼈다귀를 바르며, 로니가 랜스에게 대답했다.
“내일까지 이곳에 머무는 것은 어때? 이 녀석의 5 : 5를 한 번 보고 싶지 않아?”
“흐음- 에이전트에게 내일 돌아간다 말했는데, 잠깐 있어봐.”
손을 냅킨에다 닦은 로니가 휴대폰을 만져대더니, 곧 고개를 끄덕이며 가능할 것 같다고 말해왔다. 모레 아침 일찍 출발하면, 일정에는 차질이 없을 것 같단다.
그러자 만족스러운 얼굴이 된 랜스가 고개를 끄덕인다.
“로니는 노련한 베테랑이야. 그의 피드백을 받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될 거라고 생각해.”
“하하. 어쩐지 떨리는데요?”
“하하. 서던 유타는 그리 강팀은 아니니까. 너무 걱정하지는 마.”
“…….”
사실은 별로 떨리지는 않았다.
오히려 실전 시합을 치를 수 있다는 사실이 기쁘기까지 했다. 만족과 기대와는 다른 의미에서, 나는 내 훈련의 성과를 확인하고 싶었다.
그래봤자 고작 며칠이지만, 그 며칠 동안에 얼마만큼 바뀌었을 지가 궁금했다.
전혀 달라진 것이 없다고 하더라도, 실망하지 않을 자신도 있었다.
“이봐, 꼬마.”
“네?”
“윙 하나를 더 시켜도 될까?”
“…….”
배런과 리온을 보며 느낀 것이기는 한데, 대체 흑인들에게 있어서 닭 날개란 어떤 의미일까? 한 날 배런은 산더미처럼 쌓인 닭날개를 그 자리에서 전부 먹어치웠다.
그리고 벌써 네 접시를 비워낸 로날드도 또 한 접시를 요구하고 있었다.
“물론이죠.”
기왕 사기로 했으니, 기분 좋게 사고 싶었던 게 내 심정이었다.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자, 반색하던 로날드가 타미카를 부른다.
“오우- 잠깐. 화장실 좀 다녀와야 될 것 같아.”
그러더니 갑자기, 배를 움켜쥐고는 부리나케 화장실로 달려가 버렸다. 아마도 너무 많이 먹은 탓이겠지.
로날드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랜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넌 저런 어른이 되어서는 안 돼.”
“하하하. 하라고 해도 못 할 걸요?”
진짜로.
나는 저렇게나 많이 먹을 자신이 전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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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5월 9일. 오그던, 유타. 해리슨 불러바드. 웨버 주립 대학교. 디 이벤츠 센터.
최근에서야 알게 된 사실이었는데, 각 팀들의 스케줄은 NCAA측에서 관장하지 않는다.
물론 토너먼트 경기는 브래킷을 직접 짜지만, 어차피 그것은 성적을 기준으로 연결되는 것이라 딱히 어려울 것도 없는 일이었다.
기본적으로 각 대학들은 같은 컨퍼런스에 속한 팀들과 홈&어웨이의 방식으로 2경기씩을 무조건 치른다. 그리고 외에 컨퍼런스 밖의 팀들과도 경기를 가지게 되는데, 이것은 전적으로 감독의 역량에 달린 문제였다.
그래서 대학팀의 감독들은 인맥을 통하거나, 혹은 직접 전화를 걸어 컨퍼런스 밖 팀들과의 시합을 추진한다. 적게는 10경기에서 많으면 20경기 까지 추가 경기가 잡힌다.
경기수가 달라도 상관없는 가장 큰 이유는 컨퍼런스 밖의 시합이 토너먼트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굳이, 컨퍼런스 외의 팀과 시합을 하지 않아도 되냐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WSU를 기준으로 했을 때, 본격적인 시즌은 11월 초에 시작되어 3월초에 마무리가 된다.
5개월 동안 고작 20경기 안팎만 치르기에는 선수들의 기량과 컨디션을 유지하는 게 매우 어려웠다. 그래서 컨퍼런스 밖 경기를 치르는 것이다.
물론, 서던 유타는 우리와 같은 Big Sky 소속이었지만 말이다.
“헤이! 리온!”
“응?”
서던 유타와의 시합을 앞두고 몸을 풀던 중, 단단한 체구의 남성이 우리가 있는 방향으로 다가왔다.
“헤에에이. 와썹.”
“나야 좋지, 뭐. 이 녀석은 누구야?”
나를 슬쩍 흘겨보던 남성이 고개를 까딱하며 리온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 나는 조금 기분이 나빠졌다. 지금 그의 태도는 마치, [“왜 동양인이 여기에 있는 거야?”] 라는 듯한 느낌이었으니까 말이다.
리온도 그것을 느꼈던 것인지 다소 곤란한 얼굴이 되어 대답했다.
“이번 학기 신입생이야, 스팁.”
“오우. 하는 일이 뭐지? 음료수 나르기나 뭐 그런 거? 낄낄낄.”
“…….”
이제는 확실해졌다.
스팁인지 스텝인지 하는 녀석이 나를 무시하고 있다는 사실이 말이다. 어디를 가나 머저리는 존재한다는 걸 이미 깨달았기 때문에, 솔직히 그리 화는 나지 않았다.
“입을 조심해, 스팁. 얘는 내 친구니까 말이야.”
“오우-! 어쩌다 리온이 이렇게 된 거지? 아이 러브 스시.”
갑자기 나를 돌아본 스팁이 한 마디를 내뱉고는 사라져 버린다. 아마도 나를 일본인 쯤으로 오해한 것이겠지.
그러자 리온이 나를 위로해 왔는데, 전혀 동요되지 않은 상태였다.
“원래부터 약간 질이 나쁜 녀석이었어. 크게 신경 쓰지 마.”
작년 서던 유타의 성적이 어땠더라?
나는 조용히 침묵을 유지하며, 조금씩 전의를 끌어올리고 있었다. 만약 모든 일들이 긍정적으로 풀린다면, 저 녀석에게 한 마디를 던져주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이봐, 리온.”
“응?”
“저 녀석의 포지션은 뭐야?”
만약에 그와 정면승부를 할 기회가 생긴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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