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yer Who Returned 10,000 Years Later RAW novel - Chapter (137)
만 년 만에 귀환한 플레이어 138화
돌아온 김시훈(1)
시간이 흘렀다.
눈이 소복이 쌓이고 얼음장 같은 바람이 불어 닥치는 겨울이 왔다.
만주 벌판 전쟁이 일어난 지 3개월.
악마교들은 서로 짜기라도 한 듯 활동을 중단하고 모습을 감췄다.
사람들은 중국과 한국이 악마교와의 싸움에서 이기면서 그들이 겁에 질려 도망쳤다고 희망찬 목소리로 떠들었다.
하지만 각국의 수장이나 상위 랭커 플레이어들은 그 말이 행복회로에 가득 찬 헛소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악마교의 세력이 이 정도가 아니라는 것을 다들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폭풍전야.
거대한 폭풍이 몰아치기 전 바람이 잔잔하게 불어오는 것 같은 팽팽한 긴장감이 내려앉은 채 시간은 계속 흐르고 있었다.
* * *
“하암.”
창살을 통해 햇볕이 들어왔다.
강우는 기지개를 펴며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가 잠을 잔 시간은 고작해야 1시간 남짓.
하지만 그 정도 수면만으로도 몸에 터질 듯한 활력이 돌았다.
애초에 수면이 거의 필요 없는 악마의 육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흠.”
베개에 등을 기댄 채 스마트폰을 들어올렸다. 차연주나 천소연에게서 온 몇 가지 메시지가 있었다.
강우는 지난 3개월간 있었던 일들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한국으로 돌아온 강우가 집중한 것은 두 가지.
세계적으로 일어나는 악마교의 활동과 신화 등급 장비의 수색이었다.
악마교의 활동이야 당연히 악마를 먹기 위함이었고, 신화 등급 장비는 깡통이 된 블랙펄 코트를 대체하기 위함이었다.
‘둘 다 별 성과는 없었지만.’
쯧. 가볍게 혀를 찼다.
악마가 나타난 적은 있었다.
하지만 그를 소환한 악마교는 ‘교단’에 소속된 놈들이 아닌 세력을 급격히 불리는 와중에 나타난 곁가지에 불과했다.
소환한 악마도 이천, 삼천 지옥과 같은 ‘상층’에 서식하는 하급 악마들 뿐.
잡아먹어도 간에 기별조차 가지 않은 볼품없는 놈들이었다.
‘그래도 그건 조금의 성과라도 있었지.’
신화 등급 장비에 대해서는 더 절망적이었다.
처음에는 SS급 게이트에 들어가서 보스몬스터를 잡으면 된다는 간단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지만 삿포로와 블라디보스토크에 있는 게이트에 들어간 이후로는 생각이 바뀌었다.
몬스터의 강력함이 문제가 아니었다.
게이트 내에 보스몬스터를 찾기가 너무 힘들었고 막상 찾아서 잡아도 신화 등급 재료를 드랍하지 않았다.
무슨 게임처럼 몬스터의 리젠 주기가 일정한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주기적으로 잡는 것도 불가능했다.
“끄응.”
그렇게 큰 소득 없이 3개월이 흘렀다.
물론, 그동안 마해의 열쇠를 다루는 법을 더 발전시키거나 새로운 권능의 조합으로 몇몇 스킬을 만들기는 했다.
하지만 스탯이나 레벨 등 결정적인 힘의 상승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소득은 다른 애들이 더 컸지.’
강우와 함께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더 큰 성장을 이룬 것은 차연주와 강태수, 한설아 등의 동료들이었다.
차연주는 9차 각성의 마지막, ‘재능의 끝’의 벽을 넘어 10차 각성에 도달하는데 성공했다.
월드 랭커라고 불릴 수 있는 경지에 올라선 것이다.
백화연이나 구현모도 9차 각성에 성공했다.
처음부터 재능이 출중했던 강태수나 한설아는 말할 것도 없었다.
두 사람은 ‘노력의 끝’의 벽을 깨고 7차 각성을 넘어 며칠 전에는 8차 각성까지 올라섰다.
마법사 계열인 은비만이 좀 성장이 더뎠으나 그녀 또한 ‘노력의 끝’을 어렵지 않게 극복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뭔가 다들 날치기처럼 성장한 건 사실이지.’
파워 밸런스 조정에 실패한 작가가 억지로 밸런스를 끌어올린 듯 일제히 성장을 이룩했다.
일반적인 플레이어들을 기준으로 한다면 믿을 수 없는 속도.
하지만 강우가 직접 운전대를 잡고 운전하는 오강우표 버스는 그런 기적 같은 성장을 이룩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었다.
“뭐, 어쨌든 언젠간 필요한 일이었으니까.”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에는 결국 한계가 있었다.
하다못해 자신을 스스로 지킬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해 주지 않으면 곤란했다.
‘그나저나 시훈이는 어떻게 됐을까.’
김시훈이 천무진과 함께 상하이로 떠난 지 3개월.
종속의 권능으로 이어져 있기에 살아 있다는 것 정도는 느낄 수 있었지만 그가 3개월 사이 어느 정도 성장했는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기대되는데.’
다른 누구도 아닌 김시훈이었다.
그만큼 기대감이 부풀어 오르는 것도 당연했다.
-똑똑.
“강우 씨, 일어나셨나요?”
방문을 두들기는 소리가 들렸다.
강우는 생각을 멈추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응. 지금 나갈게.”
강우는 몸을 일으켜 방문을 열었다. 한설아가 걱정스러운 표정이 가득한 얼굴로 방문 앞에 서있었다.
“무슨 일이야?”
“그게….”
한설아는 말끝을 흐렸다. 그녀는 주변에 누가 없는지 고개를 두리번거리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제가 며칠 전에 8차 각성을 했잖아요.”
“그랬지.”
“그, 그 뒤로 조금 이상한 게 생겨서요.”
“이상한 게 생겼다고?”
강우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한설아는 꿀꺽 침을 삼켰다.
“등 쪽에… 문양 같은 게 나타났어요.”
그녀는 등을 돌린 채 조심스럽게 옷자락을 내렸다. 새하얀 살결이 눈에 들어왔다.
‘할렐루야.’
문양 따위는 보이지도 않았다.
강우는 빛이 쏟아질 듯 강렬한 눈빛으로 그녀의 등을 바라보았다.
“…강우 씨?”
“아, 미안. 잠깐 눈이 침침해서.”
고작 1시간 잤을 뿐이다. 눈이 침침해지는 것도 어쩔 수 없었다.
‘그럼. 어쩔 수 없는 일이지.’
그도 사람이었다. 사람이 어찌 1시간만 자고 멀쩡할 수 있단 말인가.
꿀꺽. 마른 침이 삼켜졌다.
눈을 비비는 척하며 가늘게 눈을 떴다. 다시 한번 그녀의 등이 눈에 들어왔다.
마치 천사의 날개를 연상시키는 듯한 날개의 문양이 그녀의 등에 떠올라 있었다.
“이건….”
“며칠 전부터 등에 나타나기 시작했어요.”
강우는 가늘게 눈을 떴다.
“8차 각성으로 얻은 특성이 뭐였지?”
“빛의 날개라는 특성이었어요.”
“흠.”
침음을 삼켰다. 단순한 특성의 영향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지는 지금 당장은 알 수 없었다.
“문양이 떠오르는 것 말고 다른 일은 없었어?”
“예. 아직 다른 건 없었어요.”
강우는 조심스럽게 문양을 살폈다.
에키드나에게 천계의 존재에 대해서 들은 이후이기 때문일까.
가볍게 넘기기는 힘들었다.
‘그렇다고 뭘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니.’
답답하다면 답답하다고 할 수 있는 상황.
강우가 걱정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는지 한설아는 미소를 흘리며 입을 열었다.
“문양만 나타난 거지 다른 건 없으니까 그렇게 걱정하지 않으셔도 괜찮아요.”
“그럴 순 없지.”
다른 사람도 아닌 한설아의 일이었다.
그에게 있어서 그녀의 존재는 특별했다.
강우는 손을 뻗어 문양이 나타난 등을 만졌다.
“힉!”
한설아가 움찔 몸을 떨었다. 그녀의 얼굴이 홍당무처럼 붉어졌다.
강우는 그런 그녀를 신경 쓰지 않으며 권능을 사용했다.
‘보호의 권능.’
실시간으로 그녀의 몸 상태의 변화를 체크하며 상황에 따라서는 강력한 보호막을 만들어줄 수 있는 권능.
지속적으로 마기를 소모하는 권능이기에 되도록 사용을 자제했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그럴 수가 없었다.
진중한 눈빛으로 그녀의 등을 살피던 강우가 입을 열었다.
“일단 다른 변화가 있으면 바로 알려줘. 악몽을 꿨다든가, 기분이 이상하다든가 하는 사소한 일도 무조건. 알았지?”
“아…. 아, 알겠어요, 강우 씨.”
예상 이상으로 강우가 진중하게 나오자 한설아는 살짝 당황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고개를 숙인 그녀의 얼굴에는 숨길 수 없는 미소가 지어져 있었다.
‘기뻐.’
차오르는 감정에 그녀는 몸을 배배 꼬았다.
강우가 자신을 이리도 신경 써주는 것이 느껴지자 뭔가 말로 표현하기 힘든 간질간질함이 전신을 감쌌다.
“강우 씨….”
그녀는 촉촉하게 젖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참기 힘든 충동이 그녀를 떠밀었다.
몸을 돌려 강우에게 입을 열려고 한 순간.
“강우, 설아. 여기서 뭐 해?”
에키드나의 목소리가 울렸다.
옷자락을 끌어내린 한설아와 그를 유심히 살펴보는 강우의 모습은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충분한 모습.
“아, 아무 것도 아니에요!”
한설아가 다급히 외쳤다. 에키드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한설아의 옷깃을 살짝 당겼다.
“설아, 나 배고파.”
꼬르르륵. 귀여운 소리가 흘러나왔다. 한설아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끌어내린 옷을 다시 원상태로 되돌렸다.
“조금만 기다려. 금방 아침 차려줄게.”
그녀는 다급히 주방으로 향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군침을 당기는 냄새가 집 안에 풍겼다,
당연하게도(?) 김치찌개의 냄새였다. 강우의 강력한 주장 덕분에 아침 메뉴는 거의 고정된 상태.
[오, 식사시간인가?]발자하크가 방문을 열고 나타났다.
밖에 나갈 때는 강우의 그림자 속에 몸을 숨겼지만 평소에는 그냥 모습을 드러낸 채 생활했다.
“일어나셨나요, 발자하크 씨.”
요리를 하던 한설아가 그를 반겼다.
처음에는 살점 하나 없는 백골의 모습에 기겁하던 그녀와 김미정이었지만 시간이 흐르자 자연스럽게 익숙해진 상태.
이제는 밤중에 발자하크와 마주쳐도 놀라지 않는 경지에 도달해 있었다.
-탁.
“식사 준비 끝났어요.”
재빠르게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소란스런 분위기와 함께 식사가 시작됐다.
발자하크는 이제는 익숙해진 젓가락질로 능숙하게 고기를 집어 들었다.
-우걱우걱.
[흐흐. 오늘도 역시 만족스러운 피의 만찬이로다.]발자하크는 연신 감탄사를 흘리며 김치찌개를 흡입했다.
뼈만 남은 백골이 신나게 김치찌개를 먹고 있는 아연한 광경이었지만 그를 신경 쓰는 사람은 없었다.
[하하! 말 그대로 ‘뼈’에 사무치는 맛이로군!]“…….”
강우는 헛웃음을 흘렸다.
백골이 저런 대사를 하니 자연스럽게 실소가 흘러나왔다.
‘리액션 한번 끝내주네.’
어떤 요리만화의 리액션 담당도 저 표현을 이토록 완벽하게 소화할 수는 없을 것이다.
[후후. 감미로운 식사였다, 인간 계집.]발자하크가 거만하게 말했다.
옆자리에 앉아 있던 강우의 손이 빛살처럼 움직였다.
-빠악!
[갸아아아악! 두, 두개골이!]비명이 터져 나왔다.
“설아한테 그렇게 말하지 말랬지.”
[크흑. 죄, 죄송합니다, 마스터.]발자하크는 뒤통수를 움켜쥐며 대답했다.
“그럼 설거지 부탁한다.”
강우는 발자하크의 어깨를 가볍게 두들기며 몸을 일으켰다.
발자하크의 노란 안광이 흔들렸다.
[크읏. 어째서 이 발자하크가 이런….]식사의 뒤처리라니. 에르노어 대륙에 있었을 때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마스터의 명령을 거부할 수 없는 노릇.
발자하크는 빠르게 식기를 수거한 후 고무장갑을 꼈다. 스펀지를 한 손에 들고 주방세제를 묻혔다.
-달그락. 달그락.
지난 3개월간 익숙해진 손놀림.
발자하크는 찌꺼기 하나 남지 않도록 완벽하게 그릇을 닦았다.
빠르게 설거지를 마쳐야 했다.
‘널어놓은 빨래도 빨리 개놔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침 청소를 할 시간이 부족해졌다.
지난 3개월 간 가사전반에 대해서 질리도록 부려 먹힌 그에게는 이제 대강의 스케줄이 알아서 머릿속에 그려졌다.
‘왜 마왕인 내가….’
마왕 발자하크.
에르노어 대륙을 공포에 잠기게 만든 그 죽음의 군주가 일개 노예로 전락한 상황.
설거지를 끝마친 발자하크는 널어놓은 빨래를 개기 시작했다.
빨래를 개던 도중 그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이렇게 살 수는 없다.’
발자하크는 눈을 빛냈다.
그는 빨랫감을 내려놓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마스터!]“응?”
소파에 앉아 있는 강우를 불렀다.
발자하크는 성큼성큼 그에게 걸어갔다.
“뭐야?”
[계속 참으려 했지만 이제 더 이상은 안 되겠습니다!]짙은 분노가 담긴 목소리.
[오늘은 기필코 마스터에게 말해야겠습니다!]“뭐, 일하기 싫다고?”
[아니! 그런 문제가 아닙니다!]쿵. 발자하크는 거칠게 발을 굴렀다.
노란 안광을 빛내며 강렬한 마기를 피어 올렸다.
그는 손에 쥔 물건을 앞으로 내밀었다.
[제가 양말은 뒤집어서 세탁기에 넣지 말라고 몇 번을 말해야 합니까!]“아.”
[빨래를 갤 때 이게 얼마나 중요한 일이지 마스터는 모를 겁니다!]“어, 응. 미안해.”
[흥. 아셨으면 다음부터 주의해 주십쇼.]발자하크는 거칠게 몸을 돌리며 빨래를 널어둔 곳으로 걸어갔다.
햇볕에 마른 빨랫감을 손에 들었다. 향긋한 섬유 유연제의 냄새가 코끝을 간질였다.
[좋아.]발자하크는 짙은 웃음을 흘렸다.
[잘 말랐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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