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herworldly Illusion Hunter RAW novel - Chapter 164
162화. Spectrum (2)
브루클린은 의아해졌다.
어떻게 그는 탐욕만으로 몸이 근질근질해질 근사한 물건을 저런 눈빛으로 본단 말인가.
“인상적이네요.”
자신의 제안을 이토록 단칼에 거절한 사람은 처음.
브루클린은 그런 특별한 반응 덕에 더욱 상대방에게 관심이 갔다.
S급 헌터를 앞에 두고도 저렇게 차분한 걸 보면, 시간이 지날수록 저 동양인이 진짜 강자라는 것에도 점점 무게가 실리고.
“나름대로 고민해서 그쪽이 가장 필요로 할 만한 물건을 가져온 건데. 우리가 뭔가를 잘못짚은 걸까요?”
“글쎄요.”
“헌터님은 대체 원하는 게 뭐죠? 대략적이라도요. 권력? 명예? 흠…….”
브루클린은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정면을 뚫어지라 주시했다. 그곳에는 묘하게 탄내가 밴 정장을 걸친 남성이 서 있었다.
“하지만, 뭐가 됐든 이런 작은 나라에서는 얻기 어려울 것 같은데.”
김기려는 그녀의 목소리를 쫓아 고개를 든 각도를 튼다.
“흉을 보려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현실은 그렇죠. 모든 국민의 신분을 강제로 전산망에 등록하고, 일을 하다 죽어도 제대로 가족조차 책임져주지 않는 이기적인 국가, 한국.”
“…….”
“그러나 나의 조국은 다릅니다. 미국은 당신의 자유를 보장할 것이며…….”
“…….”
“우리를 지켜준다면 당신은 세계적인 영웅으로 추대받을 수 있습니다. Kim, 그게 당신에게 어울리는 위치예요.”
여기에 틀린 말은 없지.
그녀의 말마따나 한국 정부는 아무리 날고 기어도 미국보다 좋은 조건을 맞춰줄 수 없었으니.
그들이 이렇게 작정하고 제안을 해오면 각성자의 입장에선 어쩔 도리가 없었다.
합리적인 선택이 아닌가?
국가를 위해 개처럼 봉사해봤자 기껏해야 좋은 묫자리 정도로 생색내는 이들을 지킬 바에는.
나라의 도둑들이 야금야금 털어간 곳간을 채우려 하루가 멀다고 세금이나 올리는 놈들 배를 불릴 바에야.
“다시 부탁할게요. 헌터님, 부디 우리 미국의 사냥꾼이 되어주세요.”
브루클린과 관리청의 일원들은 금발의 남성 앞에서 깊이 고개 숙였다.
그들은 진심으로 저 한국의 헌터를 얻고 싶어 했다.
그리고 이 순간, 기려는 머릿속으로 한 문장을 또렷이 떠올렸는데.
‘이거 끝나면 집에 가서 뭐 먹지?’
……이로써 알 수 있듯이 그는 대화 중간부터 집중력을 완전히 잃은 상태였다.
미국의 1위 헌터를 눈앞에 두고 정신 나간 거 아니냐고?
하지만 그도 어쩔 수 없었다. 이들이 얼마나 간곡히 부탁하든 간에 그는 결정을 바꿀 생각이 없었거든.
‘이딴 마도구가 도시를 팔아도 살 수 없을 거란 평가를 듣고 있었다니…….’
[용의 심장].그 아이템을 마주한 기려는 약 50초의 관찰 시간 동안 급격히 흥미가 식어버렸다.
체내 마력을 올려주는 물건이라길래 잔뜩 기대했더니만.
막상 대마법사의 기준에선 그 상승량이 대수롭지 않고.
무엇보다 폐가 시커멓게 썩은 병든 육신으로는 그 소소한 효과마저 온전히 누리지 못할 게 뻔해서.
‘지금 내 상태로는 마력만 무식하게 쌓아봤자……. 실제 출력은 기껏해야 찔끔 개선되겠지.’
2할가량의 위력 증가.
누가 보면 대단한 수치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문제는 김기려가 지닌 기본값이다.
0에 가까운 숫자에 뭘 곱한다고 상황이 크게 나아지진 않는 법.
‘에라이.’
[용의 심장] 같은 특수한 강화법은 먼 미래에나 고려해야 한다. 당장은 효율이 안 좋다.기려는 쓰지도 못할 마도구에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 게다가 이건 전제부터가 어긋난 대화이기도 했다.
저들이 고용하고 싶어 하는 건 온갖 화려한 이력을 지닌 한국의 강자.
하지만 여기에 서 있는 건 툭 건들면 부서질 유리 몸이잖아.
‘음. 그나저나 이야기만 들어본다고 말해두긴 했는데. 이거 진짜 편하게 거절해도 되는 거겠지. 설마 다단계처럼 사람을 막 잡아두고 설득하는 건 아니겠지……?’
그는 먹이사슬의 최하위에 놓인 인물답게 소심한 걱정을 떠올리며 분위기를 살폈다.
“헌터님.”
그리고 이때.
브루클린이 근처에 있던 가죽 소파에 걸터앉아 살갑게 말했다.
“그나저나, 그건 알아요?”
그녀는 누군가의 고향 바다를 닮은 푸른 눈을 깜빡이며 상대를 주시했다.
“처지나 보상에 관한 이야기는 둘째치고, 사실 우리가 당신을 스카우트하려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접니다.”
“예?”
“내가 당신을 원했거든요. 개인적으로, 난 우리가 함께하면 정말 좋은 결과를 만들 수 있을 거라 봐요.”
“그래요?”
“당신 생각은 어떤가요?”
기려가 워낙 반응이 없자 이제는 다른 미끼를 제시해본 것이었다.
브루클린 모건이 어떤 사람이던가.
모델 같은 외모라는 1차원적인 부분 따위는 제외하고도 그녀는 가히 파괴적일 정도로 매혹적인 인재였다.
이쪽은 무려 세계 유일의 S급 치료술사이니.
그녀는 소생으로 보일 정도로 강력하고 빠른 상처 재생 마법의 보유자다.
평소에는 이 희귀한 능력을 본인에게 십분 활용하여 터프하게 싸운다던데.
전투와 보조가 모두 가능한 인물. 그래서 세상은 브루클린의 동료가 되고 싶어 하는 사람들로 언제나 북새통이었다.
어쩌면 그들을 일렬로 세워 지구를 한 바퀴 돌 수 있을 정도로.
“Kim, 난 당신이 진심으로 마음에 들어요. 저번 파티에서부터 그렇게 생각했어요.”
따라서 모건 헌터의 관심이란 평범한 사냥꾼은 꿈도 꾸지 못할 행운일 터.
한데, 그녀는 회유할 대상을 잘못 골라도 한참은 잘못 골랐다.
그녀의 눈앞에 있는 자는 수복술의 대가라고 불려도 손색이 없을 만큼 재생 마법의 격이 다른 마법사였고.
하필이면 근본적인 문제까지 지니고 있어서.
‘예전부터 생각한 거지만…….’
어그러진 영혼으로 인한 특유의 괴리감.
곧이어 그는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반응을 보인다.
묘한 낯섦이 담긴 안광으로 브루클린을 관찰한 것이다.
‘역시 지구인들은 불투명해서 좀 징그러워. 환생한 지 제법 지났는데 이건 대체 언제 완전히 적응되는 거지…….’
이내 딴생각에 빠지는 기려.
이 찰나의 시선 교환은 미국의 헌터에게 더 없을 충격으로 다가왔다.
‘이런.’
맙소사. S급 헌터라는 귀한 존재를 정육점에 걸린 부속물 보듯 흘기다니. 하여간 사람이 냉혈한인 것에도 정도가 있지.
브루클린은 상대방이 자신에게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다는 걸 눈치채고 즉시 물러났다.
“알았어요. 알았다고요. 어쨌든 당신은 드래곤 하트에는 관심이 없는 거죠?”
제시된 게 폐라는 부위였더라면 하다못해 고민하는 척이라도 했을 텐데.
하긴, 그들이 어떤 보상을 가지고 왔든 결국 이쪽은 대가를 지불할 능력이 없는 허접쓰레기니 이제 와서 이런 고찰이 다 무슨 의미가 있나 싶다.
이내 김기려가 답했다.
당신의 말대로 나는 이 물건이 탐나지 않으며, 미국으로의 이민도 생각하지 않고 있다고.
그렇다면 거래자의 의사도 확고하니 대화를 더 이어 나가봐야 뭐 하겠나.
“하실 말씀 다 하셨으면 이만 가봐도 될까요?”
김기려의 목소리가 픽시의 번역기를 타고 영문장으로 변환됐다.
이를 들은 스펙트럼의 요원 하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복도로 나간 기려를 마지막까지 정중히 에스코트했다.
“이번은 제대로 망쳤네요.”
“모건 양, 신경 쓰지 마시길 바랍니다. 드래곤 하트를 마다할 정도라면 다른 걸 제시했어도 결과가 같았을 겁니다.”
“이상해요. 내가 생각하기엔 저 헌터는 분명 그걸 필요로 할 줄 알았는데…….”
몇 초 뒤.
남아 있는 요원과 이야기를 나누던 브루클린은 스위트룸의 침대에 기대어져 있는 무언가를 발견했다.
화려한 포장지로 밀봉된 상자.
“음?”
그것은 외국의 S급 헌터를 위해 준비했던 환영 선물이었다.
이들이 혹여 순순히 보내주지 않을까 봐 지레 겁먹은 기려가 황급히 도망쳐 미처 선물을 전달할 시간이 없었던 것이다.
“아, [신의 물방울]! 손님께 시간을 빌린 사례를 하는 걸 잊었군요.”
미국의 요원은 상자에 담긴 내용물을 언급하며 그것에 손을 뻗었다.
하지만 이를 저지하는 목소리가 있었으니.
“건들지 마세요.”
브루클린 모건은 아직 이 나라에 볼일이 남아 있으니까.
“내가 직접 갈 거예요.”
그녀는 걸터앉아있던 소파의 등받이에서 일어나 상자를 집어 들었다.
***
딱. 딱. 딱. 딱.
브루클린 모건은 7cm 높이의 하이힐로 멋을 부리고도 성큼성큼 잘도 뛰었다.
은은한 주광색으로 둘러싸인 호텔 로비를 지나 바깥으로 나와보니, 다행히 그녀가 찾던 인영이 아직 인근에 남아 있었고.
마력의 흔적이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 무색무취의 각성자.
“……알았어요. ……까지 오셨다니 일단 얼굴은 뵙는 게…….”
남성은 뒤따라온 S급의 존재를 눈치챈 것인지. 이윽고 말을 멈추며 시선을 돌렸다.
“잠시만요. 잠깐 끊겠습니다.”
그 동양인의 손에는 구형 스마트폰이 들려있었다. 아무래도 지금까지는 누군가와 통화 중이었던 모양이다.
“기려! 선물을 두고 갔어요.”
브루클린은 남몰래 연습한 상대의 이름을 발음해보며 손에 든 봉투를 해맑게 내밀었다.
그러자 김기려도 이제야 생각났다는 듯 탄성을 터트린다.
그러고 보니 쟤들이 시간만 내줘도 보상을 줄 거라고 했었지?
“아유, 뭘 이런 걸 다…….”
외계의 대마법사는 허물어지려는 입꼬리를 숨기며 상대에게 다가갔다.
애나 어른이나 선물을 받는 순간은 설레는 법.
하지만 이는 범의 아가리에 스스로 걸어 들어가는 것이나 다름없는 행동이었다.
“별거 아니에요. 어서 받아가세요~”
브루클린이 한국에 온 두 번째 사유는, 바로 김기려의 능력을 직접 검증하기 위해서였으니 말이다.
‘소피아의 허무맹랑한 경험담만으론 부족하지. 이런 짓을 하면 나중에 조금은 혼나겠지만, 괜찮아. 난 이걸 정확히 확인해 봐야 직성이 풀리겠어.’
이 남자가 숨어 있는 베일을 들추려면 어떤 방법을 써야 할까.
한국행 여객기 안에서도 끊임없이 고민한 주제지만, 데미리치 작전이 실패했으니 이번엔 역시 단순함을 추구하는 게 좋겠다.
“부디 이 선물이 당신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어요.”
S급으로 각성했다면 갖출 수밖에 없는 힘.
벌의 날갯짓조차 세는 동체 시력. 빠른 마력 감지. 즉, 인지에 관한 능력.
생각해보면, 이러한 기초적인 민첩함도 아이템으로는 퍽 흉내 내기 힘든 것이니.
‘조금만 더.’
브루클린은 저 차가운 인상의 아시아인이 충분히 접근하면 그의 오른팔을 통째로 잡아 뜯을 생각이었다.
‘조금만 더 가까이.’
상처는 남지 않으리라.
신이 주신 재능, 자신의 각성 스킬을 이용하면 찢어진 신체쯤이야 순식간에 제자리로 돌아올 테니까.
브루클린은 코앞까지 다가온 기려를 보며 마력을 끌어올렸다.
마치 머릿속 사고가 신경을 타고 흐를 때처럼 신속하게. 더불어 은밀히.
‘됐어.’
이 정도 거리까지 좁혔으면 이제 모든 건 눈 깜짝할 사이에 이루어지겠지.
그녀는 팔을 찢고 복구하는 일련의 과정을 1초 안에 완성할 거라 자신했다.
턱, 기려의 마지막 한 걸음이 끝났을 무렵.
브루클린은 상대의 실력에 드리워진 베일을 걷어내기 위해 손끝을 움찔 들었다.
하지만 이윽고 들려온 것은 근육이 찢겨나가는 파육음이 아닌.
콰아앙!
둔탁한 굉음.
고막이 터질 듯한 소란이 난 직후. 행인의 출입이 제한됐던 5성급 호텔 앞마당에 거친 흙먼지가 피어올랐다.
놀랍게도, 미국의 S급이 우측에서 나타난 누군가에게 선수를 빼앗긴 것이다.
“흠, 브루클린 모건?”
그 누군가는 등장과 동시에 최상위 각성자 고유의 특징을 드러냈다.
우수한 동체 시력에 동반하는 초월적인 감각.
그는 이를 활용해 상대가 하려던 행위를 미리 알아챈 것이라.
브루클린을 걷어차 화단에 처박히게 한 각성자는 파충류를 닮은 눈을 굴리며 다음 마디를 꺼냈다.
“비빔밥이나 드시러 왔다던 분이 여기에서 뭐 하시나?”
그는 한국의 또 다른 S급 헌터인 강창호.
첨언하자면 썩 유쾌한 상태는 아닌 듯했다. 그는 현재 아치형의 눈썹을 한껏 굽히며 의문을 표하고 있었으니까.
이것이 기려가 준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였다.
문자 메시지로 미국에서 뭔가 제의가 와서 가보겠다고 일정을 슬쩍 흘리면.
저 습관성 스토커는 당연히 계약자의 상태를 주시했을 터.
흘끗.
기려는 팔뼈가 박살 난 채로 비척비척 일어나는 브루클린을 보며 생각했다.
‘음.’
일단 보험을 든 것까진 좋았는데…….
왠지 보험사 직원의 행동을 보니 우리 쪽 과실이 더 크게 잡힐 것 같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