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ease stay away from my family RAW novel - Chapter 68
68화>
16. 길
새로운 일상이 시작되었다.
마법 수련법을 완성하고, 재산 문제를 정리하고, 본가의 공사를 살피고, 새로운 가문의 기초를 다져 가는 일상.
왈라이카는 다시 라니아의 잔소리를 들으며 일거리에 치이기 시작했고, 위나델은 가문의 다른 아이들과 함께 마법을 수련했으며, 파베는 수련법의 마무리와 보완 작업에 들어갔다.
여기에 한 가지 더 해야 할 것이 생겼다.
위나델 크로슈와 파베 크로슈가 함께 살아갈 방법 찾기.
이 문제를 가장 먼저 언급한 것은 왈라이카였다.
“싸부, 전에 했던 말 말인데…… 이 사태를 만든 장본인 만나러 갈 생각 없어?”
위나델은 잠든 밤이었다. 하프 드래곤은 수련법을 더 쉽게 설명할 방법에 골몰하던 사부에게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싸부의 영혼을 위나델 몸에 넣은 당사자라면, 이 상황을 해결할 방법도 알고 있을지 모르잖아.”
“…….”
“그쪽에서 이상한 소리 하면 그냥 무시하면 그만이고. 용건이나 조건 정도는 들어봐도 괜찮지 않을까?”
파베는 은빛 속눈썹을 내리깐 채 잠시 침묵했다. 손에 든 펜 끝으로 종이를 툭툭 두드리다가 물었다.
“누군지 예상 가느냐?”
“……확실하진 않지만, 대충은.”
“내가 아는 사람이고?”
“뭐…… 내 예상이 맞으면?”
제 입으로 떠들면서도 민망할 만큼 미적지근한 대답이다. 왈라이카는 어물어물 대답하며 뺨을 긁적였다.
옆에 놔둔 코코아를 한 모금 마신 파베가 말했다.
“썩 내키는 제안은 아니구나.”
“이해는 해. 정체를 숨기고 이런 식으로 접선을 유도하는 상대라면 아무래도 꺼림칙하지. 목적도 정확하게 알 수 없는 상태고. 그래도……”
“만나면 화를 많이 낼 것 같아서 그렇다.”
“그래, 만나면 화를 많이 내게 되는…… 어?”
관성적으로 스승의 말을 받던 왈라이카의 눈이 떨어진 물방울처럼 부풀었다.
여전히 고개 숙인 채 착잡한 표정을 짓고 있던 파베가 한숨을 쏟아 내며 중얼거렸다.
“얼굴을 보면 자제할 자신이 없어.”
“으음…… 그렇군. 언제 안 거야?”
“아르카스토 탈출했을 때 어렴풋이 느꼈고, 네가 만나 보자고 했을 때 거의 확신했지.”
“젠장, 다 들켰는데 괜히 감춘다고 용썼네. 그렇게 티 났어?”
“150년 전의 영혼을 되살린 데다 아르카스토까지 탈출시킨 위험한 놈이다. 다른 놈이라면야 네가 며칠 만에 만나러 가자 말을 꺼냈겠느냐?”
“하긴.”
왈라이카는 간단하게 수긍했다. 그리고 다시 물었다.
“만나면 주체할 수 없을 만큼 패고 싶을 거라는 점은 나도 동의하지만, 그래도 만나는 게 좋지 않을까? 위나델을 생각해야지.”
“그렇기는 한데…….”
“진짜, 싸부는 그 음침한 엘프 자식한테 특히 무르다니까. 내가 똑같은 짓 했어 봐. 당장 찾아와서 엉덩이부터 걷어찼을걸?”
“이 몸의 작은 키론 네 엉덩이를 걷어차기 어려울 것 같으니 정강이쯤을 찼을 거라고 해 두자.”
짐짓 별일 아니라는 듯 농담 따먹기나 주고받으면서도 속내는 편치 않았다.
화산 엘프 세르비투스.
천사처럼 아름다운 외모에 뛰어난 마법적 재능을 지닌 그녀의 두 번째 제자. ……사실 가르친 게 없으니 제자라는 말도 우습지만.
세르비투스를 생각하면 나오는 것은 한숨뿐이다. 좋은 방향으로든, 나쁜 방향으로든.
폭 한숨을 내쉰 파베는 방금 제자가 한 말을 솔직하게 인정하기로 했다.
그녀는 세르비투스에게 물렀다. 지금 상황에서도 당장 정강이를 후려 까러 달려가지 않을 만큼.
“조금만, 조금만 더 마음의 준비를 하고 싶다.”
“에휴……. 뭐, 그래. 위나델 상태가 당장 어떻게 될 것 같진 않으니까.”
일단 위치 추적하고 있을 테니까, 마음의 준비를 최대한 빨리 끝내라 이른 제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고맙다는 말을 꾸물꾸물 건넨 파베는 다시 한번 울적한 한숨을 내쉬었다.
어쨌든 이틀 안에는 답을 내려야 할 것이다.
그 답이 무엇일지는 이미 정해져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고.
다음 날, 위나델은 평소처럼 일어나 마법을 연습했다.
파베가 술식의 구성 방식에 대해 설명해 주고 있을 때였다. 똑똑 문 두드리는 소리 뒤로 문이 조용히 열렸다.
방문자는 나히야였다.
“아침부터 무슨 일이에요, 나히야?”
“마감 작업은 아직이지만 건물 외관 작업이 거의 끝나가서요. 가주님도 한번 보러 오시라고 찾아왔어요.”
건축 문제는 나히야에게 거의 일임해 놓은 사안이었다. 하지만 가주로서 건설 현장을 가끔씩 직접 확인하는 게 모양새가 좋긴 했다.
위나델은 고개를 끄덕였다. 공부하던 것을 정리해 놓고 공사 현장을 보러 갔다.
“거기! 이 멍청한 놈이, 그쪽 말고 반대쪽! 비계(飛階) 무너지겠다, 이놈아!”
“틀부터 끼우시라고예, 틀! 예? 그래, 옳지! 다른 작업도 그라케 진행해 주심 됨니더!”
며칠 안 온 새 건물이 눈에 띄게 번듯해졌다.
외부 마감재를 바르고 창을 끼운 다음 가설물까지 철거하면 겉으로는 완공된 건물처럼 보일 것이다. 위나델은 입을 헤 벌리며 감탄했다.
드워프 장인 넨도린이 은근슬쩍 물주에게로 다가와서 말을 걸었다.
“어떻습니까, 속도가 아주 그만이지요?”
“네. 이대로라면 예정일보다 공사가 훨씬 빨리 끝날 것 같아요.”
“제 얼굴에 금칠하는 것 같아 좀 면구하긴 한데, 드워프 없으면 가능한 속도가 아닙니다. 아, 물론 가주님과 나히야 감독님의 풍족한 지원도 큰 역할을 했습니다. 감사한 일이지요.”
갈색 수염이 빳빳하게 난 드워프가 안 그래도 짧은 허리를 구부리며 열심히 굽실거렸다.
물을 마시고 목을 가다듬고선 슬그머니 다른 화제를 꺼냈다.
“저, 그래서 드리는 말씀인데…….”
“무슨 말씀요?”
“이번 공사 끝나고 나면 제가 따로 하려는 일이 하나 있지 말입니다. 그때, 가주님께서 제 사업에 투자를 살짝 해 보시는 건 어떨지…….”
땀이 번들거리는 갈색 얼굴에서 통 큰 물주를 잡고 싶다는 욕망이 어른거렸다.
고개를 기울인 위나델이 무슨 대답을 하려 했을 때였다. 저쪽에서 현장을 지휘하고 있던 나히야가 귀신처럼 다가와 넨도린의 귀를 잡아당겼다.
“내가 우리 가주님한테 수작 부리지 말라고 했습니까, 안 했습니까?”
“가, 감독님! 이거, 이거는 좀 놓고오!”
“어디서 이상한 사업 아이템을 영업하려 하는 겁니까? 가주님, 신경 쓰지 말고 적당히 구경하다 들어가세요. 배웅은 못 할 수도 있어요.”
“립시산 거기 언젠가 터진다니까? 거기가 숨겨진 대박 부지라고, 대박 부지!”
“입 안 다물면 마법 씁니다.”
“내가 자발루텐시 사는 친구놈한테 다~ 들었어! 거기 전부터 웬 마법사들놈들이…… 우읍! 읍읍!”
드워프는 끝내 마법으로 입이 막혀서 질질 끌려갔다.
그러자 일을 돕다 말고 근처에 와 있던 네루카가 속닥거렸다.
“저 양반, 립시산을 개발하면 천문학적인 돈을 벌어들일 수 있을 거라고 맨날 떠들고 다닙니다요.”
“립시산을요?”
“예에. 말도 안 되는 소립죠. 그 추운 북부 설산을 어떻게 개발합니까요? 듣자 하니 마법도 못 쓰는 곳이라던데.”
대륙 최북단에 위치한 립시산은 1년 내내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험지로, 알 수 없는 자연 파장 때문에 마법도 쓰기 어려운 장소라고 했다.
“게다가 근래엔 거기 유령이 나온다는 소문도 돈다던데요. 뭐라더라, 눈 노란 유령이랑 눈 빨간 유령이 밤마다 산 아래를 배회한다고 했던가?”
그러자 옆에 있던 마르다가 말을 받았다.
“우스운 소리예요. 그 춥고 험한 곳에 무슨 입이 많아서 여기까지 소문이 나겠어요? 다 어디서 지어낸 헛소문이지.”
“하긴……. 마르다 씨 말이 맞는 것 같기도 해.”
화제가 다른 방향으로 옮겨 갔다. 이제 그들은 곧 시작할 창호 마감 공사 얘기를 떠들기 시작했다.
위나델은 이제 슬슬 집에 돌아가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때, 안에 있던 시조님이 낮게 중얼거렸다.
-눈 노란 유령이랑 눈 빨간 유령……?
방금 들은 말이 이상하게 마음에 걸렸다. 파베는 제 직감에 집중했다.
대마법사쯤 되는 경지에 오르면 예감이나 느낌은 실없는 ‘촉’이 아니다. 제6의 감각 같은 것.
‘금안과 적안은 둘 다 상당히 드문 색이야.’
요즘은 모르겠지만, 파베 크로슈가 활동하던 시기에 금색 눈이란 흔히 ‘재능 있는 마법사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실제로 어느 정도는 사실이다. 마력의 그릇이 큰 아이 중 일부는 유전적 자질과 관계없이 금안을 타고나니까.
이종족을 제외한 인간 중에 금색 눈을 가진 이는 자신을 통틀어 스무 명도 보지 못했다.
금안은 그만큼 드물고 귀한 눈이었다.
‘거기다 적안.’
빨간 눈도 만만치 않게 귀하다.
불 정령의 힘으로 개화한 정령사를 제외한다면 한 세대에 열 명이나 나올까?
저와 가까웠던 적안의 소유자가 떠오르는 것은 결코 억측이 아닐 것이다.
그 소문이 도는 장소가 립시산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립시산은, 대마법사 파베 크로슈가 마지막으로 머물다 눈 감은 장소였으니까.
‘설마…….’
새로운 예감이 경종을 울린다.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 같은 건 없을지도 모르겠다는 예감.
그리고 공사 현장을 나와 저택으로 돌아왔을 때, 그 예감은 현실이 되었다.
위나델 앞으로 발신인 없는 우편 하나가 와 있었기 때문이다.
“…….”
마법으로 방비되는 왈라이카의 저택 안에 이런 우편물이 배달되었다는 것부터 수상했다. 파베는 마법으로 위험 여부를 탐지한 다음 편지를 뜯었다.
봉투 안에는 글자 몇 자 적혀 있는 게 고작인 종이 한 장이 들어 있었다.
그리고 누군가의 잘린 머리카락 반 줌.
[기다리겠습니다.]동봉된 머리카락을 살피니 아르카스토의 것이었다.
유려하게 적힌 필체가 익숙했다. 파베는 그 글자를 눈에 새기며 조용히 눈을 감았다.
‘세르비투스.’
그녀의 두 번째 제자가, 그녀를 부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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