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herworldly Illusion Hunter RAW novel - Chapter 12
10화. S급 헌터
마도학적 원시인 앞이라고 막 던지는군. 능력이 사라지긴 개뿔. 지구의 술사들은 늙어 죽을 때까지 마법을 쓸 수 있을 텐데.
“지금은 술식, 이 아니라! 그 뭐냐, 스킬을 쓰지 않고 몬스터를 쓰러트리는 연습 중이었어.”
하지만 나는 뻔뻔하게 혀를 놀렸다.
사실 마법을 쓸 수 있지만 스스로 자제하고 있는 거라니! 그래도 이 정도면 포장이 꽤 그럴싸하지 않나?
“으음, 이걸로 설명이 됐을까?”
반응이 조용해서 영 불안하다.
거짓말을 쥐어짜 내느라 허공을 보고 있던 나는 아주 조심스럽게 시선을 돌렸다.
“윤승아?”
그러자 눈시울이 촉촉해진 안윤승이 보였다. 야, 잠깐.
“그런 의도가 있으셨다니!”
안윤승은 내가 한 이야기를 듣고 크게 느낀 바가 있는지, 격양된 말투로 말했다.
그의 눈빛은 깨달음을 얻은 듯 총기로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상상도 못 한······. 그래. 그 말이 맞죠. 원래 쉽게 얻은 건 쉽게 사라지기 마련인데 전 왜 이 능력이 평생 나올 거라고 확신했을까요? 당연히 일반인으로 돌아갔을 때도 고민해봐야 할 텐데.”
“윤승아?”
“게다가 요즘 게이트 경향을 보면 변이도 점점 예측 불가능해지고 있는데, 이러면 언젠가 스킬을 못 쓰는 던전이 나타날 수도 있겠고요.”
“어, 어어.”
“제가 단련할 궁리는 안 하고 편한 길만 찾을 때 혼자 이런 선견지명을 가지고 계셨다니. 와, 형은 진짜······.”
이게 바로 일류들의 생각인가!
발상이 일반인과 다른 것 같다며 흥분하던 안윤승은 혼자 무언가 눈치챈 듯 눈을 번쩍 떴다.
“아! 그래서?”
왠지 불안하다.
“원래 각성치가 높은 사람은 얼추 육감으로 알 수 있잖아요. S급들 주변에 가면 소름이 돋는 것처럼.”
“어.”
“그런데 기려 형은 뭐라고 해야 하지. 날파리처럼 너무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아서 기분 탓인가 했는데.”
너 방금 알파우리의 前 제1마도사장한테 뭐라고 했냐? 날파리?
“능력을 자제하는 훈련을 하다 보면 마력도 숨길 수 있게 되는 건가요? 이런 정밀한 컨트롤은 진짜 살면서 처음 봐요······!”
줄곧 나왔던 각성치라는 게 사실 마나량과 동의어라는 걸 깨달은 순간이지만 기쁘진 않았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조용히 가슴께에 손을 올렸다.
그렇게 폐가 있는 위치를 흘긋 확인하고 나서는 이렇게 답했다.
“···뭐, 대충 그렇지.”
왠지 앞으로 이런 말을 자주 하게 될 것 같다는 직감이 들었다.
***
오늘은 쾌거를 이뤘다.
‘하, 하하.’
아까부터 돈을 세는 걸 멈출 수가 없다. 이번 사냥으로 대체 얼마를 벌었던가.
‘100만 원!’
빳빳한 지폐의 감촉이 손을 타고 전해졌다.
이게 고작 화염 박쥐 7마리를 잡고 얻은 돈이라니. 믿기지 않는다.
‘젠장, 게이트에 몬스터가 아주 바글바글 많았어야 했는데.’
상황만 받쳐줬다면 지갑이 더 두툼했겠지만 말이다.
‘그게 마지막 화염 박쥐였을 줄은. 게다가 몬스터를 모두 처치하면 게이트가 사라진다고?’
마법도 못 쓰는 몸으로 C급의 마수를 토벌했더니 상상 이상의 대가가 손으로 떨어졌다.
하지만 게이트에 사는 사냥감들은 생물인 만큼 그 수가 무한하진 않았고.
나는 결국 100만 원이라는 소소한 일확천금을 끝으로 이번 일정을 마쳐야 했다.
머릿속에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것은 애써 떨쳐냈다. 그래도 막차라도 탄 게 어디냐.
“안윤승 헌터, 오늘은 고마웠어.”
좋아. 은혜 갚는 까치도 슬슬 놔주자.
나는 그에게 가볍게 인사를 건넸다.
“형, 혹시 평소에는 사람 없는 게이트만 몰래 다니세요?”
하지만 윤승은 인사를 받아주지 않고 무언가를 질문하기 시작했다.
사람이 없는 게이트만 골라 다니냐니.
이걸 대답을 해야 하나.
“그건 왜?”
경계심 섞인 반응이 돌아오자 그가 멋쩍게 웃었다.
“E급 이상 게이트에 정식으로 들어가려면 다른 헌터의 도움이 필요하시잖아요.”
“맞아.”
“그럼 혹시······.”
“···?”
“오늘 같은 일이 생기면 저를 또 불러주실 수 있나요?”
안윤승이 조심스럽게 꺼낸 제안은 의외였다. 너무 수지 좋은 이야기이기도 했다.
공짜를 조심해야 한다는 건 우주 어디에서나 통용되는 말이지.
“빚은 다 갚았잖아. 그런데 왜?”
설마 이 지구인이 흡마제를 노리고 수작을 부리나.
‘그렇다고 생각하기엔 모래의 가치를 전혀 모르는 눈치고 말이야.’
물론 제안의 이유는 금세 밝혀지게 됐다.
“형님 옆에 있으면 배울 점이 많아서요.”
그가 구구절절 설명한 배경은 이러했다.
자신은 얼마 전, 어떤 사고로 팀이 공중분해 되어 졸지에 솔로 헌터가 되었는데.
사실 안윤승은 각성한 지 반년도 채 지나지 않은 헌터라고 한다.
그 탓에 워낙 경험이 적어서 혼자 활동을 하긴 위험하고, 하지만 다시 팀을 짜자니······.
‘동료에게 뒤통수 맞았던 게 마음에 걸리겠지. 나 같아도 그러겠어.’
여러 요인이 겹쳐서 지금은 사실상 휴식기랬나.
어쨌든, 이 A급 헌터는 현재 시간이 남아도는 상태였다.
그래서 내가 허락만 해준다면, 앞으로도 종종 게이트에 같이 들어가고 싶다고 했다. 재활 겸, 마인드 리셋 겸.
흠.
“도와준다고 하면 거절하진 않겠지만······.”
나는 그의 말을 머릿속으로 한 번 정리한 뒤, 미리 못을 박았다.
“윤승아, 만약 우리 둘이 싸우면 말이야.”
“네?”
“내가 져.”
“···!”
“그만큼 난 약해. 골렘 건은 그냥 네 대처가 좀··· 서툴렀던 게 문제였던 거지.”
안윤승이 멋대로 떠받들게 두면 사고가 날지도 모르니까.
“알아들어? 위험한 일이 생기면 내가 구해주겠거니 여기지 말라는 뜻이야.”
“아아.”
“네 몸은 네가 지켜야 해. 항상.”
이 정도면 마법을 쓸 수 없다는 걸 밝히지 않으면서도 그럭저럭 안전장치가 될 거다.
나는 모든 상황을 설명한 뒤 그래도 게이트에 따라와 줄 거냐고 물었다.
이에 안윤승은 흔쾌히 수락했다.
‘아아, 기려 형은 겸손하기까지······. 굳이 이런 말을 해주는 건 내가 방심하다 다칠까 봐 걱정해주시는 거구나!’
선선히 웃는 저 모습을 보니 내 말뜻을 잘 이해해준 것 같긴 한데.
“좋아, 알면 됐어.”
나는 지구인 협력자를 얻어 들뜬 마음이 되었다.
이야기가 일단락되었으니 이제 남은 건 앞으로를 위한 연락처 교환뿐이었다.
“참, 기려 형은 몇 살이세요?”
그는 새 연락처를 작성하던 도중 손을 멈추고 질문했다.
인제 보니···. 서로 나이도 몰랐군.
‘골렘 앞에서 허둥거리는 미숙한 꼴이 첫인상이었으니. 나도 모르게 그동안 안윤승을 하대했네.’
김기려의 나이?
나는 잠깐 곰곰이 생각하다 뒷주머니에 넣어뒀던 지갑을 꺼냈다. 그리고 주민등록증을 보여줬다.
그러자 지구의 주민이 알아서 나이를 계산해 알려준다.
“헉? 24살? 고작 두 살 차이밖에 안 나셨······.”
“······.”
“아, 아하하. 어, 저 22살이에요! 그런데 대학은 재수해서 들어가서 학번은······.”
나는 이번 연락처 교환으로 많은 정보를 알게 됐다.
김기려는 24살이다.
대학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는데 전혀 떠오르는 기억이 없는 걸 보면, 고학력자가 아닐 가능성이 높고.
“흠.”
휴대전화에는 아무런 연락처도 저장되어 있지 않았다.
***
상쾌한 오전.
욕설과 함께 하루를 시작했다.
눈을 뜨자마자 마법이 나오지 않는 걸 확인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찬물로 세수하며 부정적인 생각을 애써 떨쳐 보냈다.
오늘은 안윤승이라는 헌터와 즐거운 약속이 있으니까.
‘게이트에 가기로 했지.’
몬스터에게 소금 뿌리는 제사를 또 지낼 건 아니고.
흡마제로 죽는 생물은 극소수라 매일 사냥을 나갈 수는 없었다. 그래서 원래는 돈도 벌었겠다 하루쯤 쉴 예정이었는데······.
안윤승이 어제 돌연 묻더라.
-형님, 괜찮으시면 내일은 신규 게이트 하나 구경해 보실래요? 안에서 신기한 게 나왔다는데요. 제가 어쩌다 보니 입장 우선권을 얻게 돼서요.
그리고 그 제안에 대한 내 대답은 이렇다.
“안윤승!”
“아, 오셨다!”
외계인이 신기한 걸 보여준다는데 어떻게 참냐?
휴우, 나는 걷느라 흘린 땀을 가볍게 닦았다. 안윤승은 그런 나를 물끄러미 보다 말했다.
“혹시 걸어오셨어요?”
“어, 왜?”
“사시는 곳하고 너무 멀지 않나 해서요. 택시 타셔도 됐을 텐데.”
택시······.
“···그러게.”
김기려의 뇌야. 이런 정보를 참 빨리도 떠올린다. 그렇지?
‘젠장.’
나는 욕지거리를 삼키며 숨을 골랐다.
잠시 진정하니 이제야 주변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사람이 꽤 많네. 여기 온 사람들이 다 들어가는 거야?”
“대부분은 구경꾼이에요. 기자거나.”
그러고 보니 한국은 신규 게이트의 발생 시 조사 선발대가 들어가 다른 헌터가 끼어들지 못하게 일대를 통제했다가···.
협회의 조사가 무사히 끝나 정보가 풀린 뒤에야 게이트를 개방한다고 했던가.
오늘은 바로 그 신규 게이트의 개방일이었다.
심지어 그 안에서 인류가 처음 보는 식물이 발견됐고 말이다.
어쩌면 바닥을 뒤덮고 있다던 그 미지의 재료가 마법을 되돌려줄 열쇠가 될지도 모르는 일.
‘개방은 아직인가? 어차피 입구에서 식물만 확인하고 나올 거라 오래 있을 것도 아닌데.’
나는 기대 반, 걱정 반인 마음으로 게이트를 쳐다봤다.
그런데 그때.
‘음? 저게 뭐지?’
저 멀리, 푸른 들판 너머로 검은 세단이 멈춰 섰다.
이때까지는 다들 자동차를 신경 쓰지 않았지만, 뒷문을 열고 어떤 인물이 내리자 상황이 급변했다.
“어!”
“저기···.”
“여길 왜 왔지?”
웅성거리기 시작하는 헌터들.
그들의 눈에는 하나같이 묘한 긴장감이 서려 있다.
“헉, 강창호···.”
안윤승도 반응이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다들 왜 이런 분위기인지 궁금하다. 하지만 이쪽은 지구의 유명인을 알 턱이 없으니 원.
“누군데 그래?”
답답한 마음에 결국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안윤승이 사람을 무슨 간첩 보듯이 흘긴다.
“강창호 헌터잖아요. S급.”
하지만 이 정도면 이상하게 볼 법도 했지.
“S급? 한국에 3명 있다던?”
그 말을 듣고 자세히 살피니 왜 저 사람이 S급인지 대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주변에 널린 술사들과는 확연히 다른 존재감. 게다가 저 방대한 체내 마력을 안정적으로 다루고 있다니.
‘오오.’
확실히 지구에서는 보기 드문 인재다. 자연스럽게 눈이 갔다.
그리고 이 순간, 나는 그 S급이라던 헌터와 잠깐 시선이 맞았다.
‘어차피 다들 쳐다보고 있으니까 괜찮겠지.’
하지만 굳이 시선을 피하진 않았다. 더불어, 그 각성자도 얼마 안 가 다른 곳으로 눈을 돌렸다.
당연한 현상이다. 우연히 눈 좀 마주친 게 뭐 대수라고······.
“어라?”
잠깐, 방금 한 생각을 취소해야겠다.
먼 산으로 시선을 돌렸던 S급 헌터가 다시 휙, 빠르게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본다.
크게 뜬 눈이 마치 ‘내가 방금 뭘 잘못 봤나?’ 싶어서 다시 확인하는 듯한 눈초리다.
게다가 그 헌터는 이제 눈 한 번 깜빡 않고 이쪽을 또렷이 쳐다보기 시작했다.
‘어, 뭐지.’
이쯤 되면 솔직히 무서운데.
나는 뒤늦게 그를 슬쩍 모르는 체했다. 그러자 귓가에 사박거리는 잔디를 밟는 소리가 들렸다.
S급 헌터가 다가오는 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