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ut-of-standard grade analyst RAW novel - Chapter 7
6화
-던전수 키우기(1)
“하지만 주인님은 그다지 무력이 뛰어난 유형은 아닌 것처럼 보여요.”
티타니아는 날개를 펴고 이현의 주위를 날며 그의 몸을 살펴보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건 맞는 말이지만, 꼭 그렇게 팩트로 때려야겠냐?”
이현은 평범한 인간이었다.
딱히 운동이나 격투기를 배운 적도 없는 보통의 20대 남성.
“보스로서 격이 올라가면 무력도 자연스럽게 성장할 거예요. 걱정 마요.”
티타니아는 작은 손으로 이현의 어깨를 토닥였다.
“그리고 제가 보기에 주인님은 딱 지장(智將) 유형이에요.”
“진짜?”
“절 속여넘기시는 잔머리가 아주…….”
“…….”
전혀 위로되지 않는 티타니아의 말에 이현이 얼굴을 구겼다.
천성적으로 입이 문제인 도우미였다.
이현이 딱밤을 때리려 손가락을 들어 올리자 티타니아가 서둘러 입을 열었다.
“보스의 다음 할 일은 사념 에너지 소모에요. 던전은 자동으로 사념 에너지를 소모하게끔 설계되어 있어요.”
던전에 보스가 없어도 자동으로 사념 에너지를 소모하게 만들어져 있었다.
“그럼 보스는 왜 필요한데?”
“더 효율적으로 소모하기 위해서죠.”
티타니아가 주변을 둘러보며 설명을 이어나갔다.
“애초에 던전의 모든 것은 사념 에너지로 만들어져 있어요.”
던전을 격리하는 외벽부터 내부의 지형, 동식물, 심지어 공기까지.
던전을 구성하는 모든 것이 사념 에너지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외벽이라니?”
언제 그런 게 생겼다는 건지 이현은 의아했다.
동굴로 도망칠 때까지 이현은 벽 같은 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밖에서 보면 이곳을 덮는 커다란 돔 형태의 외벽이 던전을 가리고 있을 거예요. 일종의 결계라고 할 수 있죠.”
그리고 그런 돔으로 둘러싸인 던전들이 지구 곳곳에 생겨나는 중이었다는 것이 티타니아의 설명이었다.
“외벽 덕분에 던전에는 그 누구도 출입할 수 없어요. 공기도, 원자도, 심지어 빛마저도요.”
“잠깐, 나는 그런 거 본 적 없어. 심지어 하늘에는 별도 달도 있었는데?”
던전이 생기고 게이트가 열리고 난 후에도 하늘은 그대로였었다.
“그것까지 모두 던전이 사념 에너지를 통해 구현한 자연이에요. 벌레 하나, 구름 한 조각까지 모두요.”
“그럼 설마 나도?”
이현은 자신의 팔다리를 내려다보았다.
던전이 생기고 지금까지 이현은 자신의 몸에 이상을 느낀 적은 없었다.
“던전이 딱 하나 구현하지 못하는 게 지적 생명체예요. 주인님은 그대로이니 걱정 마요.”
다행히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몸이 바뀌거나 한 것은 아니구나 싶어 이현은 안도했다.
티타니아의 사족이 붙을 때까진 말이다.
“뭐, 던전에서 죽는 순간, 주인님의 몸과 영혼 모두 던전에 귀속되어 던전의 자원으로 활용되겠지만요.”
“윽.”
이현은 저도 모르게 흡혈종 괴물과 캠핑장에서 죽어 나갔던 사람들을 떠올리고 신음을 흘렸다.
그들 모두 던전에 묶여 버렸다는 소리였다.
이현이 잠시 잊고 있던 죄책감이 다시금 떠올랐다.
“그러면 어떻게 되는 거야? 죽고 난 다음엔…….”
“보통은 몬스터의 재료로 재활용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던전의 등급이 높으면 거의 부활 수준으로 생전의 모습을 찾을 수 있다고도 해요.”
티타니아의 설명에 이현이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죽었지만 몬스터의 육체로나마 다시 태어나는 걸 과연 그들이 바랄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이현은 티타니아의 설명 속에서 한 가닥의 희망을 보았다.
“우리 던전은? 난 살았지만 죽은 사람들이 많아. 그 사람들도 부활할 수 있을까?”
“여긴 최하급 던전이에요. 부활은커녕 제대로 된 몬스터도 못 만들걸요?”
이어진 티타니아의 말은 더욱 잔혹했다.
“게다가 임시 단계인 던전이니까 죽은 지적 생명체 대부분이 던전 승격의 재료가 되어 갈려 나가겠네요.”
“재료라니…….”
이현은 입술을 깨물었다.
만약 자신도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지 못했다면?
분명 던전의 양분이 되어 흔적도 없이 사라졌으리라.
다행히도 이현은 벗어날 수 있었지만, 캠핑장의 사람들에게는 앞으로 닥칠 미래이기도 했다.
“영혼만이라도 남길 수 없을까? 영혼까지 던전에 갈려 나가는 건 막고 싶은데.”
“방법이 없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주인님. 그런다고 그들의 영혼이 해방되거나 다시 태어날 수 있는 건 아니에요.”
티타니아는 고개를 저었다.
“한 번 던전에 귀속된 것은 영원히 던전의 것이에요. 벗어날 수 없어요.”
오히려 목표를 달성할 경우 던전을 벗어날 기회를 얻은 이현이 희귀한 사례였다.
이현은 안타까운 현실에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아까도 말했듯이 방법이 없는 건 아니에요.”
티타니아가 포로롱 날아서 흡혈종의 사체 위로 날아갔다.
티타니아의 몸과 날개가 뿌리는 빛에 혀를 길게 빼고 죽어 있는 괴물의 얼굴이 드러났다.
“대신할 양분을 바치면 돼요. 여기 적절한 영양분 공급원이 있네요.”
* * *
이현은 흡혈종의 사체를 끌고 동굴 안 깊숙한 곳으로 들어갔다.
티타니아는 ‘성소’인 동굴 끝에 던전의 핵이 있다고 말했다.
“주인님은 운이 좋으셨던 거예요.”
“내가?”
동굴은 일종의 히든 피스였다.
적으로부터 안전히 몸을 숨길 수 있는 장소.
“주인님이라는 일종의 이물질이 들어오자 핵을 보호하려는 성소의 은폐기능이 작동한 거죠.”
이현은 만약 이 동굴로 들어오지 못했다면, 꼼짝없이 죽었을 거란 생각에 식은땀을 흘렸다.
“이곳이 성소…….”
동굴 끝 깊은 곳에는 구형의 둥근 공동이 있었다.
티타니아가 그곳으로 날아가 자신의 몸으로 빛을 밝혔다.
“이게 던전의 나무예요.”
놀랍게도 눈에 겨우 보일까 말까 한 작은 싹이 공동 바닥에서 고개를 들고 있었다.
손톱만 한 잎이 나 있는 아주 작은 새싹이었다.
“던전수(樹)는 이 던전의 핵에서 자라는 던전 시스템의 단말이라고 할 수 있어요.”
던전을 관리하는 존재라기엔 너무나 작고 연약한 새싹이었다.
실수로 밟기라도 하면 그대로 으스러질까 두려울 정도였다.
“너무 작은 거 아니야?”
“지금은 이래도 던전이 성장하면서 함께 커질 거예요. S급 던전수는 별명이 세계수일 정도인걸요?”
세계수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면 얼마나 큰 걸까.
이현은 자신에게 배정된 이 던전이 최하급 던전이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싹 뭉개지 않게 조심해서 내려놓으세요.”
“알겠어.”
이현은 가져왔던 흡혈종의 사체를 싹 옆에 조심스레 내려놓았다.
“일단 던전 보스로서 던전에 등록하는 것이 우선이에요. 싹을 조심스럽게, 네, 잘하셨어요. 그대로 손을 떼지 마시고 눈을 감으세요.”
티타니아의 지시에 따라 이현은 싹에 손가락 하나를 살포시 올린 뒤 눈을 감았다.
“그러면 던전의 심상 공간에 들어갈게요.”
순간, 이현은 앞으로 몸이 쏠리는 감각과 함께 어지러움을 느꼈다.
몸이, 정확히는 의식이 어딘가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어지러움이 끝나자 이현은 살며시 눈을 떴다.
‘아무것도 없다.’
눈을 떠도 보이는 것 하나 없는 무(無)의 공간이었다.
심지어 이현은 자신의 몸마저 느낄 수가 없었다.
빛이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이현의 몸이 존재하지 않았다.
“아직 정식으로 던전에 등록되지 않아서 그래요. 잠시만 기다려요.”
어디선가 티타니아의 목소리가 울리더니 곧 눈앞이 번쩍거리면서 감각이 돌아왔다.
이현은 자신의 몸이 붉은빛 실루엣으로 흐릿하게 생겨난 것을 확인했다.
“던전에 등록됐어요. 이제 심상 공간에 주인님의 정신이 구현된 거예요.”
“내, 내 몸이 왜 이런 거야?”
이현은 당황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겨우 나타난 자신의 몸이 빛 덩어리라니.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런 이현의 눈앞에 현실과 마찬가지의 모습인 티타니아가 나타났다.
티타니아는 이현의 당황하는 모습을 보며 키득거리더니 설명을 이어갔다.
“던전의 심상 공간은 주인님의 격으로 구성되는 공간이에요. 아직 주인님의 격이 손톱만큼밖에 안 돼서 애매하게 구현된 거죠.”
“격이 높으면 어떻게 되는데?”
“현실이랑 거의 비슷하게 구현되는 거죠. 쉽게 말하면 지금 주인님의 그래픽 카드가 구려서 화면이 깨져 나오는 거예요.”
티타니아의 예시는 쉽게 이해되긴 했지만, 이현이 전혀 예상할 수 없는 것이었다.
“네가 그래픽 카드를 어떻게 알아?”
“파견될 행성의 문화를 미리 즐기는 것이 제 취미걸랑요.”
티타니아는 지구로 오기 전에 소설, 영화, 드라마, 게임 등 문화 대부분 섭렵했다고 한다.
지구에는 재밌는 게 많다며 즐거워하던 티타니아는 곧 시무룩해졌다.
“그것도 봉인된 이후에는 즐기지도 못했어요. 완결 못 본 소설들이 얼마나 궁금한지, 으으.”
“안 궁금해. 얼른 돌아가기나 하자.”
이현은 분통을 터뜨리는 티타니아를 별로 이해하고 싶진 않았다.
거기다 무(無)의 공간에서 부유하는 기분은 끔찍했다.
“이 원통함을 몰라주다니!”
삐진 말투였지만 티타니아는 얌전히 이현을 현실 세계로 돌려놓았다.
이현은 무사히 땅에 발이 닿자 저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앞으로 자주 들어가야 할 텐데 담이 그리 작아서 보스 해 먹겠어요?”
얄밉게 쏘아붙이는 티타니아를 가볍게 무시한 이현의 눈에 아까와 달라진 점이 눈에 들어왔다.
“어? 싹이 자랐는데?”
잎은 여전히 하나였지만, 싹은 한 뼘만큼 자라있었다.
심상 공간에 머문 시간은 몇 분도 되지 않았는데 그새 이만큼이나 자라다니 신기한 일이었다.
“주인님이 가진 격이 영향을 준 거예요. 주인님이 저 흡혈종을 죽인 덕분에 격이 조금이나마 올랐으니까요. [분석의 안약]을 써서 정보를 확인해 봐요.”
이현은 30분이 지나 효력이 떨어진 분석의 안약을 꺼내어 다시 눈에 넣었다.
잠깐의 고통이 지나가고 분석안이 던전수의 정보를 알려 주었다.
「던전의 나무(F)
상태 : 새싹
◆ 다음 성장까지의 양분
– 10/100」
“이건 무슨 어디 인터넷 카페 등급도 아니고…….”
이현은 분석안으로 보이는 던전수의 정보에 기가 막혔지만, 이해하기 쉬운 설명이었다.
“이제 양분을 던전수에 바칠 차례에요.”
방법은 간단했다.
던전수의 싹에 손을 얹고 비료를 준다는 생각으로 강하게 염원한 뒤,
“[흡수]”
라고 외치면 끝이었다.
“던전 보스가 가진 던전 스킬이에요. 앞으로 자주 쓰게 될 테니 기억해두는 게 좋아요. 자, 이제 물러나요.”
이현이 티타니아의 말대로 새싹 근처에서 물러나자마자 땅을 헤치고 가느다란 나무뿌리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뿌리들은 마치 살아 있는 뱀처럼 꿈틀거리며 흡혈종 괴물의 시체를 칭칭 감고선 땅속으로 끌고 들어갔다.
“으윽.”
이현은 시체가 파묻히는 모습에 속이 불편해졌지만, 시선을 떼진 않았다.
시체가 다 파묻히면서 실시간으로 던전수의 정보가 바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15, 21, 28, 36……40에서 멈췄네요. 저 시체 하나에 30의 양분이 올라갔어요.”
흡수가 끝나고 양분의 수치가 40으로 바뀌자 이번엔 새싹이 실시간으로 자라기 시작했다.
“자란다.”
먹인 보람이 있는지 한 뼘이었던 싹의 높이가 이현의 무릎까지 올 정도로 자랐다.
줄기도 굵어지고 겉의 색도 어두워져 나무의 줄기처럼 보였다.
“그래도 잎은 하나뿐이네.”
굵어진 줄기 꼭대기에 놓인 잎은 손바닥만 한 크기로 커져 있었다.
하지만 다른 잎이 늘어나거나 하진 않았다.
“던전수가 가진 잎은 던전에 소속된 영혼의 수에 따라 달라져요. 지금은 주인님밖에 없으니까 당연히 하나죠.”
대량의 몬스터를 보유한 던전의 나무는 잎도 무성하다고 한다.
“하나…….”
그 말인즉슨, 이현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이미 모두 죽었다는 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