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yer Who Returned 10,000 Years Later RAW novel - Chapter (657)
만 년 만에 귀환한 플레이어 외전 138화
천년 전쟁 (11)
[━왕이 되겠다고?]사탄은 헛웃음을 흘렸다.
구천지옥의 왕이 된다는 것은, 지금 이 자리에 모인 대공들을 모조리 굴복시키겠다는 의미였다.
아니, 이 자리에 모인 대공만이 아니다.
아스모데우스, 레비아탄. 그리고 바알.
색욕과 질투의 대공을 넘어, 지금 현재 가장 ‘왕’에 가까운 대공인 바알까지 무릎 꿇게 만들겠다는 뜻이었다.
[재미있는 소리를 지껄이는군.]조롱의 미소를 입에 담았다.
물론, 대공들이 강우에게 거는 기대는 컸다.
다른 누구도 아닌 ‘바알’의 행보와 가장 흡사한 행보를 걷고 있는 존재가 바로 그였으니까.
그렇기 때문에 미리 그를 굴복시키고, 권속으로 들이기 위해 넷이나 되는 대공이 한자리에 모이게 된 것이다.
하지만.
[마왕이란 칭호는 그리 쉽게 입에 담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인간.]그 바알조차 아직 왕이라 불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대악마급에도 미치지 못하는 인간 나부랭이가 왕이 되겠다니?
헛웃음조차 나오지 않는 소리였다.
“글, 쎄.”
당장이라도 끊어질 것처럼 희미한 목소리.
“그건… 나중이 되면 알 수 있겠지.”
지그시 눈을 감은 채, 몸속에 끓어 넘치는 마기를 느꼈다.
마기의 바다를 가두고 있는 세 개의 문 중에 두 개의 문을 열었다.
이제껏 억누르고 있던 마기들이 일제히 해방되어, 미친 듯이 전신을 누볐다.
‘시간이… 없, 어.’
이 상태를 오래 유지하지 못하리란 것을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하아, 하아.”
거친 숨을 내쉬며, 위태롭게 발걸음을 옮겼다.
휘청.
사탄을 향해 걸어가던 도중 시야가 크게 흔들렸다.
“쿨럭.”
작은 기침을 토했다.
입술 사이로 검은 점액질이 쏟아져 흘러내렸다.
“아, 으.”
딱딱딱. 이가 부딪혔다.
아니, 부딪힌다는 생각만 들었을 뿐이다.
이미 그의 치아는 모조리 녹아내려, 검은 점액질로 변해 있었다.
치아만이 아니다.
피부가, 근육이, 뼈가, 내장이.
모두 마기의 바다에서 범람한 끈적한 어둠에 잠식되어가고 있었다.
점액질로 변해 버린 육체에는 아무런 고통도, 감각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한없이.
어두웠다.
‘떨어진다.’
바닥없는 무저갱으로.
가장 깊고 어두운 심연 속으로.
가라앉는다.
-풀썩.
무릎을 꿇은 채 주저앉았다.
서 있을 힘도, 정신도 남아 있지 않았다.
“카학, 칵, 카흑!!”
거품을 쏟아내며 몸을 비틀었다.
머리칼을 쥐어뜯으며 신음을 흘렸다.
의식이 타들어 가듯 빠르게 사라져가고 있었다.
“아, 으.”
검게 점멸하는 의식 속에서, 더듬더듬 손을 뻗어 바닥을 기었다.
손가락 사이에 얽혀드는 끈적한 무언가.
고개를 내리니 잘게 썰린 연녹색 촉수가 손가락 사이에 얽혀 있는 것이 보였다.
“…….”
까드득.
흐릿해져 가는 의식을 필사적으로 붙들었다.
이렇게 허망하게 마기의 바다에 의식을 잠식당할 수는 없었다.
아직.
그에겐 해야 할 일이 남아 있었으니까.
“그, 래.”
덜덜 떨리는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대부분의 육체가 이미 검은 점액질로 변했지만, 아직 변하지 않은 한 곳이 있었다.
입가를 비틀어 올리며 광대뼈를 더듬었다.
광대뼈 위에 물컹한 감촉을 손가락으로 찔렀다.
‘안구.’
아직 두 눈알만큼은,
검은 점액질로 변하지 않았다.
“아, 으. 아아아아!!!”
눈알에 억지로 손가락을 찔러 넣어 헤집는다.
휘젓고, 짓뭉개고, 긁어낸다.
끔찍한 격통이 벼락처럼 그의 몸을 뒤흔들었다.
잠에서 깨어나듯.
흐릿해져 가던 의식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 * *
“무슨 짓을 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제대로 힘을 다루지 못하는 것 같군.”
유심히 강우를 살피던 루시퍼가 날카롭게 눈을 빛냈다.
그의 말마따나, 지금 강우는 제대로 힘을 다루기는커녕 마기의 격류 속에서 어떻게든 의식을 붙들고 늘어지며 발버둥 치고 있었다.
“호오, 듣고 보니 그렇군.”
“푸히히힛!! 이런 정신 나간 양의 마기를 한 인간이 지니고 있다니!!! 대단해!!! 아주 대단해!! 처음에 실망했었는데 이런 힘을 감추고 있었군!!”
강우가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자마자 잔뜩 경계하고 있던 대공들은 탐욕스러운 눈빛으로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아득한 마기를 바라보았다.
마기의 바다.
그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끝없는 마기의 격류가 강우를 중심으로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푸힛! 푸히힛!! 저, 저 마기만 얻을 수 있다면…!”
마몬은 뒤룩뒤룩 살찐 뺨을 떨어대며 웃음을 터뜨렸다.
침이 줄줄 흐르는 혀를 길게 내민 채, 탐욕스럽게 입술을 핥았다.
“추잡 떨지 마라, 마몬.”
루시퍼는 여덟 장의 날개를 활짝 펼치며 오만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저, 마기는 바로 이 루시퍼 님의 것이다.”
달뜬 숨을 간신히 고르며 당장이라도 튀어 나갈 듯 날개를 펄럭였다.
“흐흐, 그렇게 둘 수는 없지.”
벨페고르가 휠체어를 끌며 루시퍼의 앞을 막아섰다.
“…벨페고르.”
루시퍼는 서릿발처럼 차가운 눈으로 벨페고르를 노려보았다.
“오우, 이거 아주 눈빛만으로 대공 하나 죽이겠어?”
벨페고르는 능청스럽게 어깨를 으쓱이며 입가를 비틀어 올렸다.
“루시퍼. 잊지 않았겠지? 여기 너 혼자만 있는 게 아니란 걸 말이야.”
“…….”
루시퍼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눈살을 찌푸렸다.
아득한 마기에 잠시 눈이 멀었지만, 지금 이곳에는 그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탐스러운 과실을 나눠 먹어야 할 경쟁자가 함께 있는 것이다.
“쯧.”
루시퍼는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푸히힛! 자… 이제 어떻게 할까?”
마몬은 탐욕으로 눈을 번들거리며 루시퍼와 사탄을 돌아보았다.
[…잠깐, 기다려라.]강우랑 가장 가까운 위치에 있던 사탄이 팔을 들어 올렸다.
“뭐냐, 사탄?”
“푸히힛! 설마 여기서 저 인간을 독차지하겠다는 헛소리를 하진 않겠지?”
[아니, 그런 게 아니다.]사탄은 가늘게 눈을 뜬 채 비틀거리고 있는 강우를 살폈다.
‘…뭐지?’
뭔가 이상하다.
본능이, 전신의 감각이, 아득한 세월 쌓여온 직감이.
울부짖고 있었다.
지금 당장,
‘도망’치라고.
“아, 으.”
비틀, 비틀.
바닥에 쓰러져 몸부림치고 있던 인간이 몸을 일으켰다.
두 눈두덩이 퀭하게 빈 인간은 툭 치면 그대로 쓰러져 죽어버릴 것처럼 나약하고, 위태로워 보였다.
자신의 마기를 감당하지 못한 채 의식이 집어 삼켜져 죽어가고 있는 인간.
아무리 막대한 마기를 지녔다고 해도 그 힘을 전혀 다루지 못하는 이상 두려움을 느낄 이유는 없었다.
‘분명 그러할 진데.’
어째서 이렇게.
어째서 이토록.
지금 당장 도망치라는 본능의 울부짖음이 사라지지 않는단 말인가.
-찔꺼억.
검은 점액질이 뭉친다.
꾸물거리며, 꿀렁거리며.
한곳에 모여든다.
퀭하니 비어있는 인간의 눈두덩으로.
[저건….]가늘게 눈을 뜬 채 변화를 유심히 관찰했다.
검은 점액질로 채워진 인간의 눈두덩.
그 속에서 무언가 꾸물거리며 움직인다.
-찌익.
검은 점액질이 갈라지며 노란 무언가가 빠져나왔다.
[눈?]파충류를 연상시키는 선명한 황안(黃眼).
가로로 길게 찢어진 동공이 그를 응시했다.
-쩌억.
입가가 길게 찢어져 올라가며 날카로운 짐승이 이빨이 드러났다.
사탄은 자기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
무언가가 잘못됐다.
어긋나고, 뒤틀렸다.
‘뭐, 야…?’
머릿속에 떠오른 의문에 대해 생각할 겨를도 없이,
-콰드드드드드득!!!
“크하아아아악!!!”
루시퍼를 막아서느라 등을 돌리고 있던 벨페고르의 입에서 고통에 가득 찬 절규가 터져 나왔다.
사탄은 다급히 벨페고르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무슨….]분명 방금 전까지만 해도 자신의 앞에 있었던 인간이 어느새 벨페고르의 휠체어 위에 올라탄 채 그의 어깨를 씹어 삼키고 있었다.
‘언제?’
눈을 떼지 않고 지켜보고 있었음에도 대체 언제 인간이 움직였는지 알 수 없었다.
유령에라도 홀린 것처럼.
눈을 감았다 뜬 순간 벨페고르의 어깨를 물어뜯고 있었다.
“카흑!! 크아악!! 떠, 떨어져!!”
벨페고르는 발작을 일으키듯 몸을 뒤틀며 주먹을 들어 올렸다.
그가 타고 있던 휠체어가 눈 깜짝할 사이에 건틀릿의 형태로 변해 주먹을 감쌌다.
나태(懶怠).
대공의 좌를 가진 자만이 사용할 수 있는 경이(驚異)의 무구가 어깨를 물어뜯은 인간의 머리를 향해 내려찍혔다.
-뻐엉!
‘나태’에 내려찍힌 인간의 머리가 풍선이 터지듯 처참하게 박살났다.
“제기랄!!! 벨페고르 이 머저리 자식!!”
그 광경을 지켜보던 루시퍼가 기겁하며 외쳤다.
“인간을 죽이면 어쩌자는 거지?!”
저 아득한 마기를 품은 보물을 이토록 허망하게 죽여 버리다니!
있을 수도,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이다.
루시퍼는 질책하듯 벨페고르를 노려보았다.
하지만 벨페고르는 그런 루시퍼의 힐난에 대답할 상황이 아니었다.
“하아, 하아!”
벨페고르는 바닥에 주저앉아 어깨를 부여잡은 채 거친 숨을 몰아 내쉬었다.
“푸히힛!! 고작 어깨를 살짝 물어뜯긴 걸 가지고 너무 엄살을 떠는군.”
마몬이 어깨를 들썩이며 웃었다.
“이, 이상해.”
“푸힛? 뭐가 이상하다는 거지?”
벨페고르는 창백하게 질린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어깨가 물어뜯긴 순간, 끔찍한… 이제까지 한 번도 겪어보지 못했던 고통이 느껴졌다.”
검은 핏물이 흐르는 어깨를 더듬으며 부르르 몸을 떨었다.
“어차피 조금만 있으면 재생될 상처 아닌가?”
대공의 재생력은 일반적인 악마와 그 궤를 달리한다.
어깨의 살점이 뜯겨나간 것 따위 1분도 채 지나지 않아서 멀쩡히 재생될 것이다.
그래.
대공이라면, 마땅히 그래야 했다.
“…왜?”
벨페고르는 계속해서 피가 흘러내리는 어깨를 내려다보며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두 눈을 부릅떴다.
인간에게 물어뜯긴 어깨의 상처.
주먹 하나 정도 크기의 살점이 떨어져 나간 상처가 ‘재생되지 않았’다.
“뭐, 뭐야. 대체 왜…!”
벨페고르는 핏물이 멈추지 않는 어깨를 내려다보며 혼란에 빠진 목소리로 외쳤다.
“하아…. 대공이라는 자가 이 무슨 추태란 말인가.”
루시퍼가 한심하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벨페고르의 상처가 재생되고 안 되고는 그가 신경 쓸 바가 아니었다.
지금 중요한 것은, 그 인간이 지니고 있던 막대한 마기를 어떻게 손에 넣을 수 있는 지였다.
“제길! 멍청한 놈이 인간을 죽여 버려서는…!”
“푸히힛! 그렇게 소란 떨 필요 없다, 루시퍼.”
“뭐?”
“주변을 잘 살펴봐라.”
“……?”
루시퍼는 눈살을 찌푸리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
짧은 탄성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푸히힛!! 그 인간이 죽어도 마기는 그대로 남아 있지 않은가?”
“…그렇군.”
노리고 있던 인간은 ‘나태’에 머리가 터져 죽어버리고 말았지만, 그가 지니고 있던 아득한 마기는 아직 주변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이 마기를 손에 넣을 방법만 알아낼 수 있다면 인간이 허망하게 죽어버린 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자, 그럼 다시 협상을━”
[…라.]“응?”
[입, 닥치고 있어라.]루시퍼의 표정이 거칠게 일그러졌다.
“기어코 피를 보겠다는 거냐, 사탄?”
[입 닥치고 있으라 했다!!!]사탄은 창백하게 질린 표정으로 외쳤다.
[너희들은… 들리지 않는 거냐?]“뭐?”
꾸륵.
“…무슨 소리 말이냐?”
[질척거리고… 끈적거리는 소리가.]찔, 꺽.
[끔찍하고 불쾌한 소리가… 계속해서, 울려 퍼지고 있지 않은가.]사탄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
루시퍼는 눈살을 찌푸리며 귀를 기울였다.
-찔꺼억.
점성을 지닌 무언가가.
더없이 불쾌하고 불길한 무언가가.
귓가에 들려왔다.
“이건 또 뭔….”
표정을 일그러트리며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어?”
앞으로 영원히.
대공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지지 않을 ‘악몽’이,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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