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ut-of-standard grade analyst RAW novel - Chapter 27
26화
-사우레노르(2)
키타이론산의 중턱.
던전 입구가 있는 동굴 앞에 도착한 건 해가 한창 높을 때였다.
“정찰병 열 명! 장비가 좋은 자들 우선으로 뽑겠소! 나머지는 밤을 새울 거점을 세울 것이오.”
이번 던전 공략을 담당한 이스메이아의 관리가 소리 높여 외쳤다.
장비가 우선이란 소리에 여기저기서 불만이 터져 나왔다.
“쳇! 글렀구만.”
“아냐, 내 장비라면 뽑힐지도 모르지.”
“아서라, 스펜도네(투석구) 하나로?”
빈민이 대다수인 공략 지원자들은 한 번이라도 던전에 더 들어가야 수당이 많이 나왔다.
그래서 정찰병에 뽑히길 원하는 이들이 많았다.
그들에게 추위와 밤을 피할 거점을 세우는 일 따위는 돈이 나오지 않는 중노동에 불과했다.
“내가 가겠소.”
담당 관리는 제일 먼저 지원한 리코스의 장비를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관리의 뒤로 걸어가 자리를 잡은 그를 보며 다른 헌터들이 수군댔다.
“나름 뛰어난 전사였다지? 지금은 그 좋은 장비도 팔아먹고 우리랑 별다를 게 없구만.”
“다를 게 없긴, 그래도 우리 장비에 비하면 하늘과 땅 차이지.”
실제로도 그랬다.
대부분 맨몸에 나무 끝을 날카롭게 만들어 불에 그슬린 목창 정도가 장비의 전부였다.
빈민들이 값비싼 청동 무기나 장비를 마련하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그나마 장비를 갖춘 이들이 돌을 날리는 슬링이나 수제활, 투창 등을 갖춘 정도였다.
그들은 나름대로 전투 경험도 있고 재산도 어느 정도 있는 전사들인데도 그 정도였다.
“암만 망해도 지주 나리였던 전사였는데 우리랑 같겠어?”
그에 비해 리코스의 장비는 다른 30여 명의 던전 공략 지원자들에 비하면 매우 훌륭했다.
청동 창과 군용 청동검인 파라조니온, 그리고 멧돼지 가죽을 겹 대어 만든 나무 방패.
‘예전 장비들은 고작 이 정도가 아니었었지만.’
당장 방패만 해도 당시에는 번쩍이는 청동으로 마감한 상등품을 들고 다녔었다.
쓸 만한 청동 각반과 투구도 있었다.
리코스는 그때보다 한참 질이 낮은 자신의 장비를 보고 감탄하는 동료들을 보며 쓰게 웃었다.
“당신은 안 되겠소. 들어가자마자 죽을 수도 있겠군.”
슬링을 들고 있던 수컷 사우레노르는 거절당하자 시무룩하게 돌아섰다.
보통의 전장에선 가볍고 장비가 빈약한 이들이 정찰병 임무를 수행하지만, 던전 공략은 달랐다.
“실망하지 마시오. 던전에서는 입장하자마자 몬스터에게 죽을 수도 있으니 당신에겐 행운일지도 모르지.”
반드시 돌아와 정보를 전해야 하는 정찰병들의 무장은 좋을수록 좋았다.
“열 명 됐군. 나머지는 진지 공사에 착수하시오!”
관리의 말에 나머지 지원자들이 투덜댔지만 어쩔 수 없었다.
정찰병들이 나오는 걸 기다리는 동안 밤이 오면 꼼짝없이 추위에 떨어야 하는 건 자신들이었다.
“정찰병들은 입장하시오. 아레스의 가호가 있기를.”
담당 관리가 전신이자 주신인 아레스의 성물을 들고 가호를 빌어주었다.
“갑시다.”
리코스를 비롯한 열 명의 사우레노르 정찰대는 던전으로 입장했다.
[던전에 입장합니다.]리코스는 선두로 게이트를 통과하자마자 방패를 높이 들어 전방을 가렸다.
원형의 대형 방패가 그의 상반신을 대부분 가려주었다.
리코스가 잠시 기다려보았지만, 당장 날아오는 공격은 없었다.
“바로 공격이 오지는 않는군. 들어오시오.”
리코스는 경계를 유지하며 게이트의 앞에서 비켜섰다.
남은 정찰병들이 하나둘씩 던전으로 입장을 완료했다.
“꽤 따뜻한 곳이군. 춥지 않아서 다행이야.”
“조금 습한데? 근처에 물가가 있나 보군.”
정찰병들은 사주를 경계하며 서로 속삭였다.
모든 정찰병이 입장을 마치고 주변에 아무것도 없는 걸 확인하자 리코스는 방패를 내렸다.
“큰 나무들이 많은 숲속이군. 산속인 것 같소.”
이스메이아는 평지 위에 세워졌고 주변은 초원이었다.
던전이 위치한 키타이론산은 관목 정도나 자라는 바위산이었다.
때문에, 던전의 무성한 숲을 보며 리코스는 공기의 상쾌함을 느꼈다.
“조를 나눠서 흩어집시다.”
리코스의 말에 정찰병은 2명씩 5조로 나뉘어 흩어지기로 했다.
한 조는 게이트 입구를 지키며 몬스터를 감시하고, 나머지 4조가 각 방향을 맡아서 던전 탐색에 나섰다.
* * *
“건물에서 나오지 말고 조용히 숨어 계셔야 합니다. 제가 연락할 때까지 나오지 마시구요.”
[알겠어요. 몸조심하세요. 오버]그 말을 마지막으로 무전이 끝났다.
공원 사람들에게 헌터들의 침입 소식을 전한 이현은 바로 움직이기로 했다.
“일단은 헌터들이 어떤 놈들인지 확인부터 해야겠어.”
“서둘러야 할 거예요. 게이트가 보이는 곳까진 좀 걸리니까요.”
바로 캠핑장 근처에 열렸던 저번과 달리, 이번 게이트는 캠핑장과 멀리 떨어진 곳에 열렸다.
던전 보스인 이현이 게이트의 위치를 지정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민아야 가자.”
이현은 민아와 스켈레톤들을 데리고 캠핑장을 떠났다.
목적지는 게이트가 내려다보이는 절벽이었다.
게이트와는 계곡물로 구분이 되어 있어 들키지 않고 정찰하기에 안성맞춤인 곳이었다.
“여기서 얌전히, 조용하게 있는 거야. 알겠지?”
“응!”
이현이 속삭이듯 말하자 민아도 마주 속삭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현은 민아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곤, 절벽 끝 수풀에 엎드려 몸을 숨겼다.
그리고 쌍안경을 들어 헌터들이 입장한 게이트 주변을 관찰했다.
오렌지색 비늘이 달린 거친 가죽, 땅에 끌리는 긴 꼬리, 그리고 파충류 특유의 장두형 머리.
“리자드맨이네요.”
티타니아의 말대로 이번 헌터들은 이족 보행을 하는 인간형 파충류, 리자드맨이었다.
이현은 흡혈종을 처음 보았을 때도 놀랐었지만, 옷을 입고 무기를 들고 있는 도마뱀 인간들을 보니 도저히 현실성이라곤 없는 존재처럼 느껴졌다.
“걸어 다니는 파충류라니…….”
“저들이 보기엔 털 없는 영장류가 더 신기할지도 몰라요.”
“그건 또 그렇네.”
티타니아의 말에 이현이 머쓱해져 어깨를 으쓱했다.
“무기는 흡혈종들과 비교하면 조악한 수준인데?”
간단한 창, 활 등이 눈에 띄는 전부였다.
방어구는커녕 옷도 하의를 대충 가리는 수준이었다.
‘그나마 저 헌터는 장비가 준수한 편이네.’
방패와 칼, 그리고 튼튼한 창이 돋보이는 헌터가 한 명 있었다.
“다행이야. 흡혈종들처럼 대단한 장비는 아닌 거 같아.”
흡혈종들은 재질을 알 수 없는 특수 전투복에 총기까지 가지고 있었다.
‘그런 무기들을 가진 헌터들이 다시 오면 지금 내가 막아낼 수 있을까?’
이현은 속으로 고개를 저었다.
한두 명이면 몰라도 10명이 넘는 순간 던전 내 모두가 몰살당할 확률이 높았다.
그에 비하면 저 도마뱀 인간들은 장비만을 보면, 아직까진 상황이 그렇게까지 나쁘지 않다는 것이 이현의 판단이었다.
“장비가 원시적이네요. 혹시 보이는 거라도 있어요?”
“아니, 너무 멀어.”
거리가 너무 멀어 분석안에 정보가 뜨지 않았다.
이현은 아쉬웠지만, 더 가까이 다가가는 것은 너무 위험했다.
“어? 움직이는데요?”
10명의 헌터는 2명씩 짝지어 사방으로 흩어지고 있었다.
그것을 본 이현의 눈이 가늘어졌다.
‘정찰을 나가는 건가?’
가는 방향을 고려해보면 그중 한 조는 캠핑장으로, 한 조는 공원 방향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중 장비가 좋은 헌터는 공원 쪽으로 가고 있었다.
“민아야, 여기서 기다려.”
이현은 스켈레톤들을 남겨 민아를 지키게 하고, 자신은 공원 쪽 헌터들을 쫓기로 했다.
* * *
리코스와 그의 동료인 여성 사우레노르는 계곡의 상류로 가기로 했다.
그녀의 주 무기는 투창이었다.
“좀 좋은 게 나와야 할 텐데. 인간은 영 쓸모가 없거든요.”
투창병 동료가 주변을 돌아보면서 말했다.
리코스는 인간을 비하하는 그녀의 말에 인상을 찌푸렸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던전으로 이익을 얻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였다.
몬스터를 잡아서 나오는 부산물과 던전 자체에서 나오는 부산물.
그녀의 말대로 인간 몬스터를 잡아서 얻을 수 있는 수익은 별로 없었다.
이스메이아에서도 인간이 존재했기에 희귀하지도 아닐뿐더러, 인간의 시체는 활용도가 낮았다.
“여긴 숲이 무성한 듯하니 좋은 목재를 얻을 수 있을 거요.”
“그래요? 내 눈엔 별로 특별할 건 없어 보이는데.”
“예전에 숙부를 따라 포이니케에 간 적이 있소. 거기서 좋은 나무들을 봤었는데 여기 나무들과 비슷하더군.”
“진짜예요? 이거 대박 냄새가 나네?”
그녀가 혀를 날름대며 숨을 크게 들이셨다.
돈이 된다는 소리에 흥분하는 그녀의 모습이 경박해 보였지만, 리코스는 그냥 무시하기로 했다.
‘사실 그럴 만도 하지.’
이스메이아 주변은 쓸 만한 목재를 구할 수 있는 숲이 드물었다.
대부분 포이니케에서 수입하던 질 좋은 건축용 목재가 나오면 크게 돈이 될 터였다.
땔감용 나무도 추위를 싫어하는 사우레노르에겐 항상 수요가 있는 좋은 상품이 되었다.
돈이 되는 던전은 추가 수당이 떨어질 확률이 높고 공략 후에도 노동자로 일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녀가 이렇게 흥분하는 거였다.
“난 메로페. 그쪽은 그 유명한 리코스죠?”
그녀는 손을 내밀었다.
리코스는 본 지 얼마 되지도 않은 메로페의 호의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잠시 고민에 빠졌다.
“아, 어렵게 생각할 거 없어요. 난 길바닥 소문은 신경 안 쓰니깐. 던전에 들어오면 내 눈과 직감만 믿거든.”
메로페는 어깨를 으쓱하며 리코스를 가리켰다.
“덩치도 좋은데 장비도 좋고, 한눈에 알아보는 식견. 던전 정찰병에게 가장 중요한 거 아니에요?”
그녀 역시 덩치는 좀 작더라도 길이 잘든 장비나 걸음걸이를 보면 어중이떠중이가 아니었다.
“반갑소. 잘해봅시다.”
리코스가 메로페의 손을 잡았다.
“누가 잘살던 양반 아니랄까 봐 말투 고지식하기는.”
메로페는 피식 웃으며 투창을 어깨에 턱 걸쳤다.
“갑시다.”
한편, 캠핑장 방향으로 향하던 정찰조는 별다른 일 없이 캠핑장을 발견했다.
“몬스터는… 인간이군.”
정찰병 중 하나가 꽤 떨어진 공터에 있는 몬스터를 확인했다.
공터에는 요상한 천막들이 세워진 야영지가 있었고 인간들은 그 주변을 배회하고 있었다.
“이곳의 인간은 키가 꽤 큰데? 우리보다도 크겠는걸.”
“골격도 좋아. 우수한 종일 수도 있어.”
이스메이아의 인간 노예들은 열악한 취급 때문에 잘 먹지 못해 키가 작은 편이었다.
그에 비해 던전의 인간들은 평균적으로 사우레노르보다 머리가 하나는 더 컸다.
정찰병 중 제일 덩치가 큰 리코스보다도 더 큰 인간들도 보였다.
“쳇, 그래 봤자 인간이야.”
“그건 그렇지.”
용의 피를 이었다고 자부하는 사우레노르들의 신체조건은 인간의 능력을 훨씬 뛰어넘었다.
그들의 인간 노예들이 부당한 취급과 신분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도 그 때문이었다.
“저기 인간들 좀 이상하지 않아?”
“뭐가? 피부색이 좀 이상하긴 하다만.”
이스메이아의 인간 노예들은 백인종이지만 땡볕에서 일하기 때문에 대부분 구릿빛 피부였다.
때문에, 던전의 인간 몬스터들의 짙은 회색에 가까운 피부는 그들에게 낯설었다.
“몬스터라서 그런 거 아냐?”
“……그런가?”
그때였다.
인간 몬스터 하나가 발이 천막에 걸려 넘어졌다.
정찰병들이 비웃고 있는 동안 꾸물거리며 일어난 인간의 몸에는 상처가 나 있었다.
그리고 그 상처에는 검고 진득한 피가 흐르고 있었다.
“봐, 봤어?”
“무슨 피가 저래?”
정찰병들은 어린 시절, 동네 노인의 입에서 흘러나왔던 섬뜩한 전설을 떠올렸다.
장례 없이 들판에 버려진 시신이 어느샌가 일어나 산 자를 덮치는 괴물이 된다는 이야기.
“망했어. 네크로트로모스다!”
“걸어 다니는 시체? 나팔 불어!”
정찰병은 뿔피리를 크게 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