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herworldly Illusion Hunter RAW novel - Chapter 157
155화. 무물불성(無物不成) (4)
“일단 제일 간단한 것부터 해볼까?”
몇 분 전.
본격적으로 수업을 시작한 기려는 번짐 현상에 대한 이론적 설명과 함께 무언가의 시연을 선보였다.
하성에게 지금부터 잘 보라는 말을 남기고 가볍게 마법을 쓴 것이다.
그러나 이어진 풍경은 하성에게 있어서 그저 새로운 난관이라.
“어때, 참 쉽지?”
“…….”
“우선 방금 보여준 대로만 하면 돼. 첫날은 이 정도만 가볍게 익히자.”
김기려라는 외계의 초청 강사는 초장부터 기절초풍할 재주를 보여버렸다.
‘어? 정하성이 왜 저런 반응이지?’
기려는 마법의 시전을 마치고 잠시 자신의 행동을 검토했지.
우선 그는 하성을 가르치기 위해 [파이로맨서 네크리스]의 능력을 막 발동했다. 물론 위력은 기껏해야 F급 정도로.
마도구를 통한 화염 스킬의 발현.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할 건 없는데…….
“왜 그렇게 긴장한 표정이야?”
이에 정하성은 답했다.
“방금 눈을 감고 본인 뒤통수에 스킬을 쓰셨네요.”
“응.”
“게다가 말씀하신 대로 딱 머리 뒤쪽의 중앙 타일에 불을 맞히셨고.”
그게 뭐 어쨌단 거지?
일단 정하성에게는 독보적인 나쁜 버릇이 있었다. 바로 본인의 시야 안에서만 술식을 펼친다는 것.
물론 맨눈으로 범위를 지정하는 게 틀렸단 건 아니지만, 이것에만 의존하면 여러 문제가 따르는 법이니.
“나도 처음부터 타일을 정확히 맞히라고는 안 해. 위치는 빗겨나가도 괜찮아.”
기려는 기초부터 차근차근 쌓아주려고 했다.
그런데 벌써 일이 삐걱댄다. 어느 S급은 시범을 따라 할 생각은 않고 아까부터 입만 작게 벌렸기에.
“어쨌든, 눈을 감고 네 뒤통수에 작은 불이 생기는 상상을 해봐.”
그는 눈앞의 원시인에게 재차 권유했다.
그러자 하성이 눈꺼풀을 닫고 침묵했으며, 30초가 지나서야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죄송합니다.”
“죄송해하지 말고 스킬을 쓰라고.”
다시 내려앉은 침묵.
안절부절못하는 기색으로 말을 아끼는 하성을 본 순간, 기려는 드디어 자신이 처한 상황을 이해했다.
‘아하, 이번엔 여기에서부터 막힌다 이건가.’
일났군.
사칙연산을 가르쳐야 하는데 학생이 기어 다니잖아…….
‘알고 보니 우리 윤승이가 영재였네.’
하성의 파멸적인 기초 제어 능력을 보니 문득 첫 제자가 그리워진다.
하지만 이대로 꺾일 순 없었다. 30억. 30억. 하긴, 남의 돈을 받아먹는 것이 쉬울 리 있나.
‘난 할 수 있다……. 나는 그를 이해할 수가 있다…….’
기려는 사야 할 에픽급 마도구의 금액을 떠올리며 애써 마음을 다잡았다.
이어진 건 짧은 대화다.
“정하성, 그러고 보니 이 체육관은 구급 용품도 지원한다고 들었는데, 혹시 그게 어디에 있는지 알아?”
“압니다.”
“그 구급 용품 안에 소독약도 있을까?”
“있겠죠.”
“그럼 가져와.”
이렇게 된 이상 정하성에겐 주입식 교육이라도 시도해봐야지.
“그리고 약들 가져오고 나면 피부를 잘 소독해서 네 손목 좀 스스로 찌르고.”
선우연에게 썼던 그 방법을.
잠시 뒤.
작은 위기는 있었지만, 다행히 첫 지도는 무사히 끝났다.
정하성이 지시에 따라 손목에 피를 낸 순간.
기려는 하동에서 했던 것처럼 그의 마력에 간섭해 감각을 인위적으로 일깨웠기 때문이다.
“그런데 방금의 일은… 김 헌터님의 각성 스킬 같은 겁니까?”
쏴아아아.
기려는 체육관에 딸린 화장실에서 지구인의 피를 씻어냈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대답은 성실했다.
“스킬은 아니지. 너도 연습하면 할 수는 있어.”
그럼 지금부터는 노력이 결실을 볼 수 있을 것인지가 관건인데.
“아무튼, 바로 돌아가서 감부터 잡아보자.”
기려는 정하성의 체내 마력을 움직여 ‘눈으로 관측하지 않은 장소에 마법을 일으킬 때 생기는 감각’을 강제로 자아냈었다.
몸속의 에너지가 바깥의 어느 한 점으로 쏠리는 일렁임.
그 이질적인 육감은 마법의 좌표 지정에 필수적이었으니.
“옳지. 잘하네!”
곧 결과가 나왔다.
다행히도 화염술사가 가진 재능은 저급하다고 표현할 수준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제자로 삼기에는 썩 나쁘지 않다.
정하성은 이래 봬도 반평생을 모범생으로 산 인물. 따라서 학습 능력 자체는 평균을 웃돌았기에.
“이렇게 하는 게 맞습니까?”
“맞아. 방금 눈 감고 스킬을 썼잖아.”
흡수력이 괜찮군.
기려는 타인의 마력을 조작하느라 생긴 피로감을 뒤로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시작이 더뎌서 처음에는 살짝 걱정했지만, 저런 이해력과 성실함이면 앞으로의 일정은 차질이 없을 것이다.
‘순조로워!’
의외로 문제가 수월히 풀렸는데.
“…….”
이때, 외계의 지식을 전수받은 검은 머리의 사냥꾼은 체육관 한쪽에서 묘한 표정을 지었다.
***
주어진 문제를 쉽게 해결한 것.
그 자체가 위기가 되었다면 믿어지겠는가?
-화르륵.
첫 번째 레슨이 마무리되어갈 때쯤.
기려에게서 배운 스킬 운용법을 복습하고 있던 남자는 감았던 눈꺼풀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정말로…. 이제는 눈으로 확인하지 않아도 스킬을 쓸 수 있게 됐네.’
솔직히 말이 안 되는 일이다.
‘참 간단하게.’
각성 능력의 독학.
모 사냥꾼은 아무런 이유도 없이 그런 비효율적인 방법을 고수해온 게 아니었으니.
하성이 스스로의 교정 가능성을 낮게 친 데에는, 다 나름의 사정이 있었다.
애당초 마나는 기껏해야 발견된 지 7년 차밖에 되지 않은 신물질이 아니던가.
아니, 그사이에 또 봄이 왔으니 이제는 8년 차긴 하군.
그래도 아무튼. 이 세상의 각성자들이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단계라는 것에는 모든 학자가 이견이 없었다.
개중에는 타고난 재능으로 남보다 능력을 유연히 다루는 이들도 있었지만, 그들조차도 아직 타인의 선생이 되기엔 부족했고.
그렇기에 자신은 그렇게 많은 돈을 갖고도,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변변찮은 가르침 하나 받지 못했던 것인데.
‘허…….’
이건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사기꾼들의 싸구려 강의와는 차원이 다르다!
김기려는 방금 기적으로 불러도 손색이 없는 요술을 부렸다.
제 다리로 걷지 못하고 허우적대는 핏덩이를 일으키듯, 타인의 마력을 우악스레 붙잡아 감각을 주입하다니.
‘이게 대체…….’
그렇게 연습해도 감이 잡히지 않던 사각의 스킬 발현이 단번에 성공한 상황.
지금까지는 자신의 무능함에 매번 분개했고. 아무리 노력해도 바뀌지 않는 현실을 보고 눈물마저 쏟은 적이 있거늘.
‘내 문제가 이렇게 편하게 해결되는 일이었다고?’
하성은 옅은 희열을 느꼈다.
어려운 문제를 풀어냈을 때 생기는 특유의 긍정적인 달성감이기도 했다.
어떻게 기쁘지 않을 수가 있을까.
작금의 상황은 원치 않는 각성에 시달려온 화염술사가 매번 기도하던 꿈의 실현이다. 희망이 보였다.
‘나도 나아질 수 있었구나.’
하성은 김기려라는 사람의 가치를 통째로 재평가했다.
저건 미래의 팀원 후보 따위로 취급할 게 아니라. 그토록 찾던 인생의 길라잡이라고.
그만큼 기려의 교습은 충격적으로 뛰어났다.
이 순간, 정하성은 저 S급 헌터의 말만 따르면 거대한 화마를 정복하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나도 이런 제대로 된 도움만 있으면 나아질 수가…….’
그런데 문제는.
알다시피 이곳에 있는 화염술사는 현대 의학의 도움을 받았을 정도로 정신적으로 썩 강건하진 못한 인물이라는 점.
‘잠깐, 자칫하면 주객전도가 될 뻔했잖아. 그러고 보니 이건 단지 비결을 듣는 걸로 끝이 아니라.’
휙.
‘저 헌터가 자신과 팀으로 일할 기회를 준 거였는데.’
이어서 정하성의 시선이 한 방향으로 향한다.
모 대마법사는 현재 작은 하품을 하고 있었는데, 하성은 그 평화로운 풍경 속에서 홀로 생각했다.
‘지금도 이 정도인데, 아예 저런 사람 옆에서 일하게 된다면 그때는 과연 얼마나 배울 점이 많을까.’
본인이 속은 것도 모르고 그릇된 목표를 설정한 것이다.
반드시 배운 노하우를 정착시켜 좋은 성과를 내야겠다며.
그리하여 한국의 네 번째 S급에게 인정받아 꼭 정규로 팀이 되고 싶다며 간절히 염원했으니.
그나마 온건한 반응이던 안윤승과 달리, 기려의 실력을 체감하자마자 태도가 돌변한 정하성.
그는 멘토와의 연줄에 집착하기 시작한다.
더불어 미래에 관한 상상도 못할 압박감을 느끼기도 했다.
‘내가 수업을 똑바로 못 따라가면 협업을 해주겠단 약속도 취소되고 말 거야…….’
이런 와중에 팀 제안 자체가 완전히 헛치레였다는 게 들통나면 분명 좋지 못한 상황이 벌어지리라.
하지만 모 외계인은 아직 남의 생각을 훔쳐보는 마법을 되찾지 못한 관계로.
‘오늘 끝나고 저녁에 뭐 먹지?’
대마법사의 영혼은 수업이 끝날 때까지 실없는 고민이나 할 뿐이었다.
***
“너는 뭐 취미 같은 거 없어?”
“취미요?”
“독서나 게임이나. 아무튼 여가에 보통 뭐 하고 지내나 해서.”
그날 오후.
한적한 식당에서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글쎄요. 애초에 저는 딱히 여가 시간이랄 게…….”
이곳은 서울에 위치한 어느 고깃집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랭킹 1위의 헌터는 그다지 식탐이 많지 않아 이런 외식을 귀찮아했지만.
“아니, 여가 시간이 없긴 왜 없어. 너 설마 요즘도 무리하고 다니냐?”
그는 식사를 제안한 것이 김기려라는 이유만으로 이번 일정을 승낙했다.
사적인 자리라면 상대방과 대화할 기회가 조금이나마 늘어날 것 같아서 말이다.
그나저나, 이렇게 얼굴을 맞대고 있어도 역시 참 여전히 모르겠다.
‘지금까지는 뭘 하던 사람일까?’
김기려는 어디에서 튀어나온 헌터인가.
정하성은 이전부터 그것이 항상 의문이었으니.
던전 쇼크.
부산의 크라켄 출현.
그리고 기타 등등.
눈앞의 사냥꾼은 그 어떤 굵직한 사건에서도 모습을 비친 적이 없었고. 그야말로 하늘에서 뚝 떨어진 듯 나타난 헌터였다.
하는 행동을 보면 아무리 생각해도 각성한 지는 꽤 된 사람 같거늘.
‘협회가 했던 발표로 보면 정부랑 관련이 있는 분 같기도 하고.’
…설마 국정원?
그런 곳에서 각성자가 탄생하면 저렇게 조용히 활동하게 되기라도 하는 걸까.
‘어쩐지 그럴싸하네.’
하지만 결국 모든 발상은 추측에 불과하고.
이 순간 유일하게 확실한 것은, 저 사냥꾼이 꽤 친절하다는 점뿐.
“하성아, 좀 쉬엄쉬엄해.”
기려는 구운 고기를 하성의 접시로 옮기며 말했다.
“그런데 너 이런 식이면 평소에 밥은 똑바로 먹고 다녀? 일 바쁘다고 영양소만 대충 채우는 건 아니고?”
그러자 하성의 젓가락질이 멈춘다.
확실히 진공포장 닭가슴살 따위로 자주 끼니를 때웠던 만큼 저건 부정을 못하겠는데.
이때, 하성을 지켜보던 건너편의 남자가 드문 반응을 보인다.
한쪽 눈썹을 일그러트리며 인상을 쓴 것이다.
“내 이럴 줄 알았지.”
인위적으로 완벽한 형태만 취하던 과거와 달리 이제는 제법 자연스러운 감정 표현.
“하여간 넌 어떻게 된 게 사는 꼴이 옛날의 나랑 이렇게까지 판박이냐. 괜히 짠하게.”
“예?”
“됐다. 고기나 부지런히 먹어.”
그걸 본 하성은 새로운 감회가 들었다.
“요절하기 싫으면 지금부터라도 식사 잘 챙기라고. 잠도 잘 자고.”
“예.”
사실 S급 헌터에게는 이 같은 잔소리가 생소했거든.
정하성은 불현듯 과거의 추억을 떠올렸다. 유일한 가족과 저녁을 먹던 평화로운 일상을.
돌이켜보면 그때도 어머니가 밥 좀 잘 챙겨 먹으라며 매번 타박하셨지.
한데 그런 자질구레한 꾸중을 S급이라는 괴물이 되고도 다시 듣게 되다니.
“…….”
자신은 한 번도 형제자매를 가져본 적이 없는데, 이 순간만은 왠지 뜻 모를 그리움이 느껴졌다.
하성은 생각에 잠긴 얼굴로 잠시 생각을 곱씹었다.
그리고 추가로 주문한 된장찌개가 테이블에 놓였을 때쯤.
“저기.”
젊은 영웅이 머뭇거리며 어떤 문장을 꺼내기 시작했다.
“김기려 헌터님. 그런데 생각해보니 저희가 앞으로는 꽤 자주 보게 될 것 같은데…….”
“음.”
“하지만 같은 헌터끼리 매번 헌터님이라고 존칭하는 것도 조금 그렇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중언부언하느라 서론이 길어졌지만 요약하면 별거 아닌 부탁이었지.
“혹시 실례가 아니라면, 앞으로 형이라고 불러도 될까요?”
그러나 테이블 너머의 남자는 이 제안을 단칼에 거절했다.
“아니. 안 돼.”
“아, 네.”
안 되는구나.
하성은 머쓱해서 입을 다물었다. 그렇게 어색한 고요함이 감돌자, 곧이어 두 사람이 앉은 테이블에는 삼겹살 굽는 소리만 들어찼고.
치이이이익.
지방이 불에 타는 소음을 얼마나 듣고 있었을까.
집게를 들고 있던 금발의 남성은 다 구워진 고기를 자르며 이내 말을 이었다. 자신을 형으로 부르는 것이 왜 안 되는지 명확한 사유를 밝힌 것이다.
“네가 나보다 2살 많거든.”
치이이이익.
흘러가듯이 말하는 그 어조에 하성은 조용히 끄덕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기려는 서비스로 받은 돼지 껍데기를 불판에 올리는데.
이때쯤이 되어서야 흑발의 각성자가 한발 늦은 반응을 보였다.
“…죄송하지만 방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S급의 신체 능력이면 사람의 말을 잘못 들을 일은 없거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