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Crime with Telekinesis RAW novel - Chapter 95
95화. 지금부턴 내 싸움이다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지만 얼마나 슬퍼하고 있는지 먹먹하게 전해졌다.
조수라고 했지만 가족이나 마찬가지인 사이였던 걸까.
그녀는 한참을 울더니 눈물을 훔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치 당장이라도 서병국 박사의 유해를 찾아가려는 모습이었다.
“그만둬.”
“……”
“그랬다간 민성이 형처럼 위험해질 수 있어.”
그럼에도 이혜선의 얼굴에서는 주저함이 보이지 않았다.
“복수, 안 할 거야?”
“……”
“그분과 친분이 깊은 모양이지만 가족보다 더 중요한 건 아닐 거 아냐?”
“……”
그녀는 손을 부르르 떨더니 다시 자리에 앉았다.
잠시 후, 흔들렸던 눈빛이 제자리를 찾고 처음 나를 몰아붙였던, 냉정하고 담담한 눈빛으로 되돌아왔다.
진정이 된 모양이었다.
“석훈 씨는 정말 그들을 쫓을 생각인가요?”
“말했잖아, 그럴 거라고. 민성이 형이 위험해진 상황이니까 그놈들 정리해야해.”
“당분간 전검사님과 미연 씨에게 은밀히 경호를 붙여줄 게요. 이번엔 거절하지 않겠죠?”
“그렇게 해.”
브로커 둘에 킬러 다섯.
그만한 인원이 전민성을 노렸었다.
그러니 이번만큼은 거절할 수가 없었다.
“두 사람의 안전은 내가 책임지고 지킬게요. 그래도 그들을 쫓을 생각인가요? 붙잡히면 끔찍한 실험을 당할 수도 있을 텐데.”
“누가 더 끔찍한지 부딪혀보면 알겠지.”
“휴우, 그럼 한 가지만 약속해줘요. 그들을 쫓는 과정에서 석훈 씨의 능력을 목격한 사람들만큼은 살려두지 않는다고.”
나는 눈썹을 꿈틀거리며 말을 받았다.
“간섭하지 마, 내가 알아서 해.”
“간섭이 아니라 조언이에요. 초능력이 알려진다면 부모님의 죽음이 무의미한 희생이나 마찬가지 아니겠어요?”
“……”
“그리고 이왕 능력이 되살아났으니 전부 되찾도록 노력해보세요. 지금으로선 그 편이 더 안전할 테니까.”
“뭐? 어떻게?”
“그 약, 베놈의 효과는 전두엽에 남아있을 가능성이 높아요.”
“그래서?”
“감정을 풍부하게 가지거나 타인에게 공감하려고 해봐요. 그럼……”
“앞뒤가 안 맞다고 생각하지 않아? 죽이라고 했다가 이제는 공감하라니.”
“부정적인 감정도 감정이에요. 최대한 다양한 감정을 느끼는 게 중요해요.”
“……”
뭔가 갖다 붙이는 느낌인데.
정말 그것만으로 아까 말한 능력을 사용할 수 있으려나.
“그리고 아까 그들이 누군지 안다고 했는데 알려줄 순 없나요?”
“……”
잠시 고민이 되었다.
이 여자와 정보를 공유해도 되는 걸까.
공유를 한다면 나에게 도움이 되어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이엘바이오 아시아지부장으로서 꽤 많은 고위공직자와 연이 닿을 수 있을 터.
하지만,
‘지금은 아니야.’
당장의 타겟은 경찰청장, 그리고 신화그룹이다.
그녀의 도움은 그 과정에서 필요할 때 구해도 늦지 않다.
“나중에. 그에 관해선 오늘 있었던 얘기를 받아들인 다음에 다시 얘기하자고.”
“……그래요. 석훈 씨 입장에서는 충격적인 얘기였을 테니까.”
나는 그녀가 오른손으로 감싸고 있는 왼팔에 계속 눈길이 갔다.
왠지 모르지만 내가 부러뜨려 놓고도 이상하게 마음이 쓰였다.
이런 적이 없었는데 말이다.
“휴우.”
찝찝하다.
이유를 알 수 없는 기분에 손이 저절로 품 안으로 향했다.
나는 남은 두 개의 치료제 중 하나를 물병과 함께 그녀에게 내밀었다.
“먹어.”
“이게 뭐죠?”
“내가 독약을 줘도 당신은 그걸 먹어야 해. 그러니까 잔말 말고 먹어.”
그녀는 물과 함께 그 약을 삼켰다.
그리고 한결 편안한 표정을 짓기 시작했다.
약효가 도는 모양이다.
“빨리 병원이나 가봐, 후유증 생기면 안 되니까.”
***
이혜선은 오피스텔을 나오자마자 병원으로 향했고 곧장 수술을 받았다.
왼팔에는 철심을 몇 개나 박았고 몇 시간이 걸려서야 수술실을 나올 수 있었다.
입구에는 언제 왔는지 윤종호가 기다리고 있었다.
“괜찮으십니까?”
“괜찮아요.”
“석훈 군의 집에 갔었다고 들었습니다.”
“네.”
“석훈 군이 그런 겁니까?”
“윤실장님, 살짝 넘어졌을 뿐이니 신경 쓰지 마세요.”
“거짓말 하지 마십시오. 넘어졌는데 팔뼈가 산산조각 납니까?”
“원래 나이 들면 기침만 해도 뼈가 부러지고 그래요.”
“지부장님 나이가 몇인데 그런 말입니까?”
“호호, 먹을 만큼 먹었잖아요.”
“지금 웃음이 나오십니까?!”
“이만하길 다행이니까요.”
그녀가 계속 말을 돌리자 윤종호는 뒤에 있던 경호원들을 질책했다.
어떻게 경호를 했기에 경호대상이 이렇게 될 때까지 아무것도 안 했냐부터 왜 원인을 모르냐까지 옆에서 보기만 해도 질식할 것 같은 호통이었다.
이혜선은 말려도 듣지 않는 그를 보며 한 숨을 쉬고는 간호사에게 부탁해 병실로 향했다.
“정말 괜찮으십니까?”
깁스를 하고 있는 이혜선을 보는 눈빛에서는 측은함이 엿보였다.
하지만 그녀는 그의 눈빛을 무시하고 입을 열었다.
“윤실장님, 해주셔야 할 일이 있어요.”
“예? 갑자기 해야 할 일이라니요?”
“전민성 검사와 최미연 씨. 두 사람에게 사람을 붙여두세요.”
“사람이라 하시면······”
“24시간 경호하라는 말이에요.”
“남지웅이 죽었잖습니까. 근데 또 무슨 일이 있는 겁니까?”
“남편의 시신이 발견됐어요. 전검사가 시신의 신원을 밝혔다가 그놈들의 타겟이 되었고요.”
남편이라는 말에 윤종호는 눈을 화등잔 만하게 뜨며 되물었다.
“서, 서병국 박사님의 시신이 발견됐단 말입니까?”
“그래요.”
이혜선은 관련 얘기를 짧게 설명했고 혹여나 자신을 위해 시신을 수습하는 등의 접촉을 하지 말라는 말을 덧붙였다.
“아, 알겠습니다.”
“그리고 당분간 쉬고 싶으니 그렇게 아세요. 김의원님과 박장관님께는 잘 말씀드렸으니 대외적으로 별 말은 없을 거예요.”
“네, 안정을 취하셔야죠. 자잘한 일은 제가 처리할 테니 염려 마십시오.”
***
외투를 챙겨 밖으로 나섰다.
나는 레인지로버를 몰아 한 동안 도시외곽도로를 달렸다.
그러다 차를 멈춘 곳은 눈에 익지만 또한 낯선 장소였다.
‘많이 변했네.’
수도권이지만 시골 촌동네나 다름없던 곳이었다.
그랬던 곳이 지금은 아파트 단지와 상가들로 가득 차 있었다.
재개발이 된 것이다.
‘이러니 김천수 그놈이 강남 한복판에서 그렇게 큰 술집을 열 수 있었지.’
흑룡파의 간부였지만 골드바는 그놈 개인의 것이었다.
이곳이 재개발되며 받은 보상금으로 얻은.
‘길이 난 방향은 크게 다른 게 없는데 그것 말고는 전부 변했구나.’
미소고아원은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다.
도로를 보고 대충 여기쯤이라고 짐작할 뿐.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더니 정말 많은 것이 달려져 있었다.
나는 고아원의 정문이 있었던 자리에서 걸음을 멈췄다.
그 앞으로 쭉 뻗은 도로와 양옆에 자리 잡은 가로수.
그때 엄마와 함께 택시를 타고 저 길을 달려 고아원 앞에 도착했었다.
점점 기억이 선명해졌다, 십칠 년 전의 기억이.
-엄마 금방 올 테니까 어디 가지 말고 여기 있어, 알았지?
그 말은 기억이 난다.
하지만 아무리 기억이 선명해져도 햇빛을 등진 것처럼 얼굴은 보이지 않았고, 목소리는 어땠는지, 엄마냄새는 뭐였는지 하나도 떠오르지 않았다.
‘심지어 그 전의 기억도 전혀 없어.’
고작 다섯 살이었다.
그러니 기억하지 못할 수밖에.
‘조금이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아쉽다.
내 기억의 시작이 딱 여기서부터라는 게.
이혜선은 그분들이 나를 위해 희생했다고 했지만 나는 버림받은 게 시작이고 끝이었다.
희생이든 사랑이든 기억할 수 있는 게 하나만 있었으면 내 삶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그걸 떠올릴 수 있지 않을까 하고 미소고아원을 나온 후 처음으로 여길 와봤지만 역시나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그때 나는 엄마랑 어디서 온 거지? 정말 이혜선의 말대로 쫓기는 상황이었나?’
그런 급박한 상황이었다면 하나라도 생각이 나야 하는거 아닐까.
물론 어렸을 때의 나는 지금보다 더 무미건조했기에 주변상황에 둔감했을지도 모른다.
당시 고아원 사람들의 말로는 나를 두고 마치 로봇 같다고 했고, 그나마 원장의 매질 때문에 분노하고 서러워하는 등의 감정 정도만 약간 표출되곤 했었다.
-치익.
담배에 불을 붙이고 복잡한 심경을 연기로 내뿜었다.
역시나 여기는 와봤자 기분만 더럽다.
엄마를 떠올릴 수 있는 유일한 장소지만 그것보다 그 X같은 곳에서의 기억이 함께 떠올라버리니까.
‘응?’
그때 차가운 뭔가가 날아와 얼굴에 붙었다.
금새 사르르 녹아버린 것은 눈이었다.
“지X같네······”
마치 그날의 재현 같다.
엄마랑 헤어지는 그날도 눈이 펑펑 내렸으니까.
하늘을 올려다보니 첫눈이 점점 많이 내리기 시작했다.
“후우우······”
내뱉는 담배연기에 눈발이 휘말려 이리저리 춤을 췄다.
그 모습을 보다 나도 모르게 툭 내뱉었다.
“우리 가족이 받은 고통, 몇 배로 갚아줄게요. 그러니까 편히 눈 감으세요.”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다.
지금부턴 내 싸움이다.
***
용산 전자상가, 그리고 양화대교.
그 두 장소에서 거의 비슷한 시간대에 블룸에 남은 두 개 팀이 전멸했다.
뿐만 아니라 알과 에스가 사라진 상황.
시체가 된 다른 이들과 달리 그 두 사람은 종적이 묘연해진 것이다.
“도대체 어떤 놈들이지?”
용산에 남은 시체 중엔 눈알이 빠진 오와 이의 시체가 있었다.
즉, 이번에도 눈깔이 관련되었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래도 눈깔이라는 놈이 혼자가 아니라는 걸 확인해서 다행이긴 한데······”
용산에서는 함정을 설치하고, 양화대교에서는 차량에 손을 써놓았다.
혼자서 양쪽 팀 모두에 수작을 가할 수 있을까?
할 수는 있겠지만 거기엔 시간이라는 절대적인 장벽이 있다.
팀 단위가 아니라면 불가능한 것이다.
‘그럴만한 놈들이 누가 있지?’
상대는 블룸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
특히 고스트팀의 차량을 미리 파악해서 조향장치 등에 조작을 가한 것.
그건 내부정보를 잘 알고 있지 않고선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잠깐······”
갑자기 그 사람이 생각났다.
국정원, 양경환 기획조정실장.
그는 블룸을 정리하는 게 어떻겠냐는 식으로 의사를 내비쳤었다.
자신 역시 그 의도를 알아듣고 이번 조사를 끝으로 폐기하려 했고 말이다.
‘이거 설마······’
이한성은 어금니를 뿌득 소리 나게 깨물었다.
그가 자신에게 약을 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일부러 내 눈을 가리려고 그런 말을 했는지도 몰라.’
양실장이 물밑에서 움직였다면 흑룡파든 남지웅이든 블룸이든 다 정리가 가능하다.
국정원의 블랙요원들이 보기에 그들은 깡패고, 장기밀매업자고, 청부업자니까.
양실장의 의도가 무엇이든 밑에 놈들은 나라를 위한다는 명분 아래 신나게 쳐 죽일 수 있는 것이다.
‘그럼 알과 에스도······’
그 두 사람은 AKF의 일원이지만 국정원 블랙요원이라는 신분도 가지고 있었다.
그러니 양경환에게 포섭되었거나 아니면 애초에 그가 자신에게 붙여놓은 끄나풀인지도 몰랐다.
‘그래, 그러고 보면 모든 게 신화에서 성과가 나온 직후에 일어난 일이었지.’
대수롭지 않게 여겼었다.
워낙 오랫동안 지지부진 했던 프로젝트니까.
이제 막 성과가 나왔을 뿐이니 앞으로 갈 길은 더 멀다고 지레짐작한 것이었다.
‘더 이상 인체실험이 필요 없을 정도로 성과가 나온 건가? 그래서 국정원에서 정리에 들어간 건가?’
그렇다고 자신까지 토사구팽이라니.
어쩌면 서병국의 시체를 보고도 없이 남긴 것 때문에 밉보인 건 아닐까.
의심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커져가기 시작했다.
‘일단 확인부터 해야겠어. 나까지 버릴 정도 확실한 성과를 얻었는지······’
이한성은 서늘한 눈빛을 보이며 무기를 챙겼다.
그런 그의 눈빛에는 살기와 더불어 서운함이 섞여 있었다.
‘어르신들 눈에는 나까지 그저 그런 사냥개로 보였던 걸까.’
그는 자신이 개가 아니라는 걸 보여줄 작정이었다.
만약 그들이 자신을 솥에 넣어 삶으려 했다면 말이다.
‘연구실로 가보자.’
이한성의 발걸음은 여관을 나서 광화문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