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yer Who Returned 10,000 Years Later RAW novel - Chapter (447)
만 년 만에 귀환한 플레이어 448화
네가 날 지배하는 게 아니야 (1)
“…….”
침묵이 내려앉았다.
상처 입은 짐승의 울음소리와 같은 처량한 흐느낌만 방을 울렸다.
리리스는 강우의 머리를 끌어안은 채 천천히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의 흐느낌이 멈출 때까지.
폭발한 감정들이 가라앉을 때까지.
-그 새끼한테 물량 공격이 의미 있을 것 같아? 어? 올림푸스, 아스가르드, 가디언즈, 이딴 게 소용이나 있을 것 같냐고!!
처절한 절규를 떠올렸다.
반론을 생각할 수 없는 외침이었다.
바알에게 물량은 의미 없다.
과거 구천지옥의 패왕(霸王)을 결정짓는 전쟁에서 이미 증명된 일이다.
그녀는 뛰어난 화술과 환영 마법으로 바알의 군세 대부분이 그를 배신하도록 만들었지만, 결국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바알은, 그런 존재다.
‘강우 님이 아니면.’
아무도 그를 상대할 수 없다.
익히 알고 있던 사실이었다.
김시훈도, 가이아도, 발록도, 한설아도.
바알을 감당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아니, 오히려 방해만 될 것이다.
결국 바알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강우 님이 바알보다 강해져야 해.’
그리고 그가 강해질 수 있는 방법은 지극히 단순했다.
먹는 것.
선악(善惡)을 가리지 않고, 피아(彼我)를 구분하지 않고.
모조리 먹어치우는 것이다.
‘그래서….’
리리스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자신의 품에 안겨 애처롭게 떨고 있는 강우를 내려다보았다.
얼마나 극한으로 내몰렸던 것일까.
얼마나 큰 중압감에 짓눌렸던 것일까.
그녀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웠다.
‘가엾은 분.’
리리스는 소중한 보물을 끌어안듯 강우의 머리를 끌어안았다.
“이기실 거예요.”
“…….”
“제가 아는 강우 님이라면, 결국 승리하실 거예요.”
“그건….”
“예. 알고 있어요. 그 과정에서 누군가 죽을 수도 있겠죠. 소중한 이들을 잃을 수도 있겠죠.”
과거,
구천지옥에서처럼.
“하지만….”
리리스는 활짝 미소를 지었다.
“그래도 강우 님이라면 이겨내실 수 있을 거예요.”
“…아냐. 아니라고.”
강우는 입술을 짓씹었다.
죽은 이는 돌아오지 않는다.
잃어버린 것을 되찾을 방법은 없다.
이겨봤자 그에게 뭐가 남는다는 말인가.
“이제 더… 잃고 싶지 않아.”
고개를 떨궜다.
나약하게, 꼴사납게 흐느낀다.
“호호호.”
리리스는 입가를 가린 채 웃었다.
강우의 머리칼을 쓸어 넘기며 이마에 입을 맞췄다.
“죽어서도 함께 있겠다는 말도 안 되는 말은 하지 않을게요. 하지만, 이것만은 말씀드릴 수 있어요.”
확신에 찬 눈으로 강우를 바라보았다.
“설사 죽는다고 하더라도… 전 행복할 거예요.”
당신과 함께라면.
당신과 함께해왔던 기억이 남아 있다면.
“죽는 그 순간에도 웃으면서 죽을 수 있어요.”
“…….”
강우의 눈이 떨렸다.
숨이 거칠어졌다.
“안, 돼.”
웃으면서 죽는다니?
개소리도 정도가 있다.
“어디서 멋대로 뒤지려는 거야.”
“어머, 방금 저 좀 떨렸어요.”
리리스가 살짝 얼굴을 붉혔다.
그녀는 강우의 목에 팔을 두르며 가볍게 허리를 숙여 입을 맞췄다.
‘설아 씨에게는 좀 미안하지만.’
터져 나오는 감정을 참을 수 없었다.
“그러면. 멋대로 죽을 수도 없다면.”
강우의 뺨에 손을 올렸다.
코가 닿을 정도로 가까이 얼굴을 기울이며 속삭이듯 말을 이었다.
“이겨주세요.”
무슨 짓을 하더라도.
모든 것을 씹어 삼키더라도.
온 세상이 그를 저주하고, 증오한다고 해도.
자신은, 그의 뒤를 따를 것이다.
“단 한 번의 패배도 용납하실 수 없다면.”
“…….”
“이제부터 한 번도 지시지 않으면 되잖아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당신이라면, 내가 아는 왕이라면 당연히 그럴 수 있다는 듯.
태연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
강우의 입에서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어처구니없다는 듯 물었다.
“이럴 때는 져도 된다거나 짐을 나눠 들어주겠다거나 뭐 그런 위로를 해야 하는 거 아냐?”
“어머, 그런 걸 바라셨나요? 호호호. 하지만 바알을 상대할 수 있는 건 강우 님밖에 없는 건 사실인걸요. 저희의 목숨이 강우 님에게 달려 있다는 것도요.”
리리스는 밝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러니.”
깊게 가라앉은 눈빛으로 강우의 두 눈을 응시했다.
“이겨주세요.”
강우라면.
자신이 사랑하는 왕이라면.
승리할 것이 틀림없다.
그 상대가 신이라고 하더라도, 정체를 알 수 없는 외계의 존재라고 하더라도.
바알이라고 하더라도.
“…….”
강우는 굳게 입을 다물었다.
무게를 덜어주기는커녕, 오히려 커다란 부담을 하나 더 쌓아 올리는 그녀의 모습에.
“푸흡.”
어째서인지, 어깨를 짓누르고 있는 중압감이 한결 덜해졌다.
‘단 한 번의 패배도 용납할 수 없다면.’
이제부터 한 번도 지지 않으면 된다, 라.
“정말… 간단하게도 말하네.”
낄낄 웃음이 흘러나왔다.
어깨가 들썩였다.
‘그래.’
간단한 문제였잖아?
언제나 이겨왔다면. 결국에는 승리를 거머쥐었다면.
이번에도 이기면 되는 것이다.
‘아무도 잃지 않고.’
압도적으로.
“하하, 씨발.”
강우는 얼굴을 손으로 덮은 채 웃음을 터트렸다.
뭔가 이제까지 고민을 하고 있던 것이, 중압감에 짓눌려 있던 것이 멍청하게 느껴졌다.
‘아무한테도 지지 않으면 된다는 거지?’
그렇다면 우선해야 할 일이 있었다.
“잠깐만 기다려 봐.”
“…강우 님?”
강우는 고개를 갸웃거리는 리리스에게서 고개를 돌리며,
눈을 감았다.
그의 내면을, 만마전 안에 웅크리고 있는 검은 바다를 관조했다.
‘우선 이 건방진 새끼부터 조져야지.’
검은 바다가 보였다.
끝없는 무저갱, 무한에 닿아있는 어둠은 그를 가두고 있는 세 개의 문과 뒤섞이고 있었다.
만마전을 침식하고 있는 것.
‘오강우’라는 존재를 잠식하고 있는 것.
그것이 무엇인지는, 깊게 생각할 필요조차 없었다.
‘욕망.’
마기를 지닌 자가 필연적으로 마주치는 것.
마기라는 기운의 근원.
“아, 으.”
몸이 떨린다.
강렬한 허기와, 미칠 듯한 갈증이 몸을 태운다.
화르륵.
불이 타오른다.
검은빛과 황금빛이 뒤섞인, 오로지 ‘먹는다’라는 욕망만으로 이루어진 불.
“하아, 하아.”
숨이 거칠어진다.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버틸 수 없을 정도로 욕망이 끓어오른다.
정신이 흐릿하다. 시야에 노이즈가 낀 듯 어지럽다.
이성이 갉아 먹히고, 지성이 불타 재가 되어간다.
세상 모든 것이 무너진다. 사라진다. 불에 타 증발한다.
남은 자리에는. 모든 것이 불타버린 잿더미 위에는.
욕망만이,
남았다.
-더, 더, 더, 더.
부족하다는 듯 소리친다.
눈앞의 모든 것을, 아니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씹어 삼키고 싶다는 강렬한 충동이 뇌리를 뒤흔든다.
그 아득한 욕망 속에서, 강우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렸다.
‘너였구나.’
자신을 잠식하고 있던 존재.
나약해진 의식의 틈을 파고들어, 그를 지배하려고 했던 존재.
욕망을 먹이 삼아 타오르는 불.
탐식(貪食)이라는 이름을 지닌 그의 신격(神格)이었다.
‘하긴, 좀 이상하다 싶었지.’
돌이켜 생각해보면 이상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아무리 스트레스와 중압감에 시달리고 있다고 해도,
강해져야 한다는 강박에 미쳐버렸다고 해도.
-마왕님답지 않은 일이었어요.
그렇다.
자신답지 않은 일이었다.
선악(善惡)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다.
윤리(倫理)는 잊었다. 도덕(道德) 또한 짓밟아 버렸다.
그건 과거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았다.
방해가 되는 존재는 죽인다. 방해가 될 것 같은 존재도 죽인다.
필요하다면 무슨 방법을 쓰더라도 손에 넣는다.
리리스 또한 그런 자신의 모습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녀가 ‘자신답지 않은’ 일이라고 평가한 이유는.
‘이 새끼에게 내가 집어 삼켜졌기 때문이지.’
강우는 가늘게 뜬 눈으로 타오르는 불꽃을 바라보았다.
탐식(貪食)의 불.
오로지 먹고 싶다는 욕망으로만 이루어진, 갈증과 허기로 가득한 신격(神格).
자신은 그 신격에 잠식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렇게 초월급 신격에 도달하는 것에 목을 매게 된 거구만.’
이제야 상황이 조금씩 이해되기 시작했다.
‘언제부터?’
기억을 되짚어보았다.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자신의 변화가 시작된 것은, 탐식의 신격이 자신을 잠식하기 시작한 것은.
‘바알에게 패배한 직후인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아주 씨발 이 몸뚱어리는 인기가 너무 많아서 탈이야.”
바울리 말고도 탐식(貪食)의 신격까지 그의 몸을 탐내고 있었다.
욕망에 굴복시켜, 탐식의 불로 집어삼키려고 하고 있었다.
-화르르르륵!!
거대한 불이 타오른다.
수십, 수백, 수천 미터는 가볍게 넘을 법한,
온 세상을 집어삼킬 것만 같은 거대한 불이 강우의 몸을 노리고 달려들었다.
-통!
“꾸륵, 꾸륵!”
그때, 의식의 공간에서 질퍽이가 튀어나왔다.
질퍽이는 강우를 호위하듯 앞에선 채 사납게 뜬 눈으로 거대한 불길을 노려보았다.
“꾸륵! 꾸르르륵!”
위협적으로 입을 벌리며 탐식의 불을 견제했다.
강우는 피식 웃었다.
“뭐야, 부를 때는 안 나오더니 이제 기어 나온 거냐?”
“꾸륵, 꾸르륵….”
질퍽이가 움찔 몸을 떨며 그를 돌아보았다.
뭔가 억울하다는 듯한 눈빛.
강우는 낄낄 웃으며 질퍽이의 반들반들한 피부를 두드렸다.
-철퍽, 처퍽.
“괜히 깝치지 말고 뒤에 있어, 인마.”
“꾸르륵?”
질퍽이의 머리통을 잡고 뒤로 집어 던졌다.
“꾸륵!!”
질퍽이가 데굴데굴 구르며 뒤로 튕겨 나갔다.
“자, 그럼.”
강우는 고개를 들어올렸다.
검은 바다 전체가 타오르고 있었다.
석유로 이루어진 바다에 불을 지르면 이런 느낌일까.
의식으로 이루어진 공간인데도, 온몸을 불태우는 듯한 열기가 느껴졌다.
거대한 불이 그 아가리를 벌린다.
욕망이 강우의 몸 전체를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치이이익.
피부가 타오른다.
살점이 짓이겨진다.
피가 증발한다.
끔찍한 허기가, 메마른 갈증이 전신의 감각을 뒤튼다.
이성을 갉아먹고 지성을 씹어 먹는다.
-부족해.
목소리가 들렸다.
-아직 부족하잖아?
더, 더, 더, 더.
-앞으로, 나아가야지.
더 높은 곳으로.
더 아득한 곳으로.
-알고 있잖아? 너라면….
“새끼 참 말 많네.”
머릿속에서 울려 퍼지는 목소리를 끊어내며 퉤, 침을 뱉었다.
“야.”
타오르는 불꽃 속에서, 입을 열었다.
자신의 몸을 집어삼키고 있는 거대한 불길을 바라보았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불을.
“넘볼 걸 넘봐야지, 새끼야.”
낄낄 웃음을 터트렸다.
그를 잠식하고, 조종하려고 하다니.
다른 누구도 아닌.
마왕(魔王)을.
“네가 날 지배하는 게 아니야.”
악마에게 있어서 욕망은 항거할 수 없는 본능이다.
모든 악마는 욕망에 따라 움직이고, 욕망의 지배를 받는다.
하지만.
“내가.”
그건 어디까지나, 일반적인 ‘악마’의 이야기.
“네 위에 군림하는 거지.”
구천(九天)을 아우르는 지옥의 왕이며.
모든 악마의 정점에 선 존재.
마신을 짓밟고 마해(魔海)의 주인이 된 마왕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대가리 박아, 이 새끼야.”
자신을 집어삼키는 거대한 불길을 향해,
나지막이 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