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ut-of-standard grade analyst RAW novel - Chapter 444
443화
-다가오는 운명(4)
데몬 술탄, 심연의 주인, 끓어오르는 삼라만상의 거품.
세상의 모든 진리를 알고 있다는, 현존하는 사도 중의 최강자 이븐 자토스가 던전 마켓에 내려섰다.
지구를 5번은 휘감을 정도의 길고 거대한 검은 용은 블랙홀 한가운데 부유해 있는 던전 마켓의 땅덩어리를 마치 먹이를 감듯 둘둘 감았다.
그리고 목을 길게 솟구쳐 올리고 고함을 내질렀다.
[―――――!]형언할 수 없는 공포의 외침이 던전 마켓 안에 울려 퍼지며 곳곳의 건물이 그 충격만으로도 무너져 내렸다.
지식상회의 건물도 예외는 아니었다.
콘크리트나 철근 따위로 만들어진 건물들과는 비교를 불허하는 상급의 격을 지닌 건물이 마치 모래성처럼 무너져 내렸다.
이 모든 것이 이븐 자토스의 외침 하나로 이루어진 일이었다.
“퉤, 퉤.”
던전 마켓의 모든 건물이 무너져내리며 피어오른 거대한 먼지구름 사이를 뚫고 나온 티타니아가 입안에 들어간 먼지를 뱉어냈다.
[오랜만이군, 티타누스의 딸.]먼지구름이 가라앉자 지네를 닮은 거대한 용, 이븐 자토스가 티타니아를 보며 반가움을 표했다.
진득하고 농후한 사기를 잔뜩 닮은 이븐 자토스의 환대에 티타니아가 얼굴을 딱딱히 굳혔다.
“그때 단단히 박살을 내줬는데, 용케도 살아 있었네.”
티타니아와 이븐 자토스는 오랜 악연을 지닌 관계였다.
그녀가 아군에게까지 피해를 줄 정도로 날뛰게 만든 사도가 바로 이븐 자토스였었다.
[그랬었지. 그때는 정말 죽는 줄 알았다. 놀라운 힘이었지.]던전 마켓 위로 고개를 치켜든 검은 용이 킬킬대며 웃었다.
[격장지계(激將之計)로 너를 폭주시켰던 것은 내 계획대로였지만, 나까지 곤죽이 될 줄은 몰랐다.]오래전의 전쟁에서 그는 일부러 티타니아의 앞에서 티타누스를 모욕했다.
그녀를 날뛰게 해서 전쟁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만들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총관 진영의 이인자였던 티타니아의 힘은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이븐 자토스조차도 감히 예상하지 못할 정도로 강했었다.
그리고 그 결과 검은 용은 자신의 말대로 곤죽이 되어 죽었다.
“어떻게 살아 있는 거지?”
티타니아가 한기가 뚝뚝 떨어지는 목소리로 으르렁거렸다.
분노로 눈이 뒤집힌 티타니아는 광란에 빠져 이븐 자토스를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박살을 내놓았었다.
사도의 알까지 나왔으니, 죽은 것이 확실했었다.
“네놈의 알은 내가 분명 총관님께 바쳤어. 그런데 네가 왜 여기에 있는 거지?”
십이선이 이현을 이용해서 소멸시키려 했던 알이 바로 사도 이븐 자토스의 알이었다.
벌레 신의 사도 중 가장 강력한 이븐 자토스의 알이었기에, 고작 반신인 이현에게 매달리듯 부탁해서라도 빨리 없애고 싶었던 것이었다.
그런데 왜 이븐 자토스가 멀쩡히 이곳에 있는 것일까.
이븐 자토스가 몸을 비틀며 웃어댔다.
그런 그의 모습에 티타니아가 얼굴을 찌푸렸다.
“왜 웃지?”
[가짜 알을 가지고 희희낙락 나를 잡아냈다고 기뻐하는 네놈들의 꼴을 보는데 우습지 않을 리가 있나? 총관도 불쌍하구나. 어찌 이렇게 제대로 된 안목을 갖춘 수하들이 하나도 없을까.]“가짜 알이라고?”
뾰족한 목소리로 반문하는 티타니아를 보며 이븐 자토스가 킬킬 웃어댔다.
[그래. 네가 죽인 나도, 사도의 알도 모두 가짜다. 삼라만상의 거품이 빚어낸 허상이지.]이븐 자토스의 대답에 잠시 멍해졌던 티타니아가 이를 악물었다.
“그럴 리가 없어! 그때 네놈의 힘, 그리고 사도의 알에서 느껴지는 사기. 모두 진짜였다고!”
[클클클, 당연히 그랬겠지. 내 일부를 가지고 만든 거니까. 거짓에 섞인 아주 작은 진실은 상대의 의심을 지워주거든.]“네놈……!”
이븐 자토스의 간계에 완전히 속아 넘어갔다는 걸 깨달은 티타니아의 눈이 분노로 불타올랐다.
“가만히 두지 않겠어.”
으득.
어금니가 갈려 나가는 소리와 함께 티타니아의 몸이 한 차례 빛을 내뿜었다.
빛으로 둘러싸인 그녀의 몸이 이븐 자토스와 맞먹을 정도로 커져 갔다.
이현조차도 놀랐던 그녀의 본모습이었다.
“넌 오늘 여기서 끝장을 내줄게.”
십이선도 두려움에 덜덜 떨게 만드는 본모습으로 돌아온 티타니아가 손을 내뻗어 이븐 자토스의 목을 붙잡았다.
어마어마한 격을 내뿜는 그녀의 손아귀 힘에 이븐 자토스의 목이 당장에라도 부러질 것만 같았다.
[크크큭, 헛수고하는군.]하지만 이븐 자토스는 여전히 비웃음을 흘리며 티타니아를 도발하고 있었다.
[잊어버린 건가? 내 전임자가 어떤 사도였는지를?]“쿠믄 드라코사진…….”
티타니아가 옛 사도의 이름을 중얼거리며 이를 악물었다.
셀 수 없을 정도로 무한한 용들을 촉수처럼 손발로 삼아 우주를 파괴했던 최강의 사도 쿠믄 드라코사진.
이븐 자토스는 쿠믄 드라코사진이 티타누스에게 소멸당한 뒤, 벌레 신이 그의 격을 본떠 만든 후계자였다.
전임자처럼 막강한 힘을 자랑하진 않았지만, 쿠믄 드라코사진이 가졌던 무한의 용들은 이븐 자토스에게로 계승되었었다.
[여기 있는 나 역시 진짜가 아니지. 마음껏 죽여 보아라.]이븐 자토스는 무한의 용들을 자신의 몸에서 분리시켜 자신의 분체로 삼을 수 있는 사도였다.
과거 티타니아에게 박살이 났던 존재도, 지금 던전 마켓에 강림한 것도 모두 그의 분체에 불과했다.
“비겁한 놈. 나랑 맞붙는 게 무서워서 분체를 보내?”
[비겁하다니. 훌륭한 전략이라고 해줬으면 좋겠군.]이븐 자토스는 티타니아의 손에 목이 잡힌 상태에서도 킬킬 웃어댔다.
[겨우 분체 하나로 너를 붙잡고 있는 동안 다른 ‘나’들이 얼마나 많은 일들을 벌이고 있었을까?]“뭐?”
[가령 도우미 놀이를 하고 있던 네가 끔찍이 여기는 네 주인을 다른 차원으로 보내 버린다든가.]마지막 말을 내뱉는 이븐 자토스의 눈빛이 광기로 희번덕거렸다.
[방금까지 네가 있던 행성에 파멸을 선사한다든가 말이야.]* * *
쾅! 쾅! 쾅! 쾅!
수류탄의 비가 내린 마교 본산에는 이제 멀쩡히 서 있는 건물이 없었다.
수류탄 투하가 끝난 후 무림맹 무인들이 불까지 질러 버려 남은 것은 잿더미뿐이었다.
“모든 건물이 무너졌습니다.”
“불을 질러보았지만, 나오는 이들이 없습니다.”
무림맹 무인들의 보고에 나진이 얼굴을 찡그렸다.
“대체 어떻게 된 거지?”
여기가 마교의 본산이었다. 마교도들에게는 무슨 일이 있어도 버리고 갈 수 없는 그들의 성지였다.
설령 무림맹의 공격을 미리 알아채고 도망쳤다 하더라도 수만이 넘는 마교도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는 것은 말이 안 되었다.
“누구라도 붙잡아서 이현이의 행방을 물어야 하는데…….”
초조해진 나진이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얼마나 세게 깨물었는지 피가 맺힐 정도였다.
그때였다.
“사람이 보입니다!”
무림맹 무인의 외침이 들려오자 나진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유독 컸던 건물의 폐허에 서 있는 인영이 눈에 들어왔다.
“저자가 충충도인입니다.”
폐허 위에 서 있는 자의 정체를 확인해주는 소찬경의 말이 끝나자마자 나진의 신형이 사라졌다.
“사부님?”
가장 실력이 뛰어난 유주만이 겨우 나진의 움직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나진의 몸은 교주를 향해 섬전과도 같은 속도로 쏘아져 나가고 있었다.
‘저놈을 사로잡아야 이현이를 찾을 수 있어.’
나진의 눈이 폐허 위에서 비틀거리는 교주의 얼굴로 향했다.
얼굴의 반을 차지하는 겹눈과 턱 밑으로 피부를 뚫고 나온 거대한 지네의 턱을 보건대 이미 권속이 된 지 오래인 듯했다.
“퀴, 퀴이잇!”
하지만 수류탄 폭격에 적잖이 타격을 받았는지, 목이 기묘한 각도로 꺾여 있었고 제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듯했다.
나진의 눈이 번뜩였다.
‘기회다.’
권속이 아무리 강하다 하더라도 나진의 상대가 되진 못하겠지만, 그래도 약해진 지금이 사로잡기에는 적기였다.
“얌전히 잡혀!”
자신에게 다가오는 나진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던 충충도인은 그제야 나진을 발견하고 비명을 내질렀다.
“크퀴잇?!”
“[화예소휘창-봉점두화鳳點頭花].”
나진이 [부러진 애각창]을 거꾸로 들고 창끝으로 교주 충충도인의 정수리를 찍어갔다.
기절을 시켜 사로잡을 생각이었다.
“퀴에에에엑!”
충충도인은 제대로 된 반격도 하지 못하고 나진의 공격에 그대로 머리를 내주었다.
아니, 그러는 듯했다.
“멍청하긴.”
충충도인이 비릿한 웃음을 짓더니 나진을 향해 겹눈을 희번덕거렸다.
콰아앙!
당장이라도 쓰러질 듯 비틀거리던 충충도인의 머리에 애각창이 닿자마자 거대한 충격파가 터져 나왔다.
“아아악!”
충격파와 함께 나진의 신형이 종이 인형처럼 튕겨 나갔다.
아무리 나진이 방심하고 있었다지만, 충격파의 위력은 상상 이상이었다.
“사부님!”
유주가 비명을 지르며 나진을 향해 몸을 날렸다.
그녀를 따라서 던전의 군세와 무림맹의 무인들도 몸을 날리려던 참이었다.
“크큇큇. 소용없다!”
콰아아앙!
충충도인이 손뼉을 치자 더 큰 충격파가 퍼져 나와 모두를 덮쳤다.
“크악!”
“꺄아악!”
어마어마한 충격파를 견디지 못하고 그곳에 모여 있던 모든 이들이 짚단처럼 쓰러졌다.
내상이 심각한지 칠공에서 피를 흘리는 이들이 대다수였고, 상대적으로 약한 관절 부분이 파손되어 주저앉는 골렘들도 있었다.
“너, 넌…….”
두 번째 충격파를 몸으로 막아준 유주 덕분에 피해를 덜 입을 수 있었던 나진이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권속이 이렇게 강할 리가 없는데……?”
사도는 몰라도 권속들과는 신물 나게 싸워본 나진이었다.
그녀가 지금껏 만났던 권속 중에 이렇게 강력한 힘을 가진 이들은 없었다.
나진의 눈에 깃든 두려움을 눈치챈 충충도인이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네가 바로 몽중현녀인가 뭔가 하는 사기꾼이로구나. 크큇큇큇.”
나진은 충충도인을 노려보며 내공을 끌어 올렸다.
[춘잠토심결]의 기운이 [부러진 애각창]으로 흘러 들어갔다.“지금 너를 쓰러뜨려야겠어.”
나진은 [역천강기]의 검푸른 기운이 서린 창끝을 충충도인에게 향했다.
“네가? 나를? 크큇큇큇!”
나진의 선언이 같잖다는 듯 충충도인이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네 던전의 주인이라면 모를까, 겨우 네년 같은 하찮은 필멸자가 감히 나를?”
이현을 언급하는 충충도인의 말에 나진의 눈이 크게 떠졌다.
“너! 이현이를 어쨌어!”
“저승에 가서 물어보도록 해라.”
“안 돼!”
이현을 죽였다는 충충도인의 말에 나진이 창백해져서 비틀거렸다.
분명 이현이라면 살아 있을 거라고 믿고 있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어떤 역경에서도 생존해내는 사람이 이현이었으니까.
하지만 이 낯선 행성에서 이현은 불귀의 객이 되어 버렸다.
‘이현아, 미안해.’
나진의 눈에 눈물이 차올랐다. 하지만 울고 있을 시간은 없었다.
“네 복수를 해줄게.”
눈앞에 이현의 원수가 있었다. 그리고 나진은 충충도인을 절대 용서할 수 없었다.
“[화예소휘창-금련성룡金蓮成龍].”
황금빛 연꽃을 문 용의 기운이 애각창에서 충충도인을 향해 폭사 되었다.
나진이 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공격 기술이 그의 몸을 걸레짝으로 만드는 것은 한순간이었다.
털썩.
충충도인의 몸이 산산조각이 되어 흩어지는 순간, 나진의 몸도 무너져 내렸다.
“이현아…….”
참아왔던 오열이 나진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네게 해주지 못한 말이 있어.”
구슬 같은 눈물이 떨어져 바닥을 적셨다.
눈물로 젖은 얼굴을 든 나진이 허탈하게 중얼거렸다.
“이현아, 사실 나 너를…….”
차마 하지 못했던 말을 그녀가 입에 담으려던 순간이었다.
“뭐……?”
산산조각이 났던 충충도인의 머리가 허공으로 떠오르고 있었다.
[고작 이딴 몸뚱어리 하나 박살 냈다고 이겼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우르릉!
짙은 사기를 담은 목소리가 울려 퍼지자마자 마교 본산 전체가 지진이라도 난 듯 흔들리기 시작했다.
나진은 지진도 지진이었지만, 충충도인의 머리에서 흘러나오는 격에 경악해 눈을 부릅뜰 수밖에 없었다.
“사도?!”
[격이 무척이나 낮았지만, 그 수가 10만에 가까우면 어떻게든 되는군.]콰아앙!
폐허가 된 마교 본산의 바닥을 뚫고 지네를 닮은 거대한 용이 몸을 드러냈다.
[내 이름은 이븐 자토스. 너희들의 종말이 될 사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