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Crime with Telekinesis RAW novel - Chapter 203
203화. 장막 뒤는 배우였고, 감독은 따로 있었군
블랙이라고 신분도 밝혔고, CIA의 심처에 직접 와주었다.
타츠오를 통해 수작질을 하지 말고 나한테 직접 해보라는 듯이 말이다.
그런데 이렇게 대역을 내세우면 내가 여기까지 온 보람이 없지 않겠나.
장막 뒤에 있겠다면 장막을 찢어버리고 나오게 만드는 수밖에.
“왜 그러는가?”
가짜 앤드류 터너는 내 얼굴을 살피더니 그렇게 물었다.
대역이라 그런지 연기력이 제법이었다.
“당신은 꺼져.”
진짜 앤드류는 이곳의 상황을 보고 있고, 듣고 있다.
바로 옆에서 말이다.
플로우의 감각은 속일 수 없었다.
“……뭐?”
“알 텐데?”
“이런 무례한 자를 봤나. 감히······”
악수를 권했던 손이 곧바로 손가락질로 변했다.
손모가지 잘라달라고 흔들어대는데 잘라줘야겠지.
나는 친절하게 여의를 모아 초진동 블레이드를 만든 후 그대로 휘둘러주었다.
-서걱!
“으아아악!”
나는 잘린 손목을 부여잡고 주저앉은 그의 턱밑에 칼날을 갖다 대었다.
“너야말로 감히 CIA국장을 사칭했으니 이대로 모가지를 잘라주지.”
“······!”
“다섯 세고 자를 테니까 눈 꼭 감아. 하나, 둘······”
눈앞의 가짜가 아닌 숨어있는 진짜에게 하는 말이었다.
“셋, 넷!”
“으어······”
“그만하게.”
그 순간 국장실 내에 있던 숨겨진 문이 열리며 진짜 앤드류 터너가 등장했다.
그는 비밀공간 안에서 이곳 상황을 보고 있던 것이었다.
“이번엔 진짜입니까?”
“그래, 그러니 그만 칼을 거두게.”
나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여의를 흩어버린 후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리고 가짜 앤드류 터너의 얼굴로 손을 가져갔다.
-쫘악.
그의 얼굴을 덮고 있던 그래핀 같은 막을 벗기자 진짜 얼굴이 드러났다.
영화에서 보던 홀로그램 가면이라고 해야 할까.
이런 게 실제로 존재한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었다.
“다음번에도 내 앞에서 이딴 걸 뒤집어쓰고 있으면 그땐 바로 죽일 거다. 잊지 마, 두 번은 없으니까.”
나는 눈앞에 가면을 들어 올렸다가 그에게 던져주었다.
이 경고는 국장도 포함한 말이었고, 전해지는 긴장감을 보아하니 그도 알아들은 모양이었다.
“어서 병원에 가봐.”
“네, 국장님.”
대역을 섰던 요원은 자신의 잘린 손을 손수건으로 감싼 후 서둘러 국장실을 나갔다.
“처음 뵙는군요, 블랙입니다.”
“앉지.”
그는 내 행동에 대해 어떤 말도 하지 않고 자리를 권했다.
“CIA국장이라는 자리가 신변위협을 많이 받나보군요? 여기서도 대역이라니 말입니다.”
“뭐······ 그렇다고 할 수 있지.”
“피곤한 자리네요.”
“책임이 막중한 만큼 보람도 있는 자리라네.”
앤드류는 상석이 아닌 내 맞은편에 자리하며 말을 이었다.
“조지에게서 보고는 받았네. 호텔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연락도 하지 않고 갑자기 날 찾아온 이유는?”
“입구에서 말했다시피 브라이언 볼드윈, 그분에 대한 일 때문입니다.”
타츠오의 일을 입에 올릴 순 없으니 핑계를 댄 것이다.
여기까지 와서 그를 만나려고 한 명분 말이다.
“자네가 그분을 어찌 아는가?”
“차근차근 말씀드리겠습니다.”
나는 품속에서 베라에게서 빼앗은 트렌치 나이프를 꺼내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절 죽이려던 킬러가 지니고 있던 겁니다.”
“스컬이로군······”
“네. 그리고 그자에게서 브라이언 볼드윈이라는 분을 노리고 있다는 걸 알아냈습니다. 그분의 지위를 알아보니 극비인 것 같아 이렇게 직접 찾아오게 된 겁니다.”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네. 그분께서 본 브레이커 프로젝트를 비호하고 계시니 방해가 되었겠지.”
“예상하고 있었다니…… 역시 CIA로군요.”
그는 손수건을 꺼내 트렌치 나이프를 들어 올리며 말을 이었다.
“이 나이프의 주인은 어떻게 됐지? 자네가 죽였나?”
자연스럽고 충분히 물어볼 수 있는 질문이다.
타츠오에게 내 살인행위에 대해 물었다는 걸 몰랐다면 눈치 채지 못했을 정도로.
하지만 그 사실을 알고 있는 입장에서 보니 그가 나에게 자백을 받으려 한다는 걸 쉽게 알 수 있었다.
‘녹음이나 녹화를 하고 있는 건가?’
비록 일본에서 시인은 했었지만 녹취록이나 영상기록은 하나도 남기지 않았었다.
그러니 지금 이들이 이렇게 나오는 것은 증거를 확보하기 위함이 분명했다.
‘어떻게 보면 똑똑한 대처네.’
내가 살인을 하는 이유는 그 대상이 살아있을 가치가 없는 쓰레기이기 때문이다.
원장을 떠올리게 만드는 그들의 행위가 눈 뜨고 볼 수 없기에 단호하게 손을 쓸 수 있는 것이란 말이다.
하지만 난 인지하고 있다.
내 행동이 불법이고 사회적으로 용인되지 않는 행동이라는 걸.
그리고 그걸 명분으로 자신의 일을 묵묵히 수행할 뿐인 경찰이나 군인들이 나를 잡으러 온다면?
아마도 단호하게 손을 쓸 순 없을 것이다.
그러니 지금 CIA의 움직임은 단순하게 대처할 일은 아니었다.
“죽이지 않았습니다.”
일단 시치미를 떼는 작전을 펼쳤다.
그리고 상대가 내 눈앞에서 날 궁지에 몰려는 모습을 보이게끔 유도를 할 생각이었다.
그래야 나도 망설임 없이 손을 쓸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럼 생포했나? 지금 어디 있지?”
“죽었습니다. 같이 죽으려고 자폭을 하더군요.”
“자폭? 시체는?”
“시체는 흔적도 남지 않았습니다.”
“그만한 폭발이었는데 사지 멀쩡하군?”
“아실 텐데요. 프랑스에서 더 큰 폭발 속에서도 살아나왔잖습니까.”
“자네는 도대체 무슨 능력을 가지고 있는 건가?”
“……?”
“보고를 받긴 했는데 겪으면 겪을수록 정확히 알 수가 없어서 말이야.”
그는 크흠하는 소리와 함께 목소리를 가다듬더니 일본에서의 사건을 입에 올렸다.
건담으로 사람들을 밟아 죽였다느니, 정치인들을 자살하게 만들었다느니, 오염수로 물뱀을 만들어서 사람들을 패닉에 빠지게 했다는 등 구체적인 예를 든 것이었다.
누군가에게 들으라는 듯이 교묘하게 말이다.
‘타츠오에게 한 질문과 비슷하네. 전부 살인과 관련된 부분이고.’
살인이 아닌 부분은 쏙 빠져있었다.
이건 의도적인 게 아니라 그런 식으로 유도를 하다 보니 자신도 모르게 빼먹게 된 것이었다.
예를 들면 프랑스로 향하는 비행기에서 맨몸으로 뛰어내린 것이나, 내가 기절했던 당시 엄마의 형상을 한 여의가 나를 보호했다는 것 등 다른 예도 알고 있을 텐데 말이다.
“아, 그걸 제가 했다고 하던가요?”
“……뭐?”
“누가 그런 보고를 했는지 몰라도 나쁜 사람이네요. 사람을 살인자로 만들다니.”
“조지가 분명 자네에게서 들었다고······”
“글쎄요. 무슨 오해가 있는 것 같군요. 전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는데.”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모른 척을 했다.
“제가 초능력자이긴 하지만 집채만한 로봇을 움직이고 수십 톤의 물을 다룬다고요? 그게 물리적으로 가능하다고 생각하십니까?”
“……”
“미스터 크리크께서 SF영화를 많이 봤나보네요.”
초능력은 내 입으로 시인하지 않는 한 절대로 입증할 수 없다.
특히나 방금 그가 입에 올린 사건들은 하나같이 초자연적인 현상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상식을 뛰어넘는 부분이 있으니 더 그러했다.
그러니 약이 오를 테고, 좀 더 명확하게 의도를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
“커험, 그럼 나라시노 주둔지의 일은 어떻게 설명할 건가?”
아, 그 일도 있었지.
그 사건은 피해갈 수 없다고 생각하는 건가?
“무슨 말입니까?”
“자네는 타츠오 마시시와 그의 모친인 스미코 츠구메를 구출하기 위해 그곳에 있던 군인 전부를 학살했네. 그것도 아니라는 말인가?”
“제가요?”
“이보게!”
그는 탁자를 손바닥으로 탕하고 내리치며 목소리를 높였다.
슬슬 보이기 시작한다.
권위적이고 강압적인 태도에서 그 놈의 모습이 아른거리고 있었다.
“시치미 떼지 말게. 그 사건은 확실한 목격자가 있으니까. 그곳에 출동한 우리 군인들이 수백 명이네!”
“그들이 뭐라고 했습니까?”
“당시 특수작전본부 내에서 살아있던 사람은 자네, 그리고 타츠오 모자까지 세 명이었다지?”
“그래서요?”
“일본인 모자는 폭발물실험실에 갇혀 있는 걸 우리 군이 확인했으니 그들을 제외하면 누가 남지?”
“저네요.”
“그래, 자네가 자위대 특수작전군을 전부 죽인 거야.”
“아니요. 생존자 중에 누가 남았냐고 물어보니 저라고 답한 겁니다.”
나는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저도 거기 잡혀있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아무리 초능력자라도 어떻게 그 많은 특수부대 군인들을 죽일 수 있겠습니까? 혹시 목격자라는 미군들이 제가 누굴 죽이는 걸 봤다던가요?”
“……”
“한 사람도 못 봤습니까? CCTV는요?”
감정이 부글부글 끓는 게 보인다.
분노와 후회.
화가 난 이유는 알만하고 후회는 확실하지 않은 증거로 나를 찌른데 대한 것이 분명했다.
“자네가 아니면 누구란 말이지?”
“글쎄요······ 스컬인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빈정거리자 앤드류는 입술을 짓씹으며 분해하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하지만 빠르게 감정을 추스르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집무용 책상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책상 아래를 만지고는 다시 돌아왔다.
“방금 방해전파를 발생시키는 장치를 작동시켰네. 이제 이 공간 내에서는 도청이나 녹취, 녹화 같은 게 불가능하지.”
거짓은 아닌 모양이었다.
그래도 긴장을 늦출 순 없지만 말이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자네를 믿을 수가 없어.”
“……”
“아까 그 친구의 손목을 잘라버린 것도 그렇고 그간 자네에게 죽은······ 아, 이 말은 취소하지. 어쨌든 이대로는 너무 위험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네.”
“그러시군요.”
그의 위치를 생각하면 그럴 수 있는 부분이다.
문제는 그 대상이 나라는 거지만.
“그래서 약간의 제재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네.”
“사람을 살인자로 만들려고 했으면서 ‘약간의 제재’였다는 말입니까?”
“입증할 수 없어도 자네가 살인을 한 정황은 무수히 많으니까. 우린 자네의 진짜 정체가 서훈이라는 것도 알고 있네.”
“……”
정면돌파를 해보겠다는 건가?
아니면 선전포고?
“한국에서 있었던 AFK 사건도 조사했고, 그 시기에 급증했던 모든 사망사건을 분석 중이지.”
“……”
“잘 듣게, 증거가 없다고 진실이 사라지는 건 아니야.”
“그래서 없는 증거를 만들려고 한 거군요?”
죽일까?
이 정도면 충분한 것 같은데.
“만들 생각은 했지만 사용할 생각은 없었네.”
“그걸 누가 믿겠습니까?”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의 진심을 알 수 있었다.
진짜 사용할 생각은 없었다는 것을.
“물론 믿을 수 없겠지. 하지만 이 일을 하며 자넬 돕고 있는 부분도 있었다는 걸 알아주게.”
“……?”
“자네의 과거를 되짚어보며 흔적을 지우는 작업도 하고 있다는 말이야.”
“그게 정확히 무슨 말입니까?”
“한국, 일본, 프랑스까지 자네와 관련된 기록이 있는 곳은 해킹을 해서 모두 지우고 있네. 각국의 정보기관들이 자네의 존재를 알 수 없게. 우리로서도 상당한 부담을 안고 있다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군.”
이건 타츠오에게서도 듣지 못한 얘기다.
일종의 디지털 장례 서비스라는 건가?
“자네가 계속해서 사람을 죽이는 한 완전범죄는 없네. 초능력이 증거는 남기지 않겠지만 죽은 자들이 이정표가 되어줄 테니 말이야.”
죽은 자들이 이정표가 되어준다라.
한 번쯤 생각해볼 말인 것 같다.
“자네에게 소개시켜줄 사람이 있으니 한 번 만나보지 않겠나?”
앤드류는 그자가 이 모든 지시를 내렸다고 말해주었다.
전 국가정보국장, 브라이언 볼드윈.
만남을 위한 핑계로 삼았던 사람이 알고 보니 이번 일의 배후였던 것이었다.
‘장막 뒤는 배우였고, 감독은 따로 있었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