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st Biopsy RAW novel - Chapter (587)
3 세력일 가능성이 크다. 그들이 내게 의사를 물어올거라고 한 망량선사의 예측은 사실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나로서는 여기서 팔부신중과 지옥같은 싸움을 하느니 놈들의 뜻에 따라주는 게 낫다. 왜냐하면 –
파아앗
갑자기 거대한 차원문이 허공에 열렸다. 다만 그것은 이족이 여는 특유의 차원문과는 느낌이 조금 달랐는데, 절제되지 않는 악함과 광기가 새어나오는 대신 공허한 어둠만이 저편에 묻혀있는 느낌이었다. 이윽고 팔부신중들이 하나씩 그 차원문으로 들어갔고, 나는 긴나라를 따라서 나 혼자 차원문으로 걸어들어갔다.
뒤에서 망량이 외쳤다.
“백웅! 두려워하지 마시오!!”
나는 망량을 돌아보며 훗하고 웃었다.
“죽기밖에 더 하겠소?”
그렇다. 죽기밖에 더 하겠는가?
망량이 방금 두려워하지 말라고 한 것은 죽음의 공포를 이겨내고 최대의 이득을 얻어내고 오라는 소리였다. 왜냐하면 이것은 그동안 전생을 하면서 단 한번도 마주치지 못했던 ‘창힐’이라는 거대한 존재를 대면할 기회이며, 나아가서는 그 자의 의도와 생각까지도 알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나로서는 죽는 한이 있어도 이 기회를 놓칠 수가 없다.
우우우우 –
잠시 후 내 몸이 차원문을 통해서 어딘가 이계(異界)로 날아갔다. 접힌 공간의 왜곡을 몇십 번이나 통과해서 날아가는 것 같았다. 내가 알고 있는 마도지식에 따르면 공간왜곡을 통해서 다른 차원을 경유하는 건, 신적 존재에게 그 위치를 추적당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 창힐이 머무는 원래 차원의 위치는 극비인 듯 하군.’
아마도 암천향의 달이겠지만, 거기서도 또 다시 위치를 이리저리 옮기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윽고 내가 다시 눈을 떴을 때는 기이한 장소에 서 있었다.
마치 하늘과 땅이 뒤집힌 것 같은 장소라고 할까? 하늘은 평평하면서도 무량하게 넓었고 이따금 꿈틀거렸으며 – 하늘 저편에 출렁이는 바다가 넘실거렸다. 그리고 땅은 구름을 이어붙인 것 같았으며 허공에 둥둥 떠 있는 것과 같다. 오색찬란한 동물들이 돌아다니는 게 보이기도 했다.
기이하긴 하지만 사악한 기운은 거의 느껴지지 않는 영소(靈所) 같았다. 나는 팔부신중들을 뒤따라서 걸어갔는데, 이윽고 시꺼먼 건물 안쪽으로 걸어들어가게 되었다.
저벅
“엇.”
한 걸음을 안으로 옮기는 순간, 내 앞에 가던 팔부신중들의 기척이 모조리 사라져 버렸다. 완연한 암흑이 아니었고 은은하게 불빛이 비치고 있는데, 말 그대로 도깨비처럼 모조리 소멸된 것이다! 내가 어찌된 일인가 싶어서 둘러보았지만 좁은 통로에는 정적만이 가득했다.
어쩔 수 없이 일직선통로를 따라서 끝까지 걸어들어가자 – 그 곳에는 눈이 네 개 달린 존재가 허공에 뜬 채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몸에 체모와 성기가 없었고 희멀겋게 생긴 가죽을 걸친 듯한 괴이한 생명체였다.
‘ 창힐…’
창힐이 맞을까?
내가 그렇게 의심한 것은 그 존재는 아무런 지성도 없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나를 힐끔힐끔 쳐다볼 뿐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더니 나를 무시하고 어디론가 지나쳐 버렸다. 잘 보니 이 공간에는 저렇게 생긴 사안족(四眼族)이 여기저기에 떠 다니고 있었다. 역시 저건 창힐이 아니라 휘하종족일 뿐인 듯 했다.
쿠구구…
불길한 진동이 갑자기 울렸다. 그 때 내게 ‘의지’가 들려왔다.
[ 너 는 무 엇 을 원 하 는 가 ? ]나는 직감했다.
바로 이것이야말로 창힐이다.
마치 [옛 지배자]와 같은 느낌!! 나는 전신을 송곳처럼 파고드는 그 언령(言靈)에 소름이 돋았다. 완전히 몸을 빼앗겨버릴 것만 같았기에 정신이 아득해지는 걸 간신히 참으며 그 말에 대답했다.
“모든 [옛 지배자]의 파멸!!”
어차피 여기까지 나를 부른 자이며 창힐이라면 어설픈 거짓말은 통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크게 외치자, 창힐이 흥미롭다는 듯 말했다.
나는 이를 악물고 용기를 내서 외쳤다.
“창힐! 당신의 목적은 대체 뭐요?”
[ 말 해 줄 이 유 가 없 구 나 .]“황제에게서 당신이 얻어낸 진의는…”
[ 말 해 줄 이 유 가 없 구 나 .]“……”
그렇게 말하면 할 말이 없었다. 내가 잠시 굳어 있는 동안 창힐의 말이 이어졌다.
[ 내 가 잠 시 너 를 거 두 리 라 . 곧 너 는 재 밌 는 일 을 보 게 되 리 라 ]“무슨 말이오?”
[ 파 멸 이 당 겨 진 시 간 의 끝 을 ….]파아앗!!
나는 잠시 후 의식을 잃었다.
그리고 다시 깨어났을 때, 창힐의 기묘한 궁전이 아니라 지상세계에 되돌아와 있는 걸 알 수 있었다.
“……?”
뭐지?
겨우 그 말 하려고 창힐은 나를 부른 건가?
나는 어리둥절한 기분이 들었으나, 내가 갖고 있는 전국옥새나 비등 목갑 등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내가 갖고 있던 화룡신검 또한 마찬가지였다. 일단 무사히 인간세상에 돌아온 것 같았으나 이상하게도 내가 있는 장소는 황량한 산골이었다.
백련교 사람들은 몽땅 사라져 있고, 동료들도 아무데도 없다! 나무가 모조리 불타 사라진 것 같았고 인적도 없다. 나는 분명히 백련교의 교주전에 있었을 텐데 왜 이런 꼴이 된 것인가? 나는 의아한 생각이 들어서 가지고 있던 순어구를 써서 제갈사에게 연락했다.
[ 제갈사! 어딨어?!]그러나 대답은 곧장 들려오지 않았다. 나는 두세 번 더 불러봤지만 대답이 없길래 순어구를 놓으려 했는데, 잠시 후 굼뜬 목소리가 들려왔다.
[ … 어, 백웅 맞냐?]제갈사가 대답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머릿속에 울리는 목소리는 원래 내가 알던 제갈사의 것과 약간 달랐고 조금 탁해져 있었다. 그래서 나는 제갈사가 아니라 다른 자가 순어구를 갖고 있을 가능성을 떠올리며 경계했다.
[ 제갈사가 아닌가? 넌 누구냐? 어디에 있지?] [ … 크흐… 흐흐흐. 어이가 없군… 하필 이럴 때…] [ 대답해!]내가 호통치듯 의지를 전달하자 이윽고 ‘제갈사’가 김빠진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 비등은 아직 갖고 있나?] [ 제갈사 맞는거냐고.] [ 비등을 갖고 있으면 다두왕국으로 와라. 다들 여기 있다.] [ 아니 무슨…]나는 황당해하면서도 일단 다두왕국으로 갔다.
그리고 본거지 안에 들어가는 순간 놀라서 경직했다.
“이 새끼야… 왔냐?”
“제, 제갈사.”
“크크크.”
제갈사는 거기에 있었다. 하지만 동료들은 별로 남아있지 않았다.
그리고 중늙은이의 몸을 하고 있는 제갈사의 옆에는 – 마찬가지로 노인이 되어 있는 망량과 예전 모습 그대로인 진소청이 서 있었다.
제갈사가 히쭉 웃으며 광기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좀 있으면 세상이 망할텐데 50년 동안 뭐 하다가 이제 온 거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