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yer Who Returned 10,000 Years Later RAW novel - Chapter (706)
만 년 만에 귀환한 플레이어 외전 187화
율법(律法)이 없는 세계 (7)
마지막 페이즈.
그가 준비한 퍼즐의 마지막 조각.
이야기의 끝. 책의 최종장(最終章).
-콰득!! 콰자작!!
비처럼 쏟아지는 악마들이 검은 점액질에 집어 삼켜져 한 줌의 마기로 변한다.
한 방울, 두 방울.
바닥을 드러낸 검은 바다에 조금씩 마기가 차오른다.
“아, 아아.”
아카르트의 입에서 낮은 신음이 흘러나왔다.
하나의 세계를 게걸스럽게 먹어치운 악마가 자신을 응시하고 있다.
조롱하며, 조소하고 있다.
-패배.
굳이 날카롭게 적의 움직임을 살피며, 무기를 부딪치며, 삶과 죽음의 경계에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할 필요가 없다.
이미, 그는 패배했다.
이길 수 있을 리가 없다.
승산이 남아 있지 않다.
“하아, 하아….”
그는 지쳤고, 악마의 왕은 지치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셀 수 없이 쏟아지는 악마들을 포식하며, 바닥을 드러냈던 바다에 마기를 채워놓고 있었다.
체크 메이트, 외통수.
조각나 부서지는 몸을 이끌며 벌인 최후의 발악은, 그저 허망이 허공을 가로 지었다.
“…….”
아카르트는 지그시 눈을 감았다.
“제, 패배로군요.”
허탈한 목소리로, 공허한 눈빛으로 읊조렸다.
강우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네 패배다.”
“…….”
아카르트는 움켜쥔 천칭의 끝을 서서히 내렸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가 사랑했던, 아끼고 보살폈던 낙원의 푸른 하늘은 흉측한 검은 균열로 뒤덮여 있었다.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광경이네요.”
그의 마음도, 타오르는 신념과 흔들리지 않는 의지도 낙원의 하늘과 함께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이제 그에게 남은 것은━
‘선택을 할… 시간이겠네요.’
마지막 선택의 시간.
신념을 꺾을지, 말지의 갈림길.
“…….”
아카르트는 지그시 입술을 깨물며 강우를 응시했다.
악마의 왕을 노려보았다.
“당신의 생각은 변하지 않은 겁니까?”
“무슨 생각?”
“삼원의 세계로 침식해오는 모든 외계(外界)의 존재를 멸망시키겠다는 생각.”
더없이 잔혹하고, 사악하며, 추악한 계획.
“분쟁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나도 죽일 생각은 없어.”
“분쟁은 필연적으로 일어날 겁니다.”
“그러면 어쩔 수 없지.”
지구를 지키기 위해서는, 손안에 움켜쥔 소중한 이들을 지키기 위해서는.
아니, 그런 그럴싸해 보이는 이유는 뒤로하고.
조금 더 솔직하게. 조금 더 노골적으로.
자신의 욕망을 위해서라면.
갈망과,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서라면.
“다, 먹어치워 버려야지.”
얼마나 많은 피를 흘린다 해도.
헤아릴 수 없는 피를 쏟아낸다고 해도.
어리건, 늙었건, 남자건, 여자건, 사연이 있건, 사정이 있건 상관없이.
모두.
죽일 것이다.
통째로 씹어 삼킬 것이다.
남김없이 뜯어 먹을 것이다.
“…….”
아카르트는 지그시 눈을 감았다.
갈림길.
선택의 기로에, 그는 섰다.
‘나는.’
포기해야 하는가.
구원을 바라고 있을 영혼들을, 저버려야 하는가.
“아, 으.”
허리를 숙이며 가슴을 움켜쥔다.
아이를 잃은 짐승의 흐느낌.
비탄에 젖은 울음소리가 울려 퍼진다.
‘여기서, 태초의 빛을 모두 해방시킨다면.’
죄 없는 영혼들을 ‘구원’하기 위해 아껴두었던 힘을 모두 소진한다면.
‘아무도… 구할 수 없게 돼.’
지구의 생명들은, 예정된 멸망을 기다리며 벌벌 떨고 있을 그 불쌍하고 가련한 영혼들은.
아무도.
그 누구도.
단 한 명도.
‘구원’받을 수 없게 된다.
모두 비참한 절망 속에서 소멸을 맞이하게 된다.
“나, 는… 왜, 이리도… 왜 이리도 무력한 걸까요.”
뺨을 타고 투명한 눈물이 흘러내렸다.
많은 것을 바란 것은 아니다.
백 명 중 하나.
한 줌에 불과한 생명이라도 구하고 싶었다.
율법(律法)이 사라진 세계, 침몰하는 배 위에서 떨고 있을 영혼들에게 손을 내밀어주고 싶었다.
‘하지만.’
실패했다.
패배해버리고 말았다.
악마의 왕 앞에, 무릎을 꿇어버리고 말았다.
“빛이여….”
천천히 손을 들어, 왼쪽 가슴 위에 올린다.
후드득.
부서져 가는 육체의 파편이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렸다.
“아무도 구할 수 없다면… 그 누구도 구원할 수 없다면.”
부디, 마지막 바람으로.
“저 악마를.”
아카르트의 눈이 천천히 뜨였다.
그의 새하얀 눈동자에는 더 이상 아무런 신념도, 숭고한 의지도 느껴지지 않았다.
타오르는 듯한 증오.
짙은 살의(殺意)와 광기에 번들거리는 눈빛이 강우를 향했다.
“처단할 수 있는 힘을.”
콰득, 콰드득!
부서진다. 무너진다.
태초의 빛을 담고 있는 육체가, 잘게 조각나 흘러내린다.
-우우우웅!!!
조각난 육체에서 찬란한 황금빛이 솟구쳤다.
빛이 해방되며 그의 육체가 팽창하기 시작했다.
검은 점액질이 뒤덮은 낙원에서 황금빛 태양이 타올랐다.
-타오르는 황금의 태양 속에서, 거인(巨人)이 몸을 일으킨다.
산조차 짓밟을 수 있을 것 같은 거대한 크기의 거인.
태초에서 탄생한 티탄의 본신(本身)이 낙원에 강림했다.
“마, 마왕님 저건….”
두 팔을 잃은 발록이 멍하니 입을 벌리며 고개를 들어 올렸다.
거대한. 대체 그 크기를 가늠할 수조차 없는 거대한 존재.
우주의 창조주와 마주한 그는 전율했다.
‘이길 수 없다.’
이기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다.
저건, 애초에 ‘이긴다’라는 개념이 통용되지 않는 존재다.
태풍이나 지진, 화산 폭발과 같은 재해(災害)에 이긴다는 표현은 사용하지 않지 않은가?
그것과 마찬가지다.
저건 어디까지나 ‘살아남을 수 있냐, 없냐’를 따져야 할 존재지 이기냐 마냐를 따져야 할 존재가 아니었다.
“아, 아아.”
“저건… 대체.”
-시간이 정지하기라도 한 듯한 광경.
사납게 악마들을 난도질하던 빛의 군세도, 마해에서 기어 나온 심연의 군세도.
흉포한 포효를 내지르던 백호도, 그 위에 타올라 천칭을 휘두르던 백은의 기사도.
김시훈도, 한설아도, 차연주도, 레이라도, 에키드나도, 리리스도.
모두 그 자리에 멈춰선 채 고개를 들어 올렸다.
고개를 들어 올려, 몸을 일으킨 빛의 거인을 바라보았다.
모든 것이 멈췄다.
숨을 죽였다.
“그렇게 구원이고 나발이고 지랄을 하더니.”
단 한 사람만 빼고.
“결국, 나 하나 죽이겠다고 다 집어던지겠다는 거냐?”
차가운 조롱을 담아 물었다.
빛의 거인은 조용히 주먹을 움켜쥐었다.
[그래.]머릿속에 울려 퍼지는 듯한 중저음의 목소리.
멸망하는 세계에서 소멸을 맞이할 어린양들을.
[네가 사라지는 것만으로, 내가 구원할 수 있는 영혼들보다 많은 생명을 살릴 수 있다.]“더 많이 구할 수 있으니까, 그쪽을 택하겠다고?”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젓는다.
“그게 아니잖아.”
괜히 궁색한 변명 쥐어짜 내지 마.
쓸데없는 변명으로 네 행동을 포장하지 마.
“너는, 그냥 멈춘 것뿐이야.”
나아갈 수 없으니까 멈췄다.
몸을 돌려 다른 방향을 택했다.
신념을 굽히고, 의지를 꺾었다.
“네가 구원하겠다고 떠들어댄 영혼들을, 헌신짝처럼 내던져 버린 거라고.”
[다르다!]“뭐가? 뭐가 다른데?”
[나는….]말끝을 흐린다.
괴롭다는 듯 몸을 웅크리고, 어깨를 가늘게 떤다.
강우는 배를 부여잡고 폭소를 터트렸다.
“결국.”
그토록 소중하다 떠들어댔던 구원을, 아카르트 스스로가 포기해버렸다.
거기에 어떤 변명이 필요할까.
무슨 이유가 필요할까.
“네 신념이라는 건, 그 정도였다는 거지.”
사형을 선고하듯, 차갑게 단언했다.
[…….]빛의 거인은 침묵했다.
괴로움에 몸부림치며, 타오르는 증오로 가득 찬 눈으로 노려보았다.
[너라고 다를까.]까드득.
이를 가는 소리가 낙원 전체에 울려 퍼졌다.
[네가 나와 같은 상황이라면, 신념을 굽히지 않았을까!]쿠웅!
가볍게 발을 구르자 대지가 출렁이며 해일처럼 충격이 퍼져 나갔다.
“아아아아악!!”
“사, 살려줘!!!”
“꺄아아악! 내, 내 다리이이이이!”
빛의 보호막이 사라진 지금.
해일처럼 퍼져 나간 충격은 낙원의 주민들까지 휘말리게 만들었다.
튀어나온 돌조각에 팔다리가 찢기고, 파동에 휩쓸려 몸이 짓이겨졌다.
[너도!!!! 똑같을 것이다!!!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낙원의 주민들이 내지르는 비명소리는 더 이상 거인의 귓가에 닿지 않았다.
그의 시선과 관심은 오롯이 강우를 향해 있었다.
벼랑 끝에 몰린 거인은,
[어쩔 수 없는 일이란 말이다아아아아!!!]절규하듯 외쳤다.
“푸헤헤헤헤헤헿헿!!”
참을 수 없다는 듯, 강우는 천박한 웃음을 터트렸다.
“이야, 씨바. 그래. 왜 그 말이 안 나오나 했네.”
낄낄낄. 어깨를 들썩이며 조롱했다.
“맞아.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어쩔 수 없는 일이야!!!”
신념을 굽히고, 의지를 꺾은 것은.
애타게 구원을 바라고 있는 영혼들을 짓밟아 내던진 것은.
“너도 노력했잖아? 그치? 최선을 다했잖아! 아무리 힘들어도, 포기하지 않았‘었’잖아!!”
그러니까.
“이야~! 그래! 이건 어쩔 수 없지! 어쩔 수 없는 거야! 어차피 여기서 날 죽이지 못한다면 아무도 구할 수 없잖아? 그럴 바에는━”
두 팔을 활짝 벌리며 외쳤다.
“다 포기하는 거야!”
고민할 필요도, 고뇌할 이유도 없다.
구하려고 했던 소중한 존재들을 내팽개치고 장렬히 최후의 전투를 마치는 것이다.
자신이 구하려고 했던 영혼들이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된다 하더라도, ‘어쩔 수 없었어’라고 자위하며 눈물 한 방울 찔끔 흘리면 끝난다.
정말.
더 이상 없을. 그 이상 없을.
‘편리한’ 선택지가 아닌가?
“세상 참 편하게 사는 거 어렵지 않다. 그치?”
[…네, 놈.]우득.
빛의 거인이 거칠게 주먹을 움켜쥐었다.
[너는, 다르다고 말하고 싶은 거냐?]“다르지.”
너는 멈췄지만.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포기하고, 몸을 돌렸지만.
“나는, 멈춘 적이 없거든.”
앞으로, 앞으로.
더 높은 곳으로.
더 아득한 곳으로.
더 닿을 수 없는 곳으로.
[…그렇다면.]빛의 거인의 찬란한 황금으로 거세게 타올랐다.
[어디 한 번 증명해 보아라.]쿠궁!!
거칠게 발을 구르며, 두 팔을 앞으로 모았다.
그리고,
-쩌적, 쩌저저저적!!!
무언가를 잡아 찢듯, 허공을 움켜쥐고 넓게 벌렸다.
검은 균열 위에 덧씌워지는 빛의 균열.
새하얀 균열 너머에 보이는 세계는━
“뭐야…?”
‘지구’의 모습이었다.
[과연, 지구의 종말(終末) 속에서도.]빛의 거인은 거칠게 균열을 비틀어 열며 말했다.
쿠구구구구궁!!!
낙원의 대지가 빛의 균열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네놈은 신념을 굽히지 않을지.]그날,
지구는 종말(終末)을 맞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