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ut-of-standard grade analyst RAW novel - Chapter 251
250화
-거절할 수 없는 제안 (3)
던전을 떠나기 전, 티타니아는 이현을 붙잡아놓고 허리에 손을 올린 채로 단단히 주의를 주었다.
“주인님, 절대 호구 잡히면 안 되는 거 알죠?”
“그놈의 호구, 호구 지겹지도 않냐?”
넌더리가 난다는 이현의 태도에 티타니아가 이현의 양 볼을 잡고 눈을 부라렸다.
“주인님이 제대로 했으면 제가 이렇게 잔소리 안 하죠!”
“어휴, 알겠다니깐. 저리 떨어져.”
10살 소녀 정도 되는 크기의 티타니아가 가까이 다가오자 부담이 된 이현이 얼른 그녀를 밀어냈다.
‘더 커지면 그땐 진짜 사람 같겠는데.’
키는 아이 수준이지만 몸의 비율은 성인이나 마찬가지라서 현재 티타니아의 모습은 사람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현은 티타니아가 앞으로 봉인이 더 풀리고 덩치가 커지면 진짜 인간 여성처럼 보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현은 그런 티타니아를 보며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작을 때가 대하기 편했는데.’
빛의 구체로 알짱거리며 잔소리할 때가 대하기가 편했다.
그동안 깐족대는 모습만 보여줘서 그렇지 티타니아는 예쁜 편 아니, 이아코스에 버금가는 미인이었다.
분명히 사람 크기로 커지면 이현도 대하기 어려워질 정도의 미인이 되리라.
“제 말 듣고 있어요?!”
“아파!”
잠깐 딴생각을 하는 이현의 코를 콱 비틀어 버린 티타니아가 쌍심지를 켰다.
“정신 차려요! 이번에 최대한 많고 격이 높은 물건을 내보내야 한다구요. 기억해요?”
“그래, 그래. 알고 있어. 그래야 던전 브레이크를 막을 수 있으니까.”
던전의 목적은 사념 에너지의 소모였다.
그걸 제대로 달성하지 못하면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나 던전 내의 몬스터들이 폭주하며 바깥으로 나가게 된다.
그걸 막기 위해서는 던전의 몬스터가 모두 죽든가, 다른 방법으로 사념 에너지를 소모해야 했다.
“이번에는 소모해야 할 사념 에너지가 너무 많아요.”
F급일 때는 다행히도 던전에 차오르는 사념 에너지의 양이 많지 않았다.
헌터들과의 전투에서 파괴된 던전 내 사물을 [초기화]로 복구하고 사념 에너지 결정 몇 개를 바깥으로 가져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했을 정도.
“[초기화] 좀 쓰게 전투라도 있으면 좋은데.”
“그걸로도 모자라요.”
티타니아가 고개를 저었다.
“그 정도로 됐으면 그냥 주인님이 던전을 부수고 [초기화]하면 그만이죠.”
“하긴.”
이제 그 정도 수준으로 소모할 사념 에너지가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 이현의 던전은 무려 C급이었다.
던전이 확대되고 등급이 올라간 만큼 소모해야 할 사념 에너지의 양도 늘어났다.
이제는 격 높은 물건들을 던전 밖으로 내보내야 했다.
예를 들면, 밖에서는 최상급 마석으로 불리는 사념 에너지 결정이라든가.
“최대한 많은 물건을 팔고 와야 해요. 단, 절대 호구가 되면 안 돼요!”
“알아. 나도 빈손으로 올 생각은 없거든.”
이미 골렘이라는 신무기를 점찍어 놓은 이현이었다.
던전의 힘을 강화하기 위해 그는 최대한 많은 걸 가져올 생각이었다.
* * *
오도일 저택의 회의실.
원탁에 둘러앉은 건 세 명, 이현, 패트릭, 릭 맥도일이었다.
그들의 앞에는 진한 향을 풍기는 커피잔이 하나씩 놓여 있었다.
“미안하군. 이 테이블엔 원래 각 집단을 대표하는 이들만 앉을 수 있거든.”
이현은 갱이나 마피아의 규칙이 마음에 들지 않았기에 얼굴을 찌푸렸다.
하지만 나진과 이아코스는 오히려 골치 아픈 이야기에 끼지 않아도 되는 것에 만족한 듯 재빨리 이현의 뒤로 가 서 있었다.
오히려 자리에 앉아서 당황하고 있는 건 릭이었다.
“나, 나는 왜? 팻이 대표 아니었어?”
“넌……, 아니다.”
패트릭이 잠깐 인상을 찡그렸지만, 곧 고개를 저었다.
‘귀가 재밌네.’
패트릭이 고개를 저을 때마다 고블린의 긴 귀가 펄럭이는 모습이나 릭이 기가 죽자 귀가 축 늘어지는 모습이 독특했다.
지금은 인간의 모습으로 의자에 앉아 있는 이현이 피식 웃자, 패트릭의 얼굴이 한층 더 일그러졌다.
“뭐가 재밌지?”
“아, 기분 나빴다면 미안. 잠시 다른 생각을 하느라고.”
이현이 손을 들어 사과했지만, 패트릭의 기분은 풀리지 않았다.
“여유가 넘치는 군, 아주.”
패트릭이 으르렁대더니 바닥에 퉤, 침을 뱉었다.
그 무례한 모습에 릭이 기함했다.
“팻! 무슨 실례야!”
“지금 내가 예의 따지게 생겼어?”
이현은 눈을 가늘게 뜨며 패트릭을 살폈다.
수척해진 얼굴, 눈에 띄게 어두워진 패트릭의 눈 밑을 보니 그동안 마음고생이 심했던 듯했다.
“마치 든든한 혈맹이라도 된 듯 굴더니 한 달이나 지난 뒤에야 찾아와선 뭐라도 된 듯 구는군?”
“팻!”
릭이 다시 패트릭을 말려 보았지만, 그는 신경도 쓰지 않은 채 이를 갈며 이현 일행을 노려보았다.
“그 한 달 동안 우리 동포들이 얼마나 죽어 나간 줄 알아? 그래 놓곤 뭐? 골렘을 내놓으라고?”
쾅!
패트릭의 주먹이 테이블을 내려쳤다.
“못 줘. 차라리 벼룩의 간을 빼먹지 그래? 너희도 오크나 트롤과 다름없는 놈들이군.”
패트릭이 토해내는 분노에도 이현은 표정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오히려 흥미롭다는 듯 입가에 옅은 미소를 띠고 그의 말을 잠자코 경청하는 중이었다.
대답은 릭이 대신해주었다.
“무슨 소리야, 팻! 최상급 마석도, 재료랑 돈도 다 보스 이현이 준 거라고.”
이현이 주고 간 최상급 마석이 아니었다면 2세대 엔진이 탄생할 수조차 없었다.
거기에 이현이 잔뜩 주고 간 청동 주괴로 골렘의 부품을 제작하고 남은 건 팔아서 다른 재료를 사들였다.
릭은 난처한 얼굴로 이현을 흘깃 보며 패트릭에게 속삭이듯 외쳤다.
“‘갓파더’는 보스 이현의 것이나 다름없어!”
“헛소리!”
하지만 패트릭은 귀를 펄럭이며 고개를 저었다.
“골렘은 우리 고블린 갱의 근본이야! 우리 거라고! 그걸 지금 저 인간들에게 넘기자는 거야?”
“하지만……!”
“하지만이고 나발이고! 내 말 똑똑히 들어, 릭.”
패트릭이 분노로 잔뜩 충혈된 눈으로 릭을 노려보았다.
“지금 우리에겐 골렘이 절실해. 동포들이 죽어가고 있다고. 그런데 네가 그 갓파더인지 갓마더인지 모를 그 골렘을 인간 탑승형으로 만들었단 말이야!”
인간의 신체에 알맞게 만든 ‘갓파더’의 조종석은 키가 작고 사지가 짧은 고블린이 조종할 수 없는 형태였다.
“네가 진짜 우리 동포라면 당장 고블린에 맞게 개조해. 어느 편인지 보여주란 말이야!”
“팻…….”
릭이 귀를 축 늘어뜨리며 패트릭을 보았지만, 패트릭의 이글거리는 눈은 변하지 않았다.
‘둘의 입장이 처음부터 달랐던 게 문제네.’
이현은 그런 둘을 보며 상황이 왜 이 지경까지 왔는지 알아챌 수 있었다.
릭은 고블린이긴 해도 결국엔 장인이었다. 고객이 부탁한 대로 물건을 만들어내는 장인.
반대로 패트릭은 갱, 그것도 갱단의 두목이었다. 그에게 가장 중요한 건 동료와 동포에 대한 의리였다.
거기까지 파악한 이현이 작게 손을 들었다.
“계산이 잘못됐어.”
“뭐?”
당장이라도 이현을 물어뜯을 것같이 으르렁대는 패트릭의 태도에 나진과 이아코스의 미간이 좁혀졌다.
“진정하는 게 좋을걸. 나는 참아도 내 동료들은 안 참을 거야.”
패트릭의 눈이 잠깐 나진과 이아코스에게로 향했다.
매섭고 차가운 눈으로 그를 쏘아보는 둘의 무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그날의 전투에서 똑똑히 본 패트릭이었다.
“…….”
“한결 낫네.”
이현은 인간의 몸에는 조금 작은 의자에 불편하게나마 등을 기대며 피식 웃었다.
“일단 릭에게는 잘못이 없지. 내가 의뢰하고 내가 제공한 재료로 물건을 만들었을 뿐이니. 이의 있어?”
“동포를 위한 물건을 만들어야 할 때였어. 이건 배신행위라고!”
패트릭이 다시금 고함을 지르자 죄책감으로 릭의 목이 움츠러들었다.
2세대 증기 엔진을 만들 수 있다는 생각에 정신이 팔려서 갱단을 위한 골렘을 뒷전으로 한 건 사실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릭을 슬쩍 본 이현은 어깨를 으쓱했다.
“그럴지도 모르지.”
이현의 동의에 릭의 고개는 숙여지다 못해 테이블에 이마를 박을 정도였다.
하지만 이어진 이현의 말에 그 고개가 불쑥 다시 올라갔다.
“그런데 패트릭, 넌 우리에게 빚이 있지 않나? 그것도 꽤 많아 보이는데.”
“…….”
패트릭의 입이 다물어졌다. 생명을 구해준 빚, 그리고 부상자들을 치료해 준 빚.
“그걸로 없던 일로 해주면 좋겠는데.”
“제길, 알겠어.”
패트릭이 이를 갈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것도 아니고 목숨값이었다. 허투루 넘길 수 없는 제안이었다.
“하지만, 이 이상은 없어. 다음 골렘은 고블린을 위한 것이어야 해.”
패트릭이 릭을 째려보며 말하자 릭이 난감한 표정으로 이현을 바라보았다.
“뭐야? 너 설마 또……!”
패트릭이 고함을 지르고 릭의 표정이 사색이 되려는 찰나, 이현의 손이 다시 올라갔다.
“릭은 당분간 내 의뢰로 바쁠 거야. 골렘은 포기해.”
“무슨 개수작이야!”
분노를 이기지 못한 패트릭이 자리를 박차며 이현에게 삿대질을 했다.
“너 우리를 망하게 하려고 작정한 거야? 오크랑 손을 잡은 거냐고!”
과격해진 패트릭의 행동에 나진의 몸이 움찔 앞으로 나가려고 했지만, 이현이 손을 들어 말렸다.
이현은 대신 싸늘한 눈빛으로 패트릭을 노려보았다.
“미리 말해두는데.”
“윽!”
은은하게 퍼져 나오는 이현의 격에 패트릭이 움찔했다.
“우리에겐 오크나 트롤, 오거, 고블린 다 똑같아. 우리가 너희 편을 들어줄 거라는 생각은 버려.”
이현은 잠깐 흘려보내던 격을 거두고는 커피 한 모금으로 목을 축였다.
‘으악, 뭐 이렇게 구려.’
현대 카페의 커피에 비하면 구정물에 가까울 정도의 맛에 이현이 인상을 찌푸렸다.
이현은 몰래 챙겨온 넥타르를 커피에 슬쩍 넣은 뒤 말을 이었다.
“우리가 너희와 거래하려는 건 ‘골렘’이라는 상품이 탐이 나서 그런 거지, 너희 전쟁에 함께하고 싶단 건 아니야.”
“우리가 팔지 않겠다면?”
“그러면 우리의 우수한 상품이 오크나 트롤에게 가겠지. 그 신형 총기처럼 말이야.”
이미 K2가 성이경의 던전에서 나온 던전의 상품이라는 걸 다들 짐작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현의 던전에서 나온 상품마저도 오크와 트롤이 가져간다면?
방 안의 고블린들의 표정이 새하얗게 질렸다.
릭이 이를 악물며 이현을 노려보았다.
“그렇게 놔둘 것 같아?”
“놔두지 않으면? 너희가 우릴 이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인간 세 명 정도는!!”
패트릭이 고함치며 품 안에 손을 집어넣는 순간이었다.
“윽!”
어느새 다가온 나진의 창날이 패트릭의 목젖에 닿아 있었고, 이아코스가 패트릭의 부하들을 향해 활시위를 당기고 있었다.
이현은 느긋한 미소를 지으며 패트릭을 바라보았다.
“한번 해보게? 장담하는데 너희로는 여기 있는 우리 셋도 이기지 못할걸?”
이현의 말은 허세가 아니었다.
고블린들에게는 총이라는 골치 아픈 무기가 있지만, 방탄 기능이 있는 UHS를 입고 있는 일행이라면 문제 될 게 없었다.
“그리고 우리가 언제 셋이라고 했지?”
총에 맞아도 싸우는 데 전혀 문제가 없는 구울 사우레노르 부대가 던전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그리고 디르케와 리코스가 거기에 포함된다면, 이현은 이 도시를 점령할 자신도 있었다.
“어때, 해볼래?”
“……내가 경솔했다. 사과하지.”
자신의 목에 닿은 애각창의 칼날을 보며 패트릭이 눈을 질끈 감으며 사과의 뜻을 표했다.
“받아들이겠어.”
이현의 말에 나진과 이아코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다.
패트릭은 목에서 창날이 사라지자 그제야 숨을 길게 내뱉었다.
“제길, 동화 속의 인간들은 이러지 않았는데.”
“아직도 동화를 믿어? 착한 어린이군.”
“풉!”
이현의 농담에 릭이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렸다가 패트릭의 눈치를 보곤 딴청을 부렸다.
패트릭은 그런 릭을 살짝 노려보았다가 다시 이현에게 말을 꺼냈다.
“우리가 골렘을 주면 뭘 줄 거지?”
“글쎄…….”
이현은 넥타르가 섞인 커피를 마시며 뜸을 들였다.
‘호구가 되면 안 돼요!’
아직도 귀에서 쨍 울리는 듯한 티타니아의 잔소리를 떠올린 이현이 코끝을 잠깐 찡그렸다.
이현은 넥타르가 섞여 한결 맛이 나아진 커피를 내려놓고 챙겨온 가방에서 무언가 하나를 꺼냈다.
“그건……?”
“총?”
패트릭과 릭 모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현이 테이블 위로 올려놓은 건 마혈소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