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ut-of-standard grade analyst RAW novel - Chapter 359
358화
-임독양맥(2)
“잘 결정했다.”
소현 진인은 망설임이 사라진 이현의 얼굴을 보며 빙그레 웃었다.
“그리고 걱정하지 말아라. 네 사부가 누구냐? 내공의 창시자란다. 내가 직접 해주는 데 목숨이 위험할 일은 없을 거란다.”
“……네?”
성공률 100%라는 소현 진인의 말에 이현이 벙찐 표정으로 입을 벌렸다.
“그러면 왜 그런 말씀을…….”
“네 각오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단다. 그리고….”
소현 진인의 눈가에 주름진 웃음이 떠올랐다.
“제자를 놀려먹는 재미가 있어서?”
“참 재밌기도 하시겠습니다.”
자기가 놀림당했다는 것을 깨달은 이현의 입이 부루퉁해졌다.
겉보기엔 노인이었지만, 막내는 막내인 모양이었다.
* * *
“휴, 말은 그렇게 했지만, 몸에 쌓아놓은 선기가 많으니 어려운 작업이었어.”
생사현관이 타통 되자마자 잠든 이현을 보며 소현 진인이 소매로 땀을 닦아내었다.
십이선이 되고 처음으로 흘려 보는 육체의 땀이었다.
“대체 얼마나 많은 선기를 쌓아놓았으면…….”
생사현관을 타통하자마자 마치 수문이 터진 댐처럼 어마어마한 양의 선기가 임독양맥으로 몰려들었다.
사태를 파악한 소현 진인이 기절한 이현을 대신해 서둘러 소주천을 시켜주지 않았더라면, 이현의 기맥이 모두 터져 불구가 되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 덕에 어마어마한 내공이 생기겠구나. 허허, 이것도 복이로다.”
소현 진인이 수염을 쓸어내리며 웃음을 터뜨렸다.
여태껏 모였던 선기를 단전에다 쌓아놓았고, 기절한 지금도 내공이 순환되며 선기가 이현의 단전으로 쌓이고 있었다.
“이젠 갑자 단위로 내공을 헤아려야겠구나.”
손가락을 꼽던 소현 진인이 감탄한 얼굴로 고개를 저을 정도였다.
그런 소현 진인의 뒤에서 얼굴 하나가 빼꼼 나왔다.
“문제없는 거죠?”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티타니아 공.”
아직 살짝 티타니아를 두려워하는 기색이 보였지만, 그녀가 진심으로 이현을 걱정하고 있다는 것을 알기에 소현 진인은 미소를 띠며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은 님이 하셔야죠. 만약에 주인님한테 문제가 있으면 십이선이 십일선이 될 테니까요.”
“…….”
“아, 십이선 전에 이름이 위닝 일레븐이었던가? 누구야? 그런 이름 지은 놈이.”
“……저는 아닙니다.”
소현 진인은 차마 그 이름을 지은 게 적라라는 말은 하지 못하고 식은땀만 주룩 흘렸다.
바싹 긴장한 소현 진인을 보며 티타니아가 배시시 웃어 보였다.
“장난이에요. 내가 주인님의 사부를 설마 죽이기야 하겠어요?”
“허, 허허. 역시 그렇지요?”
“뭐, 죽기 직전까지 패놓을 수는 있겠지만.”
“…….”
다시 말이 없어진 소현 진인은 무시하고 티타니아는 잠들어 있는 이현의 앞머리를 정리해주었다.
“으이구, 맨날 살아남겠다고 하면서 죽을 고비는 혼자 다 넘긴다니까.”
그렇게 말하는 티타니아의 표정은 안타까움에 물들어 있었다.
“도와달라고 한마디만 하면 내가 본모습으로 도와줬을 텐데.”
“하오나, 티타니아 공. 그건…….”
“하……. 알고 있어요. 적에게 내 정체를 들키면 주인님이 위험해진다는 걸.”
총관의 최측근인 티타니아를 잡기 위해 벌레 신이 총력을 동원할 수도 있었다.
사도도 겨우 잡는 이현에게 그건 너무나도 큰 위험이었다.
티타니아는 한숨을 깊게 내쉬더니 날카로운 눈으로 소현 진인을 노려보았다.
“적한테는 못 해도 아군한테는 가능한 거 알죠? 이제 십이선도 주인님한테 제가 붙어 있다는 걸 알 테니 처신 잘해요.”
티타니아가 손가락을 들어 소현 진인을 가리키며 으스스한 미소를 입가에 떠올렸다.
“선 넘어서 꼴 받게 하지 말구요.”
“…….”
“특히 시간 조절 장치에 허튼짓하기만 해봐. 아주 그냥…….”
“여부가 있겠습니까.”
이현에게는 근엄한 스승이었던 소현 진인이 어쩔 줄 몰라 하며 티타니아에게 고개를 숙였다.
“그럼 저는 이만 물러가 보겠습니다.”
“벌써 가게요? 주인님 깰 때까지 기다리지 않구요?”
티타니아의 만류에 잠시 식은땀을 흘리던 소현 진인은 이현을 바라보더니 눈가에 주름을 만들며 웃었다.
“이미 전할 건 다 전했습니다. 명석한 아이이니, 혼자서도 대성할 겁니다.”
“그럼요. 누구 주인님인데.”
“…….”
더 말을 말자는 표정을 잠시 지은 소현 진인이 회담장을 떠나려는 때였다.
“잠깐만요.”
티타니아가 가려는 소현 진인을 불러 세웠다.
“무슨 일이십니까? 티타니아 공?”
“주인님이 이거 챙겨주랬어요.”
티타니아가 고급 와인 병에 담긴 넥타르를 꺼내 들며 말했다.
이현이 티타니아에게 미리 준비해놓으라고 일러둔 최상급 넥타르 마고였다.
마고가 찰랑대는 병을 본 소현 진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다들 이거에 눈독 들이던데. 맞죠?”
“그, 그렇습니다. 이 귀한 걸…….”
티타니아가 건네주는 병들을 소중히 품에 안은 소현 진인이 감격한 듯 목소리를 떨었다.
그 모습에 티타니아가 피식 웃었다.
“원래 주인님은 한 명당 한 병씩, 총 열두 병을 주려고 했어요. 그러다 마음을 바꿨죠. 왜 그런 줄 알아요?”
“모르겠습니다.”
네 병을 받은 소현 진인이 고개를 젓자 티타니아가 키득대더니 그의 귓가에 속삭였다.
“주인님이 전해주래요. ‘원래 물건은 적을수록 그 가치가 올라가는 법’이라구요.”
“……!”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던 소현 진인이 눈을 크게 떴다.
그리고 만족한 듯 그의 눈이 초승달처럼 휘었다.
“가치 있는 물건을 쥐고 흔드는 자가 힘을 얻는 법이지요.”
“이해가 빨라서 좋네요.”
즉, 이현은 일부러 인원보다 적은 수의 넥타르를 소현 진인에게 건넸다.
그것은 십이선 모두가 갈구하는 넥타르 마고를 누구에게 주느냐가 소현 진인에게 달렸다는 소리.
‘모두가 이 넥타르를 얻기 위해 내게 잘 보이려 애쓰겠구나.’
특히 식물형인 목염 선사와 연화 성모는 넥타르를 얻기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터였다.
이현은 그동안 막내라서 구박받던 스승에게 일종의 무기를 쥐여준 것이었다.
‘못난 스승이라 제자에게 얻어가는 것이 더 많구나.’
소현 진인은 잠들어 있는 이현에게 포권의 예를 취했다.
“고맙구나.”
* * *
소현 진인이 떠나고 꼬박 3일이 지난 후에야 이현이 눈을 떴다.
이현은 게슴츠레 뜬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더니 잠긴 목으로 겨우 목소리를 내었다.
“사부님은 가셨어?”
“일어나자마자 찾는 게 그 수염 난 막내예요?”
3일 동안 곁에서 이현을 간호하고 호위를 섰던 티타니아가 기가 찬다는 듯 투덜거렸다.
이현은 그런 티타니아를 보며 영문을 몰라 얼굴을 찌푸렸다.
“넌 또 왜 그래?”
“흥!”
이현의 물음에 티타니아는 입을 삐죽이며 콧김을 세게 내쉴 뿐이었다.
“아, 몰라요. 그 막둥이는 서둘러 갔어요.”
“그래?”
이현이 아쉽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여러 가지로 더 배우고 싶은 게 많았는데…….”
그도 그럴 것이, 임독양맥이 타통 된 이후로 이현의 몸에 생겨난 변화들이 너무나도 놀라웠던 것이다.
딱히 가부좌를 틀고 운기조식을 하지 않아도 임독양맥을 소주천 하는 내공의 흐름이 지금도 느껴지고 있었다.
‘거기다 쌓인 내공이 어마어마하다.’
그동안 이현의 몸에 쌓여 있던 선기가 단전에 그득그득 들어차 있었다.
아니, 하단전에 쌓인 내공은 이미 가득 차올라서 포화에 가까웠다.
그리고 그 내공은 하단전을 벗어나서 중단전으로 향하고 있었다.
‘잠깐, 그러면 규격 외의 힘은 어디로 간 거지?’
이현은 서둘러 눈을 감고 규격 외의 힘을 끌어내 보았다.
“으윽!”
머리를 스치는, 뼛속까지 얼어붙을 정도로 시린 기운에 놀란 이현이 신음을 흘렸다.
규격 외의 힘이 흘러나오는 곳은 기존의 중단전이 아닌 바로 머리였다.
“설마……?”
머리를 스치는 고통에 놀란 것도 잠시, 이현의 얼굴에 희열이 차올랐다.
“……상단전이 열렸구나.”
아직 상단전이 전부 열린 것은 아니었다.
규격 외의 힘 중 대부분은 중단전과 상단전 사이에 남아 있었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상단전이 열렸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이게 진짜 소현공의 조화로구나.”
앞으로 중단전을 단련하고 상단전을 온전히 열게 되면 소현 진인이 말했던 극상승의 경지도 꿈은 아닐 터였다.
“어휴, 하여튼 남자들이란.”
상승의 경지에 도달한 이현이 싱글대는 모습에 티타니아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러곤 이현의 품에 책자 하나를 툭 던졌다.
“여기요. 소현 진인이 남기고 간 거예요.”
이현은 사부가 남기고 갔다는 책자를 서둘러 펼쳐 보았다.
「시간이 별로 없어 급하게 몇 자 적고 떠난다.
이 책에는 중단전과 상단전을 단련해 삼화취정과 오기조원에 이르는 법이 담겨 있다. 잘 익히도록 해라.
네 재능과 노력, 그리고 재치 있는 머리라면 꼭 대성할 수 있을 것이다.」
‘재능이라니.’
이현은 처음 듣는 칭찬에 저도 모르게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리코스에게 처음 훈련을 받을 때도 들어본 적이 없는 칭찬이었다.
‘나진 누나의 재능이 너무 사기였으니까.’
그렇게 생각했던 이현이었지만, 진짜 사부로 모신 이에게 재능이 있다고 들으니 기분이 절로 좋아지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찰칵!
“뭐야, 너 뭐 찍어!”
“뭐긴 뭐예요. 혼자 히죽히죽 웃는 주인님이죠.”
“야! 그거 안 지워?”
“나진 양이랑 민아 양한테 보여줘야지. 히히히.”
“야!”
전 우주 위에 군림하는 십이선도 꼼짝을 못 하는 던전 도우미와 그 주인의 체통 없는 쫓고 쫓기기가 한참이나 벌어졌다.
“헉, 헉, 이게 까불고 있어.”
티타니아에게서 겨우 빼앗은 스마트폰 속의 사진을 지우며 이현이 눈을 부라렸다.
이미 이마에 꿀밤을 몇 차례나 얻어맞은 티타니아는 눈에서 눈물을 쏙 빼는 중이었다.
“뭐야, 강해지고 나서 더 아파졌어. 이건 사기예요!”
“그러게 누가 맞을 짓을 하래?”
“십이선도 나한텐 한주먹거리가 안 되는데 대체 왜 아픈 거지?”
진심으로 아프다는 듯 정수리를 문지르는 티타니아를 보며 이현이 피식 웃었다.
“규격 외의 힘이 괜히 규격 외겠냐?”
“……그 힘을 불쌍한 도우미 꿀밤 놓는 데 사용하는 사람은 주인님뿐일 거예요.”
기가 막힌다는 듯 중얼거리던 티타니아가 잠시 입을 다물었다.
갑작스러운 그녀의 변화에 이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티타니아?”
“주인님, 드릴 말씀이 있어요. 규격 외의 힘과 제 정체에 대해서요.”
이현이 그녀를 처음 만난 이후로 한 번도 본 적 없는 진지한 표정이 티타니아의 얼굴에 떠올라 있었다.
“사실 티타누스는 제…….”
“거기까지.”
비장한 표정으로 입을 열려는 티타니아의 말을 이현이 손을 들어 끊었다.
“주인님?”
“굳이 억지로 말할 필요는 없어. 네가 말하고 싶을 때 말하도록 해.”
이현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네가 누구냐가 중요한 게 아니거든.”
“……정말요?”
“내가 너 선택했을 때 기억 안 나?”
이현의 말에 티타니아가 진지한 표정을 풀며 피식 웃었다.
“악연도 보통 악연이 아니었죠.”
자기를 고르면 후회할 거라고 빽빽 소리를 치던 티타니아와 도박에 가까운 심정으로 그녀를 골랐던 이현.
“봉인이 풀리면 S급이 될 거라고 해서 골랐더니 사도를 한 마리 잡아야 봉인이 풀릴 줄 누가 알았겠어.”
“흥! 그건 제가 할 말이거든요? 봉인 풀어준다고 해서 계약했는데 너무 오래 걸린 거 알아요?”
“말 다 했냐?”
“다 했는데요!”
잠시 서로를 노려보던 이현과 티타니아가 참지 못하고 풉 웃음을 터뜨렸다.
한참을 웃던 이현이 티타니아의 어깨를 두드리며 입을 열었다.
“어쨌든 네가 누구의 딸이거나 동반자인 건 중요하진 않아.”
“…….”
“지금껏 해왔던 대로 나를 도와주고 함께해 주면 된다. 알겠냐?”
“……네. 주인님.”
이현의 눈에 비친 티타니아는 더없이 빛나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