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antom thief Kim Seok-doo RAW novel - Chapter 43
46화 일상 (5)
거대한 접시 위에 과일 덩어리들을 가져오는 원장.
참고로 과일은 고아원 냉장고 안에 있던 것들이 아닌, 방금 전 석두와 세미가 사 온 과일들이었다.
“이거 참 미안해서 어쩐다… 딱히 대접할 게 없어서…….”
“하하, 괜찮습니다.”
겨우겨우 시설 경비를 충당하며 고아원을 운영하고 있는 원장에게 더 이상의 것을 바란다는 건 괜한 욕심이리라 생각하는 석두였다.
그리고 사실 돈도 잘 버는데, 굳이 비싼 음식을 요구할 이유도 없다.
잠시 옆방에서 애들을 돌봐주고 있는 세미를 힐끗 바라보던 원장이 목소리를 최대한 죽이며 말을 이어간다.
“그나저나…….”
뭔가 할 말이라도 있는 모양인지 석두의 눈치를 보던 원장이 말을 해도 되는지 갈등하기 시작한다.
환생한 이후 괴도 생활을 한 탓에 부쩍 눈치가 좋아진 석두였기에 원장이 자신에게 뭔가를 묻고 싶어 한다는 걸 즉각적으로 깨닫게 된다.
“궁금한 점이라도 있으십니까?”
“다른 게 아니라…….”
마지막까지 갈등을 하더니, 결국은 이번 기회가 아니면 영영 석두에게 질문을 할 수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판단이 선 모양인지 천천히 석두에게 어느 한 사실에 대해 묻는다.
“혹시 총각하고 세미가 무슨 일을 하는지 물어봐도 되우?”
“…….”
“세미가 도통 회사에서 뭔 일을 하고 다니는지 말을 해주지 않아서 말이지… 총각이 좀 말해줄 수 있나?”
“하하, 그렇군요.”
세미는 능숙하게 거짓말을 잘하거나 하는 그런 타입은 결코 아니다.
어설픈 거짓말을 해봤자 그대로 얼굴에 다 드러나기 때문이다.
“하이구… 세미가 어렸을 때부터 정말 남다르게 머리가 좋은 아이인데… 총각도 잘 알겠지만, 우리 세미가 기억력이 진짜 좋거든!”
“저도 잘 알죠. 덕분에 저도 도움을 여러 번 받았습니다.”
“우리 세미가 말은 틱틱거려도, 남 돕는 일은 잘하거든! 총각도 뭔가 세미의 도움이 필요한 게 있다면 언제든지 말해요.”
“기억해 두도록 하겠습니다.”
“에구구… 그나저나 이야기가 어쩌다가 여기까지 오게 되었담.”
대화의 내용이 다른 쪽으로 빠지고 있음을 이제야 눈치챈 원장이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아까 물어본 질문을 재차 언급한다.
“혹여나 위험한 일을 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해서 묻는 거니 그것만 확인시켜 줘도 돼요. 상세한 건 어차피 내가 들어도 잘 모를 테니…….”
그간 고아원의 부족한 살림에 보탬이 되고자 세미가 했던 일은 말 그대로 각양각색이었다.
공장에 들어가서 생산직 아르바이트도 한 적이 있으며, 심지어 술집 도우미 일도 해봤다.
석두에게 도움을 받았을 때에도 술집 도우미 아르바이트를 할 때였으니 말이다.
“세미, 그 아이가 잘못된 일을 하고 있는 건 아닌가 걱정이 돼서… 총각은 내 마음 이해하겠지?”
“물론 잘 압니다. 그리고 원장님께서 그렇게까지 걱정할 만한 일은 하지 않습니다. 제가 보장하도록 하죠.”
“하이고! 그런 말만으로도 안심이 되네!”
기쁜 마음에 손뼉을 몇 번 마주치는 리액션을 선보인다.
한편, 마구 뛰어놀던 애들을 잠재우고 난 뒤 거실로 돌아온 세미가 원장과 석두를 번갈아 보며 묻는다.
“무슨 말을 했길래 그렇게 재미있어해요?”
“아무것도 아니다. 아무것도 아니야. 넌 그냥 신경 안 써도 된단다.”
“…….”
뭔가 수상함을 느꼈는지 석두를 향해 눈을 흘기며 진실을 요구하는 세미였으나, 석두도 마찬가지로 그저 웃음으로 세미의 협박(?)을 모른 척할 수밖에 없었다.
* * *
망치의 특제 카레를 맛본 뒤.
“…배부르다……”
아주 작은 목소리로 포만감을 드러내는 쾌남이 터벅터벅 걸어가 컴퓨터 앞에 앉는다.
앉자마자 빠른 속도로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하자, 그를 지켜보던 망치가 대뜸 잔소리를 늘어놓는다.
“어이, 배부르면 소화 좀 시켜. 그러다가 탈난다. 가볍게 운동이라도 하면 금방 소화 다 될 거다.”
“…운동은 좀…….”
애초에 과격하게 몸을 움직이는 것 자체를 상당히 싫어하는 쾌남이기에 망치의 말을 정중히 거절한다.
석두를 만나기 전부터 마이페이스 성향이 상당히 강한 쾌남이었기에 망치도 더 이상 쾌남에게 뭔가를 강요하진 못한다.
한편.
“설거지는 제가 할게요.”
그릇을 정리하던 서희가 알아서 설거지 당번을 자처하자, 망치가 미안하다는 듯이 머쓱한 웃음을 선보인다.
“괜찮아요, 괜찮아. 나중에 놔두면 내가 저 녀석들 시켜서 설거지 할 테니 서희 양이 그렇게까지 안 해도…….”
“아니에요. 카레 만드시느라 힘드셨을 텐데, 그래도 뒷정리 정도는 남은 사람들이 해야죠.”
“하하…….”
어색하게 웃어 보이는 망치.
그런 그와 서희를 번갈아 바라보던 창민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가볍게 피식 웃음을 토한다.
“저도 돕겠습니다.”
“창민 씨도요?”
놀란 표정의 서희가 그를 향해 되묻는다.
“예. 나중에 서희 씨 혼자 설거지 하게 만들었다는 소문이 두목님 귀에 들어가기라도 한다면, 같이 식사했던 저희 모두가 어떤 처벌을 받을지 모르니까요.”
“…….”
창민의 한 마디에 키보드를 두드리던 쾌남도, 그리고 식사를 마치자마자 바닥에 드러누우려 했던 쾌남도, 마지막으로 아직 남은 카레를 입안에 털어놓던 망치도.
모두가 창민의 눈치를 보기 시작한다.
그러더니 이내…….
“서, 설거지 하자, 애들아!”
“예, 예!! 알겠습니다요!”
“…강제 설거지를 해야…….”
순차적으로 망치, 번개, 쾌남이 알아서 자발적으로 빠르게 식탁 위에 펼쳐진 빈 그릇들을 수거하며 부엌으로 향한다.
설거지하기를 그렇게나 싫어하던 쾌남과 번개가 알아서 설거지를 할 정도라니.
“두목님은… 도대체 평소에 어떤 벌을 내리시기에 저런 반응을 보이는 건가요?”
서희가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창민에게 속삭이자, 질문을 받게 된 창민은 그저 말없이 웃어 보일 뿐이었다.
그러더니 이내 다른 녀석들에게는 들리지 않을 정도로 목소리를 낮추며 말을 이어간다.
“서희 씨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강도 높은 처벌을 내리곤 하지요.”
“도대체 그게 뭐길래…….”
“쾌남의 경우에는 새로운 컴퓨터 부품을 구입하는 데에 가격 제한을 두게 만든다든가, 번개 녀석에게는 한 달 금연을 숙제로 내준다든가 하는 경우가 대다수입니다.”
“컴퓨터 부품에 금연…….”
확실히 두 남자가 싫어할 만한 것투성이다.
“그럼 망치 씨는요?”
“저 녀석은…….”
거대한 덩치를 소유한 남자, 망치가 열심히 수세미를 들고 설거지에 임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창민이 슬쩍 입꼬리를 올린다.
“요리 금지 명령을 내린다고 들었습니다.”
“아하…….”
요리를 좋아하는 망치인지라 요리를 못하게 만드는 건 망치의 취미 자체를 금지시키는 것과 마찬가지다.
물론 제3자가 보기에는 유치하게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람들에게는 각각 삶의 이유라는 게 있지 않겠는가.
물론 서희에게도 그 이유가 명확하게 존재한다.
괴도 김석두.
적룡파의 두목이기도 한 석두가 서희에게는 삶의 희망이자 이유이기도 하다.
* * *
서희의 열렬한 애정(?)을 받는 석두였으나.
오늘은 다른 여자와 함께 일시적인 휴가를 보내고 있었다.
“그래… 바로 들어가는 게냐?”
“예. 슬슬 출근 준비도 해야되니까요.”
이별을 아쉬워하듯 원장의 눈에는 좀 더 세미와 함께 이야기하고 싶다는 욕심이 가득했지만, 그래도 이제 세미도 어엿한 직장인이다. 그녀의 사정을 고려하지 않고 자신의 욕심만 고집하면, 도리어 세미를 곤란하게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 생각 때문에 차마 세미와의 이별을 늦추지 못한다.
“나중에 시간 될 때 언제든지 오려무나.”
“조만간 또 올게요.”
“그래. 총각도 꼭 들러줘요.”
“알겠습니다.”
졸지에 옆에 멀뚱히 서 있던 석두도 같이 초대를 받게 되었다.
어찌 되었든 고아원 방문 일정을 마친 뒤.
세미가 현재 거주하고 있는 원룸을 향해 차를 몰고 가던 석두가 옆자리에 앉아 있는 세미를 향해 묻는다.
“잠깐 술이라도 한잔할까?”
“운전은 어떻게 하고요.”
“네 집 근처에서 마시고, 난 집에 갈 때 대리운전이라도 부르면 되겠지.”
“…괜히 음주운전 했다가 경찰에게 걸리지 마세요. 그러다가 당신이 괴도라는 게 밝혀지기라도 한다면 끝이니까요.”
“하하하, 음주운전으로 드러나게 된 괴도의 정체라… 생각만 해도 우습군. 세상 사람들도 어이가 없어서 실소를 터뜨릴 거야.”
“그러게요.”
대한민국을 뒤흔들고 있는 화제의 인물, 괴도.
그런 괴도가 음주운전 따위로 잡히다니.
석두 본인도 그 생각이 들자 너털웃음을 터뜨리게 된다.
“근처 아는 가게 같은 건 없나?”
“뭐 드실 건데요?”
“음… 오랜만에 치맥이 먹고 싶군.”
“잘 아는 가게가 있어요. 안내할게요.”
세미의 집 근처에 차를 주차시킨 뒤, 그녀의 안내에 따라 가게로 이동한다.
“어서 오세요! 몇 분이세요?”
“두 명이요.”
“자리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기운차게 대답하는 젊은 여성의 안내에 따라 자리를 잡게 된 석두와 세미.
“예전에도 이렇게 같이 술을 마셨던 적이 있지 않았다. 그때 당시 메뉴도 치맥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강제 합석이긴 했지만요. 그리고 아마 그때는 단둘이 아니었을 거예요. 망치 씨도 있었으니까요.”
“그랬었나?”
“네.”
기본 안주를 집어든 석두가 나지막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때부터 시작된 인연이 여기까지 올 줄이야.”
석두가 잠시 옛 일을 회상하듯 중얼거린다.
그건 세미 또한 마찬가지였다.
설마 그때 만났던 남자가 지금의 직장 상사가 될 줄은 세미도 예상치 못했다.
그보다도 더더욱 예상하기 힘든 건 바로 그 직장 상사의 정체가 최근 세간을 뒤흔들고 다니는 괴도라는 점이다.
맥주가 도착한 이후.
서로 그렇게 잔을 기울이던 와중에 세미가 대뜸 질문을 던진다.
“어쩌다가 괴도라는 걸 하게 된 건가요?”
“어쩌다가라…….”
맥주 한 모금을 음미하던 석두가 쓴웃음을 내짓는다.
“내가 하고 싶어서 한 건 아니야. 강제로 되었지.”
“누군가가 시켜서 하는 건가요?”
“그래.”
“믿을 수가 없네요. 당신이 누군가의 말을 듣고 곧이곧대로 한다는 게 말이에요.”
“세상일은 인간의 얄팍한 두뇌로 이해할 수 없는 것투성이니까.”
“…그렇긴 하네요.”
“그러는 너야말로 어째서 나를 돕는 거지?”
“…….”
도리어 질문을 받게 된 세미였으나.
차마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하지 못한다.
그저.
살짝 상기된 채 연거푸 맥주잔을 기울일 뿐이었다.
“대답할 생각이 없나보군.”
“…지금은 말해주지 않을 거예요.”
“이유가 뭐지?”
“…창피하니까요.”
“하하, 그렇군.”
석두도 눈치가 없는 남자는 아니다.
그녀가 보여주는 반응이 대략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더 이상 그녀를 추궁하거나 그러진 않기로 한다.
점점 무르익어 가는 분위기.
그 와중에 그다지 술에 강한 타입이 아닌 세미가 그대로 테이블에 엎드린 채 잠에 빠져든다.
새근새근 잠이 든 그녀를 바라보던 석두가 작은 웃음을 토해낸다.
“같이 술 마신 남자가 나라는 사실에 감사하라고, 아가씨.”
군말 없이 세미를 업은 뒤.
계산을 마치고 그녀의 집으로 바래다주는 와중에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이렇게 매너 좋은 사람이 또 어디 있겠어. 잘 기억해 두라고.”
석두의 말을 알아듣기라도 한 것일까.
“우으으…….”
세미가 미약한 신음을 내뱉으며 작게 뒤척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