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yer Who Returned 10,000 Years Later RAW novel - Chapter (185)
만 년 만에 귀환한 플레이어 186화
불의 위상 (1)
-콰드드득!
-쿠웅!
“아아악!”
“뭐, 뭐야?!”
플레이어들은 두 눈을 부릅떴다.
경악에 빠진 그들 사이를 5미터의 거구를 가진 악마가 질주했다.
“마, 막….”
-퍼억!
앞선 플레이어가 입을 열기도 전에, 악마의 무릎이 그의 가슴을 올려쳤다.
전사 클래스를 지녔던 플레이어의 상반신이 단 일격으로 터져나갔다.
[신성한 전투에서 지금 뭐하자는 짓이지?]악마는 불쾌하다는 듯 표정을 일그러트렸다.
지금 눈앞의 인간들이 ‘방심’하고 있다는 것이 전해졌다.
절로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악마를 앞에 두고 방심했다고? 감히 인간 따위가?’
사슴이 호랑이를 눈앞에 두고 느긋하게 하품하는 격.
지금 인간들의 모습은 딱 그러했다.
모두 힘을 합쳐 달려들어도 모자랄 판에 오합지졸로 찢어진 그들의 모습에는 모욕감까지 느껴졌다.
[너희들은 내게 모욕감을 줬어.]그들이 죽을 이유는 그것으로 충분했다.
악마가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폭음과 비명이 전장에 울려 퍼졌다.
“대, 대체 뭐야?!”
“아, 악마가 이렇게 강했다고…?”
그제야 플레이어들의 눈에 공포가 서리기 시작했다.
이제까지 들렸던 악마교의 소식과는 이질적인 그들의 위용.
한국, 중국에 이어 남미까지.
손 한 번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학살당했다는 나약한 악마의 모습은 조금도 보이지 않고 있었다.
-쿵!
푸른 기운을 전신에 두른 청년이 발을 박찼다.
전장을 질주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악마의 거체 앞에 도달했다.
몸을 낮추고 왼발을 뒤로 빼냈다. 오른발로 진각을 찍으며 솟구쳤다.
-촤악!
[커헉!]플레이어들을 휩쓸던 악마의 몸이 사타구니부터 길게 갈라졌다.
“거, 검룡.”
“검룡이다! 검룡이 왔어!”
“사, 살았다!”
악마들에게 신나게 휘둘리고 있던 플레이어들이 환호성을 내질렀다.
“당신들.”
김시훈이 몸을 돌렸다.
“하하! 이야, 역시 제이슨을 이기신 게 운이 아니… 커헉! 큭!”
손을 뻗었다. 실실 쪼개는 플레이어의 멱살을 잡았다.
“지금 뭐 하는 짓입니까.”
“에….”
-쿵!
“뭐, 하는, 짓, 입니까.”
“커헉! 자, 잠깐 놔, 놔….”
어마어마한 기세로 뿜어져 나가는 살기.
김시훈은 타오르는 눈으로 플레이어들을 돌아보았다.
“꺼지십쇼.”
“예?”
“대열도 지키지 않는 머저리들은 필요 없습니다. 지금 당장 꺼지라고 했습니다.”
“…….”
거친 욕설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플레이어들은 꿀꺽 침을 삼키며 서로의 눈치를 살폈다.
소문과 달리 악마는 끔찍하게 강했다.
전장 한복판에서 버려진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살아서 돌아갈 수 있을 리가 만무.
“하, 한 번만 기회를 주십시오!”
“악마가 이렇게 강하리라고는 생각 못 했습니다!”
“…….”
목숨을 구걸하는 듯 절박한 목소리.
김시훈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이 표정을 일그러트렸다.
“하아.”
한숨을 내쉬었다.
마음 같아서는 정말 전장 한복판에 버려버리고 싶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그럴 때가 아냐.’
입술을 깨물었다.
고개를 돌려 전장을 살폈다. 전황은 처참했다.
악마교와 악마들이 이렇게 강할 것이라 상상도 못한 듯 플레이어들은 경악에 찬 표정으로 혼란에 빠졌다.
“제길.”
강우의 말이 떠올랐다.
‘형님의 말이 맞았어.’
모든 것이 지나치게 순조롭게 해결되어 버렸다.
오강우라는 경이로운 힘을 가진 존재 하나 때문에.
온실 속의 화초처럼 지켜지기만 했던 인류의 지금 모습은 한심스러울 정도.
마치.
자신처럼.
“…….”
굳게 입을 다물었다.
악마의 강력함에 당황하는 플레이어들의 모습에 자신이 모습이 겹쳐 보였다.
‘나도.’
손에 쥔 검을 내려 보았다.
가늘게 떨리고 있는 손.
몸을 잠식하는 공포. 악마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숨이 막히는 감각.
붉은 악마 가면.
칠흑의 장막 속에서 태어난 것처럼, 오롯이 가면만이 떠올라 있던 그의 모습.
-처절하게 발버둥 쳐라. 발버둥 치며, 나를 기억하라.
낮게 깔린 목소리.
그를 떠올리는 것만으로 정신이 혼미해졌다.
“이래서야.”
그들과 다를 바 없었다.
한심한 모습에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주먹을 움켜쥐었다. 굵은 힘줄이 돋아났다.
‘언제까지, 애새끼처럼 뒤만 따라다닐 생각이냐.’
스스로에게 말했다.
-쿠구궁!!
거칠게 발을 굴렀다. 단전에서 뿜어져 나온 푸른 기운이 휘몰아쳤다.
“하나 되어, 싸워라!”
내공을 담아 외쳤다.
전장의 폭음을 뒤덮을 정도로 큰 외침에 플레이어들과 악마, 악마교의 시선이 김시훈에게 집중됐다.
발을 박차고 달려들었다.
인간으로서는 절대 이길 수 없을 것 같은, 거대한 육체와 흉측한 외모를 가지고 있는 악마를 향해 검을 내려그었다.
-촤아아악!
검은 피분수가 뿜어졌다.
악마를 단칼에 썰어버리는 압도적인 위용.
예상치 못한 악마의 강력함에 큰 혼란에 빠져 있던 플레이어들은 뜨거운 눈빛으로 김시훈을 바라보았다.
검을 높게 들어 올렸다.
원형으로 퍼져 나간 푸른빛이 눈이 부실 정도로 타올랐다.
영혼을 쥐어짜 내듯, 거친 목소리로 외쳤다.
“가디언즈를 위하여!!!”
“와아아아아!!!”
플레이어들이 내지른 함성이 전장을 울렸다.
* * *
격해지는 전투.
악마와 플레이어들의 처절한 교전.
후방에서 상황을 살피던 강우는 눈물을 훔치며 고개를 돌렸다.
“각오했었는데, 역시 가만히 보고 있기는 힘드네요.”
“강우씨….”
가이아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강우는 고개를 저으며 몸을 돌렸다.
“잠시 나가있겠습니다.”
“예.”
후방에 설치된 지휘 막사에서 나왔다.
“슈바.”
밖으로 나온 강우는 자신의 뺨을 툭툭 때리며 고개를 저었다.
“하마터면 웃을 뻔했네.”
분위기를 잡아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계속해서 울리는 메시지창에 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것을 막기는 힘들었다.
그 웃음 속에는 이제까지 온갖 발암 짓을 일삼았던 신입 가디언즈의 플레이어에 대한 통쾌함도 섞여 있는 것이 당연.
‘이번 일로 잘 솎아내졌으면 좋겠네.’
이런 비유를 사용하는 것이 옳을지는 모르겠지만, 이번 전쟁은 어떤 의미로는 ‘정제’작업이었다.
악마가 지닌 힘에 대해 공포를 느꼈음에도, 그 공포를 극복하고 끝까지 싸운 플레이어들을 선별하기 위한 전쟁.
-탁.
가볍게 발을 박찼다.
강우의 몸이 공중으로 떠올랐다.
그가 향한 곳은 전장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산의 정상.
그곳에는 그의 직속 부하라고 할 수 있는 네 명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빛의 용사라는 허물이 필요 없는, 오강우란 악마의 진짜 얼굴을 알고 있는 이들.
에키드나, 발자하크, 발록, 리리스.
그들을 향해 걸어갔다.
가장 먼저 달려온 것은 에키드나.
쪼르르 달려온 에키드나가 그의 소매를 붙잡았다.
“설아는?”
“후방에 있는 힐러부대에 속해 있어.”
“끌끌끌. 제 데스나이트가 그녀를 비밀리에 지키고 있으니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발자하크가 손에 쥔 지팡이를 찍었다.
음산한 웃음소리가 깔렸다.
“레이날드의 시체를 사용해 만든 최고의 데스나이트지요. 어지간한 구천지옥의 악마들도 그를 이길 수는 없을 겁니다.”
“그래.”
고개를 끄덕이며 전장이 내려다보이는 바위에 걸터앉았다.
눈을 빛낸 에키드나가 그의 무릎 위를 노렸다.
“읏.”
“후훗. 꼬맹이는 잠시 뒤에 있으렴.”
에키드나의 몸을 뻗어나온 촉수가 붙잡았다.
발버둥쳤지만 그 상대는 리리스.
대공과도 싸울 수 있다는 대악마 중의 대악마였다.
“이거 놔.”
에키드나가 날카롭게 그녀를 노려보았다.
리리스는 어깨를 으쓱이며 무시했다.
강우에게 다가간 그녀는 농염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강우님. 커피 한 잔 타 드릴까요?”
“부탁해.”
커피를 받아들며 전장을 내려다봤다.
‘생각보다 잘 싸우네.’
애초에 전력 자체는 크게 꿀리지 않았다.
단순히 악마들이 지닌 힘에 대해 지나치게 무지했을 뿐.
첫 교전에서 혼란에 빠져 큰 피해를 받는 모습을 보고 걱정했지만 김시훈의 화려한 퍼포먼스 덕분에 혼란이 빠르게 가라앉을 수 있었다.
‘잘했다, 내 새끼!’
김시훈의 기특한 모습에 박수라도 쳐주고 싶은 심정.
아무리 피를 흘릴 각오를 했다 하지만 압도적으로 학살당하는 그림은 바라지 않았던 것이 사실.
김시훈 덕분에 최악의 상황은 면할 수 있었다.
“그럼.”
이 정도면 플레이어들에게 경각심을 심어주는 목적은 달성했다.
교전이 길어지는 와중 마력을 뿜어내며 각성하는 플레이어도 몇몇 보이기 시작했다.
이제 슬슬 움직일 차례였다.
“준비해.”
낮게 말했다.
발록과 리리스, 발자하크가 한쪽 무릎을 꿇었다.
에키드나는 고개를 두리번거리더니 이내 그녀도 무릎을 꿇었다.
“교전에 정신이 팔린 사이에 악마교 지부 내부를 급습해라.”
“지부 내부에 남아있는 인간들은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발록의 질문.
“새삼스럽게 뭘 물어보고 그래?”
강우는 입가를 비틀어 올렸다.
그의 말마따나, 물어 볼 가치도 없는 일이었다.
지옥에서 보낸 만 년이라는 아득한 시간 동안 그의 행동원칙은 단 하나였다.
“악의에는 더 큰 악의로.”
덤덤히 입을 열었다.
발록이 씨익 웃으며 답했다.
“살의에는 더 큰 살의로.”
몸을 일으켰다.
산 전체를 개조해서 만들어낸 악마교의 거대지부를 내려다보았다.
“다 쓸어버려.”
* * *
-콰앙!!
-쿵!
“아아아아악!!”
비명소리가 통로를 가득 메웠다.
짙은 피 냄새와 끔찍한 폭음이 감각을 멀게 만들었다.
지진이라도 난 듯 뒤흔들리는 통로를 한 여인이 달리고 있었다.
“허억! 허억!”
율리아 빌코바.
악의 사도라는 중책을 지닌 악마교의 핵심 간부.
그녀는 필사적으로 붕괴하는 터널을 벗어났다.
“제길, 제길!!”
아름다운 그녀의 얼굴이 흉악하게 일그러졌다.
교단 내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거대지부, 티베트 사원.
그곳이 멸망할 위기에 처해 있었다.
‘이렇게 된 이상.’
그녀는 입술을 깨물었다.
아직 모든 준비가 끝난 것은 아니었다.
지금 섣부르게 움직였다가 돌이킬 수 없는 일이 일어날 위험도 존재했다.
하지만.
‘다른 방법이 없어.’
이대로 있다가는 티베트 지부가 멸망할 것은 불 보듯 뻔한 상황.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드르르륵.
거대한 산의 내부.
그 중심으로 향하는 문이 열렸다.
문이 열리자 숨이 턱 막히는 강렬한 열기가 그녀를 덮쳤다.
“깨워, 야 해.”
불의 위상.
불길의 제왕.
탐욕의 대공, 마몬을 깨워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