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yer Who Returned 10,000 Years Later RAW novel - Chapter (496)
만 년 만에 귀환한 플레이어 497화
3개전 준비 (3)
“여러분! 빛의 말을 따르세요! 빛이 향하는 길을 따라 걸으세요!”
찬란한 광휘에 휩싸인 차연주가 소리쳐 외쳤다.
광화문에 모인 수십 만의 인파의 시선이 그녀에게 집중됐다.
20분 전쯤 갑작스럽게 중앙 무대에 올라와 시작한 그녀의 연설은 슬슬 절정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광휘의 신이 여러분을 구원할 것입니다!”
촤르르륵!
황금빛으로 물든 쇠사슬이 넓게 펼쳐졌다.
등을 기점으로 부채꼴로 펼쳐진 황금의 쇠사슬은 마치 찬란한 광휘로 이루어진 날개처럼 보였다.
“아….”
광화문에 모인 사람들의 눈빛이 떨렸다.
그들은 고작 한 달 정도 전, 패러사이트에 의해 서울이 습격당했을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 그들을 구한 것은….
찬란한 빛의 날개를 펼치고 있던, 광휘의 신이였다.
“광휘의 신이시여….”
흐윽! 눈물을 쏟으며 두 손으로 모으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그들은 화마(火魔)에 휩싸였던 서울에서 누가 그들을 구했는지 잘 알고 있었다.
검룡을 비롯한 가디언즈의 플레이어도, 에르노어 대륙에서 건너온 파병군도 있었지만.
그 수많은 패러사이트를 일격에 쓸어버렸던 것은 다름 아닌 광휘의 신이었다.
“오멘….”
“흐윽. 어리석은 저희를 벌해주소서.”
“신의 뜻을 몰라뵙습니다!!”
집회 장소 곳곳에 심어둔 바람잡이 역할 광휘교도들이 일제히 후회 섞인 찬양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들의 목소리는 마법적인 장치로 반경 수백 미터까지 선명한 목소리로 퍼졌다.
그와 동시에.
-화아아아아악!!
무대에 선 광휘교의 교주, 차연주의 몸에서 폭발하는 듯한 광휘가 뿜어져 나왔다.
넓게 퍼진 빛무리가 사람들의 몸을 휘감았다.
[내가 너희를 구원하리라.]근엄함에 가득 찬 목소리가 사람들의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목소리의 근엄함만 놓고 보면 단연 깡패라고 할 수 있는 발자하크의 목소리를 녹음하여 타이밍에 맞춰 튼 것이다.
[빛이 너희를 구원하리라.]사람의 감정을 끌어내는데 좋은 목소리만큼 효과적인 게 또 있을까?
전문 성우라는 직업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다.
중후하면서도 낮게 울려 퍼지는 발자하크의 목소리는 집회에 모인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강우에게 ‘목소리는 김시훈급’이라는 극찬을 받은 해골의 위엄이 발휘됐다.
“오멘…!!”
“믿습니다, 믿습니다, 믿습니다!!”
바람잡이들이 한층 더 격렬하게 광휘의 신을 찬양했다.
찬란한 빛의 날개를 펼치고 있는 광휘의 화신과 열정적으로 찬사를 내뱉는 바람잡이들, 터져 나오는 빛 속에서 섞인 신(神)의 목소리까지.
“아, 아아.”
사실 길게 생각할 것도 없는 문제였다.
고작 한 달 전, 서울은 궤멸에 가까운 타격을 입었다.
그 절망 속에서 그들을 구해준 것은 광휘의 신이었다.
그런데 다른 누구도 아닌 광휘의 신이 직접 위험을 경고했다.
심리적인 저항감은 가볍게 박살 났다.
“오, 오….”
사람들의 눈빛이 약에 취한 듯 몽롱해졌다.
인간은 감정을 공유하는 동물이다.
군중 사이에 한 번 퍼지기 시작한 강렬한 감정의 불길은 곧 수십 만에 달하는 사람들을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그 강렬한 불길 속에서 이성은 하찮았다. 지성은 의미를 잃었다.
“오메에에에에엔!!”
누가 먼저 시작했는지도 모를 기도가 곳곳에서 터져나왔다.
“여러분….”
수십 만의 앞에선 차연주의 어깨가 가늘게 떨렸다.
그녀가 입은 새하얀 정복(正服)이 나풀거리며 넓게 펼쳐졌다.
차연주는 사람들 앞에 조심스럽게 무릎을 꿇은 후,
“오메에에에에에에엔!!”
눈물을 흘리며 외쳤다.
어째서인지 그 외침은 찬양이라기보다는 절규처럼 들렸다.
* * *
“수고했어.”
무대 뒤편에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강우가 차연주를 반겼다.
“…….”
차연주는 사늘하게 식은 눈으로 강우를 지나쳤다.
“이번.”
그녀는 발걸음을 멈춘 뒤, 사나운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번 한 번만 해준 거야.”
날카롭게 뜬 눈으로 그를 노려보았다.
그녀는 머리에 쓴 기다란 흰색 모자를 집어 던졌다.
“다음은 없어. 이제 이 지긋지긋한 교주 노릇도 안 할 거야. 알았어?”
눈가를 글썽이며 치렁치렁한 정복을 부욱 찢어버렸다.
외투처럼 옷 위에 입고 있던 정복을 거칠게 벗어 던졌다.
그 안에는,
강우를 만나기 위해 옥상에 왔을 때 옷차림 그대로였다.
평소 꾸미는 것이 서툰 그녀가 나름 최선을 다해 꾸며본 옷차림.
그녀는 자신의 옷을 내려다보며 눈물 한 방울을 뚝 흘렸다.
“…앞으로 나한테 연락하지 마.”
서릿발처럼 차가운 목소리.
“어차피 바쁘잖아? 한 달밖에 남지 않았잖아?”
뿌드득. 거칠게 주먹을 움켜쥐었다.
“난 할 만큼 다 했으니까 이제 신경 꺼.”
쓱쓱 눈물을 닦은 차연주는 차갑게 몸을 돌렸다.
“연주야.”
강우가 뒤돌아선 그녀를 나지막이 불렀다.
차연주는 강우를 무시한 채 성큼성큼 걸어갔다.
-착.
강우가 그녀를 뒤따라가 손을 잡았다.
“…뭔데?”
신경질적인 눈빛으로 강우를 쏘아보았다.
강우는 그녀의 손을 잡아끌며,
“웁!!”
고개를 기울여 입을 맞췄다.
“으, 으읍!! 으으으읍!”
차연주가 두 눈을 부릅뜨며 팔을 휘저었다.
강우는 발버둥 치는 그녀의 몸을 가볍게 끌어안으며 키스를 이어갔다.
“푸하!”
짧은 키스가 끝나고, 차연주가 다급히 뒷걸음쳐서 거리를 벌렸다.
“무, 무무무무무무무무슨 짓이야 이게!!!”
콕 찌르면 터질 것처럼 그녀의 얼굴이 달아올랐다.
차연주는 모락모락 김이 피어오를 것 같은 얼굴로 강우에게 소리를 질렀다.
“가, 갑자기, 그, 뭐, 뭔데.”
더듬거리는 목소리 속에 숨길 수 없는 환희가 느껴졌다.
강우는 희미한 미소를 입가에 머금으며 차연주의 손을 가볍게 잡았다.
“고마워.”
“…….”
“뭐, 장난도 많이 치고, 재미로 놀리기도 했지만.”
그래도.
“항상 소중하다고 생각하고 있어.”
“우, 으.”
차연주는 터질 듯이 달아오른 얼굴로 고개를 푹 숙였다.
“뭐, 뭔데 갑자기 씨, 씨발. 하, 하나도 안 어울려 이 도, 동정 새끼야. 하, 하하. 지, 진짜 좀 어울려 주니까 괘, 괜히 헛소리나 하고.”
어버버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누, 누가 너 같은 놈한테 과, 관심이라도 있대? 하, 참. 저, 정말 이러니까 동정 새끼들은 안 된다니까. 지, 진짜….”
더듬거리며 말을 잇고 있던 차연주의 눈에서 뚝뚝 눈물이 흘렀다.
방금 전에 흘렸던 것과는 다른, 기쁨에 가득 찬 눈물이었다.
“푸흡!”
강우는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뚝뚝 눈물을 흘리는 그녀의 모습이 더 없이 아름답게 느껴졌다.
“뭐, 뭐!! 왜, 왜 웃어 이 새끼야!!”
차연주가 발작을 일으키듯 외쳤다.
강우는 낄낄 웃으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미안하지만 슬슬 가봐야 해서, 왜 웃었는지는 나중에 얘기할게.”
마음 같아서는 조금 더 그녀와 함께 있고 싶지만, 차연주가 무대에서 열연을 하고 있을 동안 아이리스의 연락이 왔다.
자신이 그녀에게 부탁한 일을 생각하면 여기서 차연주와 함께 있을 시간은 많지 않았다.
그녀의 말마따나, 남은 시간은 고작 한 달에 불과했으니까.
“윽….”
차연주는 움찔 몸을 떨며 입술을 깨물었다.
짧은 키스의 여운이 아직 입술에 남아 있었다.
마치 꿈을 꾼 듯, 정신이 몽롱했다.
“그, 그래. 알았어.”
차연주는 강우의 시선을 피해 고개를 홱 돌렸다.
강우를 통해 한 달 후에 바알과의 결전이 이뤄질 거라는 것은 익히 들었다.
그리고 그로 인해 강우가 얼마나 정신없이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는지도.
“으….”
차연주는 뭔가 아쉽다는 듯, 채워지지 않았다는 듯 발끝으로 바닥을 비비적거렸다.
평소 즐겨 신었던 운동화와는 달리 살짝 굽이 들어간 구두가 눈에 들어왔다.
얼굴이 화끈거리며 귀까지 빨갛게 달아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내가 미쳤지 진짜.’
차연주는 두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휘휘 저었다.
자신에게 이런 옷차림이 어울리기나 하겠는가.
‘이런 건 설아나 리리스가 훨씬 더….’
생각을 이어갈수록 그녀의 표정이 어둡게 물들었다.
괜히 하지 않았던 짓을 했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아, 참.”
그때, 그녀에게서 멀어지던 강우가 슬쩍 고개를 돌렸다.
“옷, 잘 어울리더라.”
“무…!”
지나가는 듯 말한 강우는 가볍게 발을 박차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차연주는 다급히 몸을 돌렸지만, 이미 강우의 모습은 사라지고 난 뒤였다.
“이익! 뭐, 뭐라는 거야 이 개새끼가!”
괜히 성질을 내며 사라진 강우를 향해 저렴한 욕을 쏟아냈다.
“으….”
한창 욕을 이어가던 차연주는 우물쭈물 입술을 달싹이며 스커트 자락을 움켜쥐었다.
“…헤헤.”
환하게 올라간 입꼬리 사이로, 숨길 수 없는 웃음이 흘러나왔다.
* * *
“아, 가, 강우 님!”
에르노어 대륙으로 향하는 게이트.
그 게이트 앞에는 황금을 녹여 만든 듯한 금발을 지닌 여인이 강우를 기다리고 있었다.
강우를 발견한 아이리스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도도도, 달려왔다.
“오랜만이에요, 강우 님.”
“그래.”
강우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오랜만에 보는 기분이었지만, 사실 오늘 그가 만나려고 하는 이들은 아이리스보다도 더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이들이었다.
‘진짜 오래되긴 했네.’
기억을 되짚어도 가물가물했다.
“잠시만요. 조금만 기다리시면 이쪽으로 오실 거예요.”
아이리스가 몸을 돌리며 말했다.
강우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수 킬로 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게이트를 응시했다.
곧이어,
-파지지지직!
푸른 뇌전이 튀어올랐다.
“강우우우우우!!!”
푸른 머리칼의 소년이 게이트 밖으로 날아왔다.
등 뒤에 펼쳐진 날개가 힘차게 펄럭이고 있었다.
“우리엘.”
강우는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소년을 바라보며 픽 웃었다.
악의 성좌의 손에 산탄젤로가 궤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은 이후, 그 전후처리를 위해 에르노어 대륙에 두고 왔던 천사였다.
‘요놈도 오랜만에 보니 반갑네.’
다른 사람들에게는 건방진 꼬맹이일지 몰라도, 적어도 자신 앞에서는 한없이 얌전하지 않던가.
“흐아, 잘 지냈어? 얘기는 많이 들었어. 얼마 전에 외계의 존재가 습격했다며? 어디 다친 곳은 없어? 도와주러 오지 못해서 미안….”
“그만. 진정하세요, 우리엘.”
우리엘의 말을 자르며, 낮은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우리엘의 뒤편에서 미카엘이 천천히 걸어나왔다.
“오랜만입니다, 강우 씨.”
미카엘은 공손히 허리를 숙이며 인사했다.
그의 옆에는 짙은 술 냄새가 풍기는 여인이 실실 웃으며 머리를 쓸어올리고 있었다.
“아~따 즉당히 해라, 이 꼬맹아. 뭔 잃어버린 애인이라도 만났냐?”
“뭐?”
우리엘은 날카로운 눈으로 짙은 술 냄새가 풍기는 여인, 가브리엘을 노려보았다.
“이 주정뱅이가….”
“히히. 뭐, 하루이틀 보는 것도 아니고 왜 그래?”
“시끄러!”
우리엘과 가브리엘이 티격태격 거리기 시작했다.
“…하아.”
미카엘은 머리가 아프다는 듯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내 둘에게서 시선을 떼고는, 강우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아이리스 씨에게 얘기는 들었습니다, 강우 씨. 한 달 후에 악(惡)의 무리들이 지구를 습격한다고….”
“예.”
“전에는 도와드리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이제야 막 산탄젤로의 복구가 끝난 참이라서요.”
“괜찮습니다. 이번에 이렇게 흔쾌히 와주신 것만으로 감사드립니다.”
강우는 방긋 웃으며 미카엘이 내민 손을 잡았다.
‘올림푸스의 신과 계엄령, 그리고 천사.’
결전을 위해 준비한 조각들이 서서히 맞춰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