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yer Who Returned 10,000 Years Later RAW novel - Chapter (278)
만 년 만에 귀환한 플레이어 279화
타락한 천사의 악몽 (1)
“아직 우리엘이 도착했다는 소식은 없지?”
강우는 통신용 수정 구슬을 손에 쥐며 물었다.
[예, 아직은 보이지 않아요.]리리스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강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온다면 아프리카 쪽으로 올 거야.”
루드비히도, 라파엘도 그쪽으로 왔다.
게이트라는 것이 위치를 마음대로 설정할 수 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확률상으로는 원래 왔던 곳으로 올 확률이 높다.
‘만약 그쪽으로 오지 않는다고 해도.’
결국 그 통신의 진위(眞僞)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아프리카 쪽에 세워진 라파엘의 요새로 와야 한다.
“병력을 더 충원해서 24시간 살펴. 가디언즈도 끌어들여도 좋아. 무조건 도착하자마자 찾아야 해.”
[명심하겠습니다.]리리스는 그 말을 끝으로 통신을 끊었다.
강우는 한숨을 내쉬며 몸을 일으켰다.
할키온과 에키드나도 리리스를 도우라고 보낸 탓에 집안이 어색할 정도로 조용했다.
-똑똑.
그때, 조심스러운 노크소리가 방 안에 울려 퍼졌다.
할키온도, 에키드나도 없는 지금 그의 방을 두드릴만한 사람은 한 명 뿐.
“들어 와.”
“…얘기는 끝나셨나요?”
방문을 열고 한설아가 조심스럽게 고개를 내밀었다.
강우가 고개를 끄덕이자 종종 걸음으로 다가와 침대 위에 앉았다.
“…….”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강우는 의자에 앉은 채 물끄러미 그녀를 응시했다.
‘무대’를 모두 만들고 난 후 집에서 대기하면서 그녀에게 대략적인 상황은 설명했다.
그녀의 몸 안에 천신 세라핌의 영혼이 깃들어 있으며, 천사들이 그것을 사용해 세라핌의 부활을 꾀한다는 것.
그리고 세라핌이 부활하게 되면 그녀의 영혼이 쿠로사키 유리에처럼 깊게 잠들 수도 있다는 것까지.
“…강우 씨.”
“전에 말했던 거라면, 다시는 말하지 마.”
처음 이 사실을 들은 한설아는 자신이 희생해서 세라핌을 부활시켜달라고 말했다.
그 편이 강우가 안전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이라며.
“그리고 애초에 전재가 틀렸어. 세라핌이 부활하면, 내 안전은커녕 날 죽이려고 들 거야.”
그의 정체가 예언의 악마니 당연한 일.
아니, 예언의 악마인 건 어찌 숨긴다고 해도 그 본질이 악마인 이상 결국 마찰이 생길 수밖에 없다.
신을 적으로 돌리는 일.
그것도 한 세계를 관리할 정도로 강력한 신을 적으로 돌리는 것은 억지로라도 막아야만 했다.
‘물론.’
지구라는 별을 위해서는 세라핌을 부활시키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녀의 힘은 무너져가는 지구의 수호에 분명히 도움을 줄 것이다.
하지만.
‘좆까.’
정작 그 지구를 지키기 위한 신이 자기를 배제한다면 말짱 도루묵이었다.
‘세계가 안전하고 평화로우면 뭐하나, 내가 그 세계에 못 있는데.’
강우는 자기 한 몸 희생해서 세계를 지킬 생각 따위는 추호도 없었다.
그런 생각이 있었으면 진즉 할복하고 자기 자신부터 죽였을 것이다.
‘내가 씨바 뭘 위해서 살아왔는데.’
세계가 멸망하는 것은 막아야 하지만, 그렇다고 그 멸망을 막기 위해 자신이 희생하는 것은 당치도 않는 일이다.
설사 운이 좋아 세라핌이 자신을 받아들인다고 해도 마찬가지.
한설아가 없다면 어차피 반쪽짜리 행복일 뿐이다.
“나는 내가 행복하게 살기 위해 살아왔어.”
만 년을, 그 기나긴 시간을 악착같이 버틴 이유가 무엇이었나.
오로지 행복하기 위해서였다.
즐겁고, 재밌고, 때로는 슬픈 일도, 우울한 일도 있는.
하지만 끝에 가서는 낄낄 웃으며 끝나는.
그런 삶을 위해서였다.
“네가 죽으면 내가 행복하지 않아.”
“…….”
단호한 그의 말에 한설아는 벙찐 표정으로 입을 다물었다.
이내, 쿡쿡 웃었다.
“네. 앞으로 그런 말은 안 할게요.”
한설아는 진심으로 기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야 강우의 마음이 좀 놓였다.
“세라핌이라… 아, 혹시 그것 때문일까요?”
“뭐가?”
“전에 그에… 강우 씨가 납치됐을 때요. 그때 이후로 자주 꿈을 꾸거든요.”
“꿈?”
“예. 포근한 빛에 휘감긴… 그런 꿈을 꿔요. 그리고.”
한설아는 으음, 하고 침음을 흘렸다.
“이런 말을 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그 이후로는 뭔가 강우 씨가 연하처럼 느껴져요. 아, 아니다. 연하라기 보단… 약간 보살펴주고 싶다고 해야 하나? 예전에는 멋있기만 했는데 최근 들어선 귀여워 보이기까지 해야 한다고 하나….”
“…….”
“어, 어쨌든. 그런 기분이 들더라고요.”
강우는 잠시 팔짱을 끼며 고개를 끄덕였다.
‘세라핌의 영향이 맞는 것 같은데.’
힘을 한 번 각성한 이후로 조금씩 성격에도 영향이 가는 것 같았다.
샤르기엘에게 듣기론 세라핌은 자애(慈愛)의 신이라고 했으니 어느 정도 타당한 추측.
최근 한설아가 약간 연상처럼 느껴지는 것도 그러한 이유 때문이었으리라.
“왜, 그럼 앞으로 설아 누나라고 불러 줄까?”
“헉.”
한설아의 두 눈이 커졌다.
그녀는 파르르 몸을 떨며 두 다리를 바동거렸다.
“아, 안 돼요!”
강렬하게 거부한다.
“제가 죽을 수도 있어요!”
한설아가 붉게 물든 얼굴로 소리쳤다.
강우는 그 모습이 퍽 웃긴 지 낄낄 웃었다.
“아… 아참!”
짝. 한설아가 손뼉을 쳤다.
그녀는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이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그, 그러고 보니 전에 가, 강우 씨의… 크흠. 오, 옷을 들 춘 것도 세, 세라핌의 영향인 것 같네요.”
두 주먹을 꽉 쥔 채 강렬한 시선으로 그를 바라본다.
“…….”
강우는 그때의 기억이 떠올랐는지 굳게 입을 다물었다.
‘추아야 설하다.’
한설아의 시선을 피해 고개를 돌렸다.
다시 한 번 그녀에게 연기를 시키지 말자, 는 결심을 되새기며.
“미, 믿지 않으시는 건가요?”
한설아가 분위기를 눈치 챘는지 뺨을 부풀린 채 가볍게 그를 두드렸다.
강우는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그때였다.
-우우웅.
통신 구슬이 울렸다.
강우는 몸을 일으켜 수정 구슬을 들어올렸다.
[마왕님.]리리스의 통신이었다.
[우리엘이 도착했습니다.]“…….”
강우의 눈이 반짝였다.
입가가 슬쩍 올라갔다.
기다리고 있던 시간이었다.
“위치 실시간으로 전송해 줘.”
강우는 그렇게 말하며 통신을 끊었다.
한설아가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가실 건가요?”
“가야지.”
자신이 벌려 놓은 일이다.
그 뒷수습도 응당 자신이 해야 할 터.
“저도….”
“안 돼.”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세라핌의 존재가 천사들에게 알려지면 안 돼.”
그러면 설사 계획을 성공시킨다고 해도 샤르기엘 때와 똑같은 일이 일어나 버린다.
“…….”
한설아는 굳게 입을 다문 채 쓸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 또한 천사에게 보이면 안 되는 이유에 대해서는 잘 이해하고 있었다.
“…조심하세요.”
한설아는 강우의 손을 잡았다.
강우는 픽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몸을 돌린 채 수호의 전당으로 향하는 게이트를 활성화 시켰다.
그와 동시에 호출기로 가이아와 김시훈, 차연주, 그레이스 맥커빈, 천무진 등에게 소집 신호를 보냈다.
‘다른 사람도 데려가야 해.’
이번 무대에서 자신은 주연이 아니다.
그의 역할은 어디까지나 관객. 그리고 어떤 무대던 관객은 많을수록 좋았다.
‘그리고.’
강우의 눈이 가늘어졌다.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에게는 단순한 관객으로서의 역할 말고도, 한 가지 더 할 것이 남아 있었다.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이.
* * *
“…후우.”
짧은 청발의 소년의 입에서 깊은 숨이 흘러나왔다.
소년은 천천히 눈을 떴다.
푸른 하늘과 탁 트인 대지가 보였다.
‘여기가….’
지구.
“에르노어랑 큰 차이는 없어 보이네.”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한 동안 푸른 하늘을 올려다보던 그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감상에 젖어 있을 때가 아니다.
품속에서 종이를 한 장 꺼냈다. 라파엘이 지구에 건설했다는 임시 거처의 위치가 적힌 종이였다.
‘라파엘….’
우리엘은 초조한 표정으로 날개를 펼쳤다.
원래라면 자신의 군세를 이끌고 오고 싶었지만 그러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다.
‘지금 간다.’
정확한 사정을 모르지만, 어떠한 봉변(逢變)을 당했을 것이 분명한 자신의 전우를 찾기 위해 그는 빠른 속도로 하늘을 날았다.
“응?”
그때, 그의 시야에 천사의 요새 근처를 어슬렁거리는 일단의 무리가 보였다.
날카롭게 눈을 뜨곤 벼락처럼 그들이 있는 곳으로 떨어졌다.
-콰지지직!!
푸른 뇌전이 주변에 휘몰아쳤다.
“너흰 누구야.”
살기가 잔뜩 담긴 목소리로 물었다.
빠르게 무리를 살폈다.
‘인간들.’
숫자는 여섯.
선두에 선 것은 날카로운 인상을 가진 청년이었고, 그 뒤에는 절로 감탄사가 흘러나올 정도로 잘생긴 청년이 서 있었다.
중간에는 휠체어에 탄 옅은 갈색머리칼의 여인이 있었고, 금발의 중년 여인이 휠체어를 끌고 있었다.
후미에는 붉은 단발의 여인과 허리에 검을 찬 노인이 서있었다.
그 중 날카로운 인상을 가진 청년이 앞으로 나섰다.
“저희는 가디언즈입니다.”
“가디언즈?”
들어 본 적 있다.
라파엘과 동맹 관계에 있다는 지구의 수호자들.
순간적으로 그 말이 진실인지 의심부터 갔지만, 휠체어에 탄 여인을 살펴본 후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가이아 님의 화신이 있네.”
“천사님을 뵙습니다.”
가이아가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우리엘은 일단 경계를 풀지 않은 채 물었다.
“너희들이 여기에 왜 있어?”
“그전에… 당신은 누구십니까? 라파엘 님의 부하 중에 당신처럼 생긴 천사는 본 적 없는데 말이죠.”
날카로운 인상의 청년 또한 우리엘과 마찬가지로 경계어린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우리엘은 끄응, 침음을 흘리며 입을 열었다.
“난 우리엘이야.”
“아…!”
날카로운 인상의 청년의 입에서 짧은 탄성이 흘렀다.
그는 다급히 머리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천사라는 것은 등 뒤의 날개를 보고 알았지만… 최근 좀 이상한 일 있어서요.”
“…이상한 일?”
“라파엘 님이나 샤르기엘 님에게 전혀 연락이 닿지 않습니다. 정기회의 때도 모습을 안 보이셔서… 걱정돼서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아.”
우리엘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왜 가디언즈가 요새 근처에서 얼쩡거렸는지 알 수 있었다.
초조하게 입술을 짓씹었다.
“연락이 두절 된 건 언제부터야?”
“5일 전부터입니다.”
“…제기랄.”
우리엘은 거칠게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날카로운 인상의 청년이 걱정스럽다는 듯 물었다.
“혹시 라파엘 님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 겁니까?”
“…아니. 아무 일도 아니야.”
“아무 일도 아닌 표정이 아니시지 않습니까.”
“아무 일도 아니라니까!”
우리엘이 짜증스럽게 답했다.
하지만 이내, 머리가 아프다는 듯 이마를 짚었다.
‘…가디언즈라면.’
라파엘의 보고에선 그들이 지닌 힘에 대해 상세히 적혀 있었다.
대부분은 중위 천사와 비슷하거나 그 아래의 전력을 지니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고위 천사를 넘어서는 강자 또한 있었다고.
듣기로는 성검 루드비히를 계승한 인간과 영웅신 티리온의 사도까지 있다고 들었다.
“너희 중에 오강우랑 김시훈이란 인간 있어?”
“…제가 오강우입니다만.”
“김시훈이라고 합니다.”
“…그렇단 말이지.”
우리엘은 고개를 끄덕였다.
상황이 바뀌었다. 그들이 고위 천사를 넘어서는 강자라면, 얘기가 달랐다.
“나를 좀 도와줄 수 있어?”
급하게 오느라 부하조차 데려오지 못한 상태.
인간들의 도움이라도 절실한 상황이었다.
“라파엘 님에 대한 겁니까?”
“…응.”
“그렇다면 저희도 한 번 조사해보려고 했으니 상관없겠군요.”
오강우, 라고 이름을 밝힌 인간이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게 우리엘과 가디언즈는 아프리카 땅 위에 지어진 천사의 요새를 향했다.
“이게 대체….”
“여, 여기가 그때 그 요새가 맞습니까?”
은은한 빛이 흘러나오는 아름다운 요새는 온데간데없고 칙칙하고 어두운 기운이 감도는 요새가 있었다.
군데군데 박살난 부분과 사방에 널브러진 시체들이 어두컴컴한 기운에 휩싸인 요새를 더욱 을씨년스럽게 만들었다.
“강우 형님.”
“…아무래도 진짜 무슨 일이 일어난 것 같다.”
“강우 씨 이건….”
“가이아 님, 신들에게 내려온 계시는 없었습니까?”
“예…. 어, 없었어요.”
강우를 비롯한 가디언즈의 멤버들은 완전히 바뀐 요새의 분위기에 충격을 받은 듯 부산을 떨었다.
우리엘은 점점 더 커져가는 불길함에 입술을 깨물었다.
“진입할 거야, 따라 와.”
우리엘이 앞으로 나섰다.
요새의 문을 천천히 열었다.
그때였다.
-띠링.
[SS+ 던전 ‘타락한 천사의 악몽 마왕…]“커헉!! 크윽, 으아아아아!!!”
무언가 푸른창이 떠오르기에 앞서, 오강우라고 스스로를 밝혔던 인간이 갑자기 괴성을 지르며 몸을 활처럼 구부렸다.
발작을 일으키듯 사지를 떨며 눈을 뒤집어 깠다.
“혀, 형님!!!”
김시훈이 쓰러진 강우를 향해 다급하게 달려갔다.
우리엘 또한 갑작스러운 사태에 고개를 돌려 바닥에 쓰러져 발작을 일으키는 인간을 바라보았다.
허공에 떠올랐던 푸른색 창이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