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Crime with Telekinesis RAW novel - Chapter 204
204화. 이번엔 경고로 안 끝날 거다
앤드류 터너.
역시 이쪽 세계에서 잔뼈가 굵은 덕분인지 대처가 유연하다.
자신의 의도를 들키자마자 이번 일의 배후를 밝히며 떠넘겨버리다니 말이다.
‘만나봐야겠지.’
시나리오를 쓴 놈을 만나야 전체적인 그림을 알 수 있을 테니까.
“그전에 타츠오 씨를 만나고 싶은데요.”
“내가 자네 때문에 그 친구에게 해를 끼쳤을 것 같아 그러는가?”
그렇지 않다는 건 알고 있었다.
취조를 통해 심리적인 압박을 가했을 뿐 고문이나 신체적인 위협은 가한 게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렇게 걱정하는 모습을 보일 필요가 있었다.
그래야 내가 그와 실시간으로 의사소통을 주고받고 있었다는 걸 눈치 채지 못할 테니까.
“만나보면 알게 되겠죠.”
“지금 입사를 위한 인터뷰 중인데 우리 쪽은 그 방식이 일반 회사와는 많이 다르네. 분위기가 칙칙하더라도 오해는 하지 말게.”
거짓말을 참 뻔뻔하게도 한다.
내가 그 장소를 보고 화를 낼까봐 걱정은 되는 모양이었다.
“날 따라오게.”
앤드류는 나를 지하층 중에서도 밀실로 된 공간으로 안내해주었다.
마치 벙커처럼 보이는 그곳은 실제로도 방공호로 쓰인다고 말해주었다.
“이곳이네.”
-철컹.
그가 철문을 열고 들어가고, 나는 뒤따라 걸음을 옮겼다.
어두운 방에는 스탠드 램프만 켜져 있었고, 타츠오는 다소 초췌한 얼굴로 의자에 앉아있는 상태였다.
미리 오해하지 말라고 설명을 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배경도 음습하고, 사람도 위축된 모습이었으니 말이다.
“칙칙하다더니 이 정도면 감옥 아닙니까?”
“크흠······ 해서 내 미리 설명을 하지 않았나.”
“됐으니까 잠시 자리 좀 비켜주시죠?”
앤드류는 고개를 끄덕인 후 철문을 닫고 밖으로 나가주었다.
우리는 서로의 안부나 왜 이곳에 있는 거냐 등 시시콜콜한 대화를 나누었다.
하지만 진짜 대화는 텔레파시를 통해 오고갔다.
-그래서 브라이언이라는 사람을 만날 겁니까?
-네.
-뭘 꾸미고 있는지 어떻게 알고요?
-앤드류 국장은 그가 시키는 대로 하는 꼭두각시 맞아요. 그러니 만나야죠.
-그럼 같이 가요.
-아니요. 타츠오 씨는 집으로 가요.
-우리 어머니 때문에 그래요?
-며칠 동안 못 들어갔다면서요. 걱정하고 계실 테니까 가서 안심시켜 드리세요.
-알겠습니다. 근데 서훈 씨, 제가 CIA에 들어가도 되는 걸까요? 이래저래 서훈 씨에게 폐만 끼치게 될 거 같은데······
초능력도 있고, 지난번에 돈도 두둑하게 줬는데 참 사람이 의존적이다.
-스스로 판단해요. 여기 있든, 퀸시에 가든, 아니면 아무도 모르는 곳에 가서 어머니와 둘이 살든 내가 정해줄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니까.
-그건······ 그렇죠.
축 처진 어깨는 그의 고민을 대변해주는 듯 했다.
이쪽이든 저쪽이든 휘둘리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하는 것이 분명했다.
‘안 되겠네.’
나는 그의 어깨를 두드려주며 에너지 드레인의 능력을 사용했다.
-서훈 씨, 이건······
-위축되지 말라고 주는 거예요.
힘이 있으면 배포도 생기기 마련이다.
프랑스에서 경험한 그때의 타츠오는 좀 막나가긴 했지만 자신감만큼은 봐줄만 했었다.
-그렇다고 지난번처럼 너무 자신만만해하진 말고요.
또 신이 어쩌고저쩌고 떠들면서 폭주하면 곤란해.
***
페어팩스 카운티.
나는 앤드류 국장과 함께 차를 타고 포토맥 강을 낀 볼드윈 가문의 저택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곳까지 오며 브라이언 볼드윈이 가진 권력에 대해 듣긴 했지만, 전체가 화강암으로 지어진 궁전 같은 저택을 보니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더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브라이언 볼드윈이네.”
그는 정치인이나 정보기관의 수장이라기보다는 교수 같은 느낌이 더 많았다.
그렇다고 딱딱하고 권위적이라는 게 아닌 학식이 깊은 학자와 비슷한 분위기라고 할 수 있었다.
“블랙입니다.”
“반갑네, 차 한 잔 하겠나?”
이자도 내가 서훈인 걸 알고 있을 텐데 블랙이라 밝힌 것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괜찮습니다.”
“생각보다 더 날 경계하는군. 이게 다 자네 때문이네, 앤드류.”
브라이언은 그렇게 앤드류 국장에게 핀잔을 주며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려고 하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인선을 잘못 한 건 명백한 내 실수니 더 이상 왈가왈부하진 않겠네. 자네는 그만 돌아가보게.”
“……예?”
“떠넘긴 거 잘 받았으니까 그만 가라고.”
“……쿨럭.”
앤드류는 사레가 들렸는지 연신 기침을 하며 민망한 모습을 보였다.
“뭘 놀라? 떠넘긴 거 맞으면서.”
“미, 미스터 볼드윈. 지난번에 일이 틀어지면 있는 그대로 말하라고······”
“내가? 그랬었나?”
“……”
연이어 두 번이나 시치미 떼기를 당해서 그럴까.
앤드류는 눈을 깜박거리며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어쨌든 자네가 이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 대화가 힘들어지네. 그러니 돌아가서 일 봐.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예, 예.”
앤드류는 그렇게 떨떠름한 표정과 함께 사라져주었다.
잠깐의 침묵 속에서 브라이언은 혼자 차를 홀짝였고, 생각이 정리된 듯 입을 열었다.
“앤드류, 저 친구가 그래. 일은 잘 하는데 생각이 너무 틀에 박혀있지. 틀 밖에 존재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말이야, 자네처럼.”
“……?”
“얘기 들었겠지만 내가 그렇게 지시를 내렸네. 자네라는 칼을 사용하려면 칼집에 넣어야 하고, 그 칼집은 자네를 법의 테두리 안에 넣는 거라고 말이야. 자네가 아무리 대단한 초능력을 지니고 있어도 인류가 수천 년 동안 만들어온 시스템을 어쩌지 못할 거라고 판단했거든.”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까?”
내 물음에 브라이언은 고개를 저었다.
“가능은 하겠지. 사회지도층 인사들을 무자비하게 학살한다면 말이야. 체계가 잡힐 때마다 지도자들을 계속해서 죽이면 시스템도 결국 무너질 수밖에 없지 않겠나.”
“……”
“거창하게 인류의 시스템이라 얘기했지만 자네에겐 그저 선 하나의 차이겠지. 선을 넘느냐, 넘지 않느냐.”
“그래서 내가 어느 쪽일 거 같습니까?”
“내가 내린 결론은 자네는 넘을 수 없다였네. 특히, 어머니를 다시 만나게 된 지금은 더더욱 말이야.”
지금까지 상대한 놈들과는 다르다.
그들이 내 능력에 주목했다면 이자는 내 성향을 보고 있다.
그래서 더 기분 나쁘지만 말이다.
“그러니까 나라는 칼을 사용하고 싶은데 그냥 쓰면 베일 것 같아서 칼집에 넣고 싶다?”
“정확하네.”
죽일까?
날 이용하겠다는 말을 참 당당히도 한다.
“그리고 덧붙여서 설명하자면 칼집은 자네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지.”
뭔 소리지?
내가 사람을 죽였다는 증거를 잡는 게 나를 보호하는 거라니?
“자네가 법의 테두리 안에 있다는 인식을 갖게 되면 면책특권을 줄 생각이었네. 그냥 줄 수도 있지만 그런 걸 그냥 덜컥 주면 필요성을 느끼지도, 의미를 알지도 못할 테니 사전준비가 필요했던 거지.”
“……”
면책특권이라면 살인면허를 말하는 모양이다.
브루스 베커가 윤종호를 현장에서 사살한 것처럼.
“그리고 자네를 그 안에 넣으며 초능력 범죄에 대한 개념도 잡고 싶었네. 자네를 대상으로 그런 경험을 하고 나면 앞으로 다가올 세상에 대한 준비도 할 수 있을 테니까.”
벌써부터 준비를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네오휴먼이 세상에 드러났을 때 생길 문제에 대처하기 위해서.
“자네는 법의 테두리 안에서 면책특권을 받고 자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하게. 죽여야 할 해충이 있으면 죽이고, 쓰레기가 있으면 치워도 돼. 각국의 정보기관들도 알게 모르게 다 그렇게 하고 있으니까. 개인이 그렇게 못할 이유는 없지.”
뭐지, 이 인간은?
어디 한 군데 나사가 빠졌나?
“설명이 필요한 얼굴이군. 미국은 개인의 총기소지를 허용하네. 온갖 사고가 발생함에도 계속 고수하는 이유를 아는가?”
“아니, 이유가 뭐지?”
“핵심은 스스로 자신을 보호할 권리, 자유를 지키기 위해 싸울 권리를 주는 거네. 간단하게 말하면 나라가 개판이면 개인이 민병대를 조직해 내란을 일으킬 수 있는 최소한의 힘을 주는 거지.”
“……”
“물론 그 정도로 혼란스러운 상황까지 가면 안 될 것이고, 체제유지에 있어 리스크가 있긴 하지만, 장점은 어떤 방향으로도 생각이 열려 있다는 거네.”
브라이언은 차를 홀짝이며 피식 웃었다.
마치 내 생각을 짐작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능력 있는 자에게 권한을 주는 것. 그게 인사고 나라를 움직이는 자들이 할 일이지.”
“재밌는 말을 하시네? 그 권한으로 내가 당신을 죽이면?”
“사람을 잘못 본 내 탓이겠지.”
“대통령을 죽이면?”
“뭐 다음 대통령이 선출되겠지. 어렵게 생각할 것 없네, 내가 본 자네는 자격이 있으니까. 그리고 아무 이유 없이 대통령을 죽일 사람은 아니잖나?”
“……”
“그리고 내가 하는 일에도 도움이 될 것 같고 말이야.”
“그게 무슨 일이지?”
“나라를 좀 먹는 해충들의 박멸이네.”
브라이언 볼드윈은 여러 가지 일을 해왔지만 특히 사회지도층에 존재하는 사조직을 집중적으로 견제해왔다고 말해주었다.
과거엔 비밀결사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자들.
그들이 특정집단의 이익만을 위해 움직일 때 직접 나섰던 것이었다.
이번 본 브레이커 프로젝트와 관련해 유니온 클럽을 막아선 것처럼.
“물론 강압적으로 요구할 생각은 없으니 그들에 대해 들어보고 자네가 움직일지 말지 판단하게. 우린 정보만 알려줄 테니까.”
그런 식의 도움이라는 말이구나.
달리 말하면 날 움직일 자신이 있다는 것이었다.
“헛수고 하는군.”
내가 정보만으로 움직이는 타입이라면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범죄자는 다 죽었을 것이다.
아니면 최소한 뉴스에 나오는 놈들이라도 말이다.
하지만 내가 그렇다.
직접 눈으로 보고 듣고 경험한 놈들, 그리고 그들에게서 원장의 모습이 연상되어야 살의가 생기고 망설임 없이 죽일 수 있었다.
굳이 분류를 하자면 부지런하게 찾아가서 죽이는 게 아닌 내 눈에 띄면 죽이는 타입인 것이다.
“그럼 하나만 예를 들어볼까?”
브라이언은 빈 찻잔을 내려놓으며 말을 이었다.
“안토니오 조르디, 그자가 CIA의 내부정보를 비밀리에 빼돌렸네. 그건 이엘바이오 산업스파이 사건에 대한 자료였고, 유니온의 데이터베이스에 올린 그 자료를 유럽의 해외서버에서 열었지. 참고로 그 안에 숨겨둔 이스터에그를 제거한 솜씨로 보건대 사이먼 듀크라는 해커가 관련된 것 같네. 그자는 스컬에 소속된 자라고 자네가 그랬지?”
“……!”
“스컬이 왜 그 사건에 대한 자료를 입수한 걸까? 나는 자네 때문인 것 같은데. 그 자료 안에는 케이티 리, 자네 어머니에 대한 자료가 있으니 말이야.”
그 말은 해골바가지들이 엄마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는 말이었다.
사이먼은 내 정체를 알고 있으니 말이다.
“안토니오 조르디, 짜증나는 인물이지. 자본주의 시대이니 그자만큼 발이 넓은 사람도 없을 거야.”
“……”
“그런데 그 발이 자네 어머니라는 꼬리를 밟았군.”
브라이언은 능청스럽게 비어 있는 잔에 차를 따르고 있었다.
그냥 놔둘 거냐라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이다.
‘이제 보니 조지 크리크가 UW, 블렌드, 조르디에 대해 알려준 것도 이자의 작품이었네.’
본 브레이커 프로젝트를 방해하는 유니온 클럽의 일원들.
그들이 브라이언 볼드윈, 저자에게도 없애야 할 자들이었고 나와 엮기 위해 그런 말을 한 것이었다.
“역시 마음에 안 드네.”
내 대답에 브라이언은 의외라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뭐가 말인가? 최대한 자네의 편의를 봐줄 텐데 어디가 마음에 안 드는 거지?”
“받아들이는 순간 당신이 짠 시나리오대로 움직이는 것 같아서 말이야.”
하지만 거절하기엔 아까운 제안인 것도 사실이었다.
방금 그가 말해준 정보는 나한테 있어서는 상당한 고급정보이기도 하고.
“이렇게 하지.”
“……?”
“내가 필요할 때 당신을 찾도록 하지. 그때 아까와 같은 제안을 하더라도 문제 삼진 않겠어. 그런데 내가 움직이지 않았음에도 그쪽에서 먼저 날 찾아와 귀찮게 군다면 좋은 꼴은 보지 못할 거야.”
“그렇게 하겠네.”
브라이언은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 이유는 이어지는 말에서 알 수 있었다.
“시작이 느리면 그만큼 더 멀리 갈 수도 있을 테니까.”
애초의 목표가 단순한 친분이었던 모양이다.
내가 그어놓은 선 안으로 들어오는 행위.
그것만으로도 브라이언은 여러 가지 양보를 한 듯했다.
‘만만찮은 양반이네.’
일단은 거래를 하며 좀 더 추이를 보는 게 좋을 것 같았다.
“혹시 사이먼이 어디 있는지도 파악했나?”
이엘바이오 사건자료를 입수했다면 로드 라이언 때문에 움직인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놈도 나를 찾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이번엔 경고로 안 끝날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