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oneer Simon RAW novel - Chapter 66
정체를 밝히다 (5)
“어서 오세요.”
그가 저택에 당도하자 전과 달리 제나의 처소가 아닌 저택의 응접실로 안내가 되었고 그곳에는 마가렛이 같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 먼 곳을 20여일 만에 다녀오셨다고요? 그것도 눈이 잔뜩 쌓인 산과 들을 가로질러 갔다면서요?”
사이먼이 그렇게 간 것을 아는 것을 보니 외성을 나설 때 따라오던 자들 중에 일부는 마가렛이 보낸 자도 있는 것 같았다.
마가렛이 나서서 사이먼을 상대했다. 제나는 그저 옆에서 지켜만 보고 있었다. 마가렛은 사이먼에게 궁금한 것이 많은 것 같았다.
“그렇게 가는 것보다 길을 따라 가는 것이 더 빠를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달려가면 사람들이 놀랄 수가 있어서 인적이 드문 산과 들을 달려간 것입니다.”
“먼 길인데 말을 타고 달리는 것이 더 편리하지 않아요?”
“수련을 겸해서 간 것입니다. 말을 타면 말을 관리하는 것도 번거롭고요. 편리하게 가려면 차라리 워프게이트를 이용하는 것이 나을 것입니다.
아카데미에 다니느라 그동안 제대로 힘을 쓰지 못했기에 이번 기회에 힘을 좀 쓰고자 그런 방식으로 움직인 것입니다.
앞으로는 아카데미에 다니는 동안에도 휴일에 외성을 벗어나 조금 떨어진 곳으로 이동하여 수련을 할까 합니다. 북쪽으로 가면 델피코 산맥이 있기에 수련할 공간은 충분할 것 같습니다.”
사이먼은 그간 너무나 위축이 되어 사비올라에 틀어박혀 있었던 것을 반성했다. 물론 책을 더 많이 읽기 위해 그랬지만 계속 그렇게 할 필요는 없었다.
“그래요? 그러면 저도 같이 수련을 할 때 동행할 수 있을까요? 사이먼 경이 같이 가면 안심할 수 있을 것 아닙니까?”
“기회가 되면 그것도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사이먼은 항상 동행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한두 번 같이 가는 것은 문제가 아닐 것 같아 동행을 하기로 했다. 마가렛을 보면 항상 저택 안에 있어야 하니 답답해 보였기 때문이다.
“왕궁도서관은 가보셨나요? 저도 가보고 싶은데 다른 왕족들의 눈치가 보여서 그냥 주저하고 있어요.”
마가렛은 가려고 하면 가는 것은 문제가 아니지만 왕실의 시선 때문에 가는 것을 주저하고 있었다.
“예, 십여 일 간 다녔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행정아카데미에 있는 서적이 대부분이지만 거기에 없는 책도 상당히 많았습니다. 앞으로 휴일에 시간을 내서 자주 갈 생각입니다.”
왕궁도서관에 있는 서적의 90% 이상이 행정아카데미에 있는 서적과 동일했다. 그러나 없는 서적도 10%나 되었다. 그것의 대부분은 수준이 높은 것이었다. 사실 왕궁도서관을 가는 이유는 바로 다른 곳에 없는 10%의 책을 보기 위해서였다.
그들은 대화를 나누다가 점심을 먹고 정원을 같이 걸었다. 눈이 쌓여 있는 상황이라 제법 운치가 있었다.
“나는 한때 사비올라를 떠나려고 했어요.”
사이먼은 갑작스러운 말에 멍한 표정으로 마가렛을 보았다. 무슨 의미로 하는 말인지 판단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폐하는 사적으로 이복 오라버니입니다. 어느 날 왕궁에 불러서 갔다가 저에게 호의를 보이셨고 그 후에 신임을 하셔서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폐하 곁에는 정국을 이끌어갈 능력 있는 분이 별로 없는 실정이고 그 부분을 부족하나마 오렐리어스 백작님이나 제가 담당을 하고 있지만 사실 불안한 실정입니다.”
마가렛의 말이 무슨 의미인지 사이먼은 바로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런 말을 하는 진의가 무엇인지 여전히 모호했다.
“선왕께서는 험난한 계승전을 통해 왕위에 올랐고 그런 경험 때문에 지금의 국왕은 그런 과정이 없이 선왕께서 차기 국왕으로 선정을 하여 피를 흘리지 않고 즉위를 한 상황입니다.”
마가렛의 말에 하고자 하는 말이 무엇인지 대략 이해가 되었지만 그것과 사비올라를 떠나고 싶은 것이 무슨 상관이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지금은 가만히 있지만 왕족들 중에 공작이 둘에, 후작만 일곱에 달합니다. 보통 생존해 있는 왕족은 공작 하나나 둘에 후작 두셋이 전부인데 지금은 너무나 많습니다. 여기에 백작의 작위를 가진 오라버니들이 무려 열이 넘어갑니다. 여기에 전대 공신인 4대 귀족가들마저 건재한 상황입니다. 왕족이 너무나 많이 생존해 있는 실정입니다.”
마가렛의 말은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을 암시했다.
“뭔가 계기만 주어지면 피바람이 불 수도 있는 상황이에요. 이런 곳을 탈출하고 싶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죠.”
왕의 신임을 받아 권력을 행사한 마가렛은 국왕의 신상에 문제가 생기면 그 피해를 당할 수밖에 없었다.
“이건 오래지 않아 왕궁에 들어가야 할 저에게 할 말은 아닌 것 같습니다.”
사이먼은 마가렛의 말에 앞날이 순탄하지만은 않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런 이야기를 듣고 나면 나중에 마가렛의 편을 들어주어야 할 것 같아 불편했다.
“지금 이 말씀을 드리는 것은 그런 상황에서 그나마 타개할 방도가 있기 때문이에요.”
“그 타개책이 나와 관련이 있는 것입니까?”
“그래요. 유혈 사태가 벌어지기 전에 억제를 할 수가 있으니 말이에요. 마스터는 왕국과 국왕폐하께 충성을 하지만 왕실의 누구에게도 충성을 바치는 존재가 아니에요. 즉, 왕위쟁탈전이 벌어져도 개입할 수 없는 것이죠.”
“국왕폐하께서 건재하면 당연히 국왕을 도우는 것이 아닙니까? 뭔가 조금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물론 그렇지만 왕족은 언제든지 왕위에 도전할 수가 있어요. 정당한 왕위계승전쟁이 성립되면 승자가 결정이 될 때까지는 근위기사단이나 왕궁의 힘은 오직 방어를 하는 것 외에 사용할 수가 없어요. 내성에서 벗어날 수가 없는 거죠. 가장 큰 힘이 모조리 침묵에 들어버릴 수가 있어요. 나중에 승자가 결정되면 정당한 국왕에게 충성을 하는 것이죠.”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됩니까?”
“왕실과 폐하께 충성을 맹세한 상황이므로 대영주이신 폐하 개인에게 충성을 맹세한 것에 해당이 되어 언제든 왕위계승전쟁에 개입할 수가 있어요. 물론 저도 왕족이기에 폐하나 다른 왕족을 지지하여 참여할 수도 있고요.”
사이먼은 마가렛의 말에 한동안 말이 없었다. 뭔가 맹세를 할 때 조금 복잡하더니 그런 꼼수가 있었다.
“그렇게 하기 위해 사이먼 경에 대한 것을 공개하지 않은 면도 있어요. 사실 그 이유가 가장 크죠. 사비올라의 각종 정보 조직은 한동안 여러 왕족들의 문제로 인해 상당히 바빠질 가능성이 크죠.”
“정보조직은 폐하께서 동원이 가능한 것입니까?”
“가능해요. 중립을 지키는 것은 왕궁에 있는 기사단과 궁정마법단, 왕궁경비대 및 시종과 시녀들이죠. 물론 그 외에 왕국의 중앙 행정기관에 속한 자들도 중립을 지켜야 하고요.
또한 왕실에 속하지 않은 다른 대영지의 귀족이나 무력도 참여할 수가 없어요. 참여하면 바로 반역을 한 것이 되어 처벌을 받게 되죠. 반면에 정보조직은 폐하의 무력조직으로 간주가 되어 동원이 가능해요.
왕실에 들어온 자금은 각기 용도에 따라 배분이 되는데 정보조직은 폐하께 배정된 자금을 사용하니까요. 각 왕족들도 폐하보다는 훨씬 작지만 각기 배분이 되어요. 나는 정식으로 등재가 되지 않아 배분이 되지 않지만요.”
사이먼은 왕위계승도 귀족가문에서 진행되는 계승전이나 비슷하게 진행이 되는 것을 알게 되었다.
‘국왕이 뭔가 명분을 준다면 계승전을 선포할 수가 있는 것인가? 이 부분은 왕실의 법규를 몰라 판단이 되지 않는군.’
“왕위계승의 절차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설명을 드려야 이해를 할 수 있어 보이네요.”
사이먼이 왕실의 규정을 잘 모르기에 이해를 못하는 것 같아 마가렛이 그 부분을 설명해 주기로 했다.
저택 안으로 들어와서 마가렛에게 왕실과 왕가, 왕국의 각종 규정에 대해서 듣게 되었다. 행정아카데미에서 법에 대해서 배웠지만 가장 기본이 되는 국왕과 대영주, 소영주의 관계에 대한 것은 추상적으로만 배운 상황이었고 왕국의 성립이나 그 이면에 존재하는 약정들에 대하여 제대로 배우지를 못한 상황이었다.
각 대영주들이 누리는 권한이 무엇이고 대영주가 휘하의 소영주들과 어떤 계약을 맺고 있는지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듣게 되었다. 이런 부분은 행정아카데미나 일반적인 서적에도 잘 나오지 않은 내용이었다.
아직까지 그런 것에 대하여는 일종의 대외비처럼 귀족들만 알고 있고 일반에게는 공개를 하지 않고 있었다. 사이먼은 마스터가 되었기에 그런 것을 알 자격이 된다는 말이었다.
“간단히 요약하여 말한다면 에카테리나 왕국은 가장 큰 대영지를 가진 에카테리나 대영지의 영주인 에카테리나 대공이 다른 대영지와 연합을 하여 연합왕국을 구성하여 형성이 된 것입니까?”
“그래요. 그렇기에 국왕은 에카테리나 왕국의 국왕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에카테리나 대영지의 대영주인 에카테리나 대공이기도 해요. 그 대영지는 왕도 사비올라와 그 주변에 걸쳐 있고 나중에 새로 개척한 북부와 서부, 남부의 신규 직할영지가 그에 해당이 되어요.”
왕실 직영지에 대해서도 설명을 들었다. 왕국 인구의 30%, 면적으로는 거의 절반에 해당이 되는 곳이 왕실직영지였다.
중앙의 왕실직할령의 면적은 다른 대영지의 세 배에 불과하지만 인구는 왕국 인구의 20%에 달하고 변방에 있는 왕실직할령의 면적은 왕국의 절반에 달할 정도지만 왕국 인구의 10%에 불과하다는 내용이었다.
그곳이 왕실직할영지가 된 것은 그곳을 왕실의 자금으로 원주민과 몬스터를 토벌한 후에 개척을 하고 중앙에 있는 왕실직할령에서 증가한 영지민를 이주시켰기 때문이었다.
물론 왕실 혼자 모든 것을 한 것이 아니라 인접한 대영지와 연합을 했지만 그들 영지에 일부 지역을 할양하고서도 남은 미개척지가 엄청나 지금도 여전히 개척을 하고 있었다.
또한 에카테리나 왕국의 근위기사단은 레드 피닉스 기사단이고 에카테리나 대영지의 대영주인 대공의 호위기사단은 화이트 피닉스 기사단이라는 말을 했다. 이 둘을 그냥 통틀어서 근위기사단이라고 부른다고 했다.
왕실의 직할령은 중앙에 왕도 사비올라와 5개주, 지방에 3개주로 나뉘어 영주 대리인 시장과 주지사가 파견되어 있고 그 아래 소영지에도 역시 영주 대리가 파견되어 있었다.
백작 이상의 직계 왕족은 주지사로 나가고 자작 이하의 왕족은 영주로 나가는 편이지만 그것이 번거롭다고 부임을 하지 않고 사비올라의 외성에 머무는 자들이 많았다. 자신의 영지도 아니고 일정한 나이가 되면 자동으로 물러나고 죽으면 끝인 영지에 애정이 있을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영주대리가 부재 시에는 행정관이 영지를 다스렸는데 사실상 대리영주는 그들을 지칭하는 경우가 많았다.
왕의 적장자라도 5대가 지나면 작위를 받지 못하는 것이 왕족이었다. 물론 적당히 왕실에 공헌하면 한두 대 정도 연장이 되지만 고귀한 왕족도 시간이 지나면 평민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왕족이 가진 권한 중에는 왕실의 영속성을 유지하는 기능이 있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국왕이 실정을 할 경우에 왕족이 나서서 국왕을 몰아내는 것인데 명분을 떠나 사실상 왕의 힘이 약해 쫓겨난다고 보면 되었다.
사실상 왕족이 힘만 강하면 어떤 명분이라도 만들어 왕위를 찬탈할 수가 있었다. 물론 실패하면 반역자가 되어 죽는 것이 당연했다.
왕위계승전도 마찬가지였다. 왕의 자식이라면 누구든 왕위계승전쟁에 나서서 승리하면 왕에 즉위할 수 있었다. 단지 힘의 우위가 절대적으로 차이가 날 경우 전쟁 자체가 일어나지 않고 결정이 되었다.
그러나 왕의 계승자가 사전에 결정되었다고 해도 왕의 사후에 이의를 제기하면 계승전이 발발했다. 아일라 2세는 계승자로 결정되는 과정도, 세일러 3세의 사후에 왕의 즉위도 모두 평화롭게 진행이 되었고 그렇기에 계승전 과정에서 패배를 하여 사형을 당할 왕족이 고스란히 다 살아남아 있었다.
이런 상황이니 언제라도 생존한 왕족이 왕에게 반기를 들어 왕위쟁탈전을 요청할 수 있었다. 그것을 마가렛은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런 일이 벌어지면 왕족들이 휩쓸릴 수밖에 없고 끝내 많은 왕족들이 죽어나갈 것이 뻔했다.
사이먼은 왕이 되는 과정에서 진행되는 추악한 진실을 알게 되자 이것이 왕족이고 귀족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만일에 그 전쟁에서 제한을 두지 않으면 왕국이나 왕실이 무너지는 상황이 올 수가 있기에 그런 사태를 피하고자 중립의 의무를 부여하여 참여를 하고 싶지 않은 자들을 보호하고 왕국의 기틀이 무너지지 않도록 하고 있는 것이죠.”
결국 누가 왕이 되건 왕궁의 주인이 되면 최소한의 힘은 유지하도록 해놓은 것이었다. 또한 그런 전쟁에 참여하지 않은 것으로 인해 나중에 승자가 보복을 할 수 없도록 한 것이다.
“현재 왕궁에 있는 폐하 주변의 사람 대부분은 선왕폐하께서 등용한 인재들로 중립의 의무를 가지고 있어요.
모든 마스터도 마찬가지의 상황이에요. 그렇기에 만일 사이먼 경이 폐하께 가세를 하면 큰 힘이 되는 거죠. 아울러 4대 귀족의 경우에는 엄밀히 말하면 왕가의 가신이지만 공직에서 물러난 상황이라 현재는 자유로운 신분이나 마찬가지이기에 선왕의 후예를 지지해도 문제가 없어요.”
“한데 내가 근위기사단에 들어가면 문제가 되는 것 아닙니까? 근위기사단에 속하면 왕위계승전쟁에 참여할 수가 없다면서요?”
“앞으로 3년 정도면 충분히 모든 것이 정리가 될 거예요. 즉위한지 일정 시간이 지난 이후에는 어지간한 명분으로는 반기를 들지 못하게 되어 있고 그 사이면 왕권도 공고해지고 왕족들도 가진 여력이 없을 거예요.”
현재 왕이 즉위한지 5년 정도 지났으니 어쩌면 가장 불만이 팽배한 상황일 수 있었다. 그들의 발호할 여력이 완전히 사라지기 전에 내전을 일으킬 수밖에 없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