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herworldly dark-haired alien RAW novel - Chapter (817)
〈 817화 〉수도의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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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는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상황이 이쯤 됐으니 다들 내 말을 믿는듯한 눈치였다.
나랑 카린 베스타트가 상급 정령 두 마리를 죽이고, 정령계의 존재에 대해서 언급했다. 이 말이 이제 왕국 전체에 퍼져나가겠지.
대외적인 명성이 올라갈 것이고, 카린의 이름… 아마 베스타트 가문에 대한 것도 덩달아 화두에 오르지 싶다.
이건 일단 가서 생각해보도록 하자.
그리고 켈바인이 윗선에 감사를 전해준다고 했는데, 이건 솔직히 어떻게 될지 잘 모르겠다.
“마스터 나이트님. 성녀님께 한시라도 빨리 보고를 해야 하기 때문에 이만 돌아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아아, 그래. 그래야겠지. 정말 고생이 많았네. 호위가 필요하다면 붙여주도록 하지.”
“말씀은 감사하지만 괜찮습니다.”
“하긴 그 상급 정령들을 죽였을 정도의 실력이니까 필요는 없겠군. 그럼 알겠네.”
안내도 마치고 증언도 마쳤으니 내가 여기 있을 필요는 없다. 바로 켈바인과 인사하고 성기사들 쪽으로 다가갔다.
“성기사님들. 저는 먼저 돌아가서 성녀님께 보고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알겠네! 우리들은 이곳에서 조금 더 조사를 하고 돌아갈 것이네! 그 정령 놈들이 다시 나타날 수 있지 않겠는가! 이곳은 우리들에게 맡기고 팔라딘은 빨리 이 사태를 성녀님께 알려주도록 하게!”
“흐흐흐! 맡겨만 주십시오!!”
그렇게 인사를 마치고 1층으로 내려가기 위해 방을 나섰다. 혼자서 전력으로 뛰어가면 금방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딱 내일 집으로 가면 되겠군.
근데 나가는 와중에도 여기저기서 대기하고 있던 마법사들이 다가와 귀찮게 했다.
“팔라딘님! 반드시 저희 마탑에 한번 들러주십시오! 분명 좋은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겁니다!”
“아니, 우리 쪽으로 와주시오! 부탁이오! 상급 정령들의 비밀을 밝힐 아주 중요한 기회요! 적을 분석하는 것이야말로 인류를 위한 길! 팔라딘님은 아시리라 믿소!”
“돈은 얼마든지 있으니 부디!!”
마법사들의 얼굴에서 탐욕이 절절절 흘러나왔다.
“판매할 생각은 없소.”
“잠깐!”
말했듯이 팔 생각은 없다. 다가오는 그들에게 간단하게 의사를 밝히면서 1층으로 내려왔다. 내가 안 팔겠다는데 뭐 어쩌겠는가. 권리가 나한테 있는 것을. 팔라딘한테 큰소리칠 사람들도 없다.
그렇게 1층으로 내려왔을 때였다.
“저기.”
어떤 여자가 나를 불러서 보니까, 회의실에서 봤던 그 금발의 여기사였다.
“당신은? 나이트 치프틴 야르나가 아니오?”
“…기억해주셨군요. 그렇습니다.”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건가? 그러고 보니 이 여자가 카린에 대해서 말을 했었지. 아무래도 카린이랑 아는 사람인 모양이다. 삼십 대 정도로 보이는 얼굴인데… 역시 정확한 나이는 알 수 없다.
“설마 카린 때문에 찾아온 것이오?”
“잘 아시는군요.”
“일단 카린을 어떻게 아는 것인지 묻고 싶소만.”
“아…”
잠시 머뭇거린 그녀가 입을 열었다.
“옛날에 같은 부대에 있었던 적이 있었지요. 그녀가 기사단을 그만두는 것도… 봤었습니다.”
“동기란 말이오?”
“동기까지는 아니고… 제가 그녀보다 늦게 들어왔으니. 당시에 그녀의 실력이 아주 뛰어났기 때문에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저로서는 오랜만에 듣는 이름이었지요.”
그런 것인가.
별로 뭐 인연이 있는 사이는 아닌 모양이다. 옛날에 카린과 같은 부대에 있었으니 기억을 했던 것이겠지.
“그런 것이로군. 잘 알겠소. 왜 말을 걸었는지는 알 것 같은데, 딱히 해줄 만한 이야기는 없소이다. 그녀와 인연이 닿았고, 같이 행동하는 중이니까. 특별히 보고할 거리는 없을 거요.”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뭔가 물어보라고 명령이라도 받은 것이겠지. 나는 먼저 말하는 것으로 그녀의 질문을 차단하고 바깥으로 나왔다.
궁전의 바깥에서는 기사들이 전사자들의 유해를 수습하고 있었다. 완전히 얼어붙은 기사들의 시체들. 그리고 일반 병사들의 시체들.
참으로 끔찍한 광경이다.
그나마 얼음 정령왕이니까 이 정도지, 만약 불의 정령왕이 강림했다면? 솔직히 나는 그쪽이 더 까다로울 것이라고 본다. 가을쯤에 강림한 놈이 이 곡창지대를 완전히 불태웠으면 답이 없었을 것이다.
좆되게 위험하구만.
어서 성녀님께 이 위협을 알려야 한다. 그런 생각을 하며, 이제는 완전히 길을 외워버린 얼음의 미로를 전속력으로 주파했다. 솔직히 요즘에는 뭘 하든 혼자서 뛰어가는 게 제일 빠르다.
* * *
숙소로 돌아온 다음에는 하루를 쉬고 다음날에 바로 수도로 출발했다.
며칠 만에 보는 일룡이와 이룡이는 변함없이 무척이나 건강해서, 단지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충족되는 것처럼 느껴졌다. 역시 볼 때마다 욕설을 참을 수가 없다니까. 마부석에 앉아서 놈들이 씩씩하게 발을 놀리는 모습만 봐도 폭언이 쏟아져 나오곤 한다.
아무튼 가는 내내 눈이 듬성듬성 내렸지만, 어차피 큰길만 타고 있었던지라 크게 문제는 없었다. 그렇게 이번에도 최고속력으로 귀환을 실시했고, 곧 그리운 집으로 귀환할 수 있었다.
“아오, 씨발. 역시 내 집이 최고지.”
역시 집보다 편한 게 없구만.
도착하자마자 짐정리만 슥 하고 푹 쉬었다.
오늘부터 할 일이 좀 많다.
보고서를 써서 교회로 가야 하니까.
이미 어떻게 아가리를 털지는 전부 다 정리를 해둔 상태다. 가서 말만 하면 된다. 성녀님은 정령계의 위협이라는 키워드에 대해서 아주 진지하게 반응해줄 것이다.
“아버님. 편지가 왔어요.”
“뭐? 편지?”
집에 도착한 다음날.
반바지만 챙겨 입고 느긋하게 거실 소파에 앉아서 보고서를 쓰고 있으니, 아리가 분홍색 편지봉투를 하나 들고 왔다.
“아.”
저 분홍색을 보니까 문득 생각이 났다. 저번에 제니아 그 아줌마가 편지를 보냈었지. 완전히 깜박하고 있었다.
바로 편지를 받아서 내용물을 꺼내 보았다.
이번에는 또 뭔 개소리를 하려고 보냈나 싶었는데, 의외로 제대로 된 내용이 적혀 있었다. 만나는 날짜와 장소를 구체적으로 정해 놓았다. 오늘부터 치면 딱 며칠쯤 뒤에 어느 레스토랑에서 둘이서 보자고 쓰여 있는데, 이거 언제 보낸 거지?
우리 집 빈 거 눈치채고 이렇게 보내둔 것인가?
“무슨 내용일까요?”
아리가 소파 위로 올라와 내 목을 끌어안으면서 편지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는 말을 했다.
“그냥 보자는 내용. 별로 중요한 건 아냐.”
아리한테 잠깐 보여주고 보고서를 마저 작성했다. 그러고 있으니 2층에서 리샤가 내려왔다. 얼굴 보니까 2층에 있는 세면장에서 씻고 내려온 모양이다. 옷도 입은 상태고. 검은색의 시스루 원피스는 리샤의 아이덴티티다.
“어, 뭐야. 리샤 일어났어? 왜 이렇게 일찍 일어난겨?”
“아아, 지금부터 정령왕의 심장을 만져볼 생각이니라. 느긋하게 일어나고 싶었지만, 역시 그런 것이 있는데 게으름을 피울 수는 없느니라.”
부지런한 마녀님.
“흐흐흐, 그렇게 만져보고 싶었어?”
“아주 흥미로운 소재가 아니더냐. 오는 내내 만지고 싶어서 참을 수가 없었느니라.”
리샤는 이런 거 좋아하니까.
“일단은 연구와 실험을 해볼 생각이니라. 본녀의 생각으로는… 심장을 이용해서 아티팩트나 일종의 엘릭서를 제조하면 좋을 것 같은데, 그러기 위해서는 해야 할 공정이 아주 많느니라.”
“그렇지.”
맞는 말이다. 얼음 정령왕은 거의 처음으로 공개되는 최고는 마법 아이템이다. 철저한 연구와 검증을 거쳐야지만 뭔가 제대로 사용할 수 있겠지.
“리샤라면 무조건 다 할 수 있을 거야. 믿고 있을게.”
어차피 뭐가 됐든 리샤한테 맡기면 다 뚝딱이다.
“후후후, 너무나 당연한 말이라서 웃음밖에 나오질 않는구나. 그래, 그렇게 본녀만 믿고 있으면 되느니라. 그럼 본녀는 지하실에 있을 터이니 뭔가 본녀가 필요한 일이 생기게 된다면 내려오도록 하거라.”
“엉덩이 때리러 내려가도 돼?”
“읏…! 보, 본녀에게 못하는 말이 없구나! 갑자기 그런 소리를 하다니!”
순간 리샤가 얼굴을 붉히면서 소리를 빽 질렀다.
“그런 용무로 내려온다면 결코 용서하지 않을 것이니라!”
얼굴이 완전히 붉어진 리샤가 순간 자신의 치마를 조금 들춰서 은근슬쩍 엉덩이를 보여주고는 지하실로 내려갔다.
이거는 안 내려가곤 못 배기지.
“아버님… 엉덩이를 때리시는 게 그렇게 좋으신 건가요?”
순간 아리가 순진무구한 눈이 되어서는 그리 말했다.
“아니, 아리야? 왜 갑자기 그런 소리를?”
“저도 해보고 싶어요.”
“…그건 다음에 생각해 보자. 일단 이거부터 쓰고.”
그렇게 보고서를 작성했다.
오늘 정리해서 내일 가져가면 되겠지.
* * *
이튿날.
전날 보고서 작성을 마친 나는 아침 일찍 일어나서 준비를 마치고 대신전으로 향했다. 오늘은 보고 다 하고 나서 전투사제 장비 이 씹거 AS되는지도 좀 물어봐야겠다. 정령왕 그 좆부랄럼 때문에 조금 꾸겨졌으니까.
“성녀님 저 왔습니다!!”
“왔군, 팔라딘.”
문을 열자마자 큰 소리로 인사하니, 때마침 다리를 꼰 채 담배를 피우고 있던 성녀님이 재떨이에 그것을 비벼 끄고는 나를 맞이해줬다.
“어떻게 됐지? 상당히 일찍 왔는데, 기사들과 공조해서 일을 해결하고 먼저 귀환한 것인가? 성기사들의 피해 현황은?”
“다 보고서에 정리해 왔습니다. 읽어보십시오.”
바로 그녀에게 보고서를 넘겨줬다.
성녀님은 익숙하게 보고서를 받아 들고는 빠른 속도로 읽어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잠깐 시선이 멈칫했다.
“…상급 정령 두 개체와 정령계?”
그쪽을 읽고 있군.
“예.”
“그리고… 군대와 기사단. 파견된 성기사단과 함께 공조를 해서 처치한 것이 아니라, 그냥 해결을 해버렸다?”
“그렇다고 할 수 있습지요.”
ㅡ차륵.
성녀님이 보고서를 내려놓았다.
“말로 직접 설명을 해보도록.”
“알겠습니다!”
나는 즉시 준비해둔 말을 읊었다.
어차피 성녀님한테도 할 말은 똑같다. 정령계의 정령들이 게이트를 열어서 침략을 해왔다. 나타난 상급 정령 두 개체는 그 선봉대일 뿐이다. 그리고 이러한 침략은 한 번으로 그치지 않을 것이다.
마치 악마들처럼.
“그러니까, 정리를 해보자면… 정령계가 존재하고 있으며, 그쪽과의 게이트가 열리게 된 상태라는 것이로군. 정령들이 마치 악마들처럼 침략을 해올 수도 있다는 것이고?”
성녀님은 팔짱을 낀 채 의자에 등을 기대고, 다리를 꼰 자세로 내 눈을 응시하면서 말했다.
“바로 그것입니다. 거기에 확실한 정보입니다. 제가 놈들과 싸우면서 들은 이야기거든요. 그리고 게이트도 직접 목격을 했으니, 제 이름을 걸고 이거는 비상사태입니다. 당장 대처를 하지 않으면 정령 놈들이 조직적으로 침공을 해올 것입니다.”
거듭 강조한다.
“그리고 이거는 아직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은 것인데, 성녀님한테만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놀라지 마십시오. 그 상급 정령 놈들이 정령왕의 존재에 대한 것을 언급했습니다.”
“…정령왕.”
성녀님의 눈이 가늘어졌다.
“예.”
왕국 기사단은 몰라도 성녀님은 나를 신뢰하는 사람이다. 그러니 이 정도는 이야기해도 된다.
“아마도 판데모니움의 대악마들처럼 정령계의 정령왕들 역시 인간들의 땅을 노리고 있는 것으로 판단됩니다. 실제로 상급 정령들은 인간을 향한 증오를 쏟아내더군요. 인간들을 몰살시키고 이 땅을 되찾는다, 뭐 이런 뉘앙스로 말했습니다.”
“…”
“성녀님. 보고서에도 강조를 해 놓았지만, 이거는 아주 심각한 일입니다. 저는 그것을 아주 절절하게 느끼고 왔습니다. 정령계는 판데모니움과 동급의 위협요소를 지니고 있습니다!!”
ㅡ쾅!
나는 책상을 손바닥으로 한 번 두들겼다.
“…”
성녀님은 그런 나를 보면서 잠시 침묵하더니, 천천히 고개를 옆으로 꺾었다.
“심각한 일이로군.”
그리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팔라딘은 역시 심각한 일을 물어오는 재주가 참 뛰어나지… 정령계와 정령왕이라, 이것은 제대로 공식화를 해야겠군. 팔라딘이 강조한 대로 왕실 측에도 정식으로 공문을 보내도록 하겠다.”
그리 말하는 성녀님은 상당히 심각해 보였다.
역시 이 상황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지하고 있는 것이다.
“…”
그런데 어딘지 정신이 다른 곳으로 가 있는 것처럼 느껴졌는데.
ㅡ까득.
묘한 표정으로 내 눈을 보면서 자신의 엄지손가락의 손톱을 깨물고 있는 중이었다. 뭐지? 이 불안증세 같은 것은? 설마 판데모니움에 이어서 정령계라는 미증유의 위협을 앞에 두고 급격한 스트레스로 인해 버릇이 나온 건가?
원래 팔짱을 끼고 있던 한쪽 팔로는 가슴을 받치고 있어서, 손톱을 깨무느라 그 팔뚝이 젖가슴을 짓누르고 있는 형국이었다.
“…성녀님?”
“상황은 이해했다.”
그럼 다행인데.
“그런데… 아무래도 이게 제일 중요한 것 같은데.”
“무엇이 말씀이십니까?”
정령계와 정령왕.
그리고 침공.
제일 중요하고 심각한 이야기는 방금 다 했다.
“카린.”
“예?”
“여자 이름이로군.”
보고서 쪽으로 손을 뻗은 성녀님이 카린의 이름을 언급했다.
“카린 베스타트라… 전직 왕국 기사? 이 여성과 함께 상급 정령 두 개체를 섬멸했다고 쓰여있는데.”
카린에 대한 것도 다 써놨으니까.
“무슨 일인지 자세하게 설명해주지 않겠나, 팔라딘.”
그녀의 눈이 가늘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