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yer Who Returned 10,000 Years Later RAW novel - Chapter (518)
만 년 만에 귀환한 플레이어 519화
마해(魔海)의 왕 (1)
어두운 공간을 걷는다.
위도 아래도, 앞과 뒤도 존재하지 않는 공간.
그저 끝없는 어둠만이 펼쳐진 아득한 심연 속에서, 발걸음을 옮긴다.
“내, 이름은….”
조심스럽게 자신의 이름을 입에 담는다.
손을 들어 머리를 감싼다.
다행히, 처음 이 공간에 들어왔을 때보다는 의식이 남아 있었다.
고작해야 자신의 이름 하나 정도 기억할 수 있는 희미한 의식의 끈이었지만.
“이, 정도면… 충분, 해.”
더듬더듬 말을 이으며 씨익 입가를 올렸다.
이 정도면 충분했다. 차고 넘쳤다.
발걸음을 옮겨 끝없는 어둠을 나아갔다.
[크르르르르.]낮은 울음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천천히 돌렸다.
사람 정도는 가볍게 씹어 삼킬 수 있을 정도로 거대한 크기를 지닌 검은색 개였다.
‘헬 하운드.’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존재.
그가 처음 일천(一天)의 지옥에 떨어졌을 때 만났던 마물이었다.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라, 이건가.”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강우는 자신을 향해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고 있는 헬 하운드를 향해 망설임 없이 나아갔다.
처음 지옥으로 떨어졌을 때는 꼴사납게 도망쳤지만, 이제는 그에게서 도망칠 이유가 없었다.
포식자(捕食者)는 저 인외(人外)의 괴물이 아닌, 바로 자신이었으니까.
[크아아아아!]헬 하운드가 거친 포효를 터트리며 발을 박찼다.
빛 한점 존재하지 않는 어둠 속에서도 날카로운 이빨은 사납게 번뜩이고 있었다.
“흡!”
타닥, 탁!
강우는 스텝을 밟으며 몸을 움직였다.
마해의 심연 속, 의식으로 이루어진 공간에서 그는 수백에 달하는 권능을 사용할 수 없었다.
초월에 도달한 신격도, 혼돈을 태우며 타오르는 탐식의 불도 없다.
그에게 남아 있는 것은.
-콰드득!
[크허어엉!]헬 하운드의 공격을 피하며, 목덜미의 털을 붙잡고 등에 올라탄다.
크게 입을 벌려 헬 하운드의 살점을 씹었다.
[크르르르르!]하지만 그래봤자 한입 크기에 불과한 상처.
3미터에 달하는 헬 하운드의 크기를 생각하면 그 정도 상처는 가볍게 긁힌 상처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콰득, 콰득, 콰드드득.
헬 하운드의 몸에 찰싹 달라붙은 채, 계속해서 살점을 물어뜯었다.
포식의 권능이 발현되며 헬 하운드의 몸에 흐르고 있는 마기가 자신에게 흡수됐다.
정확하게 말하면 헬 하운드의 마기가 아닌, ‘마해(魔海)’ 자체에 흐르고 있는 마기였다.
“하아.”
달뜬 숨을 내쉰다.
곤죽이 된 헬 하운드의 시체를 밟았다.
고개를 들어 끝없이 펼쳐진 어둠을 올려다본다.
지금 그에게 남은 것은,
포식의 권능 하나뿐.
“뭐, 처음 구천지옥에 떨어졌을 때보다는 낫네.”
강우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헬 하운드 하나를 포식하고 나니, 아주 조금이지만 의식이 선명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고개를 내려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았다.
심장을 중심으로 해서 ‘담는’ 것만이 가능했던 마해의 마기가, 이제는 그의 몸 전체에 스며들어 섞이는 게 느껴졌다.
‘흡수할 수 있어.’
마해를, 그 아득하고 거대한 마기의 바다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었다.
“자, 그러면.”
강우는 입가를 비틀어 올리며 들어 올렸던 고개를 내렸다.
헬 하운드의 시체를 뒤로하고 몸을 돌렸다.
그의 앞에는, 그가 이제껏 잡아먹었던 마물과 악마들이 끝없이 늘어서 있었다.
세 번째 문을 개방한 순간 검은 태양 속에서 나타났던 심연의 군대.
자신의 명을 따라 바알을 공격했던 그들이, 이제는 자신의 의식을 찢어발기기 위해 도열해 있었다.
“하.”
실없는 웃음이 흘러나왔다.
아득하게 늘어져 있는 심연의 군대.
그들 사이에서 익숙한 얼굴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바알.”
[아, 아아. 오, 오강, 우.]바알은 반쯤 녹아내린 몰골로 바닥을 기며 그를 노려다보았다.
[주, 죽여, 죽여 버리, 겠….]저주가 담긴 말들을 내뱉는다.
강우는 환하게 웃었다.
“다행이네, 안 그래도 너무 허무하게 죽인 것 같아서 좀 아쉬웠는데 말이야.”
저벅, 저벅.
수백 만에 달하는 악(惡)의 군세 앞으로 망설임 없이 발걸음을 옮겼다.
[너, 너는….]바알은 증오가 가득 담긴 눈빛으로 그를 노려보았다.
[이, 곳에서, 빠져… 나갈, 수, 없어.]그는 세 번째 문을 열었다.
그릇을 부수고, 심연을 해방했다.
한 번 심연 속에 발을 담근 이는, 무슨 수를 써도 심연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
[여, 영원히. 나랑, 같이…. 이, 심연 속에서….]바알의 입가가 찢겨 올라갔다.
[망가져, 가는, 거야.]의식의 공간에서는 ‘죽음’이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다.
‘오강우’라는 개체의 자아가 심연 속에 녹아 사라질 때까지 싸움은 멈추지 않는다.
영겁의 지옥. 무한의 시간 속에서 망가지는 것 외에 다른 결말은 없으리라.
“글쎄.”
그 절망스럽기 짝이 없는 상황을 마주하면서도, 강우의 표정은 흔들리지 않았다.
“난 너 같은 애새끼랑은 별로 같이 있고 싶지 않은데 말이야.”
느긋한 목소리로 말한다.
[…….]바알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멍한 눈빛으로 강우를 바라보았다.
[어떻, 게… 그럴 수, 있는 거지?]이 정도의 절망을 마주하고도.
이 정도의 종말을 마주하고도.
어째서, 왜.
어딘가 겁에 질린 듯 느껴지는 목소리.
강우는 어깨를 으쓱이며 발걸음을 옮겼다.
오른발을 들어, 몸을 살짝 기울이며,
또다시,
한 걸음.
[까드득. 까득.]바알이 신경질적으로 이를 가는 것이 보였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소용, 없어.]심연에 잡아먹히고 나서야 깨달았다.
마해를 가진다는 것이, 태초의 어둠을 품는다는 것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일이었는지를.
[너는… 실패, 할 거다.]끝나지 않는 싸움이다.
끝날 리가 없는 전쟁이다.
“아니지.”
강우는 고개를 저었다.
“싸움이 아냐.”
그가 하려는 것은, 그가 해야 하는 것은,
저 수백 만에 달하는 악마들과의 치열하고 장렬한 전투가 아니다.
“먹잇감을 잡아먹는데 싸움이라는 표현은 안 쓰잖아?”
지금 이 상황에 어울리는 표현은,
“자.”
싸움도, 전쟁도 아니다.
“만찬의 시간이다.”
강우는 양팔을 활짝 벌리며, 심연의 군대를 향해 달려들었다.
* * *
-우득, 우득.
날카로운 이빨에 살점이 짓이겨진다.
근육이 잘려나가고, 뼈가 으스러진다.
-우드득, 까득.
얼마나 이곳에 있었던 걸까?
끝나지 않는 어둠을, 하나하나 씹어 삼켜 뱃속으로 밀어 넣으며.
얼마나 오랜 시간이 흐른 걸까?
기억나지 않는다.
머릿속으로 센 햇수가 십오 년을 넘겼을 때부터, 더 이상 햇수를 세는 것은 포기했다.
시간을 세는 것을 포기한 것은 굉장히 오래전 일이다.
어쩌면 지금은 백 년, 천 년이 흘렀을 수도 있다.
‘아니.’
어쩌면.
만 년이.
그가 처음 구천지옥으로 떨어져, 마왕이 되기까지 걸렸던 시간보다도 더 오랜 시간이 흘렀을 수도 있다.
‘의식의 공간이라서…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만약 시간의 개념이 다른 곳이 아니었다면, 이곳에서 빠져나간다고 하더라도 그가 알던 지구의 모습은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우적, 까드득.
계속해서 시간은 흘렀다.
앞으로 나아가는 발걸음이, 살점을 씹어 삼키는 이빨이 덜덜 떨렸다.
그렇게 오랜 시간을, 억겁처럼 느껴지는 시간이 흘러도.
“…….”
눈앞에 펼쳐진 끝없는 어둠은 그대로였다.
“하아, 하아.”
거친 숨이 흘러나왔다.
결코 흔들리지 않을 것 같았던 그의 의지도, 이제는 그 한계에 다다랐다.
과연 끝나기나 할까?
아니, 애초에 끝이라는 게 있긴 한 걸까?
“아, 으.”
아무리, 잡아먹어도.
먹고, 먹고, 먹고, 먹고, 먹고, 먹고, 먹고, 먹고, 먹고, 먹고, 먹고, 먹어치워도.
어둠은 끝나지 않는다.
마기의 바다는 사라지지 않는다.
‘미친 짓이야.’
바닷물을 모두 마셔서 사라지게 만들겠다는 것과 같은 짓이다.
바알의 말이 옳았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소용없었다.
자신은,
이 끝없는 어둠 속에서 빠져나갈 수 없다.
“…….”
비틀.
몸이 휘청거렸다.
무릎이 꿇렸다.
[크르르르르르!]심연의 군세가 그를 향해 달려들었다.
“…….”
더 이상 그들을 잡아먹을 힘도, 의지도 남아 있지 않았다.
‘포기하자.’
이 정도면 오래 버텼잖아?
천 년? 아니 만 년을 넘도록 여기서 버텼잖아.
‘더 이상은… 무리야.’
이 아득한 어둠을, 끝없는 바다를 먹어치워서 자신의 것으로 만들겠다는 말이, 얼마나 오만하기 짝이 없던 말이었던가.
“나는….”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악(惡)의 군세를 바라보며, 몸에 힘을 풀었다.
-콰드득!
날카로운 이빨이, 손톱이 몸을 찢어발기는 것이 느껴졌다.
‘그래 이대로.’
포기,
하,
면.
“…….”
까드득.
사납게 이를 갈았다.
-조금만 기다려.
이제는 기억조차 나지 않는, 아득한 과거의 일.
심연 속으로 들어오기 전에 자신의 입으로 내뱉었던 말들.
-이기고 돌아올 테니까.
그 말들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낙인처럼 새겨진다.
“씨, 발.”
거친 욕설을 내뱉었다.
콰드득!
자신의 몸을 씹어 삼키는 악마의 뿔을 잡아, 그대로 뽑아버렸다.
크게 입을 벌려 악마의 몸을 물어뜯었다.
‘아직.’
움직일 수 있다.
‘아직.’
일어설 수 있다.
‘아직.’
나아갈 수 있다.
“나는….”
모든 악마(惡魔)의 왕이자,
모든 포식자(捕食者)의 포식자이며,
“마왕, 이다.”
마해(魔海)의 왕이다.
-쿠드드드득!!
심연이 요동쳤다.
[아, 아아.] [사, 살려, 살려 줘.]다른 점이 하나 생겼다.
그를 향해 달려들던 심연의 군세들이 ‘공포’를 느끼기 시작했다.
아니, 어쩌면 ‘마해’ 자체가 그에게 공포를 느끼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자… 다시, 시작하, 자.”
몸을 일으키며 환하게 웃었다.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도망치는 심연의 군세를 향해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또다시 억겁(億劫)의 시간이 흘렀다.
* * *
-화르르륵.
풀 한 포기조차 남지 않은 황량한 대지 위에,
검은 태양이 이글거리며 타오르고 있었다.
“…….”
검은 머리칼에 온화한 인상을 지닌 여인이 하늘에서 타오르는 검은 태양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3년 전.
바알의 군세의 전쟁 이후, 서울은 풀 한 포기 남지 않은 황량한 대지로 변해버렸다.
전쟁이 끝난 이후 에르노어 대륙에서 다시 넘어온 서울 시민들은 가디언즈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부산, 광주, 울산 등 다른 도시로 이주하거나 해외에 정착했다.
아니, 굳이 졸지에 집이 사라지게 된 서울 시민 말고도 많은 사람들이 남쪽으로 이주했다.
비단 부산이 한국의 새로운 수도가 되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강우 씨.”
검은 머리칼의 여인은 아련한 목소리로 그 이름을 입에 담았다.
서울 상공에서 타오르고 있는 검은 태양.
많은 사람들이 저 불길한 태양을 피하고자 남쪽으로 이주했지만, 그녀만큼은 이 황량한 대지 근처에서 살아가고 있었다.
한 사람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오늘도 여기 있네.”
저벅, 저벅.
검은 태양을 올려다보며 하염없이 앉아 있는 그녀를 향해, 붉은 머리칼의 여인이 다가왔다.
“아, 연주 왔구나.”
“응. 이번에 길드 일이 좀 있어서 며칠 부산에 있었어.”
차연주는 손에 든 봉투를 내밀었다.
“맥주 좀 사 왔어.”
“…괜찮아.”
“괜찮긴 뭐가. 너 3년 내내 제대로 먹지도 않고 매일 같이 여기 오잖아.”
그녀의 말에 한설아는 씁쓸한 미소를 머금었다.
“이제 굳이 뭔가를 먹을 필요는 없는걸.”
그녀의 신체는 이제 인간보다는 천사에 가까워져 있었다.
제대로 챙겨 먹을 이유 자체가 없었다.
“그래도 맛은 느낄 수 있잖아.”
“그건 그렇지만….”
“그러면 마셔. 치킨도 사왔으니까.”
차연주는 그렇게 말하며 한설아의 옆에 털썩 앉았다.
이제는 어깨를 지나 허리 근처까지 오게 된 붉은 머리칼이 찰랑거렸다.
“…어때?”
그녀는 검은 태양을 올려다보며 물었다.
그 물음이 누구를 향하는 물음인지는, 굳이 물어볼 필요도 없었다.
“…….”
한설아는 무겁게 가라앉은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3년 전.
강우가 저 검은 태양 속으로 빨려 들어간 이후 서울 상공에서 타오르고 있는 검은 태양에 무슨 변화가 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하아. 김시훈 그 자식이 저 안으로 뛰어들려는 거 막는 것도 이제 슬슬 한계인데….”
차연주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그때였다.
-화르르르륵!
“…어?”
차연주의 눈이 동그랗게 뜨였다.
“저거… 지금 좀 작아진 것 같지 않아?”
검은 태양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작아… 졌다고?”
한설아는 다급히 고개를 돌려 검은 태양을 올려다보았다.
차연주의 말마따나, 검은 태양의 크기가 줄어들어 있었다.
아니.
“어…? 어, 어어!!”
지금, 이 순간에도, 엄청난 속도로 작아지고 있었다.
“뭐, 뭐야!! 뭔 일인데!!”
차연주는 당황에 찬 표정으로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아.”
검은 태양을 올려보던 한설아는 가늘게 몸을 떨었다.
줄어들고 있는 검은 태양 속,
누군가가 빠져나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아니, 빠져나온다는 것은 표현은 적합하지 않았다.
검은 태양이 누군가에게 ‘흡수’되고 있었다.
“강우, 씨….”
투명한 눈물이 그녀의 눈가에 맺혔다.
그녀는 두 손을 모은 채, 몇 번이고 검은 태양의 중심에 있는 사람을 올려다보았다.
-화르르르르륵!
검은 태양이 완전히 흡수되어 사라졌다.
그 속에서,
그녀가 그토록 그리워했던, 갈망하고 갈망했던 존재가 걸어 나왔다.
“돌아… 오셨군요.”
한설아의 뺨을 타고 눈물이 흘렀다.
“응. 돌아왔어.”
강우는 한설아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결혼합시다.”
“…….”
“아이는 셋 정도가 좋을 것 같아요.”
한설아를 향해 손을 내밀며 환하게 웃었다.
“…예.”
한설아는 뚝뚝 눈물을 흘리며 강우의 몸을 끌어안았다.
“…….”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차연주는,
“…지랄 염병하고 있네, 씨발.”
카악, 퉤.
두 사람을 향해 중지를 치켜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