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herworldly Illusion Hunter RAW novel - Chapter 13
11화. S급 헌터 (2)
“···형, 강창호 헌터랑 아는 사이세요?”
글쎄다. 모를 일이지.
어쩌면 김기려와 아는 사이일 수도 있는데 솔직히 가능성은 낮다고 본다. 나는 일단 침묵을 지켰다.
물론 이 와중에도 S급 헌터의 시선은 내게 고정된 상태였다. 누구는 못 쳐다볼 줄 알고?
나는 괜한 대항심이 들어 마주 오는 헌터를 살폈는데, 거리가 가까워지자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특징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와, 같은 종 맞아?’
190cm는 되어 보이는 신장.
붉은 누호가 노출될 정도로 앞이 트인 매서운 눈. 꺾인 콧대까지.
제법 이국적인 외모라 혼혈인 건 금방 알 수 있었지만, 보다 중요한 점은 따로 있었다.
바로 저 세로로 길쭉하게 늘어진 동공.
“눈이 특이하네.”
“저게 그 용의 눈이라는 거겠죠. 진짜 희귀한 아이템이래요.”
윤승과 속닥거리며 시간을 보내다 보니 어느덧 S급 헌터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나는 내 앞에 멈춰 선 강창호를 올려다본다. 그러자 상대가 첫 마디를 꺼냈다.
“안녕.”
강렬한 등장치고는 시작이 꽤 평범한데.
“이름이?”
“예?”
“이름.”
이 헌터는 나와 초면인지 대뜸 이름을 물었다.
“김기려입니다.”
어려운 일은 아니니 대답은 해준다만.
“헌터 등급은?”
그는 이름만 들어선 성이 차지 않는지 곧장 다음 질문을 꺼냈고, 이를 듣다 못 한 안윤승이 우리 사이를 끼어들었다.
“아, 안녕하세요! 강창호 헌터님, 이분은 저를 도와주는 짐꾼이신데 혹시 무슨 문제로······.”
그러나 강창호는 그런 안윤승을 한 2초나 바라봤을까.
“너한테 말한 게 아닌데.”
돌아온 대답은 차가웠다.
그는 A급이나 되는 각성자를 무시하며 내게 재차 물었다. 몇 급의 헌터냐고 말이다. 뭐, 이건 말한다고 닳는 것도 아니니까.
“F급입니다.”
“그래?”
일단 흔쾌히 대답해줬다. 그런데 돌아오는 반응이 가관이다.
“진짜로?”
강창호가 한쪽 눈썹을 슬쩍 올리며 비웃는다.
옆에서는 안윤승이 나 대신 식은땀을 흘리는 중이었다.
하지만 나는 이 상황이 그저 당연하게 느껴졌다. 그야, 이 S급은 딱 봐도 마력을 다루는 능력이 우수해 보였기에.
‘김기려의 몸에 내재한 마력을 알아본 거겠지.’
폐는 어디까지나 출력 기관이다.
호흡계를 다쳤다고 몸에 담긴 마나 총량까지 줄어들진 않는다.
예민한 술사라면 다친 폐에서 흘러나오는 미약한 신호만으로도 상대의 그릇을 짐작할 수 있을 터.
“못 믿으시면 헌터증이라도 보여드릴까요?”
나는 그냥, 이참에 외계인인 티나 내지 말자고 생각하며 최대한 평범히 말했다.
그러자 강창호가 입꼬리를 올렸다.
“S급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고 대답하는 F급 각성자라.”
아 참, 맞다.
윤승이가 그랬었지. 자기는 S급 주변에 가면 소름 돋는다고. 그럼, F급은···.
어? 설마 보통은 고개도 못 드나?
“김기려 헌터, 혹시 괜찮으면······.”
나는 잠깐 생각에 빠졌고, 강창호는 그런 내게 무언가 제안하려는 듯 보였다.
하지만 그 순간이었다.
“기, 기려 형! 이제 시간 됐어요!”
“어?”
“저희 원래 잠깐 구경 온 거잖아요. 슬슬 갈까요? 지금 출발 안 하면 약속에 늦을 텐데······.”
안윤승이 강창호의 말을 잘랐다.
중간에 끼어든 건 그렇다 치고, 약속에 늦는다는 건 무슨 소리지?
‘오늘 일정은 이 게이트를 보러 오는 거였잖아?’
잠깐은 의아했지만 얼마 안 가 의도가 보였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안윤승은 나를 강창호에게서 떼어놓고 싶어 하는 것 같고.
“형! 어서 가죠.”
표정을 보니 어지간히 급한 모양인데.
솔직히 S급 헌터라는 귀한 구경거리를 두고 가긴 싫었지만 결국 장단을 맞췄다.
“그러게. 말해줘서 고맙다. 바쁜 걸 잊고 있었네.”
그러자 안윤승이 곧바로 나를 질질 이끌며 이 장소에서 부리나케 도망쳤다.
강창호는 그런 우리를 조용히 주시할 뿐. 따라오지는 않는 듯했다.
게이트에서 한참 먼 곳까지 도망 왔을 무렵.
“윤승아, 방금은 왜 그랬어?”
이쪽이 꺼낸 첫마디는 이거다.
그러자 안윤승이 자신의 관자놀이를 지그시 눌렀다.
“형, 진짜로 강창호 헌터가 누군지 전혀 모르시나 보네요. 최근에 해외에 계셨어요?”
“멀리 있다 오긴 했지······.”
영문을 모르다 보니 한동안은 괜히 주눅이 들었는데, 나는 얼마 안 가 모든 사건의 전말을 알게 됐다.
“뒷담화 같아서 제 입으로 말하고 싶진 않았는데, 저 헌터는······. 소문이 좀 안 좋아요.”
“소문?”
“폭행 전과가 있거든요.”
“···!”
“그리고 S급의 전과자랑 게이트를 같이 들어가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죠. 보통은.”
그래서 어차피 강창호가 나타난 순간부터 게이트는 포기하려 했다며 안윤승이 말했다. 설명은 계속 이어졌다.
“게다가 좋게 봐줘서 전과는 옛날 일이라고 쳐도, 최근 이미지도 영······.”
“뭔데?”
“최진 헌터라고 아세요?”
“몰라.”
“A급 3위 헌터예요. 사촌이라 가끔 만나는데요.”
으음.
안윤승은 답지 않게 미간을 찌푸리며 앓는 소리를 냈다.
“그 누나가 말해줬는데, 강창호랑 같은 게이트에 들어갔다가 공격당한 적이 있대요.”
무법지대인 게이트에서 폭력 사태가 벌어진 건 놀라울 일이 아니지만, 문제는 그 주체가 S급이었다는 것이다.
“듣자 하니 약한 헌터들은 눈길도 안 주고 꼭 강한 각성자한테만 시비를 건다던데.”
“왜지?”
“그러게요. 왜일까요?”
이윽고 그가 한숨을 푹 내쉰다.
“아무튼 그냥 뜬소문도 아니고 친척이 말해준 거라서. 혹시 형님도 엮이시면 무슨 일 날까 봐요······.”
설명을 다 듣고 나니 그간의 태도가 이해됐다.
그러니까, 그 미친 S급이 나를 해코지할까 봐 피신시킨 거였다 이거지?
“대충 알아들었어.”
이 기특한 포유류 같으니.
나는 윤승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줬다.
“그럼 오늘은 이만 돌아가자.”
그런 위험한 헌터가 신규 게이트에 왔다면 굳이 목숨 내놓고 같이 들어갈 이유가 없으니까.
“신기한 식물이라는 건 나중에 봐도 되겠지. 정 필요하면 돈 주고 사도 되고.”
“네.”
이렇게 오늘의 일정을 끝맺으려던 순간이었다.
나는 문득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생각에 집으로 가려던 윤승을 불러세웠다.
“잠깐만, 윤승아.”
“네?”
“아까 강창호의 눈이 용의 눈인지 뭔지라고 하는 아이템이라고 했잖아. 아이템이면, 네가 쓰는 그 방패처럼 매매가 가능한 물건이란 소리야?”
윤승은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 획득할 때는 작은 구슬 모양이래요. 쓸 때는 아마 삼키거나 하겠죠?”
그렇다면 이 말은 곧 싱싱한 장기를 거래로 얻을 수도 있다는 뜻 아닌가.
‘옳거니! 폐는 섬세한 기관이니 살아 있는 게 필요했는데.’
나는 천재 마법사이지 매드 사이언티스트가 아니다.
산 사람에게서 폐를 적출하는 비도덕적인 일은 할 생각이 없으나, 판매 중인 장기가 있다면 말이 달랐다.
“윤승아, 혹시 용의 폐는 없냐?”
그는 알까. 이게 내게 얼마나 중요한 문제인지.
“있어요.”
“어디에 가면 살 수 있지? 매물은?”
“음, 그건 지금 볼게요. 잠시만요.”
톡톡톡.
안윤승은 자신의 휴대전화를 꺼내더니 무언가를 열심히 검색한다. 그리고 고개를 들었다.
“거래 기록만 있지 지금 마켓에 올라온 물건은 없는 것 같아요.”
‘젠장.’
“하지만 폐는 인기 없는 부위라 언젠가 나올지도요?”
“인기가 왜 없어?”
“눈이나 심장과 다르게 마력을 올려주지 않거든요. 간은 약이라도 만들지, 폐는 진짜 별 효과가 없다던데······.”
헌터들이 저평가하는 쓰레기 아이템이라.
“시세가 얼마인지도 봐줄 수 있어? 거래 기록이 있다며.”
오히려 잘됐다. 그럼 폐를 싸게 살 수 있을 테지.
나는 두근거리는 마음을 숨기며 윤승의 대답만을 기다렸다.
“26억이요.”
“아, 그래. 26··· 뭐라고?”
하지만 이런 답이 돌아올 줄 알았더라면.
“26억이 시세인 것 같네요. 우와, 싸다! 다른 부위는 돈 주고도 못 사는데!”
애초에 듣지를 말 것을.
***
그 일이 있고 하루 뒤.
나는 어제 들었던 이야기를 검증하기 위해 휴대전화를 켰다.
[S급 헌터의 충격 전과··· “운전기사 폭행으로 1년 수감”] [강창호, 나리철강 지분 헐값 매각 논란]그런데 찾아보니, 그 강창호라는 사람의 행보는 상상 이상으로 화려하더라.
헌터가 되기 전부터 모 회사의 외동아들로 금수저 생활을 하던 강창호.
그런 사람이 어느 날 특수폭행죄로 감방에 들어갔다.
죄를 지으면 구속되는 게 당연하니까 이상할 일은 아니지만 한국은 문화가 좀 특이해서······.
부자는 좋은 변호사를 고용해 이런 일은 흐지부지 덮기 마련인데, 실형을 선고받은 게 문제랬나.
어쨌든 인터넷에는 강창호가 평소에도 사람을 패고 다녔다는 증언이 가득했다.
하지만 이것도 뒤에 따라올 추문에 비하면 애교지.
“흐음.”
몇 해 전의 던전 브레이크로 부모가 사망······.
그리고 강창호는 사고 직후 유산으로 받은 모든 지분을 매각해, 사실상 가족의 회사를 팔아치우는 짓을 벌였다던데.
이 행동을 두고 사람들은 돈 문제로 패륜도 저질렀을 거라며 쑥덕거렸다.
강창호의 각성 시기가 명확하지 않은 탓이었다.
“재밌긴 하네.”
하지만 문제는 내 목적이 정확한 정보 파악에 있다는 점이고.
외계인의 입장에선 루머 같은 불투명하고 자극적인 정보만큼 독이 되는 게 없는 터라.
“그래도 루머는 루머지.”
일단 정식 기사 외의 나머지 정보는 잊어버리기로 했다.
그리고 휴대전화를 끈 뒤 밖으로 나섰다.
“아~ 배고프다.”
오늘은 미리 점찍어둔 어떤 맛집에 가기로 했거든.
인생을 즐겨야지. 이게 다 먹고살자고 하는 짓인데.
“택시!”
나는 큰길로 나가자마자 눈에 띄는 택시를 붙잡았다.
“기사님! ○○반점으로 가주세요.”
“예~”
그리고 뒷좌석의 시트에 푹 기대어 다시 한번 맛집 리뷰 글을 읽었다.
뜨거운 음식은 먹기 힘드니 여기에서 추천한 탕수육을······.
-끼이이익, 쿵!
“윽!”
그런데 순간.
운전사의 외마디 비명과 함께 갑자기 차체가 크게 흔들린다.
잘 가던 택시가 무언가와 부딪혀 반 바퀴 돌았으며, 나는 그때 생긴 가속도를 버티지 못하고 얼굴을 조수석 머리받이에 찧었다.
“으악!”
코뼈에서 얼얼한 통증이 타고 오르니 절로 아드레날린이 솟는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뭐 저딴! 어휴, 안 다치셨어요?”
“아, 아마도······.”
“일단 내리시죠.”
어안이 벙벙한 사이, 택시 기사는 씩씩거리며 운전석에서 내렸다.
나 또한 뒤늦게 그의 뒤를 따랐고, 밖으로 나오자 어떤 빨간 스포츠카가 우리를 들이박은 모습이 보였는데.
“야, 인마! 대낮에 술 퍼마셨어? 운전을 똑바로 해야 할 거 아니야!”
잠시 뒤, 오픈카 운전석에서 어떤 남자 하나가 느긋한 모습으로 내렸다.
짙은 청자색 머리카락. 그리고 까만 선글라스······.
“이거 미안합니다. 운전이 오래간만이라 액셀이랑 브레이크가 헷갈려서.”
택시 기사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나는 이미 저 사람을 알고 있다.
“안녕, 김기려 F급 헌터.”
턱, 강창호가 운전석 문을 닫고 이쪽으로 다가왔다.
그는 이윽고 내 앞에 멈춰서더니, 휴대전화를 내밀며 이렇게 말했다.
“합의하고 싶은데 연락처 좀 알려주겠어?”
미친놈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