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ut-of-standard grade analyst RAW novel - Chapter 355
354화
-협상의 기술(4)
“이게 오냐오냐해줬더니만,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고 기어오르네.”
티타니아의 입에서 쏟아지는 폭언에 회담장 안의 모두가 얼어붙었다.
“누가 니 멋대로 내 이야기를 떠들어도 된다고 했어? 아가리를 그냥 확 찢어 버릴까?”
“…….”
방금까지 기세등등했던 포뢰선이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아니, 갑자기 태도가 바뀐 티타니아를 보는 그의 눈빛에는 약간의 두려움까지 담겨 있었다.
“대답 안 해? 진짜 찢어줘?”
“아, 아니다.”
“그런데 왜 말을 했을까? 니들이 부추겼냐?”
이번에는 티타니아의 시선이 다른 십이선을 향했다.
“아, 아닙니다!”
“저, 절대 그런 적 없어요. 믿어주세요.”
포뢰선뿐만이 아니라 모든 십이선이 티타니아와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벌벌 떨고 있었다.
심지어 몸이 광석 덩어리인 탁부 선인은 하도 떨어댄 탓인지 몸에서 금속 부스러기가 떨어져 내릴 정도였다.
“너희 아까 말 잘하더라? 예전에 내 앞에선 입도 뻥긋 못하던 것들이 뭐 레시피를 내놔라, 제작자를 내놔라. 니들이 강도냐? 깡패야?”
“…….”
“내가 니들 그렇게 가르쳤냐? 아주 나 없는 사이에 신명이 나셨나 봐? 눈에 뵈는 게 없지?”
“아닙니다!”
“아니긴 뭐가 아니야. 그럼 여기가 안이지 밖이냐? 다시 예전처럼 눈이 땅바닥만 향하게 만들어줘? 어?”
폭풍처럼 몰아치는 티타니아의 폭언에 우주에서 가장 위대하다는 총관의 직속 부하들이 입도 뻥긋 못하고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이현도 당황해서 말이 안 나오는 건 마찬가지였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지?’
티타니아가 총관의 오른팔 위치에 해당하는 존재라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앞에서 같은 직속 부하들인 십이선이 기도 못 펼 정도로 티타니아가 높은 위치일 거라곤 생각도 못 했었다.
‘아니, 이 정도로 높은 위치였으면 그냥 시간 조절 장치를 빌려오면 되는 거 아냐?’
이현이 황당해하는 동안에도 티타니아의 갈굼(?)은 끊이질 않았다.
“내가 지금 던전 도우미로 있다고 해도 그렇지. 선이란 게 없네, 아주? 그렇게 넘을 거 다 넘으면서 살 거면 저승길도 넘어보지 그래?”
“잘못했습니다!”
“잘못한 걸 아는 놈들이 그러냐? 어?”
티타니아의 갈굼이 길어지자 결국 참지 못하고 폭발한 이도 있었다.
“너무한 거 아닙니까!”
“오호?”
고개를 홱 쳐드는 적라를 보는 티타니아의 눈이 가늘어졌다.
“안 그래도 너 아까부터 내가 계속 지켜보고 있었다.”
“…….”
“뭐? 말해봐. 얼마나 대단하시길래 대드나 한번 들어나 보자.”
“……큭!”
티타니아의 말에 잠깐 주저하는 적라였지만, 곧 용기를 얻은 듯 입을 열었다.
“분명히 던전 도우미 입장으로 오셨다면서요! 왜 간섭하시는 겁니까!”
“마, 맞다! 이건 부당하다!”
“도우미 역할만 수행해 주세요!”
적라는 동료들이 동의해주자 용기를 얻은 듯 목소리를 키웠다.
“그리고 티타니아는 예전의 잘못으로 봉인되어서 이젠 십이선의 우두머리가 아니지 않습니까. 왜 참견하시는 겁니까!”
“참견? 차암견?”
“힉!”
티타니아의 표정이 구겨지자 적라가 놀라서 숨을 들이켰다.
“내가 언제 이 회담에 참견했냐?”
“아, 아니요.”
“포뢰선 저 새끼가!”
“히이익!”
“내 사생활을 까발리고 다니는데! 내가 참아야겠냐고!”
와장창!
티타니아가 소리치는 것만으로도 테이블 위에 놓여 있던 온갖 것들이 사방으로 날아가 박살이 났다.
십이선 중 몇 명은 비명을 지르며 머리를 감싸 쥐기까지 했다.
‘제길, 저 또라이는 성격 그대로네.’
적라가 소매를 들어 얼굴을 가리며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
십이선의 수장이었을 때 티타니아에게 두들겨 맞았던 일을 떠올리면 아직도 이가 갈렸다.
티타니아가 봉인되어 십이선의 자리에서 떠나지 않았다면, 아직도 그녀에게 맞고 살았을 터.
유독 그녀에게 많이 맞았던 적라는 티타니아가 봉인되었을 때 가장 기뻐한 이들 중 하나였다.
‘잠깐만, 내가 왜 겁을 먹고 있지? 지금 봉인된 상태잖아?’
티타니아의 그 무서운 힘도 봉인되었다는 것을 생각해내자 적라가 자신만만하게 고개를 들었다.
“이제는 못 참아! 나도 십이선이라고! 봉인 당한 당신한테 더는 맞고 살지 않을 거어억!”
적라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거대해진 티타니아의 주먹이 그의 주둥이를 사정없이 후려갈겼다.
“주인님이 봉인 풀어주신 지 오래거든?”
“머, 머하오(뭐라고)?”
봉인이 풀렸다는 소리에 놀란 적라가 이가 왕창 부서져 새는 발음으로 더듬거렸다.
“오냐, 그 십이선이 얼마나 대단한지 내가 오랜만에 점검 좀 해줄게.”
그 뒤, 티타니아가 적라를 매질하는 소리가 한동안 회담장에 울려 퍼졌다.
* * *
“흠, 한차례 소란이 있었네요.”
“…….”
“어머, 너무 걱정하지 마시길. 저는 다시 도우미로 돌아갈 테니까요. 호호호.”
무지막지한 폭력에 이미 기절해 말이 없는 적라를 제외한 모두가 고개를 황급히 끄덕였다.
이현은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돌아오는 티타니아를 보며 황당한 표정으로 속삭였다.
“야, 너 성깔 좀 있다?”
“봤어요? 헤, 헤헤.”
이제 와서 부끄러운지 얼굴을 붉히는 티타니아였지만, 그녀가 해놓은 것들을 보면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뭐, 자세한 사정은 나중에 돌아가서 들을게.”
“……네.”
티타니아가 십이선의 수장이었다는 것. 그리고 티타누스의 딸이자 동반자였다는 것.
그녀에게 들어야 할 이야기는 많았지만, 아직 회담 중이었다.
이현은 아직 공포가 가시지 않은 얼굴의 십이선을 보며 입을 열었다.
“다시 본래의 주제로 돌아와서, 이미 저는 제 능력을 증명했습니다.”
“…….”
“티타누스의 힘을 제가 가지게 된 경위에 대해서 잠깐 소란이 있었지만, 그게 중요한 건 아니겠죠. 안 그렇습니까?”
“그건 몹시 중요한 일이다.”
“여러분께는 그럴지 몰라도 저에겐 아닙니다. 제게는 검은 고양이든 하얀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되니까요.”
“…….”
“제가 이 능력을 어떻게 얻었든 사도의 알을 소멸시킬 수 있다는 것만 확실하면 되는 거 아닙니까?”
여전히 포뢰선은 불만스러운 표정이었지만, 티타니아가 쓰읍 하고 미간을 구기자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고 해두지.”
끝까지 소심한 반항을 하는 포뢰선이었지만, 그 정도는 상관없었다.
이현은 씨익 웃으며 자신의 목적을 말했다.
“그러면 제가 시간 조절 장치를 빌리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겠군요.”
“…….”
“시간 조절 장치를 제게 빌려주신다면 다른 사도들도 잡아드리죠. 그게 총관님과 저의 계약이었으니까요.”
총관과의 계약을 입에 담자 십이선들이 다시 움찔했다.
이현은 그런 그들을 보며 히죽 웃었다.
“모르고 계셨습니까? 티타니아, 말 안 했어?”
“설마요. 분명히 말했죠. 매를 들지 않으면 말을 안 듣는 무식한 것들이 까먹었겠죠.”
티타니아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십이선들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아니면 총관님의 말조차도 무시했거나.”
“그건 아니다.”
총관을 무시했다는 오해가 생길 것 같아지자 포뢰선이 입을 열었다.
“우리는 바쁘신 총관님을 대신해 확실히 자격이 있는지를 점검해보고자 했을 뿐이다.”
‘감히 너희 주제에?’라는 표정을 지어 보였지만, 티타니아는 던전 도우미라는 입장으로 되돌아간 터라 더는 입을 열지 않았다.
대신 이현이 입을 열었다.
“그럼 증명이 된 상황이니 시간 조절 장치를 빌려주시겠습니까?”
“안 된다.”
포뢰선이 고개를 저었다.
이현이 눈을 가늘게 뜨며 되물었다.
“왜죠?”
“네가 티타누스의 힘을 가지고 있고 사도의 알을 소멸시킬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건 잘 알았다.”
“그럼 된 거 아닙니까?”
“하지만 그걸로는 모자라다. 시간 조절 장치는 곧 있을 전쟁을 위한 준비 과정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물건. 그걸 빼는 순간 전쟁 준비에도 차질이 생긴다.”
포뢰선의 말에 이현이 티타니아를 바라보았다.
그 모습에 포뢰선이 흠칫했지만, 티타니아는 난처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저 말이 맞아요. 전 우주에 퍼져 있는 총관님의 세력이 하나가 되어 전쟁을 준비하려면 시간 조절 장치가 많이 필요해요.”
“그, 그렇다. 절대 주기 싫어서 그러는 것이 아니다.”
혹시라도 티타니아가 오해할까 봐 포뢰선이 황급히 덧붙였다.
‘티타니아가 빌리지 못한 이유가 있었네.’
그 대단한 십이선도 고개를 들지 못하는 티타니아였지만, 큰 전쟁을 앞둔 상황에서 전략 물자를 빼낼 수는 없었다.
이현은 잠깐 한숨을 내쉬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시간 조절 장치를 빌려주시면 제가 사도를 해치워드릴 겁니다. 최소 두 마리, 많으면 세 마리가 되겠죠.”
할당량을 채우기 위해 총관과 물리치기로 계약한 사도는 총 두 마리.
거기에 차후에 지구로 돌아가 물리칠 지구의 사도까지 치면 세 마리나 되었다.
“36마리의 사도 중에서 제가 이미 물리친 사도가 두 마리, 앞으로 물리칠 사도가 세 마리면 전쟁에 큰 도움이 되는 거 아닙니까?”
“그 말은 맞다.”
이현의 말에 포뢰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아직도 대부분의 사도가 남아 있지. 그리고 가장 끔찍한 벌레 신이 남아 있고.”
“…….”
벌레 신의 이름이 나오자 이현도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시간 조절 장치를 함부로 빌려줄 수 없는 것이다.”
“곤란하군요.”
이현이 미간을 구겼다. 지금도 지구는 벌레 신의 무리에 의해 파괴되고 있을 터.
시간 조절 장치를 빌리지 못한다면 결국, 이현이 손을 쓰기 전에 멸망하게 될 것이다.
누다르에 의해 먹혀 버린 아웃랜드처럼.
‘그렇게는 안 된다.’
이현은 암석 덩어리만 남아 우주 공간에 둥둥 떠다니던 아웃랜드를 떠올리곤 눈을 질끈 감았다.
“도저히 방법이 없는 겁니까?”
“……하나 있긴 하지.”
포뢰선이 잠시 뜸을 들이다 입을 열었다.
“총관님이 보관하고 계신 두 개의 사도의 알. 그걸 네가 방금처럼 없애준다면, 전쟁 준비에도 여유가 생길 거다.”
규격 외의 힘 없이 사도의 알을 소멸시키는 것은 많은 에너지와 물자가 소모되는 일이었다.
그걸 이현이 대신해준다면, 그만큼의 여력을 전쟁 준비에 쏟을 수 있고, 시간 조절 장치를 이현에게 빌려줄 여유가 생길 터.
이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겠습니다.”
“오늘 들은 말 중에 가장 반가운 소리군.”
말만 그런 것이 아닌지 십이선의 얼굴이 모두 밝아졌다.
전쟁 준비를 지휘하고 담당하는 건 다름 아닌 십이선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럼 당장 지금이라도 사도의 알을…….”
서둘러 몸을 일으키려는 포뢰선의 말을 이현이 손을 들어 끊었다.
“시간 조절 장치가 먼저입니다.”
“뭐?”
포뢰선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지만, 이현은 고개를 저었다.
“사도의 알을 소멸시키는 데에는 규격 외의 힘이 꽤 많이 듭니다. 저는 방금 하나를 없앴구요.”
지금 이현의 중단전은 텅 빈 상태였다.
시간이 지나면 규격 외의 힘이 돌아오긴 하겠지만, 당장은 어려웠다.
“그럼 회복이 되는 대로 사도의 알을…….”
“그것도 안 됩니다.”
“이익!”
이현이 다시 말을 끊자 포뢰선은 분노를 터뜨리려 했지만, 티타니아의 차가운 얼굴을 보고 꾹 참아냈다.
분노를 꾹꾹 눌러 담고 있는 포뢰선에게 이현이 다시 입을 열었다.
“시간 조절 장치가 먼저입니다. 그래야 제가 한시라도 빨리 사도를 없앨 수 있습니다.”
“…….”
“어차피 전쟁은 수십만 년 뒤 아닙니까? 급한 사람이 먼저 쓰도록 하죠.”
“어쩔 수 없군.”
포뢰선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말이 옳아서 먼저 내어주는 것이다. 절대!”
포뢰선의 시선이 티타니아에게 살짝 향했다가 순식간에 돌아왔다.
“다른 누군가가 무서워서 그러는 것이 아니란 말이다. 알겠나?”
“뭐, 그런 걸로 하시죠.”
이현은 피식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티타니아, 고맙다.’
좋은 협상을 이끌기 위해서 준비한 게 많았지만, 그중에서 가장 최고의 카드는 다름 아닌 티타니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