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yer Who Returned 10,000 Years Later RAW novel - Chapter (512)
만 년 만에 귀환한 플레이어 513화
개문(開門) (1)
“히히, 히히히.”
바알은 입가를 비틀어 올리며, 강우를 바라보았다.
검은 자위에 노란 눈동자.
가로로 찢어진 동공.
겉으로는 인간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마왕이 분노했을 때 나오는 특징들이었다.
“왜, 화났어? 응? 아끼던 부하를 잃어서 화난 거야?”
히히히.
바알은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즐겁다는 듯 어깨를 들썩였다.
마신을 잃고, 마해를 다룰 수 없게 됐을 때도 보여주지 않았던 마왕의 모습이 그를 기쁘게 만들었다.
“네가 이 정도로 발록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을 줄은 몰랐네.”
바알은 입술을 핥았다.
마왕이 자신의 부하를 아낀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던 사실이지만, 설마 이 정도로 ‘망가질’ 줄은 생각하지 못했다.
꼴사납게, 눈물을 보이며 바닥을 기어다닐 줄은 몰랐다.
“흐응.”
바알은 아쉽다는 듯, 콧소리를 내었다.
눈을 반짝이며 강우를 향해 목을 길게 내밀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 김시훈이라고 했던가? 걔도 죽이고 오는 건데.”
그랬다면 마왕이 어떤 표정을 지을지 상상하는 것만으로 아찔했다.
“…….”
강우는 굳게 입을 다물었다.
천천히 고개를 내려 발록의 시체를 내려다보았다.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른 분노가 몸을 잠식했다.
머리가 뜨겁다.
시야가 흔들린다.
당장이라도, 지금 당장이라도 바알을 향해 달려들고 싶었다.
“히히히히!! 화나지? 응? 화가 나서 참을 수 없지? 하지만….”
바알은 환하게 웃었다.
“너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주인을 잃어버린 꼭두각시 따위,
금이 간 그릇 따위,
아무리 분노한다고 해도 두렵지 않았다.
“그렇게 생각해?”
강우는 비틀, 비틀 휘청거리며 입을 열었다.
“내가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해?
“응?”
바알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가 기대했던 것보다, 그가 갈망했던 것보다 훨씬 침착한 목소리였다.
“화내지 않는 거야? 응?”
검은빛으로 변한 강우의 눈을 보고 당연히 분노에 미쳤을 거라 생각했다.
이성을 잃고, 울부짖으며 날뛰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왜 그렇게… 침착한 거야?”
바알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강우를 바라보았다.
강우는 그런 바알에게 짧게 답했다.
“화났어.”
더 없이 침착한 목소리로 말을 잇는다.
“너무 화나고, 화나고, 화나서.”
지금 당장에라도.
“미쳐 버릴 것 같아.”
“…….”
“그런데 말이야.”
강우는 차갑게 식은 눈으로 바알을 응시했다.
“인생은 드라마가 아니거든.”
만화도, 소설도 아니다.
분노에 미쳐 날뛴다고 해서, 모든 논리와 인과를 무시한 힘이 주어지지 않는다.
“현실은 그렇게 편하지 않지.”
동료를 잃은 분노에 괴성 몇 번 질러주면 알아서 각성해서 승리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그렇게 간단하고, 편리하게 승리해 오지 않았다.
처참하고, 비참하고, 처절하게.
모든 것을 내던지고, 바닥을 기고 기어서.
그는 승리했다.
그래야만 승리할 수 있었다.
“헤, 그래서 어쩔 생각인데?”
바알은 씩 웃었다.
마신이 자신에게 넘어온 그 순간, 사실상 이 전투의 승패는 결정지어졌다.
마신 없이는, 강우는 마해를 제어할 수 없다.
그에게는 감히 이 절망에 반항할 힘도 능력도 남아 있지 않았다.
“어떻게 해서 날 찢어죽일 생각이야?”
조롱하듯 묻는다.
“…….”
강우는 굳게 입을 다물었다.
시선을 옮겨, 자신의 왼쪽 가슴을 내려다본다.
그의 심장에 자리잡고 있는 마기의 바다.
그 마기의 바다는 열려 있는 두 개의 문을 통해 끊임없이 흘러넘치고 있었다.
“히히히! 어서 개문을 멈추지 않으면, 얼마 못 가서 완전히 마해에 잡아먹힐걸?”
바알 또한 그런 그의 상태를 잘 알고 있었다.
어깨를 들썩이며, 웃는다.
“아니, 차라리 마해에 잡아먹히는 건 어때?”
혀를 길게 내민다.
눈을 반짝이며 말을 잇는다.
“남아 있는 네 소중한 부하들을 네 손으로 직접 죽일 수 있게 말이야.”
키히히히히!
바알은 낄낄거리며 웃었다.
“자, 어서 문을 닫아야지? 응?”
강우는 차갑게 식은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안 닫아.”
“응?”
“닫지, 않는다고.”
강우는 비틀, 비틀 발걸음을 옮겼다.
발록이 자신에게 알려준, 깨닫게 해준 해야 할 일.
그만이 할 수 있는 일.
‘닫는 게 아니야.’
활짝 열린 두 개의 문을 닫고, 어떻게든 마기를 제어하기 위해 발버둥 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는 바알을 넘어설 방법이 없었다.
바알이 미쳤다면,
‘나는.’
더 미쳐야지만 그를 넘어설 수 있다.
“…뭐야.”
바알의 표정이 거칠게 일그러졌다.
‘문을 닫지 않는다고?’
마해를 가두고 있는 문을 닫지 않으면 그는 이대로 마해의 힘에 잠식되어 파멸하게 된다.
이성이 타들어 가고, 지성이 증발하게 된다.
마해의 침식을 막기 위해서는 문을 닫는 것 외에 다른 수는 없었다.
‘그런데.’
문을 닫지 않는다고?
“뭔 짓을, 하려고 하는 거야.”
등골을 타고 불길한 감각이 퍼진다.
“내가, 마해를 담기 위한 그릇이라고 했지?”
피식. 강우는 입가를 올렸다.
자신은 마해를 담기 위해서 만들어진 그릇이다.
그리고 지금 마신이 빠져나간 그릇은, 금이 간 채 부서지고 있었다.
서서히 망가지고 있었다.
“그렇다면.”
마해의 근원이라고 할 수 있는 마신이 사라진 상황에서,
더 이상 마해를 담기 위할 뿐인 ‘그릇’인 채로 남아 있을 수는 없었다.
“그릇으로 부족하다면.”
단순하게 마해를 담을 뿐인 그릇으로는 닿을 수 없다면.
그릇 자체를 박살내고.
산산이 으깨어, 부수어 버리고.
“마해를 집어삼켜야지.”
낄낄낄.
어깨를 들썩이며 웃었다.
“…뭐?”
바알의 눈이 떨렸다.
마해를 집어삼킨다니?
그 끝없는 마기의 바다를,
태초(太初)에 닿아 있는 어둠을 집어삼키다니?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바알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히, 히히!! 네가 뭔지 알고서 그딴 개소리를 지껄이는 거야?”
어처구니없다는 듯 웃었다.
“너는!”
까드득. 이를 갈며 외쳤다.
“더 이상 특별하지 않다고!!”
마신이 자신에게 온 이상,
그를 만들었고, 선택했던 존재가 사라진 이상.
그는 더 이상 특별한 존재가 아니었다.
그저 마해를 품고 있을 뿐인, 망가진 그릇에 불과했다.
“하아, 하아.”
그런데.
분명 그래야 하는데.
“뭐… 냐고.”
왜 이렇게도, 불길하단 말인가.
-막, 아라.
그때, 머릿속에 마신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의 목소리는 공포에 질린 듯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뭐?”
바알은 머릿속에 울려 퍼지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저 미친놈을 막으란 말이다!
처절함까지 느껴지는 절규.
바알의 표정이 거칠게 일그러졌다.
이제까지 무시하고 있던 마신의 외침이 머릿속을 쩌렁쩌렁 울렸다.
“뭔데, 대체.”
마해를 집어삼키겠다는 말도 되지 않는 헛소리에 바울리가 이렇게 반응하는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저, 저자는 심연(深淵)을 해방할 생각이다!
마신이 갇혀 있던 곳.
신화의 거인조차, 세계의 창조주라 할 수 있는 ‘티탄’조차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묶여 있던 곳.
마해의 가장 깊은 곳.
“…무슨, 말이야 그게.”
심연을 해방한다니.
바울리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되지 않았다.
마신의 다급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무… 문이 열릴 거다.
“…문?”
-‘세 번째’ 문이 열린단 말이다!!
머릿속에 울려 퍼지는 절규.
바알의 시선이 강우를 향했다.
“하아.”
강우는 깊게 숨을 들이쉬며, 지그시 눈을 감았다.
내면의 세계를 관조한다.
-콰과과과과과!!
활짝 열려 있는 두 개의 문.
두 개의 문틈으로 마기의 바다가 흘러넘치고 있었다.
하지만 흘러넘치는 것은 어디까지나 바다의 ‘표면’뿐.
마기의 바다의 가장 깊은 곳은 두 개의 문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었다.
마치,
무언가에 ‘막혀’있는 것처럼.
‘자.’
소용돌이 치듯 난폭한 마기의 바다를 걷는다.
강우는 고개를 내려 무저갱(無底坑)과 같은 어둠을 내려다보았다.
‘이걸 잡아먹기 위해서는.’
마기의 바다 안에 담긴 모든 것을 끄집어 낼 필요가 있었다.
심연(深淵)으로, 마신이 갇혔던 곳으로 직접 걸어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
강우는 소용돌이치는 마기의 바다를 가로질렀다.
마기의 바다를 가두고 있는 세 개의 문.
그중 세 번째 문이 보였다.
‘마해의 가장 깊은 곳을 가두고 있는 문.’
그 문을 향해, 손을 뻗었다.
“…….”
문고리를 향해 나아가던 그의 손이 멈췄다.
이제까지 그가 연 만마전의 문은 두 개.
이 문까지 열게 된다면, 돌이킬 수 없다.
다시는 만마전의 문을 닫을 수 없게 된다.
흘러넘치기 시작한 심연은 말 그대로 모든 것을 집어삼키고, 씹어먹을 것이다.
신화의 거인조차 꼼짝없이 붙잡혀 있던 그 심연을,
과연 자신이 감당할 수 있을까.
먹어치우고, 지배할 수 있을까.
“…….”
아득한 감각. 문을 향해 뻗는 손에 망설임이 섞였다.
지금 상황에서 문을 연다는 것은,
불이 붙은 몸에 일부러 기름을 들이붓는 것과 같은 정신 나간 짓이다.
만약 실패한다면.
오히려 그가 마해의 심연에 잡아먹힌다면.
그는,
모든 것을 잃게 될 것이다.
-딱, 딱, 딱.
이가 부딪힌다.
손끝이 떨렸다. 입술을 짓씹으며, 고개를 숙였다.
무겁다.
어깨를 짓누르는 무게가. 기대와 시선들이.
너무나도 무겁다고 느꼈다.
무겁고, 무겁고, 무거워서.
단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을 것만 같았다.
-똑같이, 하시면, 됩니다.
불현듯, 발록의 목소리가 머릿속을 울렸다.
-처음… 만났을 때, 말씀, 해주시지 않으셨습니까.
죽어가며 내뱉었던,
끊어질 듯 희미한 목소리.
“…지랄.”
강우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멈춰 있던 손을 뻗어,
세 번째 문의 문고리를 잡는다.
‘앞으로.’
더 높은 곳으로.
‘앞으로.’
더 아득한 곳으로.
‘앞으로.’
그 누구도 범접하지 못할 곳으로.
-끼익.
망설임 없이,
거대한 문을 잡아당긴다.
[초월격 신격의 모든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모든 레벨 제한이 해방됩니다.]눈앞에 떠오르는 푸른 창.
강우는 지그시 눈을 감았다.
머릿속으로 주문(呪文)이 흘러들어왔다.
바알과의 전투 전, 마치 깨진 것처럼 나타났던 그 주문들이었다.
‘그랬구나.’
애초에 그 주문들은 세 번째 문을 열 때 필요한 열쇠였다.
그렇기에,
당시 세 번째 문을 열 각오가 없었던 그에게는 깨진 것처럼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꾸르륵.”
질퍽이가 몸을 길게 늘어트려 강우의 몸을 휘감았다.
중지에 끼워져 있는 ‘마해의 열쇠’가 그의 왼쪽 가슴으로 움직이더니, 그대로 사라졌다.
-철컥, 철컥.
톱니바퀴가 맞물리는 듯한 소리.
만마전(萬魔殿)의 중심에 위치한 세 번째 문의 열쇠 구멍에 마해의 열쇠가 들어간다.
천천히, 천천히.
열쇠가 돌아간다.
강우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바알을 응시했다.
“멈, 춰…!”
바알이 다급히 외치며 그를 향해 달려들었다.
-화르르륵!
“크윽!”
검은빛과 황금빛이 뒤섞인 불꽃이 바알을 튕겨냈다.
강우의 몸을 둘러싼 불꽃이 점차 넓게 퍼져 나갔다.
그의 등 뒤로 검은 태양이 떠올랐다.
“아….”
바알의 눈이 부릅떠졌다.
검은 어둠과 황금빛이 뒤섞인, 검은 태양과도 같은 불꽃.
강우의 등 뒤에 펼쳐진 그 검은 태양은,
마치 거대한 ‘문’처럼 보였다.
-비틀, 비틀.
강우는 휘청거리며 발걸음을 옮겼다.
탐식의 불로 이루어진 ‘문’의 앞에 섰다.
그리고.
나지막이.
“나를 지나는 자.”
주문(呪文)을 입에 담는다.
“비탄의 도시로.”
화르르륵.
탐식의 불이 그의 몸을 휘감는다.
“나를 지나는 자.”
천천히 오른팔을 움직여, 왼쪽 가슴에 올린다.
“영원한 고통으로.”
검은 태양처럼 이글거리는 ‘문’ 너머로.
“나를 지나는 자.”
붉게 빛나는 눈들이 번뜩였다.
“망자의 땅으로.”
심연에 갇혀 있던, 집어 삼켜져 있던 아득한 악(惡)의 영혼들이.
지금 이 자리에서,
모두 해방된다.
“악의는 검은빛으로 바다를 물들여, 끝없는 욕망과 갈망과 갈증으로 나를 만들었다.”
나보다 앞서는 것은 영원한 것뿐이며 나 여기 영원히 서 있으리.
“이곳을 지나는 자.”
모든 희망을 버려라.
만마전(萬魔殿)
전문 개방(全門 開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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