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herworldly Illusion Hunter RAW novel - Chapter 148
146화. 김기려 (2)
어느덧 맞이한 20살.
이는 김기려에게 그나마 가장 의미 있던 시기다.
엄마를 만나고, 같은 해에 본격적으로 사회 활동도 시작했으니.
-위이이이잉.
-드르르륵.
김기려는 한때 욕조 공장에서 일했는데.
사실 그 경력이 길진 않았다. 당장은 먹고 살아도, 무작정 단순한 일에 전전해서는 미래가 없다는 걸 깨달았으니까.
‘의외로 할만은 한데, 역시 오래는 못 하겠네.’
그래서 기려는 앞으로 어떻게 살지를 고민하다 비로소 목표를 정했다.
교정직 공무원.
정년이 보장된 일자리 중에선 이게 그나마 시험 난도가 낮다는 말이 있어서.
‘원래는 군무원도 생각해봤지만, 고아라서 복무도 면제받은 주제에 인제 와서 군 생활은 어렵겠고…….’
참고로 배달대행 업체로 이직한 것도 이맘때의 일이었다.
원래 다니던 일터는 야근이 잦아 공부할 겨를이 없던 반면, 그 일은 그나마 페이스는 조절할 수 있을 것 같았거든.
게다가 마침 공장의 아는 형이 자신이 예전에 쓰던 중고 오토바이를 싸게 넘겨준다고 하기도 했으니.
기려는 속는 셈 치고 새로운 일을 시작했었다. 듣던 대로 오토바이를 배우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야 이 미친 새끼야! 내가 시킨 건 불족발인데 다 식어서 뭔 냉동 족발이 왔잖아!”
물론 그는 교통법규를 철저히 준수하는 편이라 첫 달은 평생 먹을 욕을 몰아서 들었지만…….
운전에 익숙해질수록 그것도 차츰 나아졌다.
그는 생각보다 라이딩에 소질이 있었다.
***
그런데 평화롭던 어느 날.
“기려야……. 미안한데 통장에 돈 좀 모아둔 것 있니?”
이화영이 갑자기 넌지시 질문하더라. 혹시 돈을 모아둔 게 있느냐고 말이다.
“돈이요?”
“내가 허리가 아파서 이번 달에 일을 며칠 못 나갔는데, 그러다 보니 공과금 낼 돈이 없어서…….”
보육원에서 나올 적만 해도 금전적인 요구는 다 거절하겠다 마음먹은 그였거늘.
시간이 지나며 다짐이 퇴색되기라도 한 걸까?
기려는 이화영에게 흔쾌히 25만 원을 건네줬다.
어차피 평소에도 월세는 꼬박꼬박 반절을 내고 있었는데, 한 달 정도 이런다고 변할 건 없다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그런 예상과 달리 화영의 요구는 점점 커져갔다.
“기려야, 엄마가 장 볼 돈이 없어서 그런데 몇만 원만 빌려줄래?”
처음에는 마트에서 먹거리를 사오겠다며 현금 5만 원을.
“아들……. 미안한데 엄마가 몸이 아파서 도저히 이번 달은 일을 못하겠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자 이젠 아예 건강 문제로 구직할 수 없다며 생활비 전부를 부담하게 하기까지.
“엄마가 정말 미안해.”
“괜찮아. 잠깐인데 뭘.”
“그래. 허리가 나아지면 바로 일해서 갚아줄게.”
나중에 갚겠다는 그녀의 약속 때문이었을까?
기려는 이화영에게 또다시 돈을 빌려줬다. 그럴 때마다 저축한 돈이 빠르게 소모됐지만 아직은 버틸만했다.
이 청년은 사치를 일삼지 않는 청렴한 인물이었고.
공장에서 얻은 돈과 배달 일로 번 것을 모두 모아둬서 아직 여유 자금은 있었으니까.
그래. 22살의 나이로 3000만 원이나 쌓았으니 이 정도는…….
***
허리 통증을 이유로 친모가 휴직한 지도 어느덧 2개월이 지났던가.
2900만 원.
2800만 원.
그리고 통장 잔고가 2700만 원 정도로 줄어들었을 때쯤.
갑자기 어머니가 저녁 식사 자리에서 어떤 이야기를 꺼냈다.
“기려야, 사실 너한테 할 말이 있는데…….”
이화영이 자신에게 거액의 빚이 있다고 밝힌 것이다.
“너 없이 혼자 살 때 형편이 너무 어려워서 대출을 좀 받았거든. 그, 그런데 이게 갚아도 갚아도 줄어들지를 않아서.”
“대출?”
“요즘은 독촉장까지 자꾸 날아와서 아주 미쳐버리겠어…….”
그렇게 말한 모친이 보여준 서류에는 확실히 은행권에서 대출받은 흔적이 보였다.
이자와 원금을 합해 약 2700만 원.
마침 기려의 통장에 딱 그것을 상환할만한 돈이 들어 있었다.
“이제 만기 연장도 못하는데 이걸 일시납을 못하면 우리가 사는 집 보증금도 날아간대……. 이를 어쩌니?”
턱. 그녀는 김기려의 손을 붙잡고 애원하기 시작했다.
네가 아들로서 엄마를 좀 도와줄 수 있겠느냐. 물론 네 돈은 나중에 다 돌려주겠다.
허리가 나아져서 다음 달부터는 나도 다시 일을 나가니 걱정 말아라.
“어떻게 안 되겠니?”
보통은 이런 거액의 요구를 선뜻 들어주는 이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관계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다.
“음…….”
이는 누군가가 그토록 바랐던 가족 지간이었으니.
“진짜 갚을… 거지?”
“아아, 그럼! 걱정 마. 엄마가 아들 돈을 어떻게 안 갚아줘.”
김기려는 결국 자신의 전 재산으로 이화영의 대출금을 갚는다.
하지만 괜찮다. 어머니는 이 돈을 돌려주겠다 약속했으니까.
수험 자금이야 또 모으면 되는 거지. 게다가 어머니는 자신이 공부하는 동안 집안일도 많이 도와주시지 않는가.
앞으로 계속 같이 살 건데 모자 사이에 이 정도는…….
***
그래. 괜찮을 리가 없지.
“허.”
이화영에게 돈을 빌려주고 한 이틀쯤 지났나?
배달 일을 마치고 온 기려는 귀가 3분 만에 헛웃음을 터트렸다.
그야 현관을 열자마자 보인 게 잔뜩 어질러진 거실이었거든.
그리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집안 곳곳을 살펴보니 사라진 물건이 딱 옷가지 일부와 지갑, 휴대폰, 그리고 베란다에 세워져 있어야 할 여행용 캐리어라.
“전화도 안 받네.”
결론부터 말하면 화영은 도망쳤다.
“차단했나.”
그것도 돈을 빌려준 지 고작 48시간 만에.
기려는 손을 들어 올려 콧대를 지긋이 주물렀다. 하여간 진짜 이건 상상도 못했네. 설마 이렇게 짐까지 싸 들고 나가버릴 줄은 몰랐는데.
“여기 보증금은 어쩌려고……. 곧 집도 빼려나?”
집주인에게 사정을 설명하면 엄마랑 잠깐 통화는 가능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 와서 몇 마디 대화 따위가 과연 얼마나 도움이 될까?
휑뎅그렁한 거실. 중앙에 서 있던 기려는 천천히 자리에 쭈그려 앉았다.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돈 갚을 거냐고 물어보지나 말걸.”
그는 상황이 이렇게 되니 우습게도 가장 먼저 이 생각이 들었지.
그래.
사실 그는 돈을 돌려받지 못하리라는 걸 어느 정도는 눈치채고 있었다.
하지만 그걸 알고도 모친에게 돈을 내어줬다. 심지어 그 흔한 차용증 한 장 없이.
간신히 만난 엄마를 잃기 싫어서, 돈 따위 좀 없더라도, 자신은 차라리 가족과 함께 사는 삶을 원했으니까.
“아…….”
그런데 이 돈을 계기로 오히려 가정이 파탄 나버렸으니 참 허망하기 그지없는 결말이다.
그는 넋을 놓고 창을 쳐다봤다. 정신을 차렸을 무렵엔 그 창문 너머로 노을이 비치고 있었다.
***
김기려는 그 일을 겪고 난 후 더욱 열심히 일했다.
처음부터 다시 모아야 하니 화나긴 하는데, 어쨌든 사람이 돈은 벌어 먹고살아야 하니까.
낮에는 배달을 하고 밤에는 틈틈이 공부하는 생활.
이때까지만 해도 그는 미래에 관한 작은 희망을 품은 상태였다.
“어으, 겨울 되니 진짜 춥다.”
그런데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이 청년이 살고 있는 시대는 던전 쇼크 이후의 세상이라는 점.
“크르릉…….”
어느 날.
김기려는 배달을 끝내고 건물 밖으로 나오는 도중 골목에 웬 들개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하지만 자세히 보니 그건 흔히 보던 갯과 동물이 아니었다.
“음?”
붉은 공막과 등에 돋아난 마석.
저런 괴상한 모습이라면 상대는 분명히.
‘몬스터!’
헉.
괴물을 발견한 기려는 반사적으로 도망쳤다. 하지만 오토바이의 출발보다 괴물의 접근이 더 빨랐다.
투두두두… 콰직!
이내 들려오는 것은 섬찟한 파육음.
“-아악!”
그 F급 몬스터는 기려에게 달려들어 다리를 난폭하게 물어뜯었다.
다급히 헬멧을 휘둘러봤으나 맞아도 꿈쩍을 않는 검은 짐승.
우드드득, 까득.
놈은 개 껌이라도 입에 문 것처럼 사람의 오른쪽 다리를 마구 짓씹기 시작했다.
“놔, 놔!”
김기려는 이 일로 하마터면 다리가 절단날 뻔했다.
하지만 다행히 그런 최악의 상황까지는 가지 않았지. 곧이어 이 골목으로 짐승을 눈치챈 E급 각성자가 달려 들어왔으니.
푸슉!
검은 개는 나타난 헌터의 공격에 금세 목숨을 잃었다. 하지만 김기려의 부상은 여전히 심각했다.
“흐, 헉…….”
“악! 세상에! 괜찮으세요? 구… 구급차! 당장 구급차 부를게요!”
정육점의 불빛처럼 붉은색이 가득한 비현실적 풍경.
지금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이렇게 크게 다쳤는데 과연 내가 앞으로 멀쩡히 걸을 수나 있을까?
***
“걸을 수 있을 겁니다.”
그로부터 며칠 뒤.
김기려는 한 병원의 입원실에 누워 있다.
지금은 의사가 아침 회진을 도는 중이었다. 그리고 방금은 담당의가 다친 다리에 대한 소견을 냈고.
“걸을 수 있어요?”
“네. 수술이 잘됐어요.”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걸음이 ‘가능’할 거라는 소리일 뿐.
“그런데 앞으로는 뛰거나 격한 운동은 하시면 안 돼요.”
“예?”
“상처가 너무 심해서 어느 정도 후유 장애는 남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젠 다리 관절에 무리를 주면 계속 나빠지기만 할 테니 잘 관리하셔야 해요.”
오래 서 있지도, 잠깐 뛸 수도 없을 거라니.
그렇다면 육체적인 노동에 큰 제약이 걸릴 게 뻔하지 않은가.
“그래요?”
게다가 이번 사건은 금전적인 피해도 막심했다.
‘아, 그러고 보니 오토바이도 작살 났잖아.’
한국은 의료 보험 체계가 잘 되어있어서 돈이 얼마 안 들 거로 생각했건만.
지금처럼 정도가 심한 골절에 대한 수술비는 그가 상상한 것 이상이었다.
이럴 거 같았으면 뭔가 보험이라도 들어둘 걸 그랬나. 아니, 하지만 직업으로 오토바이를 타고 다녀서 어차피 승인도 안 났을 텐데…….
‘당장 월세는 어쩌지.’
다리를 다쳤으니 까짓거 잠깐 쉬어라. 이쪽은 그런 말을 받아들일 수 없는 처지였다.
오늘을 쉬면 내일은 굶어야 하니까.
사람은 돈이 없으면 살 수가 없으니까.
누군가에게는 하룻밤 술값에 불과한 그 몇백만 원의 병원비는 어느 청년을 주저앉히기 충분했다.
또한 일으켜 세워줄 가족 하나 없는 이는, 한 번만 넘어져도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곤 하기에.
몇 달 뒤.
기려는 어느 정도 회복을 마쳤다.
하지만 의사가 말한 대로 후유증이 남아 다리를 일정 각도 이상 움직일 수 없었다.
시간이 지나면 이 또한 차츰 나아질 테지만, 이전처럼 완벽히 멀쩡해지고 싶으면 던전에서 나오는 아이템이라는 걸 써야 한다나.
“다리를 다시 째고 고급 포션을 부어서 치료하는 데 드는 비용이 평균 3억 5천…….”
하하하.
1억이라는 돈을 내가 살면서 본적이 없는데 거기에 2억 5천만 원이 추가?
‘머리 아프네.’
김기려는 주머니에서 꺼낸 담배에 불을 붙였다.
성인이 되고 나서 호기심에 접한 흡연이지만, 여태껏 이렇게 줄담배를 피워본 적은 없었다.
다리가 낫는 동안 제대로 된 일을 못해서 죄다 까먹어버린 저축.
게다가 나라에 부랴부랴 도움을 요청해보니 돌아온 대답은 젊은 사람에게 줄 지원금이 없다라.
‘이런 몸으로라도 근로 능력이 있으니 어쨌든 일을 하라 이거지…….’
그래도 김기려는 살아보려고 최선을 다해봤다.
일단 저번에 몬스터에게 물린 것을 계기로 몸 상태가 좀 달라졌으니, 혹시 몰라 각성 검사도 해보고.
“12Aw입니다. 검사자님은 F급으로 각성하셨습니다.”
최하급이라는 꽝을 뽑았음에도 일단 게이트도 도전은 해봤다.
“샤아악!”
“으윽.”
지난 일로 생긴 트라우마 때문에 이젠 어떤 몬스터를 봐도 몸이 덜덜 떨려 도저히 헌터 일은 불가능했지만.
그래도 찾아보면 분명 아직 할 수 있는 일이 남아 있을 터다.
아니, 없어도 만들어 내야 했다. 그래야 생활비를 마련하고, 그렇게 돈을 벌고 나면 다음은…….
다음은.
…다음은?
그러고 보니 내가 왜 이렇게까지 악착같이 버티는 거였지.
‘살아서 뭘 하려고?’
그가 공무원이 되려 했던 이유는 원래 안정적인 직장을 가지고 싶어서였다.
국가의 녹을 받아먹으면 적어도 월급이 밀리진 않을 테고, 그러면 자신의 생활을…….
어머니와 함께하는 그 생활을 오래 유지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
그 가정은 이미 엉망이 된 지 오래다.
그의 모친은 아들을 2번이나 버렸다.
고작 직장인의 1년 치 연봉 정도에 포기할 수 있는 가족이라니.
김기려는 순간 생각했다.
내가 좀 더 살가웠으면 어머니도 떠나지 않았을까?
더 잘생긴 아들이었으면.
아니면 뭔가 특출난 능력이 있다든가. 공부를 아주 잘했다든가.
하지만 뭐가 어찌 됐든 그녀가 보기엔 제 아들이 가족으로 삼기에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았던 것 같다.
그렇다면 다른 이들에게는 내가 어떻게 비칠까. 세상 사람들은 나 같은 사람이랑은 가족이 되기 싫은 걸까?
그럼 나는 평생을 이렇게 살아야 하나.
누군가에게 버려지고, 외롭고, 힘들게.
‘평생.’
문득.
김기려는 노력하는 것이 귀찮아졌다.
그 이상은 정말 무어라 설명할 말이 없었다.
그냥 갑자기 만사가 미칠 듯이 성가셨다.
돈을 번다고 아등바등하는 것도, 책을 붙들고 있는 것도, 심지어 방을 청소하는 극히 사소한 짓까지.
그리고 이맘때부터 이상한 일이 시작됐는데.
어쩐지 그는 요새 들어 최근 일을 자꾸 까먹었다.
자신이 세면대 앞에서 뭘 하고 있었는지. 도어락 비밀번호가 뭐였는지.
계속 깜빡깜빡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