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st Biopsy RAW novel - Chapter (13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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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내의 생김새는 말 그대로 야만인이라는 표현이 어울렸다. 우락부락한 장골의 체격에 전신에는 두꺼운 근육이 가득 붙어 있었으며 중요 부위만 가리고 있는 바지인지 뭔지 모를 옷을 입고 있었다. 또한 네모지게 각지고 다부진 얼굴은 굳이 얘기 하자면 야성적인 외모였다.
특이한 점이라면 사내의 눈은 은안(銀眼)이었다. 검은 머리카락에 은색 눈동자는 절대 흔한 게 아니었으며 자연적으로는 나올 수 없는 색깔이었기에 나는 특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사내에게 외쳤다.
“걱정마시오! 우린 마물을 잡으러 왔소. 당신처럼 만귀전의 귀신을 잡아먹으러 온 건 아니오!”
경험상 의문의 존재가 나타났다면 굳이 싸우려 들기보다는 마찰을 피하는 게 낫다. 내가 대답하자 사내는 묵묵히 우리 쪽을 내려다보다가 말했다.
“마물이라고? 네 바로 옆에 있는 그 늙은이 또한 마물이 아니냐!”
“!!”
나는 약간 당황해서 옆에 있던 건달파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지금 걸선의 인간모습으로 변신해 있는 건달파를 아무리 보아도 마력이 흘러나오지 않았다.
‘팔부신중이 인화(人化)하는 변신술은 완벽해. 수천 년씩이나 술법을 연마한 놈들인데 당연하지. 자기자신이 일부러 마력을 흘리지 않는 한 나도 눈치채기 힘들 정도로 마력을 잘 숨겼는데?’
단지 힐끔 본 것만으로 건달파의 본질을 파악했다는 말인가? 그 정도로 정확한 파악은 고명한 대라신선이라 해도 불가능한 경지였다. 집중해서 쓰는 화안금정이나 전국옥새로 발동하는 전시안정도가 아니면 그럴 수는 없다.
나는 혹시나 해서 사내에게 대꾸했다.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군! 우린 인간이오.”
은안의 사내는 코웃음 치며 나를 비웃는 듯했다.
“흥! 인간이라고? 네놈은 모르겠다만 옆에 있는 놈은 강력한 마력을 숨기고 변신해 있는 상급마물이구나. 정말 인간이라면 네 옆에 있는 놈을 잡아먹어도 끼어들지 말아라.”
스스스
“흐으으……”
은안의 사내가 갑자기 합장을 하더니 다시 한번 숨을 크게 들이쉬기 시작하는 게 보였다. 마치 방금 전 만귀전의 소귀신들을 흡입하던 때와 같은 수법 같았다.
그러자 건달파는 약간 다급해진 기색으로 내게 말했다.
“위, 위험합니다. 저자를 멈춰주십시오.”
“어떻게?”
“주군의 선택에 맡기겠습니다.”
건달파 또한 저 은안의 사내가 심상치 않은 걸 느낀 것 같았다. 사실 강력한 마왕 중 하나인 건달파가 인간을 보고 일견에 움츠러들 이유는 없지만 건달파는 저 사내가 고강한 존재라고 직감한 모양이었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저 자를 공격해서 술수의 시전을 멈추던가 아니면 말로 설득하는 거군.’
딱 봐도 마물에 강렬한 적의를 가진 자라서 임시로 둘러대었는데 그게 악수로 작용한 듯싶었다. 나는 싸울까 말까 곰곰이 생각하다가 싸우는 건 아니라고 생각하며 그에게 외쳤다.
“멈추시오! 멈춘다면 당신에게 보물을 주겠소.”
그냥 멈추라고 하면 멈출 리가 없다. 당연히 이득을 제시해야 멈추는 게 교섭의 기본일 것이리라.
멈칫.
그러자 은안의 사내가 호흡을 들이쉬던 행동을 멈추었다. 그는 의심스러운 눈으로 여전히 합장을 유지한 채 이쪽을 보았다.
“보물이라고? 뜬금없이 무슨 소리냐.”
“거짓말을 해서 미안하오. 다만 우리는 거신족 전사 유망의 부탁을 받아서 마물을 퇴치하러 돌아다니고 있었을 뿐이오. 이 마족(魔族)과는 잠시 의뢰를 위해 함께 다니는 관계이고 마물을 탐지하는 역할을 맡고 있으니 봐 주시오.”
“……”
“당신과 굳이 싸우고 싶지 않소. 전투를 피할 수 있다면 내가 가진 보물쯤은 넘겨드리리다.”
은안의 사내는 뭔가를 깊게 생각하 는 듯했다. 그러더니 내게 말했다.
“유망이 너희에게 마물퇴치를 맡겼단 말인가?”
응?
유망을 아는 건가?
“그렇소.”
“이름이 뭐냐?”
“나는 백웅, 이쪽은 건달파요.”
“잠깐 기다려라. 확인해 보겠……”
쿠구궁!!
그때 갑작스럽게 저만치 지평선 너머에서 땅거죽이 뒤집히며 큰 지진이 일어났다. 상당히 큰 지진이라서 내 발밑이 덜컹덜컹거리고 육안으로 대지가 갈라지는 게 보였다. 그리고 갈라진 땅 너머에서 시퍼런 촉수 덩어리가 튀어나오는 게 보였고 그건 틀림없이 새로운 적인 것 같았다.
우오오!
그와 동시에 머나먼 천공에서도 용명(龍鳴)이 터져 나오는 게 들렸다. 그리고 시꺼먼 비늘을 가진 용들이 홰를 치며 날아다니는 게 보였다. 차원문을 열고 나타난 흑룡(黑龍)들 또한 상당한 힘을 가진 것 같았다.
갑자기 괴물들이 대거 등장하자 은안의 사내가 골치 아픈 듯 눈을 찡그렸다.
“오늘 혼돈의 존재들이 작정하고 탁록에 쳐들어오는구나. 너희가 정말 저놈들과 관계가 없다고?”
“저놈들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그렇소. 당신이야말로 저 괴물들이 뭔지 아시오?”
“……”
은안의 사내가 침묵하다가 말했다.
“일단 저놈들을 물리쳐라. 그럼 일단 너희 말을 믿어주마.”
“좋소.”
저 괴물들도 만만치 않은 존재들이지만 왠지 눈앞의 은안사내보다는 훨씬 무난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힘의 강약에 민감한 건달파가 저 사내를 두려워하는 건 이유가 있으리라.
나는 옆에 있던 건달파에게 말했다.
“촉수와 흑룡. 어느 쪽이 쉬울까?”
건달파는 괴물들을 하나하나 살피다가 말했다.
“흑룡이 낫겠습니다. 저 푸른 촉수는 무척 강합니다.”
“좋아, 가자.”
파앗
나는 건달파와 함께 왼쪽 하늘에서 날아오는 흑룡 수십 마리를 향해 날아갔다. 건달파는 한 차례 경공으로 하늘로 도약하더니 그대로 변신을 풀어서 마왕(魔王)의 본체를 드러내었다.
쿠구구구!!
건달파의 마력파장이 퍼져나가며 사방에 큰 압력이 생겨나고 현실의 법칙이 잠시 일그러지는 느낌이 들었다. 인간과 뱀이 합쳐진 듯한 사인이 바로 그의 진짜 모습!
육중한 건달파의 사인체(蛇人體) 전체에서 마치 둥근 결계처럼 보이는 파장이 일렁이면서 고대의 범어(梵語)가 장중한 기세로 회전하는 게 보였다.
나는 그런 건달파의 마력을 감지하며 내심 감탄했다.
‘역시 팔부신중! [옛 지배자] 같은 괴물에겐 비교할 수는 없지만 강하긴 강하다. 아마 수정석비의 조각을 흡수해서 원래보다 더 강해져 있겠지. 지금 상황에서는 든든한 아군이구나.
그런데 저런 건달파조차 쪼그라드는 유망과 저 은안 사내는 뭐 하는 놈들일까? 나는 왠지 고대의 탁록이 장난 아닌 마경(魔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옆에서 날개를 펴고 날아가던 건달파가 영언(靈言)으로 내게 말했다.
[용의 약점은 목 아래에 거꾸로 붙어 있는 역린(逆鱗)입니다. 저놈들을 통으로 베어내려면 방어력이 높아 단단할 테니 거기를 노리십시오.]
“알았어!”
퉁!
나는 천상제의 경공으로 허공을 한 차례 박차고는 전방으로 쇄도했다. 그리고 제일 앞에 있던 흑룡을 향해 그냥 전력을 다해서 뇌령인(雷靈印)을 방출하려다가 멈칫했다.
‘구궁파천뢰……’
얼마 전 이광에게서 배운 삼재(三 才)의 공정(工程)!
구궁파천뢰를 더욱 효율적이고 강하게 만드는 그 요령을 수련했었기에 나는 지금이 바로 그 수련성과를 보일 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진기를 응축해서 장력을 뿜는 것은 개나 소나 다 하는 것이지만, 이런 실전 속에서 배운 바를 실천하게되면 훨씬 빠르게 성장할 수 있는 게 아닐까?
그렇게 생각한 나는 몸속에서 뇌혼 (雷魂)을 공명시켜 구궁파천뢰를 발동시켰다.
치리링!
‘여섯 개!’
원래 아홉 개의 뇌혼을 꿰어서 공명하는 방식에서 한 걸음 나아가서 최대한 공명하는 뇌혼의 갯수를 줄여서 효율을 추구하고 더 빠르고 강한 뇌혼연계를 가능하게 하는 삼재의 공정!
진소청이 알아낸 이 방식은 최대 3개까지 공명의 갯수를 줄일 수 있었지만 나는 아직 수련도가 부족해서 최대 5개까지가 한계였다. 그나마도 지금은 집중이 잘 안 되어서 6개에서 그친 모양이었다.
그러나 삼재의 공정 자체는 성공했다. 나는 평소보다 뇌혼이 빠르게 공명하면서 전신에 번개의 기운이 이글거리는 것을 느꼈고, 그 증폭된 뇌령지기를 이용해서 장심(掌心)에 공력을 모았다.
여기서 방출하지 않고 한 번 뇌명 을 섞어준다!’
일백(一白) 뇌령인(靈印)
이흑(二黑) 뇌명(雷鳴)
치치치칭!!
가득 모였는데도 발사되지 않고 뇌명의 기운으로 한 차례 더 응축된 뇌령인의 빛이 크게 쪼그라들었다. 나는 이게 뇌령지기가 압축되는 현상이라는 걸 알고 있었고, 실전에서 제대로 써 보는 건 처음이었다. 뇌령지기가 크게 날뛰기 시작하는 게 느껴지자, 나는 다시 한번 뇌령인의 요결을 시전하며 장심에 크게 힘을 모았다.
쿠구구구 –
응축된 뇌령지기가 중첩되며 원형의 기운으로 더욱 압축된다. 나는 한계까지 뇌령지기가 모이자 그대로 전력을 다해 손을 앞으로 뻗었다.
삼벽(三碧) 특뇌령인(特雷靈印)!!
내가 장심에 모은 둥근 기운이 마치 거대한 빛의 기둥처럼 변해서 앞으로 뿜어져 나갔고, 그건 틀림없이 평소에 내가 펼치던 전력 뇌령인과는 다른 형상이었다. 그리고 그 빛의 기둥은 흑룡 무리의 한가운데를 스치고 지나갔다.
퍼어어엉!!
[끄에에엑!!]
[크아악!!]
다음 순간 뇌령인의 빛의 기둥이 사방으로 확산되더니 흑룡무리를 집어삼켰고, 범위 내에 있던 흑룡들 중 열다섯 마리가 비명을 지르며 날개와 몸이 불타기 시작했다. 놈들은 허우적거리다가 땅으로 떨어지기 시작했고, 근처에서 날아오던 다른 흑룡들이 놀라서 그 자리에 멈추고 말았다.
옆에서 내 일격을 보던 건달파가 경탄한 듯 말했다.
[과연 주군!! 용의 역린을 노리는 것 같은 쪼잔한 공격은 하지 않고 힘으로 찍어누르겠단 말씀이십니까!!]
음 아니……… 그냥 시험 삼아서 수련할 겸 한 방 날려 보고 나서 역린을 공략할 셈이었는데 특뇌령인이 너무 셌던 거 뿐인데……
내가 뻘쭘해서 입을 닫고 있자 건달파가 자신의 쌍장을 가슴 앞에 모으며 말했다.
[그 패도(覇道)에 이 건달파도 호응하겠습니다.]
오오오오 –
비나쉬 일족 비전(秘傳)
멸망의 춤
건달파의 쌍장 사이에서 유리구슬이 격렬하게 빛을 내뿜기 시작했다. 그리고 유리구슬에서 무수한 숫자의 새까만 나비들이 소환되더니 앞으로 마치 구름떼처럼 날아가는 게 보였다. 나비 떼가 얼마나 많은지 순식간에 흑룡들이 있는 지역을 뒤덮어 버렸고, 흑룡들은 검은 나비들을 화 염의 숨결로 없애 버리려 했지만, 너무 많아서 떨쳐내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퍼버벅
[크어어억.]
나비들이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군체(群體)가 되어 흑룡들의 날개를 찢어 버리고 먹어치웠다. 흑룡들은 대항조차 변변히 하지 못하고 뒤로 날아서 피하는 것밖에 할 수가 없는 듯했다. 나는 건달파의 강력한 술법에 깜짝 놀랐다.
“그건 뭐지?”
[혼돈의 차원에 사는 악마의 식인 나비들을 소환하는 주문입니다. 십 년에 한 번 밖에 쓸수 없는 강력한 주문이니 효과는 확실할 것입니다.]
“으음!”
틀림없이 대라신선의 보패로도 흉내내기 힘든 어마어마한 술법!
마왕의 이름값을 할 만한 위용이었다.
이런 놈과 적이 되어서 싸우면 꽤 골치 아플 게 틀림없다. 물론 나는 천인과 일대일로 싸워서 해치운 적 있었지만 싸움은 상성이란 게 있는 지라 이렇게 다양한 주문을 구사한 건달파를 상대로는 나도 방심할 수 없는 것이다.
흑룡들은 나와 건달파에게 크게 한 방씩 당하자 숫자의 절반이 줄어들었고, 남은 놈들은 어떻게 해야 할지 갈팡질팡하는 듯했다. 그러더니 흑룡의 우두머리로 보이는 커다란 흑룡이 우리 앞으로 날아와서 말했다.
[너희는 누구냐? 우리가 촉룡(燭 龍)의 신(神)을 모신다는 걸 알고 싸움을 거는 것이냐!]
“!!”
촉룡신!
복희를 따라 이 세계로 들어온 다른 세계의 [옛 지배자! 우주의 귀고(鬼姑)에서 탄생했다고 하는 그 존재는 미래에 텅텅 비어 있는 명계에서 인간의 영혼을 잡아먹으며 지내는 걸로 알고 있었다.
‘그렇다 해도 촉룡신이 부하를 거느리고 심지어 지상에서 활발하게 움직이게 할 줄은 생각지도 못한 일 이군.’
이 시대에는 촉룡신도 지상에서 날 뛰는 건가? 뜻밖에 아는 이름이 나오자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
“흑룡이여! 죽고싶지 않다면 이만 물러가는 게 좋을 것이다. 이 탁록 에서 촉룡신의 권위는 통하지 않는다.”
내 목적이 마물 퇴치이긴 하지만 왠지 저 흑룡들이 전력을 다해서 대항하면 무척 귀찮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든다. 신의 명을 받아서 움직이는 따까리들이라면 당연히 비장의 무기 한두 개는 갖고 있을 게 뻔하기 때문이다. 어차피 용을 열 마리 이상 죽였다면 돈도 쏠쏠하게 벌었으리라.
그러자 흑룡의 우두머리는 크게 화난 듯 이를 갈았다.
[두고봐라… 혼돈의 인간들이여! 아무리 염제의 가호를 받는다 한들, 언제까지 그 위세가 갈 순 없을 것이다!]
슈아아악
흑룡들은 잔존병력을 이끌고 물러나 버렸다. 나는 그런 흑룡들을 보면서 실리를 챙겼다고 생각하면서 어리둥절한 생각이 들었다.
“혼돈의 인간?”
무슨 말이지?
그때 건달파가 내게 말했다.
[주군. 저쪽 싸움도 거의 결판이 난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