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st Life Returner RAW novel - Chapter 191
22 화
본 시대에서는 이해할 수 없었던 현 상들이 설명된다.
예컨대 몬스터 군단이 각국의 수도 에 직접적인 침공을 가하지 못하고 인 근 지역에 게이트를 열 수밖에 없었던 것.
우리들의 본토에 미쳐 있던 올드 원 의 힘이 이를 방해했을 거라고 본다.
연희와 함께 제일 마지막으로 게이 트를 통과해 나왔을 때.
각성자들의 함성은 멎어 있었다. 그 들의 눈앞에 이제는 꿈에서도 잘 볼 수 없었던 옛 풍경들이 펼쳐져 있기 때문이었다.
사거리 중앙이 었다.
「시청 사거리」
도로는 텅 비어 있었고 신호등들 또 한 마치 오래전에 죽은 듯이 꺼져 있 었다.
또렷한 것은 인도에 놓인 알록달록
화분들과 도로 분기점마다 설치된 표 지들의 푸른 색채였다.
바로 우리 본토의 진짜 색채!
「T 중앙로
ᅳ 서울•사당•양재 — 정부과천청사•시청•시의회」
「예측출발금지•신호준수」
「시청 사거리」
「_ 과천외국어고•과천여자고교」
철제 표지판에 박힌 우리나라 글자
들을 하나하나 훑고 있는 건 나뿐만이 아니다.
모두는 주위로 고개를 돌려 댔다. 실 제로 표지판에 적힌 글자를 소리 내서 중얼거 리는 자도 있었다.
그랬던 감상도 잠깐,가까워지고 있 는 확성기 소리로 시선들이 집중됐다.
“실제 상황입니다. 남은 시민 여러분들 은 군 경의 통제에 따라 대피하여 주십시 오. 실제 상황입니다. 남은 시민 여러분들
확성기를 달고 나타난 군용차 하나
만이 도로에서 움직이는 유일한 차량 이었다.
“겁나게 반갑구마잉. 군바리 쉐끼
드 ”
하지만 성일에게만 그렇게 느껴졌던 것일까.
아니면 아주 오래된 기억,1막에서 그들이 겪었던 군인들에 대한 안 좋은 기억을 떠올리고 있기 때문일까. 각성자들은 우리를 발견하고 속력을 높여 오는 그것을 몬스터 보듯 하였 다.
성일이 허락을 구하는 눈빛으로 나 를 돌아보았다.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성일이 한순간에 끌어올린 속도는 군용 차량보다 빨랐다. 그가 차량에 빠르게 접근해서 운전석 쪽으로 붙었 다.
급브레이크가 걸린 소리는 요란했으 며 향수를 자극하는 소리였다. 약간의 흰 연기 뒤로 스키드 마크가 선명했 다.
“뭘 놀라고 그려.”
성일이 운전석 창에 대고 흥분된 목 소리를 냈다.
놀란 옆얼굴로 아무 말도 못 하는 운 전수 대신,조수석과 뒷좌석에서 군인
들이 내리기 시작했다.
그들은 완전 무장되어 있었다.
그들도 우리들에게서 위화감을 느꼈 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우리를 난생처음 보는 생물처럼 바 라보면서 각자의 집게손가락을 방아 쇠에 걸쳤다.
총구를 우리 쪽으로 향하지만 않았 을 뿐인지,우리에게 도사리고 있는 위험을 본능적으로 직감한 것 같았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렇듯.
설사 본능이 뒤떨어진 자라도 우리 에게 묻어 있는 핏물들을 발견하고는 심상치 않음을 느꼈을 것이다.
성일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한 얼 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군용차를 가리켰다가 서울 방향을 가리켰다. 성일이 바로 알아들었다.
“여기는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께, 그 짝들은 후딱들 꺼져.”
“당신들 뭡니까!”
조수석에서 내린 군인이었다. 성일 은 웃고 있는 것 같았다. 그의 목소리 에는 웃음기가 다분했으니까.
진정으로 그만큼은 본토로 돌아온 걸 기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지옥에서 돌아온 전사들이지.”
“그게 무슨……
광!
성일이 주먹으로 차의 보닛을 내리 쳤다.
우그러지다 못해 허공으로 튀어 오 른 군용차 하부를 바로 움켜쥔 것도 성일이 었다.
그가 군용차를 움켜쥔 손으로 도로 한 쪽을 가리 켰다.
“후딱 꺼져 부러. 괜히 휘말려서 뒈 지지 말고.”
“각…… 각성자입니까?”
“그럼 뭐 겄어. 근디 건빵 가진 것들 있지?”
연희는 크게 호흡을 들이마시 었다가 내쉬었다. 그러고는 작은 콧구멍을 움 직인다.
맛있는 냄새가 많이 난다는 기쁜 목 소리도 함께였다.
주변에는 경찰서와 소방서 등의 작 은 관공서뿐만 아니 라 시청도 있고 호 텔도 있었다. 비워져 버린 도시라 해 도 어디서든 식자재나 완성된 요리가 남겨져 있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지금은 건빵만으로도 훌륭했 다.
성일은 군인들에게 빼앗다시피 해서 가져온 그것을 모두에게 돌렸다.
아그작.
한편 이태한은 상가 빌딩의 옥상 간 판들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그가 자신의 일성 그룹과 연관 된 것을 찾고 있다 생각했는데,아니 었다.
그의 시선은 대후 증권의 간판에 꽂 혀 있었다.
전일 인베스트먼트가 대후 그룹을 인수하며 바야흐로 전일 그룹으로 거 듭났던 일을 떠올리고 있는 것일까. 그렇다면 그 생각은 수많은 고리를 거
쳐 전일 클럽까지 이어질 수 있었다.
그때 성일이 봉지에 부스러기를 제 입에 털어 넣으며 말했다.
“저쪽.”
서울 대공원 쪽이다.
거기서 들려오는 괴성이야 감각을 조금만 높여도 들을 수 있는 일이다.
연희는 본 시대가 끝났다고 말했었 지만 아직 그 잔재가 남아 있다.
크시포스 군단은 과천에 진입한 이 후 두 개 군단으로 찢어졌었다. 하나 는 관악산을 가로질러 관악구로, 다른 하나는 과천대로를 타고 방배동으로 진입하여 서울을 강타했었다.
이것들을 박멸하고 나야 본 시대가 정말로 끝나는 것이다.
아직 놈들은 두 개 군단으로 찢어지 지 않은 상태였다. 규모는 저열하기 짝이 없는 게이트 D 등급.
부상이 심한 자들은 남게 하고 나머 지들을 그쪽 방향으로 보냈다.
“우리 새끼들이 사는 땅이다잉. 하나 도 남기지 말어어어엇!”
성일이 발을 굴렀을 때 아스팔트 도 로가 먼저 깨지며 파편들을 솟구쳐 올 렸다.
그렇게 성일이 큼지막한 동작과 빠 른 속도로 뛰쳐나갔다.
모두는 괴성이 운집되어 있는 방면 으로 최단 거 리를 잡았다.
뻥 뚫려 있는 도로를 이용하지 않았 다.
성일과 이태한 같이 레벨이 높은 이 들은 건물 자체를 뛰어넘었다.
그럴 수 없는 이들은 굳게 닫힌 관공 서 철문을 건너뛰며 빠르게 그 방향으 로 사라져 갔다.
찰나에 내 주위에 남은 인원이라곤 부상이 심한 자들과 연희 그리고 그녀 의 애완물 및 오르까가 다였다.
“안 가?”
“기회를 줘야지.”
이번만큼은 본인들 손으로 고국을 지킬 수 있는 기회 말이다.
그리고 그것은 성일과 이태한이 포 함되어 있기에 실패하는 것이 오히려 불가능한 일이 었다.
표지판에는 대공원대로라고 쓰여 있 다. 전차들이 6차선 대로를 틀어막고 있었다.
전차는 표정을 지을 수 없지만 그것 들 뒤에 소총으로 무장한 엣된 군인들 의 얼굴은 표정을 지을 수 있었다.
드러난 그 얼굴들은 겁에 질려 있었 다.
바로 지척까지 몬스터 군단이 진격 했음을 알고 있는 것이었다.
또한 군 지휘관은 서울로 가는 첫 관 문을 맡고 있다는 것에 사명을 가지고 있는지,휘하 장병들의 사기를 북돋우 는 소리를 키워 놓고 있었다.
그 소리는 우리나라 성우로 하여금 재녹음된 조슈아의 기자 회견 내용이 었다.
“시작의 장은 우리 세계와는 다른 시간 대의 공간입니다. 그 공간의 시간이 홀러
도 우리 세계의 시간은 흐르지 않습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에게는 우리가 준비되어 진 힘으로 찰나에 나타나,새로운 위협을 해소하는 것처럼 보일 것입니다.”
“각성자들이 시작의 장에서 돌아오길 기 다려 주십시오. 그리고 시작의 장에서 시 험을 치를 각성자들은 오늘의 이 발표와 우리들을 기억해 주십시오. 우리가 함께 신세계에 닥친 위험을 제거해 나갈 수 있 습니다.”
당시에 진실을 알았더라면 마지막 내용은 바뀌어졌을 것이다.
서울 대공원 방면으로 전투가 시작
된 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군인들에게는 괴성이 커진 것으로만 들릴 뿐인지라,지휘관은 즉 각 소리를 끄고서 임전 태세를 명령했 다.
지휘관이 무전기를 집어 들었을 때, 내가 그 앞에 있었다.
그의 한 손에 들려져 있던 서류 파일 들은 그때 동반된 바람에 휘 날렸다.
2기갑여단이 서울로 진입되는 첫 관 문을 담당하고 있었다.
“필요 없다. 몬스터들은 곧 진압될 것이다. 나는 각성자다.”
그의 무전기를 눈짓으로 가리켰다.
그때도 무궁화가 한 개 박힌 지휘관과 주변 장병들은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를 몰라 했다.
갑자기 나타난 초자연적인 존재를 바로 받아들이긴 쉽지 않은 일이다.
그때 장병 하나가 태블릿 피시를 가 지고 접근했다.
연희는 내 뒤로 합류해서 반짝이는 눈으로 태블릿 피시를 쳐다보았다.
태블릿 피시 속에는 상공에서 촬영 이 시작된 영상이 실시간으로 전송되 고 있었다.
거기는 살육의 도가니 였다.
광분해서 날뛰는 우리 각성자들이었
고,성일의 움직임은 현대 기기로도 쫓지를 못했다.
성일이 틀림없는 검은 점이 이리저 리 번뜩이는 자리마다 핏물이 터져 대 고 있었다.
성일은 어느새 크시포스의 거대 괴 수 대가리에 올라타 있었다.
그때 처음으로 상공에서 내려다보는 성일의 정수리며 널찍한 어깨선이 잡 혔다.
거기까지였다. 거대 괴수가 어떤 일 격에 의해 쓰러지는지는 또 잡히지 않 았다.
검은 점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태한으로 추정되는 점 역시 몬스 터들을 도륙하고 있는 가운데,휘하 각성자들 중 몇은 영상 속도를 몇 배 속으로 빠르게 돌리고 있는 듯한 움직 임으로 몬스터 사이를 휘저 었다.
팔악팔선과 둠 카소의 화신이 격전 했던 영상을 몇 번이고 돌려 봤던 때 가 생각났다.
최대한으로 느리게 재생시켜도 그들 의 움직임을 파악하기 어려워서 얼마 나 애를 먹 었었던가.
직접 이 두 눈으로 그 광경을 보고 있지 않은 이상,현대 기기의 한계는 거기까지 였다.
지휘관은 침을 삼켜 넘겼다.
혼란스러운 그의 시선이 슬슬 태블 릿 피시에서 내게로 옮겨지고 있었다.
“지금은 계엄……
그는 말꼬리를 흐리며 나를 훌어보 았다. 그러고는 연희에게도 시선이 미 치더니,그녀의 품에 안겨 있는 애완 물에까지 닿았다.
털이 덥수룩하고 통통한 이계의 생 물은 겉보기론 위험스럽지 않다.
그래도 크시포스의 진짜 모습을 알 고 있기 때문인지,그는 한 발짝 뒤로 물러나며 권총집에 손을 올렸다.
“누가 지휘하고 있습니까?”
그가 거 리를 벌린 자리에서 말했다.
“나다.”
“진압이 끝나는 대로 각성자 전원을 소집시켜 주십시오. 인원은……
“당신, 지금 실수하고 있는 거야. 홋.”
연희가 웃어 내는 소리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그는 자신의 임무를 다했 다.
“인원은 이것뿐입니까?”
지휘관은 태블릿 피시 속의 영상을 눈짓해 보였다. 그러다가 내 어깨 너 머,멀리서 움직이지 않는 오르까에게 로시 선을 옮겼다.
네크로맨서의 로브로 위장하고 있는 오르까에게선 특히나 위험스러운 느 낌이 강렬할 수밖에 없었다.
“일단 상부에 보고드려야겠습니다.
“계엄 사령부겠군.”
“그렇습니다.”
“둘다 내려오라고해.”
“계엄사령관 그리고 대통령. 여기로 당장.”
지휘관의 얼굴이 순간 굳어지며 미 간에 주름이 잡혔다.
“당신들…… 일단 그렇게 요구했다 고 올리긴 하겠습니다만. 우리 계엄군
이 국가 전역의 모든 상황을 통제할 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각성자 전원 은우리 계엄군의……
지휘관의 손에 들려 있던 태블릿 피 시는 어느새 연희의 손아귀 안으로 옮 겨져 있었다.
연희가 그것을 바닥에 내리치고는 재밌다는 투로 말을 뱉 었다.
“안 돼. 안 돼. 너희들은 이걸 볼 자 격이 없단다.”
“무슨 짓입니까?”
“우리 군에 뭐? 주상아. 우리에게 군 복을 입힐 수 있을지 내기할래? 네가 딱해서 하는 소리야. 거기서 그치고
더는 법보이지 말렴.”
연희에게 고개를 저어 보이자 그녀 는 미안하다는 표정과 함께 뒤로 물러 났다.
지휘관의 얼굴에 대고 한마디만 했 다.
“‘전일’에서 보잔다고 전해라. 내 신 분은 전일 여회장에게 확인받으면 될 것이다.”
각성자라는 이름보다 그 이름이 더 먹히는 세계가 바로 여기니까.
여기는 우리나라,전일에 지배되는 나라다.
“전일 여회장님이십니다.”
지휘관은 내가 그의 눈앞에 갑자기 나타났을 때보다,태블릿 피시의 영상 에서 기괴한 광경을 봤을 때보다 더 놀란 듯했다.
그래. 그에게는 그것이 보다 현실로 느껴지는 일일 것이다.
자신의 견장에 박힌 무궁화쯤은 헛
기침 한 번으로 떼어 낼 수 있는 권력 자의 목소리가 코앞의 몬스터보다 더 두려울 수 있었다.
지휘관이 건네주고 간 스마트폰에서 일성 그룹 로고를 발견했다.
쓴웃음이 입가로 번졌다.
〈나다.〉
스마트폰에 대고 말했다.
< 과천이라고 들었어요. 그런데 전 각성되지 않았어요.〉
제이미의 놀란 목소리가 바로 튀어 나왔다.
〈그렇겠지. 여기로 와줘야겠다.〉
제이미와 연결을 끊고 마음의 준비 를 했다.
좀처럼 액정을 터치하지 못하는 내 모습에서 연희가 공감한다는 듯이 고 개를 끄덕 여 보였다.
그녀의 손에도 스마트폰이 쥐어져 있지만 막상 제 가족들에게 연결을 시 도하지는 못하고 있었다.
통신망이 끊긴 지역은 몬스터 군단 이 휩쓸고 지나갔었던 안양,군포시 일대뿐.
연희와 내 가족 그리고 주요 인물들 의 가족들이 운집하고 있는 전일 리조 트 쪽은 언제든 연결이 가능한 상태였 다.
하지만 그건 잠깐의 착오였다.
마음 단단히 먹고 아버지께 연결을 시도했을 때 들려오는 소리라곤 통화 량이 많아 연결이 지연되고 있다는 기 계음이 다였다.
제이미는 특수 회선을 썼었겠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연희가 1막에서 귀환석을 써서 내게 합류할 수 있었음에도 그렇 지 않았던 것이 백분 공감됐다.
아직 시작의 장에서 달고 나온 핏물 로 찌들어 있다.
부모님께도 내 피비린내가 얼마든지 미치고 말 것이다. 그것이 설사 목소 리뿐일지라도.
원래 부모님들은 자식의 변화쯤은 금방 알아차리지 않는가.
그래도…….
미뤄서는 안 되는 일이다.
“안 터지네. 나중에 하지,뭐.”
연희는 시원하다는 듯이 웃으며 스
마트폰을 조작했다.
그녀는 거기에 설치되어 있는 어플 들이 처음 보는 신문명인 것처럼 대했 다.
카메라 아이콘을 응시하는 시간이 길어졌다.
그러고는 날 보고 다시 웃으며 살짝 터치.
이후로 연희는 액정을 통해 스마트 폰 렌즈 속으로 담겨 오는 세상을 관 찰하기 시작했다.
이 리저 리 스마트폰을 움직이 면서.
그때 지휘관이 다시 들어왔다.
“통화는 끝나셨습니까?”
내가 누구인지 무척 궁금한 눈치였 다.
그의 태도는 조심스러워졌고 내 지 시를 받는 걸 수긍하고 있었다.
“부모님께 연락을 해야겠는데 연결 이 어렵군. 일단 자식이 여기에 건강 히 있다고 통신 띄워. 전일 리조트. 나 전일 부부께.”
아버지께서는 갑자기 당신의 눈앞에 서 사라진 자식을 걱정하고 계실 거 다.
텔레비전 속에 담긴 파괴된 도시들 과 몬스터들을 보시면서 말이다.
“그리고 가능한 빨리 연결 방법을 찾
아봐라.”
“알겠습니다. 계엄사령관님과 VIP께 서는 진압이 끝난 후에 오실 예정입니 다.”
“전일 여회장은 지금 바로 날아오고 있다.”
“……그렇게 전달받았습니다. 다시 보고 올리겠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신 대로 과천 시청 사거리에서 부상자들 을 수습하였습니다. 우리 군 최고의 의료진들을 붙여 놓았으니 염려 마십 시오.”
“고통을 호소하는 자가 있다면 독한 진정제만 놔 둬. 또한 얼굴이 어둠에
가려져 있는 자에게는 접근하지 말도
“충성.”
그가 막사에서 나가자 연희는 배꼽 을 잡았다.
“태세 변환 끝내주네. 저것도 진입했 으면 한 자리 해 먹었을 거야. 아니,1 막 2장에서 죽었으려나?”
우리에게도 씻을 물이 지급되었을 때였다.
수도관에서 직접 호스를 따 온 것이 라 부족함이 없었다.
연희는 시작의 장에서 가지고 온 버 릇대로 주변을 의식하지 않고 그 자리
에서 다 벗으려 했다.
그러나 그녀가 먼저 느낀 것이 있었 을 터,행동을 멈췄다.
그래도 가슴과 아래만 겨우 가려져 나머지 피부는 그대로 드러난 상태였 다.
사실 몬스터 가죽을 기워 만든 속옷 도 완벽한 것은 아니 었다.
연희가 씻으면서 말했다.
“저것들 봐. 날 무서워하지 않아. 이 런 거 정말 오랜만이네.”
황급히 돌아가는 시선들은 내 눈빛 과 부딪쳐서 였다.
연희 때문이 아니라.
“즐길 수 있을 때 즐겨 둬라. 그것도 잠깐이니까.”
정말로 박수를 쳐 줄 일이다. 서울 대공원 방면에서 튀어나온 것들이 있 었다.
탈것을 탄 크시포스 전사들. 하지만 그것들의 양손에 들려 있어야 할 손도 끼는 진즉 잃었는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간신히 목숨만 붙은 것들이었고 보 란 듯이 그 뒤를 쫓아오는 각성자도
몇 있었다.
장갑 차량으로 만들어진 바리케이드 에서 장병들의 전투 준비가 끝나 있던 순간.
쉐아아악!
연희가 먼저 튀어 나갔다.
– 또 씻으면 되잖아. 너무 좋다. 이 렇게 말할 수 있는 게.
연희의 전음은 빨랐다. 그녀가 크시 포스 전사들을 도륙하는 것도 빨랐다.
제 주력 스킬을 사용하지 않아도 저 런 잡졸들 따위는 칼질 몇 번이면 끝 난다는 걸 과시하고 싶었는지도 모른 다.
연희의 칼질은 섬세했다.
탈것의 모가지,전사의 모가지.
그리고 그것들의 복부 아래에서부터 마석과 함께 붙어 있는 심장까지 쭉.
네 번의 칼질은 한 세트가 되어 탈것 과 거기에 탄 크시포스 놈들을 죽여 나갔다.
광대의 단검에서 터진 저주가 무엇 인지 확인하기 어려울 정도로 바로 죽 어 버리는,신속한 속도였다.
바리케이드 전방.
그쪽 도로 위는 몬스터 사체와 거기 에서 흘러나온 핏물 그리고 내장물들 로 더럽혀졌다.
“도와줘야 돼?”
연희가 뒤로 합류한 각성자들에게 묻고 있었다.
“아닙니다. 다 끝나 가고 있습니다.”
“피해는?”
“없습니다.”
“잡졸들뿐인데 그래야지. 어쨌든 너 희들 손으로 직접 조국을 지킨 거야. 좀 자긍심을 가져 봐.”
“예.”
각성자들은 달려왔던 방향으로 다시 뛰어갔다. 그때 연희가 이쪽으로 몸을 틀었다.
그녀가 선 곳은 핏물로 흥건했다.
그녀의 전신도 양동이째로 핏물을 끼얹은 듯했다.
머리칼과 온 살결을 따라 피가 흐르 고 있었다.
연희는 단검으로 재주를 부리며 천 천히 걸어왔다. 눈에 띄게 즐거운 기 색을 보여 왔었지만,군인들에게 뭔가 불만스러운 게 있었던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야 제 능력을 그렇게 과시할 리가 없었다.
핏물로 범벅된 전신.
웃음까지 말아 감고 있는 그 얼굴로 향하는 시선들에는 이전 같은 눈빛들 이 사라져 있었다.
연희가 피로 찍힌 발자국을 남기며 내게 돌아왔을 때는 그녀를 흘깃거리 는 이가 단 한 명도 없었다.
봤어?
봤어?
소리 죽인 뒷말들만 재잘거 렸다.
이윽고 연희가 기다렸던 물건들이 지급됐다.
막사 안에서 본토의 여성 속옷으로
갈아입은 연희는 내 앞에서 한 바퀴 돌아보았다.
“좀 크지 않아?”
내가 봐도 브래지어에는 남은 공간 이 확실히 있었지만 고개를 저어 주었 다.
연희는 마저 본토의 겉옷까지 챙겨 입었다. 그러고는 천막을 걷어 올렸 다.
성일과 이태한을 비롯한 각성자들의 기척이 가까워지고 있던 시점이었다.
그들이 육안으로도 보이는 거 리까지 진입했을 때,일대는 침묵에 휩싸였 다.
전투의 열기는 쉽게 꺼지지 않는다.
그러한 살기가 이글거리며 피를 흘 리면서 걸어오는 그들의 모습은,연희 가 보여 주었던 광경과는 또 다른 비 현실적인 광경으로 보였을 것이다.
예컨대 그들이 식사를 마친 도살자 들처럼 보일 것이다.
지휘관의 지시가 없는 데도 알아서 길이 열렸다.
그들이 달고 온 피비린내와 악취가 진동하기 시작한 것과는 별개로,장병 들을 훑어보는 각성자들의 시선은 한 참 아랫것들을 내려다보는 광오한 시 선이었다.
고작 몇백만 진입해 들어왔을 뿐이 나 한 개 여단이 그들에게 압도당했 다.
지휘관은 막사 앞에서 그런 그들을 멍하니 쳐다보고 있다가 나를 돌아보 았다.
내가 말했다.
“시청 도로에 호텔이 하나 있더군. 물,식사,옷,핸드폰 그리고 여자든 남자든,기타 원하는 것들을 물어서 그대로 제공해라. 비용은 얼마가 들어 도 상관없다. 처리 후 전일 그룹으로 청구하도록.”
각성자들이 몰고 온 분위기에 파묻
혀 버 렸기 때문이 었을까.
군인 신분에서 항변이 튀어나올 수 있는 지시에도 불구하고 지휘관의 입 에선 그렇게 하겠다는 대답이 즉각 나 왔다.
“허미. 누님. 몰라보겄소. 예뻐요. 예 뼈!”
성일이 지휘관을 무시하고 막사 안 으로 들어왔다.
한편 이태한은 지휘관에게 그의 스 마트폰을 요구하고 있었다.
지휘관은 피로 얼룩진 이태한의 얼 굴을 알아보지 못했다.
“말은 고마운데 성일아. 어쩌지? 넌
구원자의 도시민들과 함께 남아서 좀 더 수고해 줘야겠어.”
연희가 나보다 먼저 말했다.
각성자들이 돌아오기 전에 다뤘던 내용 중에 하나였다.
“기철이한테 가 봐야 하는디요.”
“마석 좀 만져 봤다면서?”
“흐미. 대체 언제 적 얘기요. 누님이 말하기 전까진 잊고 있었수.”
“잔말 말고 하나도 빠짐없이 수거해 놓으렴.”
“아무 쓸모 짝에도 없는 돌멩이를 왜 요.”
“빨리 끝내 놓을수록 기철이한테 갈
수 있는 시간도 빨라진단다?”
“아따 좀 봐주쇼. 사람 환장하겄네. 사람 마음 그렇게 잘 보시는 분이 어 째 아비 마음을 이리도 몰라 준디야.”
“맨손으로 가려 했어? 선물도 없 이?”
“예?”
“기철이 선물 챙겨 가야지. 그리고 그렇게 갈 거야? 그대로 가면 애 간 떨어진다.”
“그야 그렇지만서도,돌멩이 주워 담 는 거는 아랫것들이 할 일 아니오? 뭔 필요인지 모르겠지만.”
“돌멩이 아니야. 마석이란다.”
“그럼 군바리들 가져다 씁니다? 손 버릇 나쁜 것들은 뚝배기 깨 불고.”
“그 현장에서 몇이나 제대로 움직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뭐 그건 알 아서 하렴. 빨리 끝내고 아들 보러 가 자. 성일아. 선물 좋은 걸로 준비해 놓 을게.”
“알겄소. 마석만 챙기면 되어요? 껍 따구나 대갈빡 같은 건요?”
“그런 건 필요 없고 드랍 아이템도 보이는 대로 수거해 줘.”
“어째 주문이 점점 늘어나는디. 더 늘어나기 전에 갑니다! 그럼 준비해 놓고 기다리슈.”
성일은 내게 짧은 눈인사를 마치고 선 막사 밖으로 나갔다.
밖은 각성자들을 나눠 태운 군용 트 럭들이 언급했던 호텔이 있는 방향으 로이동 중이었다.
따로 옮겨져 있던 부상자들도 그때 함께 이동되는 것 같았다.
나는 이태한의 통화가 끝나길 기다 렸다가 그에게 다가갔다.
그는 자신의 그룹 로고가 박힌 스마 트폰이 제 손에 쥐어져 있었어도 별 감흥을 보이지 않았다.
“기자회견 준비해라.”
양장 차림의 말끔한 모습으로 있으
라는 주문은 필요 없어 보였다.
이태한의 눈빛이 흔들렸다.
조슈아가 아니라 자신이 선택될 것 이라고 예상했을 일이나 내게서 직접 확인을 받자 새삼 기분이 달랐던 모양 이다.
그가 감격 서린 얼굴로 고개를 숙였 다.
지휘관이 그런 이태한의 본토 신분 을 알아차렸을 때는 그가 얼굴에 붙어 있던 살점과 핏물들을 지워 낸 이후였 다.
하지만 지휘관이 이태한에게 아는 체하려던 것도,상공에 가까워지는 헬
기 소리에 멈춰지고 말았다.
전일 그룹의 마크.
전라도에서 출발한 제이미가 대통령 과 계엄사령관보다도 먼저 도착한 것 이다.
제이미는 헬기에서 내리자마자 곧장 뛰어왔다. 여기저기 피로 찍혀 있는 발자국을 발견하고는 잠깐 멈칫하긴 했지만 그 시 간은 짧았다.
다른 이들도 그렇지만 그녀도 우리 가 얼마나 긴 세월을 관통하고 나왔는 지 모른다. 거기가 얼마나 참혹했는지
도.
그래서였다.
그녀의 첫마디는 또 자신이 각성되 지 않은 것에 대한 한탄이었다.
각성자의 대열에 합류해서 내게 동 참하지 못한 것에 대한 한탄이었다.
연희가 가소롭다는 듯한 웃음을 흘 리고 나서야,비로소 제이미는 일대에 남겨졌었던 위압적인 분위기를 읽어 낸 것 같았다.
이태한에게도 위화감을 느꼈을 테 고.
이태한의 젖은 머리칼이나 아직 다 씻어 내지 못한 피비린내 때문만이 아 니었다.
“이 회장. 당신도 각성했나요?”
둘은 안면이 있는 사이다.
하지만 이태한은 대답 없이 자리를 비켰다.
과거 였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 다. 일성 그룹이 천하의 전일 여회장에 게?
제이미는 생각 깊어진 얼굴로 이태 한의 뒷모습을 쳐다보다가 내게로 고 개를 돌렸다.
그 무거워진 얼굴에 대고 물었다.
“통신이 어렵더군. 전용 회선을 쓰는 게 있겠지?”
“예.”
“우리 부모님께 연결해.”
“예.”
그녀가 본인의 스마트폰을 조작하며 물었다.
“그런데 얼마나 계셨다 오신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