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ison-Eating Healer RAW novel - Chapter (130)
130화
시끄러운 정보 한 개.
그리고 비밀스러운 정보 한 개가 있었다.
두 가지 정보 중에서, ‘이레귤러’ 일행은 시끄러운 정보로 포문을 열었다.
“미친 새끼. 싸대기 맞은 지 얼마나 됐다고 그새를 못 참고…….”
비수가 기가 막힌다는 듯 혀를 내둘렀다.
노트북 앞에 앉은 그녀는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기사들을 주시하고 있었다.
로이 히들스턴, 대련 중 혼수 상태에 빠지다.>
급작스러운 영국 대표 헌터들의 출국. 그 뒷사정은?>
사실상의 포기 선언. ‘영계 진출’에 영국 헌터들의 자리는 없었다.>
로이와 대련을 벌인 천해선은 누구? 한국에서 온 ‘이레귤러’에 관심 집중.>
영국 헌터 협회. “대련 중 일어난 불운일 뿐. 별도의 대응 하지 않을 것.”>
‘가디언 길드’의 라비. “로이는 점차 회복 중. 가벼운 식사가 가능한 정도.”>
기사 제목을 훑어본 비수가 양팔을 감싸며 인상을 구겼다.
“어휴. 소름 끼치는 새끼. 어떻게 내가 혼자일 때만 귀신같이 알고 뒤를 밟는 거지?”
“반대로 말하면, 네가 혼자가 될 때까지 하루 종일 기다려 왔다는 말도 되겠지.”
천해선의 말에 비수가 헛구역질을 했다.
“우웩. 두 번 다시 만나고 싶지 않은 놈이야. 차라리 10성 몬스터를 상대하는 게 낫지.”
“당분간 볼일 없을 거야. 시간이 지나면 회복은 되겠지만, 그 자리에서 완전히 고쳐 놓은 게 아니거든.”
“차라리 그냥 확 뒈지게 냅두지 그랬어?”
“비수야……!”
마리아가 질겁을 하자, 비수가 그녀를 향해 윙크를 날렸다.
“히힛. 농담이에요, 언니. 설마하니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겠어요? 로이를 죽이면 국가적인 싸움이 될지도 모르는데. 그 정도로 제가 얼간이는 아니에요.”
‘진짜 죽일 뻔했는데.’
비수의 말에 하마터면 얼간이가 될 뻔한 남자가 속으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하하하. 사실 이런 보도만으로도 영국은 자존심이 제법 상했을 겁니다. 로이 히들스턴이 사실상 영국 1위 랭커인데, 대련으로 인해 혼수 상태에 빠지게 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자연스럽게 천해선 헌터님의 위상도 수직 상승하게 될 겁니다. 영국 측에서 이렇게 얌전히 인터뷰를 한 게 의아하긴 합니다만…….”
육철완의 말에 천해선이 빙긋 웃어 보였다.
“제가 일부러 시킨 거예요.”
“네?”
“로이를 살리고 싶으면 내가 시키는 대로 인터뷰하라고 조건을 걸었거든요.”
“엑?”
그 말에 육철완뿐 아니라 모든 동료들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 그럼. 지금 영국 쪽의 인터뷰가 모두 천해선 헌터님의 지시란 말입니까?”
“네. 서로 죽일 듯이 싸웠다고 발표하기에는 좀 그러니까, 대련 중에 다친 거로 하자고 했죠. 사실 로이가 비수에게 했던 일들을 다 까발릴까 생각도 해 봤는데…….”
천해선이 댓글 창을 바라보며 익살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업보가 상당한 친구다 보니 굳이 그럴 필요가 없겠더라구요.”
그 말에 모든 멤버들의 눈이 모니터 화면으로 향했다.
└대련 같은 소리 하네. 세계 헌터 포럼에서 나라끼리 투덕거리는 게 하루 이틀인가.
└이게 무슨 소리야? 로이 그 싸가지가 대련 중에 혼수 상태? 처발렸다는 말이야?
└오, 도저히 믿을 수가 없어. ‘초월급’이 아니면 로이를 꺾을 헌터가 손에 꼽는다는 게 정설이었잖아?
└이 한국에서 온 천해선이란 헌터, 정체가 뭐야? 천하의 로이를 반병신 만들어 놓고 완전히 사라져 버렸잖아?
└이 친구 헌터가 된지 1년도 안됐는데!? 이게 가능해?? 혹시 천해선이 대련중에 비겁한 수를 쓴게 아닐까?
└머리가 달렸으면 생각이라는 걸 좀 해라. 그랬으면 영국 협회에서 가만히 있었겠냐? 오히려 최대한 사건을 덮으려는 뉘앙스잖아.
└그래. 그리고 대련에서 졌다는 인터뷰도 라비가 먼저 한 거야. ‘이레귤러’팀은 지금까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있다고.
└얼핏 봐도 사이즈 나오잖냐. 로이가 신입 헌터 길 좀 들이려다가 된통 당한 거지. 그 새끼 다른 헌터 깔아뭉개고 다니는 게 하루 이틀이야? 남의 던전에 혼자 쳐들어가서 깨 놓고 ‘어차피 너네 전부가 와도 해결 못 하잖아’라고 말하는 놈인데.
└와우!! ‘이레귤러’에 눈이 번쩍 뜨이는 미녀가 둘이나 있잖아? 그런 와중에 로이와 대련이라.. 이거 냄새가 나는데?
└돈을 걸라면 로이가 껄떡대다 참교육을 당했다는 데 걸겠어. 단순한 대련이 아니라!
강정현이 댓글 반을 보며 조그마한 입을 웁직였다.
“그러네요……. 제대로 된 사실을 이야기하지 않았는데 사람들이 모두 같은 소리를 하고 있어요.”
“이를테면, 검증과 미검증의 차이지.”
“검증…… 이요?”
“우리 쪽이야 아직 파악된 정보가 없지만, 로이가 구제 불능의 쓰레기라는 건 이미 검증이 끝난 거니까.”
“아‥…. 그럼 상대적으로 저희가 착해 보일 수 있겠네요.”
강정현은 무심코 그렇게 말한 뒤 황급히 자신의 입을 막았다.
상대적으로 착해 보인다는 말은, 경우에 따라 원래는 악한 집단이라는 해석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어쭈? 강정현. 평소에 우리를 그렇게 생각했다 이거지?”
비수가 악마 같은 미소를 지으며 우물쭈물하는 강정현에게 헤드록을 시전한다.
“악. 아니, 그게 아니고.”
“하하하.”
한차례 웃음이 지나간 뒤, 천해선이 조금 진지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어차피 여론은 우리의 편이라고 생각했어요. 괜히 기분 나쁜 이야기에 비수의 이름이 거론되는 것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중간 과정을 생략했을 뿐이지. 똥이 무서워서 피하는 것만은 아니잖아요?”
“잘했어, 천해선! 내가 관종이기는 하지만 그런 일로 기사에 오르내리는 건 질색이라구.”
“그래도 관종인 줄은 알아서 다행이네.”
“히힛.”
“그나저나…….”
마리아가 조금은 걱정스러운 듯 물었다.
“이래저래 협회가 저희를 마뜩잖아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의도한 건 아니지만 ‘NEO G’와 글로리 길드와의 거래를 무산시키고, 이번에는 영국 대표팀마저 쫓아 버렸으니…….”
“맞습니다. 전부는 아니겠지만, 아마 WHPO(세계헌터수호기구) 중에서 우리를 고깝게 여기는 사람들이 분명 있을 거예요. 특히나 프랑코와 친하게 지내는 임원들이라면 더 그렇겠죠.”
천해선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비수에게로 향한다.
프랑코.
그리고 그와 내통한 WHPO의 관계자.
‘NEO G’과 관련한 은밀한 만남에, 비수가 잡입하고 온 뒤였기 때문이다.
“흠흠. 잘 들어 봐요.”
비수가 목청을 가다듬은 뒤 그때의 일을 떠올렸다.
시끄러운 정보 하나가 지나간 뒤.
이제는 비밀스러운 정보에 대해 이야기할 차례였다.
* * *
“Stairs of hell(지옥의 계단) 순번이 결정되었네. 한국 팀은 프랑스 팀의 바로 다음이 될 거야.”
“저희 의도대로 됐군요.”
프랑코가 이를 드러내며 히죽 웃는다.
은밀한 밀실.
그곳에는 단 세 사람만이 있었다.
WHPO의 간부인 슈레더.
그리고 프랑스에서 대표로 선출된 헌터, 프랑코.
마지막으로 몰래 잠입한 특수 요원(?) 비수.
확실히 강정현이 전해 준 ‘천생이’의 성능은 확실한 것이었다.
프랑코가 비상구를 지나 미로같이 복잡한 길을 거쳐 갔음에도, ‘천생이’의 나뭇가지는 내비게이션처럼 확실하게 길 안내를 해 주었다.
‘고마워.’
비수가 주머니 안에 있는 줄기를 쓰다듬자, 줄기가 부르르 몸을 떨었다.
그녀는 피식 웃은 뒤 그들의 말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자네 요청대로 순서를 변경하기는 했어. 그런데 이다음에는 어떻게 할 생각이지? 한국 헌터들이 Stairs of hell(지옥의 계단)에 입장하는 건 프랑스 팀이 전부 나오고 난 다음일 텐데.”
프랑코가 자신만만한 얼굴로 대답했다.
“저에게 다 계획이 있습니다.”
‘계획이 있어서 일을 이 지경으로 만들었냐, 등신 같은 놈.’
슈레더는 마음속으로 그런 생각을 품었지만,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그는 글로리 길드와의 거래가 무산되면서 프랑코에 대한 신뢰가 뚝 떨어진 상태였다.
“무모한 시도는 하지 않는 게 좋아. 여기는 보는 눈들이 많으니까. 설마하니 한국 헌터들이 던전에 들어올 때까지 남아 있는다든가 하진 않겠지?”
“그럴 리야 있겠습니까.”
프랑코가 히죽 웃으며 품 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투명한 작은 앰플 속에 무색무취의 용액이 들어 있었다.
그리고 그의 입에서,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이름이 튀어나왔다.
“이건 스텔스라고 합니다.”
“……?”
“!!!!!!”
용액의 정체를 모르는 슈레더는 고개를 갸우뚱거릴 뿐이었지만, 비수의 얼굴은 딱딱히 굳어 버리고 말았다.
‘미친. 스텔스라고? 저 새끼가 어떻게 저걸……!’
굉장히 얄궂은 상황이었다.
비수가 프랑코를 안전하게 미행할 수 있었던 게 ‘스텔스’ 덕분이었는데, 프랑코는 바로 그 ‘스텔스’를 무기로 음모를 준비하고 있었다.
‘미행을 하지 않았으면 정말 된통 당할 뻔했잖아?’
비수는 마음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스텔스가 얼마나 신묘한 물질인지는 누구보다도 ‘이레귤러’가 잘 알고 있었다.
스콰마라는 보스 몹의 독에 은근슬쩍 중독되었을 때.
그리고 ‘천생이’의 이파리가 감쪽같이 사라지는 걸 봤을 때도 마찬가지.
이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편이 차라리 낫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드는 물질이었다.
‘우리도 피똥을 싸며 어렵게 구한 물건인데, 저 코쟁이 놈이 어떻게 입수한 거지?’
그러나 비수는 곧, 프랑코 또한 나라를 대표하는 헌터임을 기억해 냈다.
이곳 두바이에 모인 헌터 중 자신보다 약하다고 평가할 만한 헌터는 사실상 없다고 봐야 했다.
천해선처럼 단독으로 처리하지는 못했겠지만, 그가 속한 길드가 스콰마를 제압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었을 수도 있다.
그것도 아니면, 어둠의 루트를 통해 돈을 주고 샀거나.
‘저 비열한 수작질을 보니 후자에 가깝겠군.’
비수가 프랑코를 보며 이를 갈고 있는 사이, 슈레더가 물었다.
“스텔스가 뭐지? 겉보기에는 아무것도 아닌 액체처럼 보이는데.”
“이건 보기보다 달리 꽤나 신통한 물질입니다. 어떤 강한 성분을 가진 물건도 이 액체를 바르면 무색무취하게 변합니다. 심지어 가벼운 물건은, 그 무게감까지 감출 수 있습니다.”
그러자 슈레더가 반신반의하는 얼굴이 되었다.
“그게 가능한 일이야? 색이야 그렇다 쳐도 무게까지 감추는 일이 가능할 리가…….”
“이건 이 세계의 물건이 아닙니다. 스콰마라는 아주 난도 높은 몬스터의 몸에서 추출한 것이지요.”
“으음…….”
이계의 물질이라는 말에 슈레더가 고개를 끄덕였다.
던전이라는 공간 자체가 비현실적인 일투성이가 아니던가.
그 안에서 어떤 신묘한 물질이 나왔다 해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그래, 그 스텔스를 가지고 뭘 할 생각이지?”
“지옥의 계단 3층 입구에 이걸 뿌릴 겁니다.”
“3층의 입구라면…….”
잠시 생각에 잠긴 슈레더가 곧 악마 같은 미소를 지었다.
“머리를 제법 잘 썼군.”
‘뭐야 시발. 3층에 뭐가 있는데……!’
비수는 하마터면 나도 알려 달라 소리칠 뻔했다.
던전에 대한 상식이 제로에 수렴하는 비수가 ‘지옥의 계단’ 구조를 알 길이 만무했다.
“이레귤러 팀이 인원수는 적어도 나라를 대표해서 왔으니 기본 기량은 있을 겁니다. 게다가 팀원 중에는 마리아도 있고……. 아마 2층까지는 무난히 돌파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어차피 2층조차 돌파하지 못한다면 경쟁자로 의식할 가치조차 없다.
“그래. 이쯤 되고 보니 놈들이 꼭 2층을 돌파해 주길 바라야 할 판이군.”
슈레더가 낮은 웃음소리를 흘렸고, 곧 프랑코가 같은 소리를 내었다.
* * *
“그런 거구나.”
“그렇군.”
“그렇군요.”
“곤란하게 됐네요.”
비수가 말을 마치자, 네 사람이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에 비수는 버럭 성질이 나고 말았다.
“뭐야! 정작 말한 사람은 모르는데 자기들끼리만! 정현아, 너도 이해했어?”
“아……. 네.”
강정현이 눈치를 보며 대답했고, 천해선이 옆에서 이죽거렸다.
“이쯤 되면 본인에게 뭔가 부족한 게 있다는 생각이 들 법도 한데.”
“너 진짜 죽는다!”
“하하. 그래도 고생했어. 덕분에 일이 편하게 됐으니까.”
“편하게 됐다고?”
천해선의 말에 비수뿐만 아니라 모든 멤버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상대의 수를 알아냈다고는 하나 아직 해결된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데 일이 편하게 되다니.
게다가 곧 이어진 천해선의 말에, 동료들은 한 번 더 놀라야만 했다.
“어. 3층은 나 혼자 돌파할 거야.”