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ease stop our Pope RAW novel - Chapter (196)
196화
3.
골리는 맛이 있는 사람들이 있다.
흔히들 그런 사람들보고 ‘반응이 맛있다.’라고 표현한다.
순리는 ‘반응이 맛있는’ 사람에 속하는 녀석이었다.
순식간에 빨갛게 달아오르는 얼굴.
나는 그 얼굴을 감상하면서 싱긋 미소를 지어 주었다.
“이레귤러 아니었으면 화병으로 비명횡사했겠네. 당신 운이 좀 좋은데?”
저쪽의 자세를 생각해 보면 내가 굳이 잘 대해 줄 필요가 없었다.
딱 봐도 도움을 구하러 온 건데, 저 거만한 자세 좀 봐라.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파는 게 아니라, 목마른 사람이 우물에 독을 푸는 격이었다.
“소국이라서 그런지 손님 대접이 형편없군. 손님에게 이딴 무례를 저지를 수가 있나!”
녀석의 목청이 접견실 내부를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아주 그냥 개소리다.
그래서 나는 손가락으로 귀를 판 다음, 능글거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말은 똑바로 하셔야지. 손님이 아니라 동냥하러 온 거지새끼 아닌가?”
“김시우!”
“내 이름을 알 정도면 내 성질머리도 대충 들었을 것 같은데…… 너희 이레귤러 중 한 명이 내 손에 의해 폐인이 되었는데, 내 앞에서 그 태도가 맞아?”
“왕웨이 따위와 나를 비교하는 거냐?”
“내 눈에는 둘 다 비슷해 보여서.”
접견실의 분위기는 폭발 5초 전이다.
물론 폭발하는 건 순리 혼자뿐.
심지어 이 상황을 말려야 할 유선호 장관조차 가만히 우리의 대화를 지켜보는 중이었다.
이건 어디까지나 기선 제압의 문제다.
자만심으로 똘똘 뭉친 저놈을 굴복시키기 위해서는 말로는 안 된다.
“불난 건 네 집인데, 왜 우리 집에 와서 허세를 부리고 있냐? 그러다가 재밖에 안 남을 텐데, 여유를 부리는 이유가 도대체 뭐야?”
“소국의 이레귤러 주제에 감히 우리 대국의 힘을 과소평가하는 거냐? 반군들을 진압하는 건 우리에게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다만, 인민들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 자중하고 있을 뿐이다.”
“그런 놈들이 상해에서 민간인들까지 휘말리게 해?”
“그것은 어디까지나 안타까운 사고였을 뿐이다. 희생이 불가피했을 뿐.”
“3만 명이라는 숫자가 불가피한 숫자야?”
“대국에게는 그렇다.”
“미친 새끼들.”
미국의 보고서에 따르면 최소 사망자가 3만 명이라고 했다.
저놈은 그 3만 명의 억울한 희생자를 그저 ‘불가피한 숫자’라고 말하고 있었다.
나는 이를 부드득 갈았다.
도시 한복판에서의 전투로 3만 명이나 죽여 놓고서는 저딴 말을 지껄이니 화가 날 수밖에 없었다.
사람의 목숨을 존중하지 않는 놈들은 그 어떤 것도 존중하지 않는다.
그런 놈들과 무슨 일을 같이할 수 있을까?
순리는 내 눈을 똑바로 마주하면서 말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동안의 양국 관계를 생각하여, 한국에게 기회를 주고자 찾아온 거다.”
“기회?”
“대국에게 빚을 지워 둘 기회. 비록 큰 도움은 되지 않겠지만, 이번 내전이 끝나면 우리가 크게 보답하도록 하지.”
여전히 자신들이 우위에 서 있다는 말투.
이쯤 되면 그냥 막 가자는 거다.
동북아교류전 때까지만 하더라도 이 정도로 미친놈들은 아니었는데, 저 개소리를 듣고 있자니 확실히 중국의 상황이 어지럽다는 게 눈에 보였다.
저딴 머저리를 외교 특사로 보낼 정도니까.
사람의 화가 극에 이르면 웃음이 나온다고 했던가? 지금 딱 내 꼴이 그렇다.
나도 모르게 입가가 자꾸만 씰룩거렸다.
그리고 그 웃음을 지켜보고 있던 자현이가 넌지시 물었다.
“저놈이 또 뭐래요?”
“특별히 우리에게만 중국을 도울 수 있는 기회를 주겠다는데?”
“재밌는 놈이네. 안 되겠다.”
비릿하게 미소를 지은 자현이가 허공에서 흑색의 검을 소환한다.
그러더니 곧 그 검을 움켜쥐면서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차피 중국 지금 난리가 났다면서요? 이놈도 중국에서 한 가락 하는 놈이라면, 그냥 이참에 이 새끼 모가지 따시죠. 백정 짓은 제가 대신 해 드릴 테니까.”
“핏덩이 주제에!”
순리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순리 역시 허공에서 창을 소환한 다음, 창대를 꽉 움켜쥐었다.
이레귤러들은 허공에서 무기를 소환하는 게 기본 능력인 걸까?
나도 그 둘을 따라서 무기를 소환해야 하나 고민했지만, 빠르게 포기했다.
천망을 이런 곳에서 시험해 보기에는 장소가 너무 협소했기 때문이다.
자칫하다가는 유선호 장관이 다칠 수도 있단 말이지.
나는 유선호 장관에게 슬쩍 신성 보호막을 걸어 준 다음,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창을 꺼낸 순리를 향해서 말했다.
“여기가 이능관리부라는 것에 감사해라. 이능관리부가 아니었으면 일단 네 그 팔 한 짝부터 뜯어 놓고 생각했을 거니까.”
도대체 저놈이 무슨 생각으로 이딴 짓을 저질렀는지, 정확히는 모르겠다.
다만, 그 밑바닥에 중국 내 서열 2위라는 자신감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은 알겠다.
이로써 중국 정부는 현재 이렇다 할 외교 특사조차 제대로 운용하지 못하는 수준에 이르렀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 정도가 유일한 수확이라고 해야 할까?
“도움을 구하러 왔으면 바짓가랑이라도 잡고 매달렸어야지.”
“이 자리에서 네놈의 그 건방진 혓바닥을-.”
독이 잔뜩 오른 순리가 나를 창으로 겨누며 입을 나불거렸다.
나는 천천히 녀석을 향해 다가갔다. 그리고 녀석의 창날 앞에서 멈춰 섰다.
“감히. 네가. 나를?”
중국의 이레귤러들에 대해서는 살짝 기대했었는데, 왕웨이도 그렇고 이놈도 그렇고, 이래저래 실망이 크다.
실력도, 그렇다고 인격도.
그 어떤 것도 존중할 수 없는 상대.
미국이 건네준 보고서에는 이놈이 모략질을 잘한다고 했는데, 지금 보면 모략이고 자시고 그냥 머저리에 불과한 놈이다.
“찌를 수 있으면 찔러 봐.”
대놓고 도발했다.
하지만 순리는 한참 동안 나를 노려보기만 할 뿐, 창을 내지르진 못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제풀에 지친 모양인지, 순리가 창을 다시 내려놓았다. 그러더니 곧 나를 향해 말했다.
“당신들의 뜻은 잘 알았다. 내가 괜한 발걸음을 했군. 우물 안 개구리 같은 자들이었어. 소국에 갇혀서 대의라는 걸 모르나?”
마지막까지 우리들의 속을 긁어 대는 순리.
나는 이 녀석이 왜 끝까지 이런 짓을 벌이는지 잠시 머리를 굴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가는 상황.
마치 일부러 중국과 한국의 관계를 아작 내려는…… 잠깐만 ……이 새끼, 설마?
“너…….”
“김시우 교황님.”
내가 손을 쓰려던 찰나, 여태까지 내 뒤에서 가만히 앉아 있던 유선호 장관이 넌지시 나를 불렀다.
“예, 장관님.”
“첫 협상은 결렬로 하겠습니다. 시간 있으십니까? 순리 각성자를 내보낸 후, 우리들끼리 이야기를 계속 나눴으면 합니다.”
유선호 장관도 순리의 꿍꿍이를 눈치챘는지, 반쯤 체념한 눈빛이었다.
나는 순리의 얼굴을 쳐다보면서 인상을 잔뜩 구길 수밖에 없었다.
4.
뜨거운 분위기 속에서 협상이 결렬된 후, 순리는 접견실의 문을 박차고 나갔다.
그렇게 접견실에 남겨진 우리 넷.
유선호 장관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서서 창문을 향해 다가갔다. 그리고 창문 밖을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뗐다.
“순리는 대한민국이 이번 사태에 개입하는 걸 원하지 않습니다.”
유선호 장관의 말은 많은 뜻을 담고 있다.
순리에게만 한정 지었다는 것은, 반대로 말하면 다음과 같다.
“중국 정부의 입장은 아니다?”
“저희는 그렇게 분석하고 있습니다.”
유선호 장관의 말이 계속 이어진다.
“애초에 순리는 각성자들만을 위한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입니다. 유니온, 정화자와 크게 다를 바 없는 인물이지요.”
그런 놈이 왜 정화자에 들어가지 않았을까?
사실, 내가 지금까지 상대했던 정화자라는 조직의 특성을 생각해 본다면 답은 이미 나와 있었다.
정화자라는 집단은 애초에 권력이 목적인 집단이 아니다.
무분별한 혼돈, 그것만이 정화자가 추구하는 목표다.
순리는 중국 최대의 정치 파벌을 이끄는 수장.
권력 따위는 염두에 두지 않는 정화자와 사이가 좋을 리가 없다.
“순리는 오히려 이번 기회에 중국에 새로운 정부를 세울 계획인 겁니다.”
“그래서 첫 협상 때 대놓고 저딴 짓을 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설명이 안 됩니다. 김시우 교황님께서도 이미 느끼셨을 거라고 봅니다.”
상황이 좀 더 복잡해진다.
중국 정부 내에서도 지금 파별이 극명하게 나뉘고 있다는 소리인데, 이건 그냥 정화자들이 활개를 치고 다니기 좋은 환경이었다.
혼란이 가중될수록 마기에 잠식되는 사람들도 많아질 수밖에 없다.
정화자들이 힘을 불리기 딱 적당한 시기.
마왕들의 화신체가 본격적으로 등장한 시점에서 이런 혼란은 좋지 않다.
“유선호 장관님은 중국 사태에 어느 정도 개입하는 걸 바라고 계시네요.”
“중국의 혼란이 거대해질수록 우리들이 부담해야 할 짐이 무거워집니다. 최악의 상황은 피하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그렇긴 하죠.”
이 혼란을 틈타서 마왕 놈들과 그 무명이라는 놈이 힘을 더 키운다면?
최악을 가정해 봤을 때, 나 혼자서 감당하기 힘든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칠마왕이 본래의 힘을 되찾아 버린다면, 끔찍한 피해가 발생하게 될 테니까.
마왕 놈들은 암세포와도 같다.
성장이 끝나면, 목숨을 담보로 제거를 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봤을 땐 지금이 녀석들을 억제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리멘 교단이 평화유지군 느낌으로 중국에 진출하는 방안도 제안을 했지만, 순리가 일언지하에 거절했습니다. 중국 정부의 통제를 받지 않는 종교는 받아들일 수 없다더군요.”
“녀석이 그런 걸 결정할 만큼 권한이 강합니까?”
“현재, 중국 정부의 각성자들 대부분이 그의 파벌로 들어갔습니다.”
“서열 1위는…….”
“서열 1위는 정치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은거기인. 중국의 서열 1위를 설명할 때 가장 잘 어울리는 표현입니다.”
한마디로 지금 중국 정부가 순리의 손에 놀아나고 있다는 건데, 뭐 그건 자업자득이다.
그러게 누가 저딴 놈한테 권력을 주래?
문제는 그 ‘저딴 놈’ 때문에 마왕의 발호를 가만히 좌시하고 있어야 된다는 건데, 그것도 그것대로 골치 아프다.
지금까지는 국제 관계 때문에 지켜보고 있었지만, 더 이상 두고 볼 수는 없었다.
중국이 여러 개로 나뉘는 건 사실 환영할 일이지만, 그 혼란을 틈타 마왕들이 힘을 되찾는 건 불쾌한 일이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그럼 답은 이미 정해져 있네요.”
“……예?”
“금방 다녀오겠습니다.”
일을 해결할 거면 빨리 해결해야 속이 시원하다.
내가 자리에서 일어서자 유선호 장관이 당황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어디를 가시려고……?”
나는 유선호 장관을 바라보면서 방긋 미소를 지었다.
“참느라고 많이 힘들었거든요. 스트레스는 참으면 병이 됩니다. 그때그때 스트레스를 풀어야죠.”
5.
한국 측 대표단과의 첫 협상을 파투 낸 순리는 곧바로 숙소로 향했다.
“한국 놈들이 대륙에 침을 바르는 꼴을 내가 가만히 두고 볼 수야 있나.”
순리는 와인을 한 모금 넘기며 입꼬리를 올렸다.
“중국은 나의 것이다.”
그의 말에 앞 좌석에 타고 있던 그의 비서가 즉각적으로 대답했다.
“당연한 말씀이십니다. 곧 천하가 순리 님의 발아래에 놓이게 될 겁니다.”
“백명교와는 연락이 되었나?”
“예.”
“정화자는 앞으로 그들이 담당할 것이다.”
순리는 얼마 전에 찾아왔던 백명교의 대주교를 떠올렸다.
금발의 어린 소녀.
그 소녀는 정화자들이 사용하는 사이한 마기를 정화하는 기적을 보여 주었다.
“리멘 교단에 밀려서 쫓겨난 놈들을 내가 거두어 주었으니, 그래도 리멘 교단보다는 고분고분할 것이다.”
백명교는 중국 정부의 통제를 순순히 받아들이기로 했다.
아니, 정확히는 자신에게 충성을 맹세했다.
그 대가로 백명교를 밀어주기로 했지만, 인민들이 무엇을 믿는지 따위는 순리에겐 중요하지 않았다.
새로운 질서를 만들기 위해서는 권력만큼이나 타이밍이 중요한 법.
순리는 지금이야말로 새로운 질서를 창조해 낼 적기라고 판단하고 있었다.
“그래도 늙은이들을 위해 협상을 하는 시늉이라도 해 줘야겠지.”
“원로들도 제거하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나중에. 지금은 타이밍이 아니다. 나는 중국을 위기에서 구원한 정의로운 영웅이 되어야만 해. 지금 그들을 제거한다면, 나는 그저 권력에 미친 간웅이 될 뿐이야.”
중국을 기반으로 전 세계를 움직이는 지배자가 되는 것.
그의 계획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비록 정화자라는 버러지들이 끼어들었지만, 그들은 어디까지나 버러지일 뿐.
자신의 원대한 계획을 방해할 수는 없는 놈들이었다.
순리는 와인 잔을 만지면서 아까 전에 만났던 김시우의 얼굴을 떠올렸다.
“우물 안의 개구리 같은 놈.”
대의 따위는 모르는, 그야말로 소인배 같은 놈.
여유만 있었다면 직접 손을 봐 주고 싶었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었다.
“스카우트 작업은 잘되어 가고 있나? 왕웨이, 그 병신 같은 놈처럼 허술하게 진행하면 안 된다.”
“예, 요원들이 움직이고 있습니다.”
“막대한 권력, 넘치는 재력. 원하는 모든 걸 주겠다고 약속해라.”
“알겠습니다.”
새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언제나 인재가 필요하다.
순리는 비서의 대답에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딴 소국이 해 줄 수 없는 대우를 해 준다면, 자연스레 우리들에게-.”
끼이이이이이익.
그때였다.
잘 가고 있던 차가 갑자기 급정거했고, 순리는 인상을 찌푸리면서 말했다.
“무슨 일이냐?”
순리의 질문에 차를 운전하고 있던 기사가 떨리는 목소리로 답했다.
“그, 그것이.”
똑똑똑.
순리가 기사를 추궁하기도 전에 누군가 순리 옆의 창문을 손으로 두드렸다.
그리고 잠시 후.
끼드드드드득.
문이 통째로 뜯겨 나갔고, 곧 아까 보았던 젊은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 남자가 활짝 웃음을 지은 채로 순리에게 말했다.
“이번에는 대한민국의 이레귤러가 아니라 리멘 교단의 교황으로서 만나러 온 거야. 자, 2차전 시작해야지?”
“이런 미친놈.”
그 말에 김시우가 기뻐 죽겠다는 듯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어, 맞아.”
우리 교황님 좀 말려주세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