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herworldly Illusion Hunter RAW novel - Chapter 41
39화. 오해야 오해
삐뽀-. 삐뽀-. 삐뽀-.
나는 구급차에 실려가는 학생들을 멍하니 구경했다.
‘잘 가라.’
어찌 됐든 실종자도 구조했고, 우리가 게이트 안에서 개고생할 동안 범인도 무사히 체포됐다고 하니까.
이제 내가 할 일은 없다.
남은 건 경찰들이 알아서 할 것이다.
‘내일이면 약속했던 2주도 끝이고.’
나는 머릿속으로 일정을 정리하다 돌연 생각했다.
그나저나, 아까 선우연에게 살려줘서 고맙다는 의미로 웃어봤었지!
내 감정 표현을 본 현지인의 반응은 어떨까?
‘집에서 틈틈이 연습했지만, 실전에서 써본 건 처음이야.’
두근두근.
나는 기대감을 안고 조심스레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저 멀리, 선우연의 얼굴이 보였다.
표정이 마치…. 경악에 빠진 것처럼 보이는데.
‘그렇게까지 이상해 보였다고?’
10일이나 맹훈련했거늘…….
역시 안면근육으로 의사를 전달하는 건 좋은 선택이 아니었던 것 같다.
나는 이쪽을 쳐다보는 선우연을 애써 무시하며 울음을 삼켰다.
제길, 언젠가는 기필코 지구인도 구분 못 할 감정 표현을 해주마.
***
은평구 실종 사건이 종결됐다.
오늘은 그 일이 있고 난 후 처음으로 맞는 휴일이다.
선우연은 사냥꾼 협회 인근의 브랜드 카페에 들어가 주말 한정 세트 메뉴를 주문했다.
“아! 선우연 헌터님! 안녕하세요. 오늘 날씨 진짜 좋네요.”
잠시 시간을 죽이고 있으니, 기다리던 사람도 금세 나타났지.
선우연은 차분히 인사했다.
“그래요. 안윤승 헌터.”
오늘은 A급 헌터 안윤승과 약속이 있었다.
“그나저나 무슨 일로 부르셨어요? 원래 주말 약속은 안 잡으시잖아요.”
안윤승은 던전 브레이크 대처 위주로 활동하는 야외파 헌터.
선우연 또한, 사정상 게이트에 들어가지 못했기 때문에 밖으로 나도는 경우가 잦은 편.
이렇게 업무상 동선이 겹치니 식사 자리를 만들 정도로 친분이 있는 건 당연지사.
“그냥, 좀 간단히 물을 게 있어서요.”
윤승은 깊게 생각하지 않고, 선우연이 건네주는 공짜 커피를 선뜻 받아마셨다.
“당신 혹시 김기려 헌터랑 친해요?”
하지만 아무리 A급 각성자라도 코로 역류하는 커피를 막는 재주까진 없었다.
“어풉!”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거참 벌써 의심 들게 하네.”
“아, 아니. 갑자기 다른 사람 이름이 나오니까 놀라서…….”
선우연은 입꼬리를 내린 채 윤승을 차갑게 살폈다.
“그쪽이랑 김기려가 서로 잘 아는 사이라는 건 예전부터 알고 있었어요.”
“납치 건 때문이죠?”
“그땐 별생각 없었지만, A급과 F급이 나란히 게이트에서 나오는 걸 보고 나서는 이게 뭔가 싶더라고요.”
후룩.
선우연은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머금고 말을 고른다.
“김기려 헌터랑은 어쩌다 알게 된 겁니까?”
그러자 안윤승이 팔짱을 끼고 시선을 피했다.
“갑자기 그런 건 왜 물어보세요?”
“하긴, 윤승 씨 처지에선 꽤 당황스럽겠네요. 일단 걱정하지 마요. 협회는 관련 없는 일이니까.”
“정말요?”
“그냥 개인적인 걱정이거든요.”
상당히 방어적인 태도인데.
선우연은 커피잔을 기울이며 그 너머로 시선을 치들었다.
“솔직히 밝히면 나는 김기려 그 사람이 범죄자일 가능성이 있다고 봐요.”
“예?”
“그래서, 혹시라도 안윤승 헌터가 질이 나쁜 각성자에게 걸려 곤란한 일을 겪고 있다면 돕…….”
“뭐라고요?”
이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안윤승은 테이블을 내리치려다가, 간신히 직전에 멈췄다.
“아니, 말도 안 되는 소리예요! 형님이 범죄는 무슨! 그분은……!”
“자기 각성치를 숨기고 있죠.”
“예?”
“등급 부정 신고도 범죄예요. 범죄.”
턱.
선우연은 쥐고 있던 머그잔을 강하게 내려놓았다.
그녀의 눈빛은 확신을 품고 있었다.
“랭크가 한 단계만 높아져도 연봉의 단위가 바뀌는 업계에서 하향 신고를 하다니요.”
“으음.”
“그런 사람들은 대개 이 부정행위로 뭔가 다른 이득을 취하려 들어요.”
“그렇죠.”
“이래도 김기려 헌터를 위험 분자로 의심하는 게 이상한가요?”
선우연은 얕게 호흡을 고르고 차분히 말을 이었다.
어쩌다 보니 안윤승이 할 말을 잃고 안절부절못하고 있는데, 원래 그를 이렇게 몰아붙일 생각은 없었으니까.
“내가 당장 당신이나 김기려를 잡아가겠다는 게 아니에요……. 그냥 사실 확인을 하고 싶다고요.”
사실 확인?
그 말에 안윤승이 숙였던 고개를 들었다.
“안윤승 헌터가 바르고 성실한 건 온 협회가 다 아는 일인데, 이런 사람이 그 F급과 어울리니까…….”
“어.”
“부정 등록에도 뭔가 사정이 있진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잖아요.”
“음.”
“아니면 반대로 그 사람이 A급도 대처 못 할 각성자라서, 마음 여린 안윤승 씨가 어디 가서 말도 못 하고 이용당하고 있는 걸 수도 있고.”
그녀의 내면에선 지금도 수많은 가정이 떠오르고 있었다.
그 F급 각성자는 도통 자신의 속내를 비치지 않아 선악 구분에 어려움이 따랐기 때문이다.
스킬 사용에 조언을 주는가 하면, 마지막의 마지막이 되어서야 감춘 힘을 드러내며 사람을 물 먹이질 않나.
행적도 영 의문스럽고.
“저에겐 정보가 필요해요. 김기려라는 사람을 판단하기 위한 정보요.”
선우연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서 윤승 씨를 불렀어요. 김기려 헌터와 연락을 주고받는 당신이라면 뭔가 알지 않을까 해서.”
하지만 표정이 어두워진 그녀와 달리, 안윤승은 빠르게 혈색이 돌아왔다.
협회 직원이 갑자기 김기려에 대해 캐묻길래 설마 건수라도 잡으려 하나 했더니.
‘휴, 그런 이유는 아니었네.’
그는 고찰에 빠졌다.
일단 직원의 반응을 미루어보아 김기려는 이미 진짜 각성치가 얼추 드러난 게 아닐까?
‘은평구 사건 수색 중에 게이트 사고가 벌어졌다니까.’
아아, 선우연과 실종자들을 보호하려고 어쩔 수 없이 실력을 내셨겠지…….
사실 이 정도는 보지 않아도 뻔하다.
그럼 F급이라는 위장도 깨졌는데, 이제 와서 자신이 모든 정보를 비밀에 부쳐봤자 무슨 의미가 있을까.
‘흠…….’
안윤승은 이 문제를 다른 방면으로 생각해봤다.
차라리, 자신이 진실을 밝혀 오해를 풀어본다면 어떨까?
안윤승은 그편이 기려에게 훨씬 도움이 될 거라고 판단 내렸다.
김기려 본인도 협회 직원의 날이 선 관심을 계속 받고 싶지는 않을 테니.
“그럼 기려 형에 대해 말해 드릴 테니까요. 대신 이 이야기들은 비밀로 해주실 수 있어요?”
윤승은 마음을 굳히고 제안했다.
그러자 선우연이 올곧은 눈을 하고서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죠. 약속할게요.”
그녀는 입이 무겁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사람이니, 약속은 엄중히 지켜질 것이다.
그렇게 5분이 지났다.
“형님과 만난 것은 어느 여름날의 일이었습니다…….”
웅숭깊은 목소리로 운을 뗀 A급 헌터는 그날의 첫 만남을 묘사하기 시작했다.
“제 팀이 이상 변이 게이트에서 전복 났던 거 아시죠?”
“알죠. 꽤 큰 사고였고.”
“그런데 그때! 제가 살아 돌아온 게 다 그분 덕이었다. 이 말입니다!”
선우연은 흔들림 없이 그의 말을 경청했다.
“전 아직도 그 장면을 잊지 못해요. 제가 손도 대지 못한 골렘을 여유롭게 제압하고, 심장을 확 뽑아버리시는데!”
한동안 장황한 설명이 늘어졌으나, 결국 안윤승 헌터와 김기려가 마주친 계기를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이랬다.
‘안윤승이 대처 못 한 보스급 추정 몬스터를 순식간에 살해? 최저 A급 확정.’
이 양반 대체 몇 단계를 속이고 있던 거야.
선우연은 눈매가 살짝 더러워졌다.
“어, 역시 기려 형 각성치 때문에 좀 걸리시나요?”
선우연의 반응이 영 좋지 않자, 윤승은 기려를 더욱 적극 변호했고 말이다.
“하지만 그것도 다 사정이 있는 것 같은데 조금만 봐주시면 안 될까요…….”
“무슨 사정.”
“직접 여쭤본 적은 없지만 아마 세상의 간섭을 염려해서 그런 게 아닐까…….”
안윤승은 턱에 손을 올리고 잠깐 고심하더니, 무언가 떠올랐다는 듯 다음 마디를 꺼냈다.
“그리고 그분은 평소에도 날파리 같은 마력으로 보이도록 조절하고 다니시잖아요.”
날파리.
확실히 그렇긴 한데 단어가 좀.
“힘을 억누르는 데 너무 공을 들이는 것 같은데, 어쩌면 정하성 같은 경우이실지도 몰라요.”
“정하성?”
“주변 사람들이 불편해할까 봐 주의하는 거죠. 1위분은 그…. 인터뷰 때 그 일 있잖아요.”
아아.
인터뷰라는 단어가 나오자 선우연도 이해한 눈치가 됐다.
부동의 랭킹 1위를 자랑하는 그 헌터는 각성치가 무시무시하게 높기로 유명하니까.
“마력 때문에 일반인이 단체로 기절한 사례가 있죠.”
물론 그 정도까진 아니더라도, A급 헌터부터는 충분히 주변에 영향을 끼친다.
“하하, 그런데 형님이 허위 등급을 들킨 것도 어찌 보면 당연했네.”
“당신 옆에 있으면서도 불편한 기색이 없었으니까요.”
“S급 앞에서도 쫄지 않는 분인데 뭘 바라요.”
안윤승은 얼음이 반쯤 녹은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목을 축였다.
“아무튼 제가 하고 싶은 말은 그거예요. 범죄에 가담할 분은 절대 아닙니다.”
“….”
“나쁜 목적으로 등급을 속였으면 살인이나 더러운 돈에 관심이 있어야 할 텐데, 그것도 아니잖아요?”
“역시 그 사람 물욕은 없는 편인가요?”
“우리 형님 평소에 국밥 드시고 다녀요!”
긍정적인 대답이 줄줄이 이어진다.
하지만 선우연은 좀처럼 표정을 펴지 못했다.
“왜 그렇게 김기려의 인품을 높게 쳐주죠? 만난 지도 얼마 안 된 사람을.”
그러자 윤승이 잠깐 말을 멈추더니, 쓴웃음을 지었다.
“그런데도 너무 많은 도움을 받았거든요.”
윤승은 잠시 저번에 있던 일을 회상했다.
헌터를 사냥하는 헌터, 개구리를 검거했을 때의 일 말이다.
“기려 형은 제가 과거의 실패로 매몰된 삶을 살까 봐 걱정하셨던 것 같아요.”
“걱정?”
“그래서 어느 날, 직접 자신감을 찾도록 도와주시더라고요.”
“….”
“자기 몸 정도는 아무렇지 않게 희생해서요.”
이런 사람을 의심할 수 있겠어요?
이 말에 선우연은 반박할 수 없었다.
따지고 보면 자신도 비슷한 상황을 겪었으니까.
‘내가 능력을 쓸 수 있게 된 건, 그가 일부러 상처를 입어서였으니…….’
문득, 와이셔츠가 빨갛게 물들 정도로 출혈이 일어났던 그의 모습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회복약도 없어서, 김기려 헌터가 그대로 잘못될 줄 알고 내가 얼마나 걱정했는데.’
하지만 누가 그렇게까지 해서 스킬을 쓰게 해 달랬나?
그때 마음 졸인 걸 생각하면 다시 생각해도 괘씸하다.
그래서 선우연은 짜증 난 어조로 괜한 트집을 잡았다.
“글쎄요. 전 아직도 신뢰가 가지 않네요. 그 각성자는 게이트 안에서 어떤 헌터를 습격한 정황도 있거든요.”
이를 들은 안윤승은 혹시나 싶은 마음에 슬쩍 캐물었다.
“그거 혹시 백의 미로 때 말씀하시는 거예요? 정하성 씨 일이요.”
“……!”
“제가 알기에는 형님이 같은 헌터를 친 게 그것밖에 없거든요?”
같은 헌터를 쳤다니. 확신에 찬 말투다.
그럼 F급 따위가 랭킹 1위를 기절시켰다고 주장한 그 사건이 사실이었다는 건가.
“강창호의 사주, 뭐 그런 게 아니라 진짜 김기려 본인이 한 일이었다고요?”
선우연이 식은땀을 흘리며 말을 줄인다. 그러자 윤승이 부리나케 기려를 옹호했다.
“잠깐! 오해하지 마세요. 제가 전말을 알아요! 그거 정하성 헌터랑 싸운 게 아니라…….”
그는 굉장히 억울한 모습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안윤승 헌터의 입에선 사건의 해명이 흘러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