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yer Who Returned 10,000 Years Later RAW novel - Chapter (636)
만 년 만에 귀환한 플레이어 외전 117화
Endless Eight (3)
“우응… 알았어. 나중에 얘기할게.”
에키드나가 풀이 죽은 표정으로 방 밖으로 나갔다.
“하아.”
홀로 남은 강우의 입에서 깊은 한숨이 흘러나왔다.
눈썹을 일그러트리며 머리칼을 쓸어올렸다.
‘찾을 방법이 없어.’
누가, 어디서, 어떻게 8일을 반복시키고 있는 건지 알 방법이 없었다.
그나마 짐작이 가능한 것은 티탄이 관련되었다는 것뿐.
애초에 티탄의 힘을 추적할 방법이 없는 이상 누가 이런 짓을 벌이고 있는지 찾을 수가 없었다.
“이브, 티탄의 율법을 통해서도 추적이 안 돼?”
[예…. 애초에 수호자님이 말씀해주시기 전까지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도 몰랐으니까요.]눈앞에 떠오른 푸른 메시지창에 한층 더 답답함이 밀려왔다.
“근데 왜… 나만 기억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거지?”
[아, 그건 알 것 같아요.]“뭔데?”
[제 생각이지만 수호자님이 지니신 힘이 티탄의 영역 밖에 존재하기 때문에 그 영향을 벗어나신 것 같아요.]즉, 마해(魔海)의 힘이 시간을 되돌리는 힘을 초월하기에 자신만 기억이 온전하게 남아 있다는 것.
‘그래, 그건 이해할 수 있어.’
문제는 그걸 알았다고 해도 해결되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
[짐작 가시는 게 아예 없으신가요?]“짐작이라.”
강우는 지그시 눈을 감은 채 생각을 이어갔다.
무슨 수로 이런 짓을 했는지는 모르지만, ‘누가’ 이런 짓을 했는지는 대충 짐작이 갔다.
“아카르트.”
[이게 아카르트의 짓이라고요?]“확실하진 않아.”
단정 짓기에는 증거가 너무 부족하다.
하지만 지금 일어나는 현상 자체만 보면 아카르트가 개입했을 가능성이 컸다.
‘아카르트는 언제나 나를 노리고 움직이지 않았어.’
이제까지 아카르트의 추종자들은 모두 자신을 노린 것이 아닌, 지구에 살고 있는 ‘모든 생명체’를 노리고 움직였다.
싱가포르의 좀비 사태도, 광명교의 광신도들도 똑같았다.
그들은 특정한 개인이 아닌 다수의 사람들을 최대한 사건에 휘말리게 만들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일은 지구에 사는 모든 생명체를 휘말리게 만드는 일이지.’
무슨 이유에서 이런 짓을 벌이는 건지, 대체 무슨 수로 노스트리안도 불가능하다는 일을 할 수 있었던 건지 알 수 없었지만.
어쨌든 이 정도 스케일의 일을 벌일만한 놈은 아카르트 외에는 생각나지 않았다.
시기적으로 봐도 슬슬 아카르트가 움직임을 보일 타이밍이었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하죠?]“몰라.”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진짜 아카르트가 벌인 일인지 아닌지도 확실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아니, 애초에 아카르트가 벌인 일이 맞다고 해도 그 방법을 모르는 이상 해결할 수가 없었다.
‘추종자든 아카르트 본인이든 지구에 있긴 할 텐데.’
지구 밖에서 원거리로 이런 짓을 벌일 수 있다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분명 시간을 되돌리는 존재는 지구에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디 있는지 찾을 수가 있어야지.”
티탄의 힘은 추적이 불가능하다.
호로스에게 천리안이라는 능력이 있긴 하지만, 아무리 수십, 수백 킬로미터 거리를 볼 수 있다고 해도 지구 전체를 뒤지는 건 불가능하다.
설사 찾는다고 해도 누가 아카르트의 추종자인지 구별할 수 있는 방법도 없다.
“제기랄.”
팔짱을 낀 채 나지막이 욕설을 내뱉었다.
어제처럼 막무가내로 돌아다닌다고 해도 범인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이쪽으로 불러들일 수 있는 방법이 필요한데.’
고민을 이어갔지만 마땅한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다.
‘차라리 좀비 사태나 광명교 사태처럼 눈에 띄는 짓을 해주면 좋은데.’
이번은 그때와는 달리 애초에 ‘이변’이 일어났다는 사실 자체를 인지하고 있는 존재가 자신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하아.”
깊은 한숨이 흘러나왔다. 답 없는 고민을 이어가다 보니 어느새 날이 저물었다.
“강우 씨~ 저녁 식사하세요~”
방 밖에서 한설아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아니, 괜찮아. 오늘은 안 먹을게.”
“네, 네? 무, 무슨 일이라도 있으신 건가요?”
“뭐야? 네가 웬일로 저녁을 거르냐?”
한설아를 따라 들어온 차연주가 방문 틈으로 고개를 빼꼼 내밀며 물었다.
“…….”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해 설명을 해줄까 잠시 고민했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말해봤자 해결할 방법을 모르는 이상 의미가 없어.’
적어도 실마리가 보이기 전까지는 말하지 않는 게 좋다.
“입맛이 없… 아니, 그냥 먹을게.”
저녁을 거르고 고민을 이어가려 했지만, 생각해보니 여기서 더 고민을 해봤자 딱히 마땅한 답이 나올 것 같지도 않았다.
그냥 한설아가 차려준 맛있는 밥이라도 먹으며 답답한 머릿속을 조금이라도 풀어주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뭐야 또. 사람 걱정되게 쓰리.”
“흐흐. 이런 날도 있는 거지.”
“꼴깝 떨지 말고 와서 먹어.”
“그랴.”
차연주의 구박을 받으며 식탁에 앉았다.
원래라면 내일 약혼식에 대해 얘기를 했겠지만, 어차피 몇 시간 후면 하루가 리셋되기에 말할 기분도 들지 않았다.
“웬일로 오버를 안 떨면서 먹네. 역시 뭔 일 있는 거 아냐?”
차연주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아니, 딱히 아무 일도 없다니깐.”
대답을 회피하며 고개를 돌렸다.
차연주가 밥 먹기 전에 켜둔 TV에는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부산 서면에서 여대생 이모씨(22)가 실종되었습니다. 경찰은 이모씨가 사는 지역 주변의 게이트에서 몬스터가 나오지 않았는지 조사 중에 있습니다.] [오늘 예정되어 있던 한우리 길드의 S급 게이트 공략이 취소되었습니다. 한우리 길드 측 발표에 의하면 길드의 핵심 전력인 오정현 플레이어와 김춘봉 플레이어가 갑작스럽게 연락을 두절하고 사라진 것이 이번 S급 게이트 공략이 취소된 가장 큰 원인이라 밝혔습니다.]“오늘따라 유독 실종 사건이 많네.”
밥을 먹던 도중 차연주가 지나가듯 말했다.
“…잠깐.”
탁.
강우는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저번에도 저런 뉴스가 나왔었나?’
아직 8일이 반복되기 전의 기억을 떠올렸다.
‘아냐.’
약혼식 얘기에 정신이 팔려 TV를 제대로 보지는 않았지만, 지금 뉴스와 그때 뉴스가 다르다는 것은 확실히 기억하고 있었다.
‘한우리 길드는 분명 S급 게이트 공략에 성공했다 발표했어.’
그런데 지금은 공략 성공은커녕 공략 계획 자체가 취소되어버렸다.
길드의 핵심 전력이 두 플레이어의 ‘실종’으로 인해.
“아.”
그때, 강우의 머릿속에 무언가 번뜩이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짜릿한 전율이 등골을 타고 전신에 퍼졌다.
주변의 시선이 그에게 집중됐다.
“푸핫!! 하하하하!! 그래, 그랬던 거구만!”
“뭐가 그랬다는 거야?”
“강우 씨?”
고개를 갸웃거리며 자신을 바라보는 연인들을 뒤로하고 몸을 일으켰다.
“잠깐 나갔다 올게.”
“갑자기 뭔데? 진짜 왜 그러는데 오늘?”
“아니, 별거 아냐.”
씨익.
강우는 입가를 비틀어 올렸다.
그렇다.
정말 ‘별거 아닌’ 일이었다.
완벽한 줄 알았던 함정은, 구멍이 숭숭 뚫린 조악한 그물에 불과했다.
“허점을 찾았거든.”
“허점…?”
의문에 찬 표정을 짓고 있는 차연주를 뒤로 한 채 강우는 집 밖으로 나왔다.
“일단 확인부터 해봐야지.”
허점을 찾아낸 게 확실한지 제대로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면.”
강우는 천공의 권능을 사용해 날아올랐다.
그가 향한 곳은 악질 범죄 플레이어들을 모아 가둬두는 플레이어 전용 수용소였다.
‘기왕 시험할 거라면 얘들을 쓰는 게 낫지.’
가디언즈의 권한으로 가볍게 수용소에 들어온 강우는 이미 사형 판결이 결정 난 플레이어를 찾아갔다.
“그나저나 요즘 그래도 세상이 참 좋아졌죠. 예전과 다르게 이런 쓰레기 같은 놈들을 처벌할 수 있게 됐으니까요.”
강우를 안내해 준 교도관이 털털하게 웃으며 말했다.
한국은 대격변 이후 급상승하는 범죄율을 막기 위해 사형 제도를 부활시켰다.
비단 한국만의 일이 아니라 세계적으로 이제 악질 범죄자는 가차 없이 사형을 집행했다.
“그런데 가디언즈 소속 플레이어분이 여긴 무슨 일이십니까? 혹시 잡혀 온 범죄자 중에 조사가 필요한 플레이어가 있습니까?”
“그런 건 아닙니다.”
수다스럽게 묻는 교도관에게 대충 대답했다.
교도관이 안내해 준 곳을 따라 들어가니 방호 결계가 쳐진 독방 안에 험악한 인상의 청년이 갇혀 있는 것이 보였다.
청년의 발목에는 마력을 억제하는 구속구가 달려 있었다.
“자, 저기 일주일 후에 사형 집행이 확정된 홍승현이라는 놈입니다.”
“무슨 죄목으로 사형 판결을 받은 겁니까?”
“에이, 말도 마십시오. 저 자식은 인간의 탈을 쓴 악마입니다.”
교도관은 역겹다는 듯 경멸에 찬 눈으로 홍승현을 노려보았다.
“미성년자에게 억지로 손을 댄 녀석입니다. 그것도 플레이어의 힘을 이용해서요.”
“그렇군요.”
그렇다면 딱히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저놈은 왜 보시려… 자, 잠깐!”
콰드드드득!!
강우는 그대로 손을 뻗어 독방의 문을 잡아 뜯었다.
“이게 무슨 짓입니까?!!”
교도관이 무기를 꺼내며 다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강우는 태연한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였다.
“일주일 후에 갈 놈 지금 미리 보내주려고.”
성큼성큼 독방 안으로 걸어 들어가며 손을 뻗었다.
“다, 당신 누구야!! 누군데… 커헉!!”
기겁한 표정으로 뒷걸음질 치는 홍승현의 가슴을 짓밟았다.
망치로 후려친 듯 가슴이 움푹 들어가며 홍승현의 심장이 터졌다.
-삐이이이익!!
“비, 비상!!! 비상!!! 여기는 섹터 28-C!! 살인사건이 발생했다!! 지원을 요청한다!!”
당연한 얘기지만, 일주일 후에 사형 집행이 결정되어 있다고 해서 아무런 절차도 없이 사형수를 죽여서는 안 된다.
설사 그것이 가디언즈의 플레이어라 하더라도.
교도관은 무전기를 들어 다급히 지원을 요청했다.
-쿵! 쿠웅!
1분도 채 지나지 않아 수십 명의 교도관이 강우를 둘러쌌다.
“비켜.”
굳이 이들을 상대할 시간은 없었다.
“하압!!”
“저 자식 잡앗!!!”
수십 명의 교도관이 무기를 꺼내 들고 달려들었지만 강우는 신경조차 쓰지 않고 그들 사이를 뚫고 태연히 걸어갔다.
-퍼억! 뻑!
“아악!!”
“내 소오오온!!”
오히려 강우에게 무기를 휘두르던 교도관들이 손목을 부여잡으며 바닥에 나뒹굴었다.
“어디 보자.”
교도관들을 정면에서 뚫으며 밖으로 나온 강우는 스마트폰을 들어 시간을 확인했다.
[11월 8일 오후 9시 27분]“아직 좀 시간이 많이 남았네.”
강우는 천공의 권능을 써서 날아올라 집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자신을 기다리고 있던 차연주와 한설아, 리리스를 아무 일도 아니라고 안심시켜 주며 밤을 보냈다.
그리고.
[11월 9일 오전 7시 59분.]“임자. 조금만 참아.”
“예? 무슨 말씀이에요?”
“약혼식. 곧 할 수 있을 거야.”
“야, 약혼식이요?! 가, 갑자기 무슨….”
당황하며 뒷걸음질 치는 한설아의 모습이 흐릿하게 변했다.
“크윽.”
의식이 검게 점멸하며 구역질이 치밀어 올랐다.
그리고,
[11월 8일 오전 8시 00분.]-콰앙!
“흐응! 강우우우우!! 일어나 봐!!”
네 번째 8일이 시작됐다.
강우는 에키드나가 달려들어 점프하기 전에 먼저 일어나 그녀의 겨드랑이 사이에 손을 넣고 가볍게 들어 올렸다.
“내일 웨딩드레스 오지? 끄응, 약혼식에서 임자한테 무슨 선물을 줘야 할지 고민이네.”
“으, 응?”
에키드나가 동그랗게 눈을 떴다.
“그건 어, 어떻게 알았….”
당황하는 에키드나의 표정을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에키드나의 흑갈색 머리를 가볍게 헝클어트린 후 그녀를 지나쳐 방문을 열었다.
“나 잠깐 나갔다 올게.”
“가, 강우? 어디가? 아니 그보다 어떻게 웨딩드레스가 오는지 알….”
“저녁은 아마 못 먹을 거야.”
어리둥절해 하는 에키드나를 뒤로 한 채 집 밖으로 나갔다.
밖으로 나오자마자 강우는 어젯밤 향했던 플레이어 전용 수용소로 향했다.
그곳에는─
“홍승현이 탈옥했다!!!”
“이 자식 대체 어디로 튄 거야?!”
사라진 홍승현을 찾아 교도관들이 분주하게 뛰어다니는 모습이 보였다.
“역시.”
수용소에서 벌어진 소란을 내려다보며 강우는 씨익 입꼬리를 비틀어 올렸다.
‘이브는 노스트리안이라도 지구 전체의 시간을 되돌릴 순 없다고 했지.’
시간의 티탄조차 불가능한 현상이 실제로 일어났다.
그게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은, 생각해보면 지극히 단순한 이유였다.
‘애초에 완벽하게 시간을 되돌린 게 아니었으니까.’
혼란에 휩싸인 수용소를 내려다보며 낄낄 웃음을 터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