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Crime with Telekinesis RAW novel - Chapter 142
142화. 그럼 뭐가 문제인 겁니까?
브루스 베커가 목줄을 차고 나간 지 이틀째 되던 날이었다.
그는 내 경고를 잊지 않고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CIA한국지부장, 조지 크리크입니다.”
회색빛이 감도는 머리색의 건장한 중년인.
매체를 통해 확인한 외모와 동일했다.
참고로 CIA의 수뇌부인 국장이나 각국의 지부장은 언론에 공개되어 있기에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그러고 보면 정보기관도 예전과 달리 양지로 많이 나와 있는 것이다.
“블랙이라고 합니다.”
나는 미리 준비한 가짜 신분을 내세웠다.
“블랙? 본명입니까?”
“저희 조직의 코드네임입니다.”
“역시 조직에 속한 분들이었군요.”
짐작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하긴 초능력자라는 희귀한 존재가 혼자도 아니고 함께 다니고 있으니까 말이다.
그때 실비아가 자신의 소개를 했다.
“화이트예요.”
“블랙, 화이트······ 컬러를 코드네임으로 하는군요. 어쩐지 두 분에게 잘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혹시 조직명이 어떻게 되는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개인적인 용무 먼저 끝낸 후 말씀드리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급할 건 없으니까요.”
통성명을 한 후, 실비아와 눈빛을 주고받았다.
얼굴을 드러내자는 신호였다.
-스윽.
후드를 벗은 우리의 외모는 원래의 얼굴과는 많이 달랐다.
나는 눈을 찢고 광대를 도드라지게 만들고 코를 납작하게 만들었다.
실비아는 반대로 눈을 더 크게 만들고 높은 콧대와 선이 각진 얼굴형으로 마치 성형미인처럼 위장을 시켰다.
염력으로 그렇게 한 것이었다.
“생각했던 이미지와 많이 다르시네요.”
브루스 베커가 나를 보더니 자신도 모르게 말을 내뱉었다.
“내가 못 생겼다는 건가, 지금?”
“아, 아닙니다. 언뜻 봤을 때의 이미지랑 너무 달라서······”
그의 말에 나는 내 얼굴을 잡아당기며 말했다.
“이게 가면으로 보여?”
“죄송합니다. 제가 실언을 한 것 같습니다.”
“실망이네, CIA가 외모로 사람을 판단할 줄은 몰랐는데.”
브루스가 표정을 구기자 조지가 나섰다.
그 모습은 이해심 많은 상관으로 보였다.
연기인지 진짜인지는 모르지만 말이다.
“이 친구가 현장만 굴러서 다소 무례한 경향이 있습니다. 제가 대신 사과드리겠습니다.”
“CIA와는 뭔가 시작부터 삐걱대는 경우가 많군요.”
내가 운을 띄우자 조지는 찰떡 같이 알아듣고 말을 받았다.
“얘기는 들었습니다. 이엘바이오의 윤종호가 지인이라고요.”
“네.”
“혹시 어떤 사이인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나는 예전에 브루스에게 했던 말을 그대로 해주었다.
약속을 잡았던 것과 그가 갑자기 살해된 것 정도만 말이다.
“딱 그 정도 사이일 뿐입니다. 제가 CIA에 악감정을 가질만한 사안은 아닌 거죠.”
“사적인 일을 공적인 일로 확대하지 않으려고 그리 말씀하시는 건 아닙니까?”
“거듭 말씀드리지만 이유가 궁금할 뿐 윤종호는 저에게 중요한 사람이 아닙니다.”
“흐음······ 그럼 어떻게 알게 된 사이인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쓸데없이 끈질기네.
아니면 아니라고 알 것이지.
“지금 절 취조하러 왔습니까?”
“아닙니다. 취조라니요. 다만 저희가 블랙 씨의 지인에게 해를 끼쳤다보니 조심하는 것입니다.”
“왜 죽였는지 그것만 말해주세요. 그거면 충분하니까.”
“정말 복수를 생각하고 계신 게 아닙니까?”
“제가 복수를 생각했다면 굳이 이런 자리를 만들지도 않았을 겁니다.”
“……”
“표정이 안 좋으시네요. 왜요? 제가 CIA, 아니 미국을 상대로 무슨 짓이라도 할까봐 그러십니까?”
의심을 지우려면 강하게 나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의심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어머니에게까지 미칠지도 모르니까.
“아닙니다. 전 그저 블랙 씨께서 말 못하는 사정이 있는 것 같아 확인차 물어본 겁니다.”
말 못하는 사정? 누가 봐도 낚시다.
무슨 사정이든 이해해줄 테니 말해보라는 낚시 말이다.
“그런 사정 같은 거 없습니다.”
“……”
“아무래도 지부장님의 의심은 걷히지 않는 모양이군요.”
“이쪽 바닥이 그렇습니다. 툭 터 놓고 진행해도 뒤통수를 맞는 경우가 허다하죠.”
그래서 꼭 알아야겠다?
“하지만 두 분은 저희에게 귀빈이고, 이유가 어쨌든 저희 측에서 지인분에게 해를 가한 건 사실이니 있는 그대로 알려드리겠습니다.”
이번엔 또 한 발 물러선다.
밀고 당기고, 사람을 대하는 방식이 제법이다.
지부장이라더니 확실히 브루스 베커와는 수준이 다른 것 같다.
“윤종호, 그가 죽은 건 국가기밀로 등록된 이엘바이오의 일급보안기술을 빼돌렸기 때문입니다.”
“혼자서 한 겁니까?”
“아니오, 그가 모시던 아시아지부장도 연루되어 있습니다.”
역시 이혜선도 관련이 있었구나.
그녀는 어떻게 되었을까.
“그 여자도 죽였습니까?”
“그쪽도 잘 아시는 모양이군요. 혹시 지인은 그쪽이었던 거 아닌가요?”
“윤종호와 마찬가지로 그 여자도 그리 가까운 사이는 아닙니다.”
“그렇군요. 아까 물음에 대답하자면 이엘바이오 아시아지부장은 아직 추적 중입니다.”
그는 이혜선이 유럽으로 들어갔고, 윤종호는 그녀를 위해 한국으로 향한 자신의 행적을 노출해 미끼가 된 것 같다고 설명해주었다.
“한 가지 물어봐도 됩니까?”
“네, 말씀하십시오.”
“제가 그 두 사람과 그리 가까운 사이도 아니고, 잘 알지도 못하지만 산업스파이 짓을 할 사람들로 보이진 않았습니다. 정말 기술을 빼돌린 겁니까?”
“네. 이엘바이오에서 증거자료를 보내왔고, 직접 데이터를 복사하고 원본을 삭제한 이력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럴 사람들이 아닌데······”
“아니라면 도망칠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그리고 그들이 결백하다면 이엘바이오가 일부러 자신들의 기술을 없애고 상황을 조작했다는 건데 그건 더욱 말이 안 되고 말입니다.”
바이오 기술을 개발하는 데 드는 시간과 비용은 엄청나다.
그것도 국가기밀로 등록될 정도라면 몇 십 년의 기간과 조 단위의 자본이 들었을 것이다.
여러모로 이엘바이오를 의심할만한 정황은 거의 없다.
“이혜선은 어떻게 할 겁니까? 죽일 건가요?”
“아니오, 그녀는 주동자이니 기술데이터를 회수하기 전까진 죽이지 않을 생각입니다. 게다가 신분을 바꾼 것도 그렇고 수상한 점이 많아서 배후도 캐야 하고요.”
안소미라는 본래 신분에서 바꾼 걸 얘기하는 모양이다.
역시 CIA는 CIA, 그들은 그녀의 과거까지 탈탈 털어놓은 듯했다.
“윤종호 사건에 대해 더 알고 싶은 게 있습니까?”
지금까지의 대화로 판단컨대 저들은 어머니의 존재를 모르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으로서는 단서가 이혜선 뿐이라는 말.
어떻게 해서든 이혜선을 만나야 한다.
“알고 싶은 건 없고, 대신 요구사항이 있습니다.”
“말씀하시죠.”
“이혜선, 그 여자가 유럽 어디에 있는지 구체적인 정보를 받을 수 있겠습니까?”
“그녀를 만나려는 겁니까? 혹시 그들이 결백하다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궁금한 게 많으시네요. 줄 수 있습니까, 아니면 없습니까?”
습관적으로 질문을 통해 뭔가를 알아내려는 사람이다.
더 이상의 여지를 주면 안 된다.
“당신들이 미국의 힘이 되어준다면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저희 손을 잡는다면 CIA에 소속될 테니까요.”
본론으로 들어가자는 말이다.
나는 실비아와 시선을 주고받은 뒤 입을 열었다.
“사실 조직에 이번 일을 보고했는데 비록 안 좋은 일이지만 CIA와 연이 닿았다는 것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우연이었잖습니까.”
“……?”
“제 지인을 죽인 브루스, 저 친구를 공보관이라고만 알고 있었지 그게 위장신분이고 진짜는 CIA현장요원이라는 걸 모르고 있었으니까요.”
“그렇긴 하지요, 우연.”
마치 우연이 아니지 않냐고 떠보는 듯한 말이다.
정말 우연이었는데 말이다.
“실은 조직에서는 비밀리에 CIA와 접촉하려고 무던히 애를 썼었습니다. 어떤 놈들 때문에 번번이 그 생각을 접어야 했지만요.”
“어떤 놈들이라니요?”
나는 고개를 돌려 브루스를 바라보았다.
“당신이 그랬지? 과거 스타게이트 프로젝트에서 초능력자들이 살해를 되었었다고.”
“네.”
“조직에 그 일을 상의해봤는데 그건 소련의 짓이 아니라는 결론이 나왔어.”
“아니라고요?”
“그건 소련이 아니라 스컬이 한 짓이라고 하더군.”
“스컬?”
“암살을 전문으로 하는 PMC(민간군사기업) 스컬, 모르진 않을 텐데?”
말이 민간군사기업이지 공식적으로 알려진 세계적인 청부업체.
스컬은 음으로든 양으로든 유명한 놈들이다.
“알고 있습니다. 근데 거긴······”
“비록 군산복합체라는 한 다리를 건너야 하지만 미국과 상당히 가깝지?”
“그렇습니다. 만약 그들이 소련의 의뢰를 받았더라도 미국을 상대로 암살을 저지를 곳은 아니죠.”
“의뢰가 아니야, 본인들의 의지였으니까.”
그때 조지가 끼어들며 물었다.
“스컬이 자체적인 판단으로 스타게이트 프로젝트를 방해했다는 건가요?”
“맞습니다.”
“왜죠?”
“그들도 초능력자 집단이니까요.”
“……!”
“그것도 초능력자들이 세상을 지배하길 바라는 놈들입니다. 그런데 미국에서 초능력자를 대상으로 실험을 하니 직접 나서서 막은 겁니다.”
나는 스컬이 초능력자들로 구성된 조직이며 그들의 사상이 위험하다는 걸 주지시키기 시작했다.
거기에 네오 셀 역시 포함시켰다.
“그걸 세상에 퍼트린 게 스컬이었단 말입니까?”
“네. 배경을 설명하자면 스타게이트 프로젝트가 있었던 냉전시대와는 상황이 달라졌거든요. 언제부턴가 초능력자들이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기에 그들로서는 방법이 없었을 겁니다.”
“그래서 네오 셀을 이용했다는 거군요.”
“맞습니다. 바이오 기술이 해가 갈수록 진보하고 있으니 이제는 네오 셀의 비밀이 밝혀져 초능력자들이 늘어나길 바란 거죠. 기술의 비밀은 군산복합체를 통하면 얼마든지 접근할 수 있을 테고요.”
“허······”
“스컬은 자신들을 네오휴먼이라 부르고 휴먼과 전혀 다른 별개의 종이라 여깁니다. 그게 무슨 뜻이겠습니까?”
“……!”
“지금은 그 수가 적어서 잠자코 있지만 먼 훗날엔 아마 네오휴먼이 아니면 다 죽이려고 들 겁니다.”
표정 봐라.
당혹스러운 감정도 나오는 걸 보니 얼추 넘어온 듯하다.
“지부장님.”
그때 브루스 베커가 심각한 얼굴로 조지를 불렀다.
“왜?”
“스컬 말입니다.”
“뭐 좀 아는 게 있나?”
“암살이 전문이다 보니 워낙 은밀하고 알려진 게 적지만 현장에서 흔히 하는 말이 있습니다.”
“뭔데?”
“스컬이 상대라면 무조건 도망가라. 그건 수치가 아니다.”
“……!”
“단 한 명에게 중대급 특수부대가 전멸한 경우도 한두 번이 아니라고 들었습니다. 그런 압도적인 전투력 때문에 전장의 사신이라고 불리는 자들이고 말입니다.”
“그게 초능력이다?”
“초능력이 아니면 그런 능력이 가능하겠습니까? 그리고 블랙 씨의 말대로라면 네오 셀을 저희만 늦게 알게 된 것도 설명이 되지 않습니까.”
“등잔 밑이 어두웠다는 말이군.”
“네, 그들과의 커넥션이 오히려 저희들의 눈을 가렸던 것 같습니다.”
뼈대만 만들어주니 잘도 살을 붙이고 있다.
조지는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러니까 핵심은 스컬 때문에 그 동안 미국과 접촉하지 못했다는 거군요.”
“네, 아무리 극비로 다루더라도 정보가 금방 빠져나갈 테니까요.”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다. 다만 이젠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 사실을 알게 된 이상 앞으로는 그럴 일이 없을 테니까요.”
아니, 새어나가는 정보를 단속하면 뭐하나.
강제로 뚫리는 걸 막을 수 없을 건데.
“사이먼이라고 아십니까? 펜타곤도 뚫었던 전설적인 해커라고 명성이 자자하던데.”
“설마……”
“네, 그자도 스컬 소속입니다. 그 귀신같은 해킹능력 역시 초능력이고요.”
“……!”
표정을 보니 CIA도 털렸었던 것 같은데.
제대로 찌른 것 같다.
“그러니 군산복합체와의 커넥션을 완전히 차단하지 않는 이상 스컬이 알게 되는 건 불을 보듯 뻔합니다.”
“그건······ 불가능합니다.”
불가능하지.
그 커넥션이 군사력의 핵심이기도 하니까.
“그런데 한 가지 궁금한 게 있습니다.”
그때 브루스가 끼어들며 말을 이었다.
“당신 정도의 능력자가 왜 그들을 두려워하는 겁니까?”
“두려워할만 하니까.”
“그럼 스컬에 당신보다 더 강한 능력자가 있다는 겁니까?”
“아니, 나보다 강한 놈은 없어.”
이렇게 해야 내 가치가 올라갈 것이다.
이혜선을 찾고, 그녀를 통해 어머니의 행방을 알아내려면 나라는 존재를 부각하고 CIA를 최대한 이용할 수밖에 없다.
뭐 기회가 닿으면 CIA를 통해 나사의 보안구역에 가볼 수 있을지도 모르고.
어쨌든 여러모로 이용가치가 있는 놈들이다.
“그럼 뭐가 문제인 겁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