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ut-of-standard grade analyst RAW novel - Chapter 6
5화
-F급 던전 도우미(3)
내기는 성공적이었다.
“어, 어떻게? 아, 아니 그게 아니라.”
“내기는 내 승리지?”
“안 돼!”
“돼.”
분석 안으로 보이는 티타니아의 상태에서 이현에 이름 옆에 붙어있던 (임시)가 사라진 상태였다.
“어떻게 안 거죠? 아, 씨 이게 아닌데?”
티타니아는 예상치 못한 결과에 혼란에 빠져 있었다.
이현이 자신의 진짜 이름을 알고 있을 거라곤 상상도 못 했던 티타니아였다.
그리고 그런 모습을 보며 이현은 히죽 웃었다.
“멍청하긴. 내가 어떻게 네가 F급인 걸 알고 있었겠어?”
“어? 그러게요? 어떻게 안 거죠?”
이현은 자신의 눈을 가리키고는 주머니 속의 안약 통을 꺼내 들었다.
“그게 뭔데요?”
“분석의 안약이라던데? 아실까 모르겠네.”
얄밉게 말하는 이현의 손에 든 안약 통을 본 티타니아는 그제야 상황을 파악하고는 길길이 날뛰었다.
“이건 사기야! 그거 가지고 있다곤 말 안 했잖아요! 그리고 그게 대체 왜 님한테 있는 건데!!”
“내기 전에 이런 거 쓰면 안 된다고 한 적 있어? 순순히 결과를 받아들이시지?”
“이런 날강도 같은……!”
이현의 꼼수를 알아챈 티타니아는 말 그대로 꼭지가 돌아 버렸다.
분노한 정령의 몸이 붉은색 빛을 내뿜기 시작했다.
심지어 그 크기까지 주먹만 한 크기에서 농구공만 한 크기까지 부풀어 올랐다.
더군다나 더 커질 기세였다.
“잠깐!”
분위기가 심상치 않자 이현은 서둘러 다음 카드를 꺼내 들었다.
“너, 봉인 풀고 싶지 않아?”
“뭐? 그걸 어떻게 알아요?”
이현의 카드가 통했는지 티타니아가 움찔했다.
그러더니 티타니아의 몸이 다시 작아지고 흰빛을 띠기 시작했다.
“그래. 원래 등급이 S급이라는 것도 알고 있지. 설마 내가 널 예뻐서 골랐겠어?”
“하, 대체 어디까지 보이는 건가요? 어처구니가 없네.”
다시 원래 크기로 돌아온 티타니아가 한숨을 쉬었다.
이현은 티타니아가 가장 궁금해할 정보를 꺼내었다.
“봉인 해제 조건까지.”
“정말요?”
“아, 눈부셔. 저리 가.”
놀란 티타니아가 이현의 얼굴 앞까지 날아왔다.
이현은 질색하며 빛의 구체를 밀어냈다.
이 일에 정보가 걸려 있다는 것을 깨달은 티타니아는 얌전히 그 손길을 따라 뒤로 물러났다.
아까와 달리 공손한 태도였다.
“빨리 말해줘요!”
말투만 빼고.
“말해주는 대신 조건이 3개 있어.”
이현은 손가락 3개를 들어 올렸다.
“첫 번째 조건으로 날 진심으로 주인으로 삼아야 해. 도우미 역할에도 충실해야 하고.”
“……불쾌하지만 어쩔 수 없네요.”
티타니아가 불쾌하다는 티를 팍팍 내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두 번째, 내가 묻는 것에 절대 거짓으로 답하지 말 것.”
“와, 양심 없다. 어떻게 사기로 내기에 이긴 양반이 그런 조건을 걸어요?”
“아, 시끄럽고. 싫으면 관두던가.”
이현이 안 들린다는 듯 귀를 후비며 대꾸하는 모습에 티타니아는 욱했지만, 봉인의 해금이 걸려 있었기에 반항도 하지 못했다.
이현은 그 모습을 보며 히죽 웃었다.
‘아까의 복수다. 이 얄미운 것아.’
이미 계약의 갑을 관계는 바뀌어 있었다.
“그래서 할 거야, 말 거야?”
“누, 누가 안 한대요? 세 번째는 뭔데요?”
“그건 보류. 나중에 말할 거야.”
“비겁해!”
이현은 사실 당장 생각나는 것이 없었다.
일부러 뜸을 들인 건 티타니아를 괴롭힐 심보 때문이었다.
‘가장 악질 중 하나가 말을 하다가 끊는 법이고, 두 번째는…….’
티타니아는 이현의 무시무시한 괴롭힘에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정말 무서운 인간이네요. 백지수표라 이거죠? 대체 무슨 명령으로 날 괴롭힐지…….”
“그거야 내 자유고.”
이현은 티타니아의 괴로움을 즐기면서 놀려댔다.
‘고민하는 게 눈에 훤히 보인다.’
분석안을 쓰지 않아도 이현에게는 티타니아의 마음이 훤히 보였다.
내키지 않는 주인에게 복종하는 것과 봉인을 해제할 기회.
그 두 가지를 저울질하던 티타니아는 결국 결심을 내렸다.
“……어쩔 수 없죠. 할게요!”
티타니아가 대답하는 순간, 빛의 구체에서 나던 빛이 한층 더 환해졌다.
주인에 대한 인정.
봉인 해금의 첫 번째 조건이 해방되는 순간이었다.
“어? 어?!”
티타니아의 놀란 목소리가 들렸지만, 눈 부신 빛 덕분에 그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빛이 가라앉았을 땐, 빛의 구체는 사라지고 손바닥만 한 요정 하나가 있었다.
빛으로 이루어진 아이의 몸에 빛의 날개를 단 요정.
‘저게 본 모습인가?’
굳이 누구인지 묻지 않아도 정체는 당연히 티타니아였다.
「이름 : 티타니아
직업 : 던전 도우미, E급
주인 : 도이현
능력 : 내기에 져서 어쩔 수 없이 충성 중.
◆ 스킬
– [던전 지식(E)] : 던전 운영을 보조하는 도우미의 지식.
– [사물 빙의(E)] : 물건에 스며들어 조종한다. 물건을 일시적으로 강화할 수 있다.
◆ 특이사항
– 건방진 성격으로 상관에게 불경한 태도가 원인이 되어 봉인된 상태.
– 조건을 만족할 시 원래의 상태(S급)로 회복.
◆ 해금 조건
1. 주인에 대한 인정(달성)
2. 주인의 격 상승
3. ???」
던전 도우미의 등급과 스킬의 등급, 그리고 해금 조건에 변화가 있었다.
이현이 달라진 부분을 살펴보는 동안 티타니아는 정신없이 자신의 몸을 살펴보고 있었다.
“세, 세상에!!”
티타니아는 믿기지 않는지 날개를 펄럭거리기도 하고 팔다리를 사방으로 움직여보기도 했다.
“어때? 봉인의 1단계가 풀린 느낌은?”
“주, 주인님!!”
“응?”
이현의 앞에 오체투지를 하며 몸을 내던지는 정령이 하나 있었다.
“충성을 바치겠습니다!”
정말로 봉인이 조금이나마 풀린 것을 깨닫자 티타니아의 태도는 손바닥 뒤집듯이 바뀌어 버렸다.
“제가 진짜 억울하게 봉인됐거든요? S급까지 돌아갈 수 있게 도와주세요!!”
“그럼 아까 약속한 대로 나한테 잘하던가.”
“아이고, 주인님, 필요한 게 있으신가요? 말씀만 하시면 이 도우미가 뭐든지 들어 드리겠습니다요. 헤헤.”
손바닥 뒤집듯 바뀐 모습에 이현은 어이가 없었지만 좋은 게 좋은 거라고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지금 중요한 것은 그런 것이 아니라 앞으로 자신이 해야 할 일들이었으니까.
“일단 던전이 뭔지, 그리고 내가 뭘 해야 하는지 설명해 줘.”
“아이고 도우미의 당연한 업무입죠. 말씀드리고 말구요.”
빛으로 이루어진 작은 요정이 손바닥을 문질러가며 아부하는 모습은 가관이었다.
이현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됐으니까 평범하게 말해.”
“정말요? 그럼 나야 좋죠, 히힛.”
티타니아는 날개를 팔랑이며 까르르 웃더니 이현의 손바닥 위로 날아와 앉았다.
“뜨겁지 않네?”
“제가 무슨 백열전구라도 되는 줄 알아요? 그런 비효율적인 방법으로 열을 낼 급이 아니죠!”
생각과 달리 티타니아의 빛은 열을 동반하지 않는 차가운 빛이었다.
“뭐래, F급이면서.”
“이이익! 원래는 S급! S급이거든요?!”
“됐고, 설명이나 마저 해.”
분을 못 이겨 씩씩대던 티타니아는 이현의 재촉에 헛기침을 크게 하고는 설명을 이어나갔다.
“큼! 던전은 지구에 사는 지적 생명체의 사념 에너지를 해소하기 위해 만들어지는 시설이에요.”
“사념 에너지가 뭔데?”
“정신적 활동의 잔여물이자 노폐물이라고 할 수 있죠.”
생로병사, 희로애락, 고통과 집착, 탐구 등.
이 모든 정신적 활동에서 사념 에너지가 발생한다고 티타니아가 덧붙였다.
“사념 에너지가 많이 쌓인 행성은 지적 생명체뿐만이 아니라 행성 자체에 큰 위기를 초래해요.”
“지구의 위기라는 건 대체 뭐야?”
“음……. 몰라요.”
티타니아가 머쓱한 듯 머리를 긁적였다.
“뭐?”
“아니요. 진짜 몰라요. [던전 지식(E)]으로 알아낼 수 있는 건 여기까지가 한계예요. 헤헷.”
E급이 이 정도면 대체 F일 땐 어땠을까.
이현은 어이가 없어 할 말을 잃었다.
“차라리 노인을 선택할 걸 그랬나. 지식도 S급이고 [전지]도 있었는데.”
이현의 말을 듣고 다급해진 티타니아가 외쳤다.
“저도 원래는 던전 지식이 S거든요? 봉인이 풀리면 더 올라가니깐 절대 버리면 안 돼요!”
아까까지 콧대 높았던 도우미는 어디 가고 이현의 엄지손가락을 잡고 애원하는 애처로운 정령이 남아 있었다.
이현이 흥하고 콧방귀를 뀌며 엄지손가락을 튕기자 티타니아가 허공을 데구루루 구르며 날아갔다.
“뭐 하는 거예요!”
이마를 감싸 쥐고 울먹이는 요정의 모습이 귀여워 이현이 피식 웃었다.
‘괴롭히는 재미가 있네.’
이현이 웃자 더 씩씩대는 티타니아를 무시하고 이현이 설명을 재촉했다.
“S급에 넘어간 내 죄지. 됐고, 계속 설명해 봐.”
“……우쒸. 어쨌든 행성의 주인들이 총관님께 의뢰하면, 총관님은 던전으로 그걸 청소하시죠.”
“행성의 주인? 그게 누군데?”
이번에도 생소한 말이 나오자 이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신들이 보통이지만 초월자나 가끔 행성 자체가 지성을 가질 때도 있어요.
그런 위대한 자들이 행성의 위기를 감지하고 의뢰하죠.”
“지구의 주인은 누군데?”
“비밀이에요. 이건 몰라서가 아니라 진짜 기업 비밀!”
티타니아는 끝까지 지구의 주인이 누군지 말해주지 않았다.
고객의 비밀을 엄수하는 것은 사업의 기본이라나?
“됐다. 내가 알아서 뭐 하겠어.”
신이니 초월자니 말도 안 되는 존재들의 등장에 혼란스러웠지만, 당장 이현에게 필요한 정보는 아니었다.
“그럼 던전 보스는 뭘 하는데?”
“말 그대로 던전의 보스죠.”
던전 보스.
그들은 던전이 가진 사념 에너지 소모를 촉진하기 위한 존재였다.
티타니아는 손가락 두 개를 펴며 설명을 이어나갔다.
“보스의 업무는 두 가지에요. 던전 관리와 사념 에너지 소모.”
“관리는 어떤 걸 하는데?”
“함정을 만들거나 던전을 확충시키기도 하죠. 그리고 제일 중요한 건 던전의 핵인 ‘성소’를 지키는 거예요. 핵이 파괴되면 던전은 소멸하거든요.”
핵은 일종의 던전이 가진 심장과도 같은 존재였다.
던전 보스는 그 핵을 지키기 위해 기본적으로 무력이 필요하다고 티타니아는 설명했다.
그러자 이현이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난 싸울 줄 모르는데?”
“아무런 준비도 없는 상태에서 흡혈종 헌터를 잡은 걸 보면 아예 바닥 같아 보이진 않아요.”
“그건 우연히…….”
이현이 흡혈종을 죽일 수 있었던 건 우연이 거듭되어서 얻어낸 일종의 운이었다.
그러나 티타니아는 고개를 저었다.
“[최초의 살해자] 업적. 이게 뭘 뜻하는지 알아요?”
“아니.”
“지구라는 행성에 생긴 던전에서 처음으로 침입자를 죽였을 때 얻게 되는 업적이에요.”
그건 지구 곳곳에 생겨나고 있을 던전들, 그 안에 휘말린 이들 중에서 가장 먼저 이현이 누군가를 죽였다는 소리였다.
“그다지 영광스러운 업적은 아니네.”
이현의 씁쓸한 말에 티타니아가 손가락을 양옆으로 까딱거렸다.
“무슨 말씀? 그 덕분에 주인님한테 총관님께서 나타나신 거예요. 던전 보스라는 직책도 얻은 거구요. 엄청 영광된 일이죠.”
티타니아의 말에 의하면 지금쯤 대다수 던전에선 끔찍한 학살극이 벌어지고 있을 것이다.
“여기도 마찬가지야.”
이현은 자신이 버리고 온 캠핑장 사람들을 떠올리며 마음이 무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그래도 주인님은 기회를 얻었죠. 그게 중요한 게 아닐까요?”
그렇다고 마음이 가벼워지는 것은 아니었지만, 티타니아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앞으로 주인님은 던전을 지킬 보스로서 강해져야 해요. 그게 주인님이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이구요.”
던전 보스로서 살아남기.
그것이 이현의 눈앞에 놓인 유일한 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