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ut-of-standard grade analyst RAW novel - Chapter 445
444화
-다가오는 운명(5)
“안 돼!”
표사트가 심상 공간을 통해 보여주는 광경에 이현이 비명을 질렀다.
티타니아가 있는 던전 마켓, 그리고 나진이 있는 무 행성의 마교 본산에 각각 사도 이븐 자토스의 분체가 나타나는 장면이었다.
창백해진 이현의 표정을 보며 표사트가 입을 열었다.
“이븐 자토스는 교활한 놈이지만, 동시에 강력한 사도다.”
그의 시선이 무 행성에 등장한 이븐 자토스의 분체로 향했다.
“아무리 분체라 하더라도 사도는 사도. 티타누스의 딸이라면 이길 수 있겠지만, 저 인간 여성의 목숨은 보전하기 힘들겠군.”
으드득.
표사트의 말을 들은 이현의 입에서 이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날 당장 저기로 보내줘. 어서!”
“그럴 순 없다.”
“왜! 나진 누나가 죽는 꼴을 지켜보기만 하란 말이야?”
분노한 이현의 외침에 표사트가 차가운 비웃음을 입가에 띄웠다.
“네가 가면 뭐가 달라지지?”
“뭐가 달라지냐니! 나라면 막을 수 있어. 저놈을 아예 소멸시킬 수 있다고!”
이현의 외침에 그의 몸속에 있던 규격 외의 힘이 호응이라도 하듯 들끓기 시작했다.
표사트는 당장이라도 저 사도를 소멸시켜 버리겠다는 듯 흉흉한 기세를 뿜어내는 이현의 규격 외의 힘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수 있지. 그런데? 네가 저 분체 하나를 없앤다고 이 우주의 운명이 달라질 것 같나?”
“우주의 운명 같은 개소리 하지 마! 나는 그딴 거 몰라. 나진 누나가 더 중요해.”
이글거리는 이현의 눈이 표사트를 향했다.
“보내주지 않는다면 너를 쓰러뜨리고서라도 가겠어.”
당장이라도 자신을 잡아먹을 것 같은 이현의 기세에 표사트가 못 말리겠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이미 저 여자의 운명은 끝이다.”
“……뭐?”
나진에게 피할 수 없는 죽음이 다가오고 있다고 선언하는 표사트의 말에 이현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게 무슨 소리야!”
“보아라. 곧 들이닥칠 이 우주의 운명을.”
표사트의 손짓에 심상 공간에 새로운 영상들이 떠올랐다.
“저긴…….”
새로운 영상들은 이현에게 낯익은 곳들이었다.
‘에트나 행성, 스카라반 행성, 그리고 저긴 무 행성인가?’
이제껏 이현이 스쳐 지나갔던 행성들이었다.
“모두 너와 관련된 행성이지. 그렇지 않나?”
“그런데 그게 어쨌다는 거지?”
“저 행성들에 달갑지 않은 손님들이 찾아오고 있거든.”
“뭐?”
이현이 반문하는 순간이었다.
콰직.
나나니벌처럼 생긴 괴생명체가 행성 하나에 달라붙었다.
놀랍게도 그 나나니벌의 크기는 행성보다 더 컸다.
“사도?”
“그래. 행성을 산란장으로 쓰는 고약한 놈이지.”
표사트의 말이 끝나자마자 나나니벌의 꽁무니의 벌침이 행성에 틀어박혔다.
그리고 이현은 그 순간 느낄 수 있었다.
[――――!]행성이 흘리는 죽음의 비명을.
사도의 벌침이 박힌 스카라반 행성은 세 조각으로 쪼개지고 있었다.
“맙소사…….”
스카라반 행성에 남아 있던 고블린과 오크 등을 떠올린 이현의 표정이 창백해졌다.
행성이 쪼개지는 충격 속에서 그들이 살아남을 수 있을까?
상상도 못 할 광경에 굳어 버린 이현의 귀에 표사트의 말이 들려왔다.
“저놈에게 걸린 행성은 모두 저렇게 산산조각이 나지. 그리고 그 행성을 자신의 권속들이 자라날 부화장으로 써먹는 놈이다.”
거대한 나나니벌의 형상을 한 사도는 만족스러운 듯 행성의 조각을 물고 우주 어딘가로 날아가 버렸다.
그 사도가 물고 있는 조각이 지구의 유라시아 대륙보다도 컸다는 사실에 이현은 놀랄 힘도 없었다.
“저기는 그나마 신들이 막아내고 있군.”
표사트의 말에 이현의 고개가 휙 돌아갔다.
에트나 행성에는 거대한 장수풍뎅이처럼 생긴 사도가 뿔을 들이박고 있었다.
하지만 행성도 단숨에 관통시킬 거대한 사도의 뿔은 반투명하게 빛나는 무형의 방패에 막혀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현은 거기서 낯익은 격과 힘을 느낄 수 있었다.
“설마, 아이기스?”
“그래. 행성급 신들이 저 정도나 되는 방어 수단을 가지고 있었다니. 놀랍군.”
표사트조차 놀라워하는 그 방어 수단은 바로 그리스 신화 속 신들이 지구에서 에트나로 가져갔던 대(大)아이기스였다.
“하지만 보아하니 오래가지는 못하겠어.”
원래 대아이기스는 이아코스를 제대로 된 신으로 만들어서 작동시킬 예정이었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사도의 침입으로 격이 부족한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작동시킨 모양이었다.
“무 행성은 볼 것도 없군. 이미 이븐 자토스가 있는데도 또 다른 사도까지 오고 있어.”
무 행성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실을 뿜으며 우주를 날아오는 거대한 거미 형태의 사도가 보였다.
세 행성이 모두 위기에 처한 모습을 보며 이현이 침음성을 흘렸다.
“대체 왜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 거지?”
“왜라고 생각하나? 다 너 때문이다.”
“나 때문이라고?”
표사트의 말에 이현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세 행성 모두 자신과 관련이 있는 행성이었지만, 사도들이 행성을 파괴하는 것이 자신 때문이라니.
놀라는 이현을 향해 표사트가 입을 열었다.
“네가 어설프게 규격 외의 힘으로 사도의 알을 소멸시킨 탓이다.”
사도의 알을 소멸시킬 수 있는 규격 외의 힘.
그 힘으로 티타누스는 총관 진영과 벌레 신의 무리 간의 세력 균형을 맞추었다.
그러니 벌레 신의 무리가 극도로 경계하는 것도 당연했다.
표사트가 설명을 이어나갔다.
“벌레 신의 무리가 우주를 지배할 게 분명한 상황에서 네가 규격 외의 힘을 조심성 없게 노출 시켰다. 저들로서는 당연히 견제해야 할 힘이지.”
티타누스처럼 성장할 존재는 싹부터 짓밟아 버려야 한다.
이븐 자토스는 그렇게 동료 사도들을 부추겨 이현과 관련된 행성을 침공하게 했다.
“이 모든 게 나 때문이라고……?”
파괴된 스카라반 행성의 모습이 이현의 망막에서 사라지질 않았다.
앞으로 에트나 행성과 무 행성도 비슷한 결말을 맞이하리라.
“나 때문에 3개의 행성이…….”
“아니, 사도에게 당한 행성은 더 있다.”
표사트가 새로운 영상을 띄웠다.
“안 돼……!”
그 영상에는 사도와 권속에 의해 불타오르고 있는 지구가 있었다.
태평양의 바닷물이 모두 증발해 드러난 심연의 바닥에서 꿈틀대는 사도의 모습이 이현의 눈에 들어왔다.
“이미 네 행성도 당한 지 오래다. 이제야 알겠느냐? 우주의 운명과 너는 뗄 수 없는 관계라는 걸?”
표사트의 말은 이현의 귓가에 들려오지 않았다.
이현의 뇌리에는 권속들에게 죽어 나가는 인간들과 파괴되는 자연만이 떠오르고 있었다.
* * *
으드득!
던전 마켓을 휘감던 거대한 용의 몸이 허물어져 내렸다.
표사트의 예측대로 이븐 자토스의 분체로는 본모습으로 돌아간 티타니아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
티타니아의 손에 뜯겨나간 이븐 자토스의 목이 비릿한 미소를 그렸다.
“닥쳐.”
티타니아는 으르렁대며 이븐 자토스의 머리를 바닥에 내팽개쳤다.
그러곤 힘차게 발로 짓밟았다.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지금 네 주둥이를 박살 내놓지 않으면 내 성이 안 풀리니까.”
[크크큭, 그 더러운 성깔은 네 아비랑 똑같…….]퍽!
이븐 자토스의 분체는 채 말을 끝마치지 못하고 티타니아의 발길질에 터져 나갔다.
그와 동시에 이븐 자토스의 분체는 먼지가 되어 사라졌다.
전에도 본 적 있는 모습에 티타니아가 분노를 터뜨렸다.
“고작 저런 분체에게 속아서는! 이 멍청이!”
이븐 자토스의 계책에 넘어가 분체를 죽이고 봉인 당했다는 사실이 억울했다.
“거기다가 이 멍청한 포프터들은 저런 놈한테 홀랑 넘어가서! 으아아악!”
티타니아는 자신과 이븐 자토스의 싸움에 휘말려 완전히 박살 나 쪼개져 버린 던전 마켓을 보며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이제 다시 던전 마켓이 열리는 일은 없으리라.
총관을 배신한 포프터들은 이븐 자토스의 분체를 만드는 데 이용당해 모두 소멸해 버렸다.
던전 마켓에 넘쳐나던 아티팩트들은 싸움에 휘말려 고물이 된 지 오래였다.
“아, 저건 쓸 만하네.”
티타니아는 그래도 아직 멀쩡해 보이는 아티팩트들을 챙겼다.
돌아가서 이현과 던전 사람들에게 줄 생각이었다.
“에휴, 이런 상황에서 주인님 챙기는 도우미는 나밖에 없을 거야.”
쓸 만한 아티팩트를 모두 챙겨 그나마 멀쩡한 건물에 몰아넣은 티타니아는 다시 인간 정도의 크기로 돌아왔다.
“이건 나중에 돌아갈 때 챙기기로 하고.”
지금은 총관에게로 가야 했다.
원래 티타누스의 일을 물어보려 총관에게로 가려 했던 그녀였지만,
“지금은 그게 문제가 아니지. 던전 마켓에 사도가 이렇게 침투한 상황인데.”
던전 마켓은 모든 던전과 연결된 교통의 허브나 다름없었다.
그 말인즉슨, 던전 마켓이 점령당하면 모든 던전에 사도와 권속들이 침입할 수 있다는 소리이기도 했다.
다행히 티타니아가 이븐 자토스의 분체를 물리친 덕분에 최악의 사태는 막을 수 있었다.
하지만 티타니아의 우려는 최악의 사태에 대한 것이 아니었다.
“총관님이 이 사태를 모르실 리가 없는데, 왜 아무도 오지 않는 거지?”
문제가 이 정도까지 커졌는데, 총관 진영이 반응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었다.
하다못해 십이선 중 하나는 모습을 비춰야 했었다.
“뭔가 이상해. 일이 이상하게 흐르고 있어.”
티타니아는 서둘러 블랙홀의 중심으로 몸을 날렸다.
총관의 측근들만 이용할 수 있는 게이트가 그곳에 있었다.
“다행히 여기는 멀쩡하네.”
대형 시간 조절 장치마저도 전투의 여파로 모두 파괴된 상황이었지만, 천만다행으로 총관이 있는 행성으로 향하는 게이트는 멀쩡했다.
“총관님께 서둘러 보고해야겠어.”
지금은 십이선의 자리에서 내려와 도우미 역할을 하고 있지만, 티타니아는 원래 총관의 오른팔이자 이인자였다.
이 사태를 보고하지 않고 넘어갈 이유는 없었다.
‘주인님, 미안해요. 총관님께 보고하고 구하러 갈게요.’
그녀는 지금껏 오직 ‘도우미’로서만 이현을 도울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이현의 실종에 이븐 자토스가 관계된 걸 알았다.
그래서 티타니아는 총관에게 본신의 힘을 쓸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할 생각이었다.
“자, 그럼 들어가 볼까?”
티타니아가 서둘러 게이트로 발을 들여놓았을 때였다.
스르륵.
티타니아의 눈앞에서 게이트가 그대로 소멸되었다.
“어? 자, 잠깐만!”
티타니아가 비명을 질러보았지만, 이미 소멸한 게이트가 다시 생겨나는 일은 없었다.
마치 자신이 오길 기다렸다는 듯 눈앞에서 사라지는 게이트의 모습에 티타니아가 멍청한 표정을 지었다.
그때, 그녀의 머리를 스치는 생각이 하나 있었다.
“설마?”
자신이 떠올린 생각에 기겁하며 티타니아가 몸을 돌려 반대편을 향해 날아갔다.
“안 돼!”
그녀의 생각대로 던전으로 돌아가는 모든 게이트 역시 사라진 상태였다.
* * *
영겁의 거리 너머 존재하는 거대한 성운.
그 한가운데 수천 마리의 용이 뒤엉킨 거대한 생명체가 있었다.
[예상대로 티타니아를 가둘 수 있었군.]데몬 술탄, 심연의 주인, 끓어오르는 삼라만상의 거품, 그리고 이 모든 상황을 계획한 장본인인 이븐 자토스의 본체였다.
그는 이 모든 일을 내다보고 던전 마켓의 아카샤에게 마수를 뻗쳐 놓았다.
아카샤뿐만이 아니었다. 다른 포프터들 역시 간단한 유혹만으로도 그의 수중에 떨어졌다.
육신을 갈망하는 그들에게 몸을 줄 것을 약속하니 모두 총관을 배신하고 그를 따르기로 했던 것이었다.
[그 육신이 권속이었지만, 약속은 지켰으니까.]그의 잔혹한 웃음소리가 성운 전체를 뒤흔들었다.
그렇게 던전 마켓을 손에 넣은 이븐 자토스는 티타니아가 방문하면 자신이 강림할 수 있게끔 해놓았고, 그 계획은 성공적이었다.
다만,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그조차도 알 수 없던 것이 있었다.
[티타니아가 갑자기 왜 던전 마켓으로 들어온 거지?]원래는 그녀가 정기적으로 넥타르와 암브로시아를 판매하러 오는 시기를 틈타 사로잡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때가 오지 않았음에도 티타니아는 갑자기 던전 마켓으로 들이닥쳤다.
변수와 상관없이 계획은 성공했지만, 자신의 예상을 벗어나는 일에 이븐 자토스는 몹시 심한 불쾌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 티타니아가 황급히 총관에게 향할 일이 벌어졌다는 건가? 알아봐야겠군.]번쩍, 삼라만상을 뚫어보는 수천 개의 눈이 우주를 훑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