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yer Who Returned 10,000 Years Later RAW novel - Chapter (415)
만 년 만에 귀환한 플레이어 416화
물은 언제나 답을 알고 있다 (1)
“…….”
거대한 기도실 안에 죽음과도 같은 침묵이 내려앉았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광휘의 신이 보여준 기적에 열광하던 신도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서로의 눈치를 살폈다.
“이안 님?”
“그,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신도들 사이에 동요가 퍼졌다.
만약 이름 모를 놈이 나서서 광휘의 신을 사기꾼이라 칭했다면 코웃음조차 치지 않았겠지만, 그 말을 한 것이 이안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그는 미하일과 더불어 신의 계시를 받고 광명교를 설립한 핵심 인물이었다.
특히 빛의 말씀을 전하는 설교 능력이 탁월해 신도들 사이에서 미하일보다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있었다.
사실상 광명교의 교주라고 불러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신도들의 지지를 받고 있는 이안이 광휘의 신을 가리켜 사기꾼이라 칭하다니.
신도들 사이에 동요가 커져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다들 진정해 주세요.”
혼란에 휩싸인 신도들을 향해 강우가 천천히 손을 들었다.
은은한 황금빛이 장막처럼 넓게 퍼졌다.
강우는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는 듯, 희미한 미소를 입가에 머금은 채 이안을 바라보았다.
“이안 추기경님이라고 하셨나요? 얘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거짓말이다.
처음 기도실에 잠입했을 때 이안을 보긴 했지만 다른 추기경들이 뒷담화를 까는 것 외에 다른 말을 들은 적은 없었다.
“무슨 착오가 있으신….”
“닥쳐라, 이 가증스러운 악마 놈!”
이안은 강우의 말을 들을 가치도 없다는 듯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강우의 눈썹이 살짝 꿈틀거렸다.
‘대체 뭔 일이야.’
겉으로는 태연한 척 여유를 부리고 있지만, 사실 그의 머릿속은 혼란으로 뒤죽박죽이 되어있었다.
‘저 새끼.’
어떻게 알고 있는 거야?
강우는 아주 살짝 입술을 깨물었다.
전쟁이 끝난 이후, 아니 에르노어 대륙에 도착한 이후 자신의 행동을 되짚었다.
‘없어.’
아무리 생각을 이어가도, 자신의 정체가 탄로 날 만한 일은 하지 않았다.
성좌와의 전투는 대부분 마해로 이루어낸 결계 안에서 이뤄졌고, 신격을 얻으면서 마기의 기척도 완벽에 가깝게 지워내는데 성공했다.
‘전쟁 중에 발록이 정체를 드러낸 걸 본 건가?’
그나마 제대로 숨기지 못한 일이라면 전쟁 중에 발록이 본모습을 드러냈던 것뿐이었다.
‘아니, 아니야.’
강우는 고개를 저었다.
그 일은 자신이 나서서 빠르게 수습을 끝냈다.
그리고 그 문제를 떠나서,
‘발록의 정체가 까발려졌다고 날 마왕이라고 생각하는 건 말이 안 돼.’
지나친 논리의 도약이다.
발록의 정체를 알았다는 것만으로 어떻게 자신을 마왕이라 단정 지을 수 있단 말인가.
‘뭐지.’
이안이 자신의 정체를 알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없어야 옳았다.
“저 악마가 바로 구천(九天)의 지옥을 지배하고 있던 마왕이란 말입니다!”
“…….”
고래고래 소리치는 이안의 모습에 점차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강우는 가늘게 눈을 뜨며 이안을 응시했다.
그가 자신의 정체를 어떻게 알 수 있었는지는 나중의 문제였다.
지금은, 그가 지핀 불을 끄는 게 먼저다.
‘뭐, 이 상황을 봐서는.’
강우는 고개를 돌려 신도들의 표정을 살폈다.
희미하게 입가가 올라갔다.
‘딱히 내가 뭘 할 필요도 없을 것 같지만.’
느긋한 표정으로 이안을 주시했다.
말 그대로, 그가 나설 것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까!”
“광휘의 신께서는 빛의 기적을 저희들의 눈앞에서 보여주셨습니다!”
“그분이 마왕일 리가 없습니다!”
신도들 사이에서 거센 반발이 터져나왔다.
그중에는 이안을 향해 적의를 넘어 살의까지 보내고 있는 신도의 숫자도 적지 않았다.
강우가 그들에게 기적을 보여주기 전이라면 몰라도, 그들은 눈앞에서 병든 아이가 멀쩡히 회복되는 기적을 봤다.
교주처럼 추앙받고 있는 이안이라고 하더라도 단순한 말 한마디로 지금 여론을 뒤집을 수 있을 리가 없다.
그가 아무리 뛰어난 설교 능력을 가지고 있다 해도 마찬가지.
’고통받는 자에게 필요한 건.‘
의미도 모를 빛의 말씀이 아닌, 눈에 보이는 명확한 기적이었으니까.
“악에 물든 건 이안 추기경입니다!”
“저자가 감히 광휘의 신을 능멸하려 한다!”
살의에 가득 찬 외침이 쩌렁쩌렁 기도실을 울렸다.
아까 전 자신의 남편이 위독하다고 울부짖던 여인은 두꺼운 성서(聖書)를 손에 쥔 채 위협적으로 휘두르기까지 했다.
“크읏….”
이안은 광기에 찬 신도들의 모습에 초조한 표정으로 입술을 깨물었다.
그는 거칠게 주먹을 쥐었다.
“악의 물든 자에게, 빛의 심판을!”
더 이상 여론을 바꿀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듯, 그는 행동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이안의 몸에서 짙은 성력(聖力)이 흘러나왔다.
그래도 추기경의 자리에 올라선 만큼, 그의 경지는 결코 낮지 않았다.
새하얀 빛의 창이 만들어지며 강우를 향해 쏘아졌다.
“꺄아아악!”
“과, 광휘의 신이시여!”
신도들이 경악을 토해내며 강우를 향해 몸을 던졌다.
하지만.
-스르르륵.
강우를 향해 날아오던 빛의 창이 가루가 되어 허공에 흩어졌다.
마치 빛의 창 자체가 강우를 공격하는 것을 거부하는 것처럼.
“어, 어째서….”
이안이 두 눈을 부릅뜨며 몸을 떨었다.
그는 이를 악물며 다음 공격을 준비했다.
강우는 이안을 향해 손을 뻗었다.
‘정지의 권능.’
대공 벨페고르의 권능이 발현됐다.
항거할 수 없는 힘에 이안의 움직임이 멈췄다.
“빛의 신도들이여, 화를 가라앉혀 주세요.”
강우는 신도들을 향해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광기에 휩싸여 가던 신도들이 움찔 몸을 떨며 뒷걸음질 쳤다.
“무슨 착오가 있던 것 같습니다.”
강우는 정지의 권능으로 온몸이 굳은 이안을 향해 다가갔다.
그의 어깨에 가볍게 손을 올리며 서글픈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이안 추기경님. 저는 추기경님을 믿고 있습니다.”
“아아.”
“빛이여….”
신도들은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무릎을 꿇었다.
자신을 마왕이라 모욕한 것도 모자라 망설임 없이 공격까지 가한 이안에게 화를 내기는커녕 그를 믿고 있다고 말하는 광휘의 신의 모습.
“빛의 신도들이여.”
강우는 그런 신도들을 향해 몸을 돌렸다.
“빛의 말씀을 잊으면 안 됩니다.”
천천히 팔을 들어 올리며 교단 위에 놓인 성서를 가리켰다.
“27장 2절. 고난과 고통을 준 원수를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지녀야 합니다.”
“흐윽. 명심하고, 또 명심하겠습니다!”
“광휘의 길만을 따라가겠습니다!”
신도들은 성서를 끌어안으며 머리를 조아렸다.
신도들에게서 흘러나오는 신앙이 한층 더 짙어졌다.
성서를 통해 읽기만 했던 빛의 말씀을 광휘의 신이 직접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주니 파급력은 몇 배가 되었다.
강우는 온화한 미소를 입가에 머금은 채 신도들에게서 몸을 돌렸다.
“잠시 이안 추기경님과 오해를 풀고 오겠습니다. 추기경님들은 신도들의 기도회를 이끌어주세요.”
“아, 알겠습니다!”
미하일 추기경이 90도로 허리를 꺾으며 외쳤다.
강우는 이안의 어깨를 붙잡은 채 그를 교단 아래로 질질 끌고 갔다.
-타악.
기도실 바로 옆에 있는 화장실로 이안을 끌고 온 강우는 마기를 사용해 가벼운 결계를 쳤다.
정지의 권능을 풀었다.
“하악, 하악!”
이안은 거친 숨을 토해내며 거칠게 몸을 뒤로 뺐다.
“이 노오옴! 언제까지 간악한 가면을 쓰고 있을 셈이냐!”
분노에 찬 노성을 토해내며 주먹을 들어올렸다.
강우는 이안의 팔을 잡아챘다.
“크흑! 놔, 놔랏!”
이안이 다급히 팔을 빼내려고 했지만, 강우의 악력에 거스를 수는 없었다.
“이안 추기경님.”
강우는 온화한 미소를 입가에 지은 채, 점잖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어디서 그런 잘못된 정보를 들으신 거죠?”
“하, 잘못된 정보라고?”
이안이 이를 드러내며 강우를 노려보았다.
“내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네가 구천(九天)의 지옥을 지배하던 시절의 모습을! 수만의 악마를 거느리며 거대한 왕좌에 앉아 있는 모습을!”
“…….”
강우는 눈살을 찌푸렸다.
‘지옥에 있던 시절의 모습을 봤다고?’
만약 그때 그의 모습을 봤다면, 지금 이안의 상태도 이해할 수 있었다.
그가 아무리 광명교를 이용해 먹을 수단으로 사용하기 위해 접근했다고 해도 기본적으로 그는 성직자였다.
빛을 따르고, 악에 물든 존재에게 증오심을 품고 있다.
광휘의 신의 정체가 마왕이라는 사실에 분노를 터트리는 것도 당연했다.
‘뭐, 성직자라고 해도 지가 믿던 신을 손절하고 다른 신에게 달라붙은 박쥐 새끼지만.’
미하일이나 이안이나 근본적으로는 다를 바 없는 놈들이다.
그들이 광명교에 붙은 이유는 신합회의 세력이 무너지면서 점차 사라지고 있는 권력을 다시 쥐기 위함이니까.
사실 그들이 자체적으로 성서까지 만들어 내며 설교를 한 것은 사기행위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는 일이었다.
‘사기꾼에게도 양심이란 건 있다, 뭐 이런 건가.’
자기는 권력을 위해 믿지도 않는 신의 말을 전하면서, 정작 신의 정체가 마왕이었다는 사실에 대해서 그토록 분노하다니.
아이러니한 일이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어째서 이안이 그런 행동을 했는지가 아니다.
“누가, 보여준 겁니까?”
누가,
감히 누가.
자신이 마왕으로 군림하던 시절의 모습을 그에게 보여줬는가.
지금 중요한 것은 그것뿐이었다.
“흥, 그것을 내가 말할 것 같은가!”
이안은 코웃음을 치며 고개를 돌렸다.
강우는 깊게 가라앉은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이안의 머리에 손을 올렸다.
‘공포의 권능.’
그의 이지(理智)를 제압하는 권능을 발현했다.
하지만.
-치지지지직!
“…음?”
“크읏! 내게 그런 사악한 술수가 통하리라 생각하는가!”
이안의 머리 쪽에서 검은 뇌전이 튀어 올랐다.
이안은 이를 악물며 날카롭게 뜬 눈으로 그를 노려보았다.
강우는 가늘게 눈을 떴다.
‘권능을 저항했다고?’
아무리 공포의 권능이 실패할 확률이 높은 권능이라고 해도 강우와 이안 사이에 존재하는 압도적인 경지의 차이를 생각하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다면.’
다른 누군가가 이안에게 지배류 권능을 저항할 수 있는 방책을 마련해줬다는 의미.
그리고 그 누군가는 아마도 이안에게 자신의 정체를 알린 존재일 확률이 높았다.
“하하.”
강우는 가볍게 웃었다.
“왜, 왜 웃는 거냐….”
이안이 떨리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강우는 머리를 쓸어올렸다.
‘지배류 권능이 통하지 않는다면.’
권능의 힘에 기대지 않고, 이안 스스로가 자신의 의지로 말하도록 만들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방법은.
“이안 추기경님.”
방긋,
강우는 온화한 미소를 입에 머금었다.
“그런 말 들어보셨습니까?”
“무, 무슨….”
이안이 파르르 몸을 떨었다.
강우는 화장실 세면대로 다가가 수도꼭지를 열었다.
수도 시설 하나만큼은 에르노어 대륙이나 지구나 별반 차이나지 않았다.
쏴아아.
수도꼭지를 열자 물이 쏟아졌다.
강우는 쏟아지는 물에 잠시 손을 대었다.
“물은 언제나 답을 알고 있다, 라는 말이요.”
“…뭐?”
이안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처음 들어보는 말이었다.
“하하하.”
강우는 가볍게 웃음을 터트렸다.
이안에게 다가온 강우는 그의 머리칼을 움켜쥐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머리칼을 움켜쥔 채, 물이 차오른 세면대에 이안의 머리를 쑤셔 넣었다.
“커헙! 쿠르릅!! 억!”
펄떡펄떡.
이안의 몸이 격렬하게 튀어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그의 머리를 짓누르는 손에 힘을 더하며 나지막이 말을 이었다.
“이제 곧 그 말의 의미를 아실 수 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