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herworldly Illusion Hunter RAW novel - Chapter 42
40화. 길드 스카우트
‘우연히 듣게 된 거라 멋대로 말해도 될지 모르겠는데. 뭐, 따로 입막음하신 것도 아니니까.’
그는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를 막힘없이 풀어놓았다.
그런데 문제는, 이 정보가 상당히 왜곡된 내용이었다는 거다.
왜냐하면 안윤승은 사건 현장에 직접 있었던 것이 아니라…….
김기려와 정하성의 전화 통화.
그것도, 김기려 측의 일방적인 발언밖에 들은 적이 없었기에.
이 A급 헌터는 사건 당사자를 향한 절대적인 믿음을 기반으로 당당한 날조를 시작한다.
“형님은 정하성을 구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손을 썼던 거라고요!”
정하성이 휘말렸던 EX급 게이트는 매칭된 3인 중 한 명의 희생을 강요하는 룰.
그래서 보통은, 서로 제물 역할을 떠넘기다가 싸우기 마련인데.
“형님만은 그게 반대셨던 거죠. 김기려 헌터는 정하성을 대신해 제물 역할을 수행하려고 상대를 제지한 거예요.”
윤승은 기려에 대한 존경심으로 반짝반짝 빛나는 눈을 하고서 말을 이었다.
“제가 직접 두 사람 대화도 들었다고요. 기려 형이 정하성에게, 당신 건강이 상할까 봐 걱정돼서 급하게 말리느라 그랬다고.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걸 봤거든요.”
어쩜 형님은 이리 대인배이실까!
어느덧 안윤승의 마음속에선 그 F급이 범접할 수 없는 성인으로 치솟았다.
하지만 이를 들은 선우연은 안색을 창백하게 굳혔다.
‘맙소사.’
악의가 있건 말건 그게 무슨 상관인가.
한국의 랭킹 1위를 자기 마음대로 기절시켰다는 게 가장 중요한 건데.
‘사람 맞아?’
선우연은 등에서 흐르는 식은땀을 애써 모른 체했다.
자신의 목적은 김기려의 능력을 캐내는 게 아니었으니까.
“어쨌든.”
바스락.
그녀는 다 먹은 샌드위치의 포장지를 가볍게 구기며 대화를 마무리 지었다.
“이야기는 잘 들었어요. 전부 이해가 가는 설명이네요.”
“정말이요?”
“네. 기려 씨를 더는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할 필요는 없을 것 같군요.”
물론 딱히 뒤가 구린 짓을 하고 다니지 않는다 뿐이지, 등급을 위장 중인 사람이라는 건 변치 않지만.
일개 협회 직원이 뭘 어쩌겠어.
최신식 측정기로도 부정을 입증하지 못하는 이상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선우연은 이만 쓸데없는 의심을 거두기로 했다.
‘확신만 없었지. 내가 보기에도 마냥 나쁘기만 한 사람은 아니었으니까.’
머릿속에 잠깐 잔상이 스쳐 간다.
모두가 꺼리던 야생동물의 주검을 소중히 거두어 길을 떠나던 김기려의 뒷모습.
이 순간, 왜 그 기억이 떠오른 걸까.
“지금에 와서 하는 생각이지만.”
선우연은 다 먹은 런치 메뉴의 접시들을 가지런히 정리하며 입을 열었다.
“사실 협회 소속인 저로선 김기려 헌터가 실력을 감추고 있는 게 나쁘진 않아요. 오히려 다행이죠.”
안윤승은 그 말에 눈썹을 으쓱 올렸다.
다행? 어느 부분이?
“그야, 김기려 헌터의 진짜 각성치가 알려지면 각 길드가 가만있지 않을 테니까요.”
“지금도 스카우트는 많이 들어올 텐데요?”
“감정사가 아무리 귀하다 한들, 상급 게이트를 클로즈할 수 있는 정예 요원에 비할 순 없죠.”
선우연은 그런 문장을 꺼내놓고 잠시 창가로 시선을 돌렸다.
고민이 들었다.
“지금의 한국은 3개의 단체가 균형을 유지하고 있잖아요.”
상급 요원 수는 적지만, 정치계와 연결되어있어 간신히 각성자들을 통제하는 [헌터 협회].
S급 헌터인 에스더의 카리스마를 중심으로 질 높은 각성자가 모인 [한국마탑] 길드.
그리고, 대기업의 자본과 사업 수완을 바탕으로 절대적인 길드원 수를 보유한 [네오 시스터즈].
이들은 어느 한쪽이 우세하는 일 없이 아슬아슬한 협력 관계를 맺고 있었다.
“이 대형 길드 틈바구니에서 협회가 그나마 발언권을 유지할 수 있던 건, S급들이 서로 각자도생 한 덕분이에요.”
하지만…….
“그런데 이때, 숨겨진 제3의 S급이 나타난다면?”
김기려가 특정 길드에 들게 되면 상황이 달라졌다.
S급의 존재는 한 국가의 전력 평가마저 바꿀 정도이기에, 이에 필적하는 인물이 사기업에 소속되면 독보적인 힘을 가진 집단이 발생하게 된다.
이권을 노린 권력다툼에 업계가 휘말릴 가능성이 있다는 거다.
“게다가 그 S급이 다른 S급 헌터의 세력으로 붙어버린다면?”
이 와중에 김기려가 협회의 편을 들어준다면 다행이겠으나…….
“S급까지는 과장된 생각일지도 모르지만, 원래 사람 일이라는 게 어찌 될지 모르는 거잖아요.”
지금도 등급 심사에 정당히 응하지 않는 사람인데 과연 얼마나 도움을 기대할 수 있을까?
그 의문의 헌터가 지닌 힘은 충분히 평화에 균열을 낼 수 있었다.
‘어쩌면 협회가 억지력을 잃는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어.’
선우연은 확신을 하고 말했다.
“그러니 기려 씨는 그냥 F급인 시늉을 하면서 무소속으로 남아줬으면 좋겠어요.”
“아하.”
“어디까지나 협회 입장에서는 그렇단 거예요. 상황을 통제해야 하니까.”
S급끼리 뭉치는 상황은 피하고 싶다.
그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안윤승은 밝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이유라면 걱정 마세요. 형님은 길드에 들 생각이 없어 보였거든요.”
“그래요?”
“마탑의 제안에도 시큰둥하셨어요.”
손꼽히는 대형 길드의 계약도 걷어차다니 그건 좀 의외인데.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하긴, 대외적으로 F급에 불과한 사람을 필사적으로 스카우트하려 드는 길드도 없을 터다.
선우연은 한결 안심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물론 그들로서는 알 수 없었다.
지금 이 순간, 이미 우려하던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
지금으로부터 며칠 전.
한국마탑 본사 대표실.
“이 헌터를 스카우트해오라고요?”
실종 사건의 수사가 한참이던 당시.
한국마탑 길드에서 헌터의 영입 및 승진평가를 맡고 있던 인사과 팀장 곽병기는 예사롭지 않은 일을 맡게 되었다.
“F급을? 제가 직접 말입니까?”
A급처럼 눈에 띄는 슈퍼루키면 모를까.
각성치가 고작 14에 불과한 폐급을 자신이 머리 숙여 데려오라니.
“그 헌터가 분석 계열이라는 건 저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각성치면 스킬 한두 번에 마나가 동날 텐데요?”
마탑은 각성자를 가려 받기로 유명한 정예주의 길드였다.
그 증거로 이곳은 C급 미만인 길드원은 존재하지 않았다.
“대표님, 저희 분석팀 평균 등급 아시잖습니까? 폐급 감정사면 물량 감당 안 될 거 뻔한데 뭣 하러…….”
곽병기 팀장은 손에 들고 있는 서류철을 탁탁 때리며 조언했다.
“게다가 이 말도 안 되는 계약금은 또 뭐고요?”
“…….”
“말해주세요. 이 사람, 평범한 감정사 아니죠? 저도 뭔가 정보를 알아야 협상도 해볼 거 아닙니까.”
이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창가의 여성은 천천히 의자를 돌렸다.
“그만 좀 떽떽거려.”
마탑의 주인, 에스더가 짙은 속눈썹을 깜빡이며 툭 말했다.
“헌터 사회가 얼마나 치열한지 알아? 때로는 무심결에 흘린 정보가 큰 약점이 되어 돌아온다고.”
“예?”
“그래서 각성자 중에선 자기 능력을 밝히기 꺼리는 사람도 있어.”
“이번 건과 관계있는 말인가요?”
“당연하지. 김기려가 바로 그런 타입일 수 있잖아.”
에스더는 한참 나이가 많아 보이는 인사팀장에게 서슴없이 말을 놓았다.
“지금 고민해봤는데, 역시 당신은 그 헌터의 비밀을 모르는 편이 좋겠어.”
“그런가요?”
“그냥 단순한 F급이 아니라고만 알아둬. 그 이상은 괜히 건드렸다간 반감만 살 테니까.”
자세한 설명이 없으니 괜히 상상력만 자극했다.
대체 이 무명의 헌터는 어떤 비밀을 지니고 있길래 한 길드의 대표가 일일이 신경을 쓴단 말인가.
“일단 계약서 틀은 임시로 작성했는데, 돈이 그보다 더 들 것 같으면 얼마든지 요청하고.”
“네?”
“난 백지수표를 쓸 각오까지 있거든.”
파격적인 대우다.
곽병기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 헌터에게 이만한 가치가 있다는 겁니까?”
가치, 가치라.
곱슬머리를 한 S급의 각성자는 그 물음에 좀처럼 입을 떼지 못했다.
김기려라는 인물은 단순히 이득을 위해 영입하려던 게 아니었기에.
“글쎄, 모르지. 사실 지금 확인할 수 있는 건 그 사람 전과가 깨끗하다는 것뿐이라.”
에스더는 그 각성자가 풍기고 다녔던 냉담한 분위기를 회상하며 말을 이었다.
“일단 시험 삼아 곁에 둬보려고.”
한국마탑 본사는 입구에 설치된 센서가 출입자의 아이템 보유 여부를 검사한다.
폭발물을 반입하지 않으려는 조치였다.
그래서 김기려가 그날 흡마제 외의 소지품을 지니고 있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F급은 자신이 준비한 미로를 빠져나왔다.
더불어 S급의 저주를 가볍게 흘려냈다.
“역시 다른 사람 손에 들어가게 놔두긴 아깝네.”
자신의 능력이 통하지 않는다는 건 확실히 두려운 일이나, 달리 말해 이는 기회가 아닌가.
‘S급 상태 이상을 무시할 정도라면……. 스킬로 인한 것이든, 각성치에 의한 것이든. 무조건 보통은 아니야.’
어디에도 노출되지 않은 강자와의 우연한 접촉.
그를 한 편으로 끌어들일 수만 있다면 더욱 많은 일이 가능해질 것이다.
하물며, 그 각성자가 전형적인 악인이었다 해도 남들보다 앞서 본색을 알아둔다고 나쁠 건 없을 터.
“이렇게 있을 게 아니라 어서 김기려 헌터에게 연락이라도 해봐!”
에스더는 그럼 좋은 소식 기다리겠다며, 활짝 웃으며 곽병기를 배웅했다.
곽병기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상사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며칠 뒤.
‘F급에게 이런 대우는 너무 과한데, 흠, 위장 등록자라 실제 등급이 다른 케이스려나? 확실히 언급하기 불편한 주제긴 하군.’
곽병기는 김기려와의 약속을 어렵사리 잡았다.
삼고초려를 하는 심정으로 정중하게 문의한 결과.
드디어 긍정적인 회신을 받게 됐으니 말이다.
“김기려 헌터님?”
“안녕하세요. 혹시…….”
“예예! 제가 연락드렸던 곽병기 과장입니다.”
미리 커피숍에 도착했던 김기려는 악수를 건네는 한편 이렇게 생각했다.
‘마탑 길드 놈들은 커피 못 마셔서 뒤진 귀신이 쓰였나.’
하필 만나도 이딴 곳에서 만나자고 하네.
기려는 현재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는데, 이를 차마 드러내진 못했다.
한국마탑의 수장이 저주 속성의 마법사였기 때문이다.
‘젠장, 대놓고 홀대해서 괜한 앙금을 남길 수도 없고.’
피치 못할 사정으로 연락을 회피하지 못한 상황.
이를 알 턱이 없는 곽병기는 미리 준비한 서류를 뒤적이며 생각했다.
‘이 헌터가 비밀이 있건 말건. 그래 봤자 스카우트는 액수로 승부가 나는 거야.’
제시할 계약금에 제약이 있는 것도 아닌데, 이까짓 각성자 하나 영입하기가 어렵겠나?
돈만 있으면 이름 석 자도 갈아치우게 할 수 있는 게 요즘 세상이다.
그래서 이때까지만 해도 오늘의 업무가 쉽게 끝날 거라 예상했다.
“분명 스카우트 제안은 이미 거절했을 텐데.”
하지만 5분여의 시간이 지난 뒤.
김기려라는 인물이 새까맣게 가라앉은 눈으로 자신을 주시하며 이렇게 말했을 무렵에는.
“나보고 댁들 회사에 ‘출근’을 하라……. 이 말입니까?”
곽병기는 무언가 잘못됐음을 인지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